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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나라'에 대해 이야기할 때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내가 살고 싶은 나라, 내가 꿈꾸는 국가'에 대한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대선 기획 '100인의 편지'를 통해 전하고자 합니다.

이번 기획은 '열린 기획'으로 시민기자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차기 정권에 하고 싶은 말, 바라는 바에 대해 적어 기사로 보내주세요. '이게 나라냐'는 탄식을 넘어 '이게 나라다'라는 새로운 지향점을 여러분과 함께 열어나가겠습니다. [편집자말]

[ROUND 1] 모래주머니를 차고 구직 시장을 달리는 여성들

모 일간지에서 인턴기자를 할 때의 일이다. 놀고먹던 한 달 동안의 인턴기간이 끝나가던 어느 날, 경제부 기자가 와서 남자 인턴 둘에게 명함을 돌리며 선심 쓰듯이 말했다. "나중에 기자되면 연락해." 나는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간 그의 시덥잖은 농담에도 성실하게 반응해왔으므로 당연히 나한테도 명함을 줄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차례는 오지 않았다.

따져묻는 말에 그는 말했다. "너는 여자니까." 그는 친절하게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너는 여자니까 언론계 후배가 될 가능성이 적어. 당장 내 부서만 봐도 부장이 여자는 안 받으려고 해. 기분 상했다면 미안하지만, 난 현실을 말해줬을 뿐이야." 그렇게 열받는 사과는 처음이었다. 다음날, 나는 자리를 정리하며 다짐했다. 언젠가 기자가 되어 저 인간의 면상에 반드시 명함을 날려주리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언론고시를 준비했다. 기존 스펙에 토익과 한국어 점수를 더하면 1차 서류전형은 대개 무난하게 통과했다. 관건은 2차 논작 필기시험이다. 나는 논술아카데미를 등록하고 스터디를 했다. 이 무렵부터 이미 남자가 귀했다. 스터디 인원 5명 중에서 남자는 0~2명 사이를 오갔다. 2차 필기시험장에 가보면 그 비율이 한눈에 보였다. 어림잡아 여남 비율이 7:3 정도 되었다. 당연히 필기합격자도 여자가 많았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최종 합격자는 남자가 더 많았다. 대체로 합격자의 여남 비율은 4:6 정도였던 것 같다. 만약 2차 필기시험장에 여자가 700명, 남자가 300명 있다고 가정해보자. 최종으로 여자 2명, 남자 3명을 뽑으면 경쟁률은 다음과 같이 환산된다. 여자는 350대 1, 남자는 100대 1. 실제로 성비 쿼터가 존재한다면, 여자의 경쟁률은 남자에 비해 세 배가 높다는 뜻이다.

논술아카데미에 함께 다녔던 남자 동기들은 언론사에 빠른 속도로 합격했다. 간간이 여자 동기들의 합격소식도 들려왔다. 하지만 남자 스터디원의 품절 속도는 따라잡을 수 없었다. 내 주변에는 거의 멸종 수준이었다. 그렇게 3년 반이 지났다. 100통의 지원서, 5번의 최종 면접, 5번의 낙방. 내 차례는 끝내 오지 않았다. 

수치상으로 봐도 여자한테 기자는 좁은 문이다. 2014년 기자협회보에 따르면 언론사 여기자 비율은 평균 20퍼센트로 나타났다. 매년 선발하는 여기자 수가 많아지고 있다지만, 2013년 <조선일보>의 경우 최근 5년간 여성 채용 비율이 35%였다. 여성지원자의 수가 월등하게 많기 때문에 남녀 동수를 뽑아도 경쟁률이 차이가 나는데, 더 적게 뽑으니 여자들은 기자 시험을 통과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턴기간에 그 기자가 했던 말은 사실이었던 것이다! 

비단 언론사만 그런 것은 아니다. 여성의 대학 진학율이 남성보다 결코 뒤지 않는 지금에도, 대기업의 여성 채용 비율은 20퍼센트 초반에 머물고 있다. 여성에게 가장 보수적인 조직인 군대를 보자. 그중에서도 군대의 핵심 권력, 사관학교는 여성 정원이 전체의 10퍼센트다. 기본적으로 남자에 비해 경쟁률이 두 배 이상 높기 때문에 매해 수석 입학생은 여성의 독차지다. 나는 이런 소식이 달갑지 않다. 왜 여성은 남자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가져야만 겨우 출발선에 설 수 있는가? 왜 똑같이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데 여성은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려야 하는가?

극중에서 보아는 여기저기서 어서옵쇼 하는 유명한 메인 작가이기 때문에 피디한테 꿇리는 모습을 보여줄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현실은 온갖 허드렛일을 담당하는 막내 작가에 있다.
▲ 드라마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중에서 극중에서 보아는 여기저기서 어서옵쇼 하는 유명한 메인 작가이기 때문에 피디한테 꿇리는 모습을 보여줄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현실은 온갖 허드렛일을 담당하는 막내 작가에 있다.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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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을 환영하는 직군은 따로 있다.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면 PD보다는 작가가 되는 길이 훨씬 빠르다. 현업에 종사하는 방송작가는 여자가 90퍼센트 이상이다. 여자라면 기자는 되기 어려워도 그들에게 보도자료를 건네주는 직군에서 일하기는 쉽다. 홍보대행사 역시 대부분 여자들 차지다.  tvN 드라마 <이번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에서 이선균이 피디로, 보아가 작가로 나온 것이나 소설 <82년생 김지영>에서 화자가 홍보대행사 직원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직업들의 공통점은 한 업종을 통틀어 권력 피라미드에서 봤을 때 을 중의 을의 위치에 있다는 점이다. 남자들은 계약상 갑으로 의사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여성은 선택을 받아들이고 수정을 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또한 업무 강도로 봤을 때 결코 남자들의 일에 비해 약하지 않지만, 잘나가는 극소수를 빼고는 대부분 저임금과 불안정 노동에 시달린다. 한마디로 돈과 권력이 약한 일자리인 것이다. 같은 업계라도 남성을 원하는 일자리와 여성이 다수인 일자리의 질이 이렇게 차이가 난다. 

이러한 성별 분업 구조는 여성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낸다. '돈과 권력은 원래 남자들의 것이다. 함부로 넘보지 마라.'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자들이 오로지 성적으로만 채용이 결정되는 공무원 시험에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청개구리 딸년은 이제 와 후회해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엄마 말 듣고 일찌감치 교사 준비를 할 걸 그랬나...

[ROUND 2] 출근은 단지 시작일 뿐이란다

어쨌든 나도 취직이라는 걸 했다. 운이 좋았는지 출판사에 지원서를 낸 지 두 번 만에 붙었다. 싱거웠다. 편집부에 가보니 90퍼센트가 여자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여자가 많은 직군에 지원할 것을, 기자가 뭐라고 3년 반 동안 그 짓을 하고 있었나 싶다. 급여는 생각보다 높았고, 야근도 그리 많지 않았다. 내 분에 넘치는 회사였다. 오랜만에 찾아온 행운에 나는 한동안 웃고만 살았다. 나에게도 안정적인 월급이, 책상이, 동기와 선배, 상사가 생긴다는 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머지않아 나는 현실을 깨닫게 된다. 편집자 역시 상당한 감정 노동을 요하는 직업이었다. 대부분의 저자는 점잖았다. 하지만 가끔 진상 저자를 만날 때면 천년의 열정이 사라졌다. '내가 베스트셀러 저자인데 말야, 알아서 모시지 않고!' 하는 분들의 심기를 건드렸다고 치자. 당장 전화해서 막말을 쏟아내는 건 예사다. 그들은 새벽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연락을 해댔다. 교정지에 인신공격에 가까운 문장들을 휘갈겨 놓고, 회사에 찾아와서는 디자이너를 앉혀놓고 일일이 수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치욕적이었다.

나는 나의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화나게 했는지 정말 알고 싶었다. 홀대받는다고 느꼈던 걸까? 어느 지점에서 내가 눈치없이 굴었을까? 직급이 낮아서 혹은 '여자라서' 신뢰할 수 없었던 걸까? 아니면 이 모두 다 였을까? 나는 차마 묻지 못했다. 대신 묵묵히 감정의 배설물들을 받아냈다. 그저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미생>에서 '마초 상사'들 때문에 고생하는 안영이(강소라 분).
 <미생>에서 '마초 상사'들 때문에 고생하는 안영이(강소라 분).
ⓒ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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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따금,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강제로 인식하게 되었다. 저/역자에게 성추행을 당할 때, 회사에서 용모단정을 요구받을 때, 왜 웃지 않느냐는 말을 들을 때, 남자 동료한테는 간단한 정보도 몇 번을 요청해야 받을 수 있을 때, 내 전문 영역에서조차 아는 척하는 남자로부터 '맨스플레인'을 당할 때, 일일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말도 못하고 혼자 얼굴만 벌게졌다. 그러고는 뒤돌아서 나의 센스없는 처신과 내성적인 성격을 탓했다.

이게 성별의 문제임을 알게 된 것은 여자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다. 출판계를 비롯해 다른 영역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갖가지 양태로 재현되고 있었다. 트위터, 페이스북, 팟캐스트, 책... 어디든 분노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넘쳐났다. 그녀들은 일터에서 두 가지 싸움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 하나는 일 그 자체이고, 또 하나는 인간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얻기 위한 투쟁이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이중의 전선에서 싸우고 있다. 하나는 무엇이 되었든 문제의 주제에 관한 싸움이 벌어지는 전선이고, 다른 하나는 애초에 말할 권리, 생각할 권리, 사실과 진실을 안다고 인정받을 권리, 가치를 지닐 권리, 인간이 될 권리를 얻기 위해서 싸우는 전선이다." -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ROUND 3] 출산과 육아, 그리고 유리천장의 덫

시간이 지나서 '짬'이 좀 쌓이면 이 싸움이 쉬워질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결혼을 하고 나니 주 12시간 이상의 가사노동이 추가되었다. 여기에 아이까지 생기면? 출산휴가야 쓰겠지만, 육아휴직을 다는 못 쓸 것 같다. 대체 인원을 충분히 뽑지 않아 남은 이들의 업무 부담이 상당할 테니 말이다. 그렇게 복귀해도 원격으로나마 아이를 챙기는 일은 엄마의 몫이다. 야근을 못하니 업무강도는 더욱 높아질 터, 집에서든 회사에서든 시간에 쫓기는 '타임푸어'로 살아갈 것이다.

이 시나리오도 내가 재취업에 성공했을 때 얘기다. 현재 기혼인데 아이가 없는 상태로 쉬고 있으니, 조만간 면접장에 선다면 출산 계획에 대한 질문부터 '현명하게' 답해야 할 것이다. 과연 이 관문을 통과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이미 수많은 '경력 단절 여성'들의 대오에 들어섰는지도 모른다.   

만약 재취업에 성공했다고 하자. 그리고 아이도 낳아 임신, 출산, 육아의 터널을 어떻게 헤쳐 나간다고 가정하자. 그 다음은 유리천장이 기다린다. 남자들은 아빠가 되면 가장이니까 일터에서 더 열심히 하라는 격려의 말을 듣는데(회사에서는 아빠들이 육아휴직을 당연히 안 쓸 거라 생각한다!), 여자들은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쓰고 돌아오면 그동안 '쉬었다'는 이유로 연봉과 승진에서 미끄러진다. 일단 버틴다고 하자. 그나마도 첫째가 초등학교를 입학하거나, 둘째를 임신하면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돌봄의 공백, 육체적인 한계에 부딪혀서다. 일단 나부터가 둘째 임신으로 그만둔 선배의 결원으로 채용되었던 케이스다. 어쨌든 살아남았다고 치자. 이제 남은 건 승진이다. 그래도 여자들의 차례는 잘 돌아오지 않는다. 

은행을 예로 들어보자. 예나 지금이나 창구 직원은 대부분 여자인데, 첫 여자 행장이 탄생한 게 2013년의 일이다. 초등학교에 여자 교사가 넘친다지만, 여자 교장은 20퍼센트가 안 된다. 여자들이 많은 출판계는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다. 남성들이 주를 이루는 직군의 여성 임원 비율은 처참할 정도다. 2016년 기준 국내 100대 기업의 전체 임원 가운데 여성 임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2.2퍼센트라고 한다. OECD에서 발표한 유리천장 지수(남녀경제활동 비율 고려해 산출) 통계에서 한국이 최하위를 기록한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내가 너무 세상에 불만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실은 나의 능력 부족, 끈기 없음을 먼저 탓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인정한다. 나는 기자가 되려면 더 많이 노력하고, 더 오래 버텨야 했다. 훌륭한 편집자가 되려면 더 세심하게 저자들의 심경을 헤아려야 했다.

내 주변에는 이런 능력자들이 있다. 여자 편집장, 기자, PD... 그녀들 역시 그 자리에 쉽게 오른 것은 아니다. 확실히 나는 그녀들보다 부족하다. 나는 알파걸이나 슈퍼우먼하고는 거리가 먼, 그저 평범한 여성일 뿐이다. 그런데 평범한 여성으로 살기가 이렇게 어렵다면, 세상이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여자라서 우대받기를 원하는 게 아니다. 그저 채용 과정에서, 일터에서, 육아에서, 승진에서 남자와 동등한 출발선에 서기를 원할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 땅의 평범한 '82년생 김지영'들의 바람일 것이다.       

대선주자의 성평등 정책, 반갑기는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대선후보들이 성평등 정책을 발표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이 중 가장 화제가 된 것은 단연 육아 정책이다. 특히 심상정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낸, 아빠의 육아 휴직을 의무화하는 안이 남녀 모두에게서 호응을 얻고 있다. 이는 국가 차원에서 양육을 남녀 공동의 책임으로 보겠다는 신호다.

만약 이 안이 실현된다면 가정과 일터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생애초기 아이를 돌본 경험은 이후로도 남성을 육아에 참여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맞벌이인 경우,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으니 당장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여성이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줄어들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이 안 만큼은 실현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그것이 성평등 정책의 전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심상정 의원은 "출산은 선택이다. 그 전에 여자가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남성의 육아 휴직 의무화를 비롯해 이와 관련된 안들은 인구 정책에 속한다. 국가가 존속하기 위해 저출산은 반드시 타개해야 할 문제이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출산 파업에 나선 여성을 돌려세울 방책을 마련하는 것일 게다.

페미니즘은 그 이상을 요구한다. 자궁에 관해 논하기 이전에, 여성이 일상에서 숨 쉬듯 느끼는 차별과 억압의 경험에 귀 기울여 주기를 바란다. 앞서 말한 고용 시장에서의 차별, 일터에서의 여자 패널티, 임신·출산·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남녀임금격차, 유리천장을 비롯한 산적한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주었으면 한다. 그리하여 '82년생 김지영'으로 대표되는 평범한 여성들의 삶이 실질적으로 나아졌으면 한다. "내가 진짜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처하는 문재인, 유승민, 심상정 후보는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단순히 여성의 표를 가져오기 위해 성평등을 내건 것이라면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그것은 자칫하면 남성의 표를 잃는 결과로 귀결될 수 있다. 페미니즘과 관련된 이슈에서는 남녀 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한다. 여성에게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남성에게는 이미 가진 것을 빼앗기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가진 것'은 좋은 것을 의미한다. 그간 남성은 이 사회의 지배적인 성으로서 돈과 권력을 독차지했지만, 여기에 따르는 부수적인 피해도 함께 져 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병역의 의무는 물론, 연애와 결혼시장에서 대개 금전적으로 더 많은 부담을 진다.

남성의 입장에서는 '나쁜 것'은 그대로인데 여성이 '좋은 것'만 가져가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들은 여성의 경험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남성으로서 자신의 경험에 비춰봤을 때 성평등과 관련된 많은 정책들을 역차별이라고 주장한다. 상황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후보들은 성평등이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남성에게 이로운 것이라고 설득할 의지가 있는가? 그리하여 표를 잃을 위험을 무릅쓰고 함께 성평등 사회로 나아가자고 권할 의지가 있는지 궁금하다. 

"제 시기가 온 사상보다 더 강력한 것은 없다"

빅토르 위고는 "제 시기가 온 사상보다 더 강력한 것은 없다"고 했다. 페미니즘이 바로 그렇다. 2017년 현재 여성들은 온라인의 담론을 넘어 출판, 영화를 비롯한 문화계에서 페미니즘 콘텐츠를 광범위하게 소비하고 있다. 오프라인에서의 만남, 집회,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이러한 경향은 과속화될 것이다.

자신의 삶을 둘러싼 문제가 여성혐오, 성차별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된 이들은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건 역차별을 당한다고 생각하는 남성 역시 마찬가지다. 페미니즘을 둘러싼 남녀 간의 성 대결 구도는 앞으로 더욱 공고해질 전망이다. 제때를 맞은 강력한 사상과 이에 반대하는 강력한 세력이 충돌하면 어떻게 될까? 이 상태로 몇 년 더 지속된다면 태극기와 촛불이 험악한 얼굴로 마주친 것처럼, 남성과 여성이 폭력적인 형태로 광장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2016년 강남역 사건을 추모하는 자리에서 그러했듯이 말이다. 

19대 대통령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갈등에 대한 해결책을 내놔야 할 것이다. 정치 공학적인 계산을 넘어서, 이는 우리 사회의 발전과 '통합'을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그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이왕 페미니즘을 입에 올렸으니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공부해 달라. 정책 의지는 가치관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먼저 이 글에서 수없이 인용한 책 <82년생 김지영>부터 읽어주기를 바란다. 한국의 일하는 여성이 밟는 삶의 경로를 파악하는 데 유용한 입문서다. 이후에는 출판계에 넘쳐나는 전설적인 페미니즘 도서들을 한 권씩 읽어주었으면 한다. 왜냐하면 앞의 책조차 여성들이 지닌 고민 중의 극히 일부를 담고 있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2016년 가장 화제가 된 도서 <나쁜 페미니스트>의 저자 록산 게이가 테드 강연에서 한 말이다.   

"확실히 자명한 진실이 있습니다. 여성은 남성과 동등합니다. 동등한 일에 동등한 급여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선택한 대로 세상을 살 권리가 있습니다. 학대와 폭력 없이 말이죠. 쉽고 알맞은 피임에 대한 권리와 출산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법의 감시와 종교적인 교리에서 자유롭게 우리 신체에 대한 선택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존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더 있습니다. 여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가 가진 다른 정체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우리는 단지 여자가 아닙니다. 다른 신체와 성 표현, 신념, 성적 특징, 계층, 능력, 그 이상을 가진 사람들이죠. 이런 차이점과 그것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공통점만큼이나요. 이런 포용 없이는 우리의 페미니즘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읽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페미니즘은 기존의 세계관을 전복시키는 언어다. 그것은 새로운 프리즘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평등 정책은 개별 법안도 중요하지만, 모든 법을 포괄하는 가치관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그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남인순 의원이 헌법 11조에 성평등 조항을 추가하는 개정안을 발의한 것이나, 안철수 대선후보가 이 공약에 동조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커다란 진전이다. 이런 시도들이 관철될 수 있도록 그 의지를 공고히 해 달라. 페미니즘 도서들은 남성으로서의 경험의 한계를 뛰어넘어 진정한 성평등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하고, 그 의지를 다져주는 주춧돌이 되어줄 것이다.     

나는 세상이 더 좋아질 거라고 믿는다. 적어도 다음 세대는 우리보다 더 성평등한 세상에 살게 될 것이다. 여자라고 해서 기자가 되기 어렵고, 남자라고 해서 방송 작가가 선택지조차 되지 못하는 환경은 개선되리라 본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내가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나는 절대 엄마처럼 딸이라고 해서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권하지 않을 것이다. 남자라고 더 많은 경제적 부담을 져야 하며, 그 때문에 꿈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믿어본다. 육아와 관련된 제도 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성평등을 실천해주리라 말이다. 다음 세대를 위하여, 그리고 현 세대의 행복을 위하여, 19대 대통령은 진정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 블로그에도 연재합니다.



태그:#페미니스트 대통령, #82년생 김지영, #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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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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