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어쨌든 아빠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야"

구례와 하동이 만나는 곳에 있는 화개장터
▲ 화개장터 구례와 하동이 만나는 곳에 있는 화개장터
ⓒ 이인환

관련사진보기


"아빠, 우리가 왜 거길 가야 해?"
"아빠, 소원이야. 딸들과 한번 꼭 가보고 싶었어."
"그 먼 곳에 왜 가야 하는데?"

이천에서 화개장터까지 자그만치 300Km가 넘는다. 1박 2일이 아니면 좀 벅찬 일정이다. 올해 대학을 졸업해서 막 취직한 큰딸이 아빠랑 여행을 가는 것에는 동의했지만 화개장터는 너무 멀다고 난색을 표했다.

"너, 이 노래 알아?"

나는 스마트폰에서 조영남의 노래 '화개장터'를 검색해서 틀어주었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엔~~"

큰딸도 한 번쯤 들은 노래다. 그래서인지 시큰둥하게 말한다.

"아빠, 장터는 여기도 있는데 꼭 먼 데까지 가야 해?"
"멀긴 하지. 하지만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갈 수 있을까? 아빠 죽기 전에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은 곳인데..."

마침 올해 대학교에 진학한 작은딸 자취방이 대전에 있었다. 그래서 토요일에 대전으로 가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아침에 가면 여유있게 다녀올 수 있지 않겠냐고 했다. 일요일은 늦잠을 자고 싶다던 큰딸이 그렇게 하면 9시까지 자도 된다고 했더니 마지못해 동의를 했다.

"아빠, 화개장터에 꼭 가고 싶은 이유가 뭐야?"

자취방에서 작은딸이 물었다. 나는 딱히 뭐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다시 한번 조영남의 '화개장터'를 들려주며 말했다.

"어쨌든 아빠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야.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곳...."

그러자 두 딸은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고 대전에서 당일 코스 여행 일정을 따라주기로 했다. 대전 작은딸 자취방에서 일요일 아침 9시쯤에 출발했다. 내비게이션으로 찍어보니 2시간 반 정도 걸린단다. 적어도 점심은 목적지에서 먹어야겠기에 부지런히 달렸다.

워낙 길치인 데다 내비게이션만 믿고 달린 길이라 코스가 어떻게 됐는지는 모른다. 어쨌든 그렇게 두 시간 정도 달리니 구례가 나왔고, 목적지인 화개장터 가는 길에 '구례 화엄사' 이정표가 크게 보였다.

"우리 저기 화엄사에 들러 30분 정도만 있다 가자."

두 딸은 운전대를 잡은 아빠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이번 여행은 아빠를 위해 함께 한 것이니까 무조건 아빠 의견에 따르겠다는 표정이다. 순간적으로 처음 목표였던 화개장터로 바로 가는 게 좋은지, 이렇게 잠깐 샛길로 들렀다 가는 게 좋은지 생각해 봤다. 이 먼 거리를 언제 다시 올 수 있겠는가? 괜히 후회하지 말고 마음이 내키는 대로 화엄사부터 들러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막상 화엄사에 들르니 볼 것이 많았다


그런데 막상 화엄사에 들러보니 볼 것이 많았다. 섬진강이 보인다는 연기암에도 올라 보아야 했고, 딸들이 인터넷으로 검색한 화엄사 명물인 '홍매화' 나무를 보지 않고 그냥 떠날 수가 없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화엄사 들른 김에 이왕이면 후회없이 즐기자고 했다. 처음 목적지인 화개장터에서 샛길로 새는 것에 좀 불만이 있었던 딸들이 더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후딱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다행히 시계를 보니 12시, 네비게이션을 켜니 화개장터까지는 30분 정도면 충분히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점심은 화개장터에서 먹기로 하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그런데 10여 분간 순조롭게 달리던 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네비게이션을 보니 4Km밖에 남지 않았다. 아무리 밀려도 삼사십 분이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차는 거의 멈추다시피 했다.

"너희들 알아? 구례에서 하동까지 섬진강 벚꽃길이 얼마나 유명한지?"

그동안 책이나 매스컴에서 본 것을 갖고 내가 아는 소리를 했다. 나 역시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기에 딸들에게 실감있게 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빠, 이게 뭐야? 아직 꽃도 다 안 피었네."
"그러게? 아빠도 처음이라 좀 실망스럽기는 하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차가 막힌 것에 대한 지루함을 달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이었다. 길 양 옆에는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운전자만 남기고 차에서 나와 걷는 사람들이 늘어섰다. 나는 오줌이 마렵다는 핑계로 큰딸에게 운전대를 맡기고 얼른 밖으로 나왔다. 그야말로 차보다 걷는 것이 더 빨랐다. 아직 꽃이 활짝 피지 않아서 그동안 환상처럼 머릿속에 새겼던 그 섬진강 꽃길이 아니었다.

"아빠가 운전할게 너희들도 꽃길을 걸어봐."

나는 볼 일을 보고 꽃길을 조금 걷다가 뒤따라온 차에 타며 딸들에게 말했다. 큰딸이 운전대를 맡기고 동생과 함께 꽃길로 나갔다.

"아빠, 이거 봐. 정말 좋아."

신기하게 목적지로 다가설수록 꽃이 조금씩 더 피어 있었다. 같은 길인데 개화시기가 좀 다른가 보다. 앞으로 갈수록 꽃이 더 많이 피어 있었다.

다행이다. 딸들은 꽃길을 즐기고 있었다. 차가 밀린다고 짜증이라도 낸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너무 밀리니까 중간에서 차를 돌려 반대로 빠져나가는 이들도 있는데, 나도 그래야 하나?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다행히 딸들도 여기까지 온 이상 어떻게든 화개장터는 보고 가야겠단다.

네비게이션으로 4Km를 확인했는데, 아무리 막혀도 한 시간 정도면 될 줄 알았는데 끝도 없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 왔을 무렵에 네비게이션이 남도대교로 좌회전할 것을 가리키며, 강 건너가 화개장터임을 알려준다. 모양을 보니 다리를 건너는 데도 30여분은 족히 걸릴 것 같다. 그래서 얼른 남도대교 입구에 있는 음식점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점심때가 훨씬 지났기에 여기서 밥을 먹기로 했다.

주차장에 차를 놓고 장터까지 걷다


큰딸이 스마트폰으로 화개장터 맛집을 검색했지만, 거기까지 갈 엄두는 내지 못했다. 대신 화개장터에서 꼭 맛을 봐야 할 음식을 검색하니 '재첩회'와 '장터국밥'이 있다고 했다.
마침 음식점 메뉴판을 보니 재첩회무침이 있었다. 가격 3만원, 좀 비싸다 싶었지만 특산물이라 생각하니 어떻게든 맛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딸들이 국밥은 장터에서 먹어야 한다며 재첩회무침을 시켰다.

"재첩회만 먹기 뭐하니 찹쌀동동주 맛을 보셔야 하지 않을까요?"

주인 아주머니가 메뉴판에 있는 동동주를 가리킨다. 가격도 만 원이나 하지만 운전 때문에 입맛을 다시며 슬쩍 큰딸 눈치를 살폈다.

"내가 운전할게. 하나 시키세요."

이렇게 예쁠 수가? 큰딸이 먼저 말하지 않았으면 삐졌을지도 모른다. 얼른 아빠 눈치를 살펴준 큰딸이 마냥 고마웠다. 그러다 보니 재첩회에 막걸리를 먹는 나는 뭔가 조화가 맞았지만, 재첩회만 먹는 딸들이 좀 그래보였다. 그래서 국밥이라도 시켜주려고 했더니,
딸들이 아빠에게 눈치를 줬다. 국밥은 이따 장터에서 먹기로 하고 여기서는 간단히 먹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얼른 주인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여기 국수 좀 삶아주세요. 회무침에 말아 먹게요."
"그건 메뉴에 없지만 특별히 해드릴게요. 대신 2천원 주세요."

혼자서 동동주를 다 먹을 수 없었다. 세 잔 정도만 먹고, 나머지는 아까우니 싸 달라고 했다. 차는 계속 밀렸다. 그래서 음식점 주차장에 차를 놓고 장터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덕분에 남도대교를 걸어서 걸을 수 있었다. 정말 좋았다.

마침내 고생 끝에 들어선 화개장터. 생각보다 초라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어머니 따라 다녔던 이천장보다 훨씬 초라해 보였다.

"아빠, 어때? 뭐 볼게 있나?"
"그래도 오길 잘 했지. 직접 보지 않았으면 평생 한이 되었을 걸. 여행은 이처럼 직접 와 보니 별거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봐."
"뭐, 별로 볼 것도 없네."
"그런데 생각해 봐. 옛날에 전라도와 경상도 사람들이 여기에서 만났던 곳이래."
"그거 다 조영남 노래에 나오는 거잖아?"
"그래, 그 노래를 듣고 나는 여기를 꼭 와보고 싶었던 것이고. 아마, 여기 온 사람들 중에 나처럼 조영남 노래 듣고 온 사람들도 많을 걸."

그러고 보니 이제 화개장터와 조영남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조영남 하면 화개장터, 화개장터 하면 조영남. 이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인근에는 조영남 갤러리 카페가 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딸들과 함께 들러보았다.

썰렁하다. 다른 사람이 그린 그림을 자신이 그린 것처럼 사기를 쳤다고 매스컴에 올랐던 그 화투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어쩌면 사람들도 이런 사실을 알기에 발길을 끊은 게 아닐까? 조영남에게 화투그림은 지울 수 없는 상처이자 낙인이다.

그런데 굳이 화투 그림을 전시해 놓은 이유가 무엇일까? 차라리 '화개장터'가 조영남의 대표곡이 되기까지의 스토리를 전시했으면 어떨까? 화투 그림을 전시하는 것은 조영남이나 화개장터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점은 정말 아쉬운 대목이다.

"알아, 지금 우리는 예술이 밥 먹여 주는 현장에 있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아빠?"
"만약에 조영남이 '화개장터'라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면 내가 화개장터에 올 생각이나 했을까? 이렇게 초라한데, 누가 여기까지 오겠어? 일부러 장을 보려 여기까지 오는 사람은 없을 테고, 그러면 화개장터도 그저 옛날 이야기에 배경으로나 자리잡고 있겠지."
"아빠, 무슨 말 하려는지 알겠어. 그러니까 조영남의 '화개장터'라는 노래가 여기를 살렸다는 거잖아?"
"그렇지? 그 노래가 여기를 관광지로 만들었고, 나처럼 고생을 해서라도 와보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 놨지. 말 그대로 예술이 밥 먹여주는 현장이 된 것이지."

화개장터에 대한 환상이 깨지다


우리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으로 여행객을 불러 들이는 봉평 이야기를 했다. 몇 년 전에, 그때도 나는 딸들에게 말했다.

"우리 봉평 좀 꼭 다녀오자. 아빠 소원이야."

그리고 그 자리에서 똑같은 말을 했었다.

"여기 봉평은 이효석이 단편소설인 '메밀꽃 필 무렵'이 먹여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그야말로 예술이 사람들 밥을 먹여주는 거지."

화개장터에서 국밥을 먹고 나니 어느 새 오후 5시가 넘었다. 욕심 같아서는 인근 하동에 있다는 '토지 문학관'에도 가보고 싶었지만, 내일이면 출근해야 할 큰딸에게 그 욕심까지 밝혔다간 죄를 짓는 것만 같았다. 또한 차가 막히지 않는다는 것을 장담할 수 없어서 하동까지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곱씹으며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대전 자취방에 작은딸을 내려주고, 이천까지 가야 할 길이 너무 멀었다.

그날, 자정에 가까워 이천 집에 돌아오자마자 큰딸은 내일 출근을 위해 바로 잠자리에 들었고, 나는 그동안 조영남의 노래를 통해 환상처럼 품어왔던 화개장터에 대한 동경이 깨진 것을 달래는 시 한 편을 짓는 것으로 마무리 했다.

초행 화개장터

                    이인환 

예술이 밥을 먹여 주는 장면에 힘이 났습니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 지르는 
섬진강 줄기 흥겨운 조영남의 가락을 따라

특별히 장볼 일 없지만 죽기 전에 한번은 
꼭 들러야 할 것만 같은 여행지 찾아 
삼백여 킬로미터 멀다 않고

벚꽃 십리 길 밀려든 상춘객 차량으로
가다서다 서다가다 두 시간을 넘겨도
유명세 있으니 당연하다 참고 참았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냥 시골 장터 

어려서부터 봐왔던
이천장 오천장 백암장 같은 
그런 시골 장터

그런데 
그런데 예술이
밥 먹여주는 현장에 감탄이 절로

사라져가는 그냥 시골 장터 살려내고
예술이 어떻게 밥을 먹여주는지 
깨우쳐 준 조영남의 흥겨운 타령이 절로

구경 한번 와 보세요 보기엔 그냥 시골 장터지만
있어야 할 건 다 있구요
없을 건 없답니다 화개장터



태그:#화개장터, #조영남, #버킷리스트, #화엄사, #벚꽃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