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나는 가난을 버겁게 어깨에 지고도 모자라 등에 맨 채 태어난 386세대다.

1964년생이니 분명히 60년대 생이고 나야 다닌 적이 없으나 동무들이 대학을 다니던 시절이 80년대 초반이다. 그런데 이젠 나이가 30대를 넘기고도 40대를 지나 어느새 50대 중반이 눈앞이다. 이젠 엄밀히 따지면 한 단계 추억을 더 짊어진 586세대라 해야겠다. 그러니 앞으로는 386세대라느니, 386의 기수라느니 하는 수식어는 몸에 맞지 않는 작아진 옷에 불과하다.

장가를 늦게 들어 아직 어리광이나 부리는 줄 알았던 자식이 둘 있는데 이미 두 녀석 모두 중학생이나 자연스럽게 세상을 보는 눈이 남들처럼 여유롭지 못하다. 그러니 타박할 생각이라면 아예 더 이상 이 글을 읽을 필요 없이 덮으면 된다.

솔직히 지난 어린 날들을 돌이켜 생각하면 후회막심한 일도 많았다. 뉘우칠 기회가 주어진다면 마땅히 뉘우칠 것이고, 그 날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만 진다면 어떻게든 이 굴레를 벗어날 방법을 찾아 또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늘 가슴 속에 눈이 덮인 고향의 산과 들을 품고 살아온 건지도 모른다.

오색령(한계령) 4월 2일 잠시 찾았던 고향 오색령엔 아직 겨울이 진득하게 눌러앉아 있었다. 이미 전국 어디서나 봄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양양군의 8경 가운데 한 곳인 오색령은 누가 보더라도 봄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오는 봄은 기어코 오래지 않아 이곳에도 산새가 알을 품고, 꽃들이 일순간 피어난다.
▲ 오색령(한계령) 4월 2일 잠시 찾았던 고향 오색령엔 아직 겨울이 진득하게 눌러앉아 있었다. 이미 전국 어디서나 봄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양양군의 8경 가운데 한 곳인 오색령은 누가 보더라도 봄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오는 봄은 기어코 오래지 않아 이곳에도 산새가 알을 품고, 꽃들이 일순간 피어난다.
ⓒ 정덕수

관련사진보기


천성적으로 바람 같은 놈이라는 욕을 들으며 살아왔다. 그 욕을 하는 사람들은 실제 내가 바람을 닮으려 한다는 걸 모르면서, 막연히 자신들의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바람 같다고 욕을 했다.

그랬다. 난 분명히 바람의 기질을 지니고 있다. 서풍인 듯 하면 어느 순간 북풍이고, 동풍인가 하면 남풍으로 돌변하는 반골기질까지 지닌 걸 숨길 일도 이제는 없다. 천성이 그리 생겨먹은 걸 어찌할 방도가 없는 것이다. 지금 잠시 잠 재워둔 기질이 언젠가 아이들이 자라 스스로 앞가림을 할 정도만 되면 다시 정처(定處)없이 바람으로 떠돌지도 모른다.

현자(賢者)도 아니고 그렇다고 구도자(求道者)라고 할 수도 없으면서 마치 구도자가 고행을 하듯 세상을 향해 크게 소리치고 싶을 때나, 주어진 환경에 대해 불만이 차곡차곡 쌓여 지탱하기 힘들면 주로 산을 찾아 행동했다. 산을 오르기 위해 출발하면 금방 다리가 아프고 왜 이 길을 들었을까 후회한다. 마찬가지로 때로는 내가 이 세상에 오게 된 그 자체에 대한 불만도 가졌던 적도 있다.

하지만 산을 오르는 행위가 어느 정도 참고 오르다 보면 서서히 시야가 트이고 점차 먼 곳을 볼 수 있는 여유로움이 생긴다. 그러나 여전히 걸어야만 목적한 정상을 당도할 거란 걸 알기에 발길을 멈출 수는 없다. 발은 고통스럽고 숨은 가빠올 지라도 영혼의 자유를 갈구하는 사람들은 고행의 길이라는 걸 번연히 알면서도 애써 산을 찾고, 그를 통하여 삶의 목적을 새삼 묵직하게 다독이는 기회로 여긴다.

서울도 이미 완연한 봄이니 양양도 마찬가지로 개나리와 진달래 흐드러진 봄이겠다. 복숭아와 살구, 목련도 이미 절정이겠다. 하지만 그렇게 온 봄도 아직 이르다 말 하게 되는 풍경 또한 양양군은 지녔다. 구룡령이나 오색령은 아직 얼마간 더 겨울을 묵직하게 지켜내기에 이곳까지 봄이 당도하려면 보름 이상 더 기다려야 된다.

친구와 강릉을 거쳐 울진을 다녀오기로 하고 나섰다. 청평에서 일행과 만나기로 했으니 자연스럽게 양구를 거쳐 오색령을 경유해 강릉으로 가기로 했다. 고속도로로 가자는 걸 굳이 이 길을 선택한 이유는 고속도로나 양구를 거쳐 오색령을 넘어 가는 것이나 거리는 크게 차이 없고, 멋진 고향의 풍경을 비갠 뒤 햇살 좋은 오전에 푸짐하게 눈에 담을 수 있으리란 욕심에서다.

태릉에서 청평을 향할 때 멀리 두터운 안개가 산자락을 누르고 있었다. 강변을 벗어나면 안개가 걷히리라 생각했으나 안개는 양구를 지나 광치터널을 통과할 때도 여전히 산들을 무겁게 눌렀다. 광치터널을 빠져나와 한참을 달려 오색령을 거의 다 올랐을 때 거짓말처럼 안개는 더 이상 산을 누르지 않고 깨어질 듯 새파란 하늘에 산들이 온통 눈을 뒤집어 쓴 채 자태를 드러냈다.

한계령휴게소 이공건축설계사무소의 류춘수 회장이 젊은 시절 건축가 김수근 선생 밑에 일할 때 디자인과 설계를 한 한계령휴게소는 건축설계와 디자인에서 명품으로 인정받았다. 어느 공간에서나 옆자리의 사람으로 인해 조망권을 뺐기지 않도록 배려한 구도와, 30년을 훌쩍 넘긴 지금도 주변 풍경과 다투지 않고 어우러진 모습은 충분히 칭찬 받을 만하다.
▲ 한계령휴게소 이공건축설계사무소의 류춘수 회장이 젊은 시절 건축가 김수근 선생 밑에 일할 때 디자인과 설계를 한 한계령휴게소는 건축설계와 디자인에서 명품으로 인정받았다. 어느 공간에서나 옆자리의 사람으로 인해 조망권을 뺐기지 않도록 배려한 구도와, 30년을 훌쩍 넘긴 지금도 주변 풍경과 다투지 않고 어우러진 모습은 충분히 칭찬 받을 만하다.
ⓒ 정덕수

관련사진보기


휴게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일행들을 화장실로 간 뒤 혼자 몇 장 풍경을 담았다. 이미 초본류부터 다양한 목본류까지 꽃을 피웠는데 눈을 만날 줄 몰랐던 일행들이 화장실을 다녀 온 뒤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다.

슬픔에 우는 그대 앞에 봄이 있다.

그대 앞에 희망으로 가득 찬
그 봄이 성큼 다가서지 않느냐
바쁜 길 매양 해 저물고
바람 찬 날 지천인 생
춤추듯 신명난 봄이 있어
가끔은 희망을 품지 않느냐

그런 봄날이 겨울을 밀치고
노란 제비꽃 날개에 실려 왔으니
더 무엇을 바라랴
다만 그만큼 기대했던 소망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대지에 벅찬 씨앗을 뿌려야 하리

온통 산하엔 봄이 피워 낸 꽃
벅차게도
벅차게도
슬픔을 지울 기회를 주는데
더 무얼 바라랴

이 봄
대지에 희망으로 부푼
씨앗 하나 뿌려두는 일
다만 급한 것 아니냐.

오색령 표지석 백두대간의 마루금은 오대산에서 북으로 거슬러 오르며 양양군 서면 갈천리에서 석병산과 구룡령을 지나며 동쪽으로 크게 휘돌아 나간다. 조침령을 지나 북암령에서 다시 한 번 서쪽으로 뒤척여 단목령에서 점봉산을 통과해서야 이윽고 북쪽으로 방향을 돌려 망대암을 지나 오색령에서 대청봉을 향해 오름짓을 재촉한다. 양양군이 험준한 준령을 끼고 동쪽 바다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모든 조건이 이 백두대간의 마루금 동쪽으로 발달되어 있어서다.
▲ 오색령 표지석 백두대간의 마루금은 오대산에서 북으로 거슬러 오르며 양양군 서면 갈천리에서 석병산과 구룡령을 지나며 동쪽으로 크게 휘돌아 나간다. 조침령을 지나 북암령에서 다시 한 번 서쪽으로 뒤척여 단목령에서 점봉산을 통과해서야 이윽고 북쪽으로 방향을 돌려 망대암을 지나 오색령에서 대청봉을 향해 오름짓을 재촉한다. 양양군이 험준한 준령을 끼고 동쪽 바다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모든 조건이 이 백두대간의 마루금 동쪽으로 발달되어 있어서다.
ⓒ 정덕수

관련사진보기


참으로 혹독하게 겨울을 지났다. 이제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을 겨울을 지나 여기 고향으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마지막 배웅을 한다.

세상이 온통 꽃밭이라 생각될 때 이렇게 오색령을 올라본다. 너무도 다른 풍경이다. 항상 먼저 가을을 맞고, 그러나 가장 나중 봄을 받아들일 줄 아는 고개가 오색령이다. 조급하지 않게 조금 더디게 살아 갈 일이며, 쉽게 얻어지는 건 하나도 없음을 이 길에서 다시 깨닫는다.

아직 오색령은 겨울을 다 보내지 않았고 오는 봄을 막지도 않았다. 돋아날 싹이 돋고, 필 꽃이 피어 익숙하게 보내고 받아들일 준비를 차분히 할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가난은 불편하지만 부끄러움은 아니다. 한계령 바람같은 자유를 늘 꿈꾸며 살아가며, 광장에서 오늘을 역사로 기록하고 시로 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