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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 내부. 벚꽃이 만개했지만 노동자들은 무심히 길을 걸어가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 내부. 벚꽃이 만개했지만 노동자들은 무심히 길을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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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빛 벚꽃이 만개했지만 공기는 싸늘했다. 누구 하나 꽃나무에 눈길조차 주는 이도 없었다. 정부 추산 59조 원 손실의 근거를 내놓으라는 국민연금의 따가운 반응이 나온 다음 날인 지난달 31일. 경남 거제시에 위치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는 형용하기 힘든 무거운 기운이 감돌았다.

안전교육을 받기 위해 사내 셔틀버스를 기다리던 예비노동자들의 표정도 어두웠다. '부실경영, 노동자 책임전가 반대' 플래카드만 차가운 바람에 펄럭거렸다.

"누구도 희망 얘기 하지 않아"... 두 아들과 대우조선서 일하는 어머니 '한숨'

"복잡하죠. 간단한 얘기가 아니죠. 완전히 복잡하게,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꼬여도 너무 꼬여가지고…."

형광색 옷을 입고 조립공장 근처 대로변을 지나던 김아무개씨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회사를 살리겠다고는 하는데 그 누구도 희망을 이야기하진 않는다. 속된 말로 개죽음, 그거 밖에 안 된다"며 불안한 눈빛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한 김씨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구조조정 공포에 시달리는 모습이었다.

사외협력업체에서 파견돼 6년째 대우조선에서 근무 중인 50대 여성 이아무개씨는 "다른 (협력업체)회사 얘길 들어보면 (직원 수가) 반쯤 줄어든 것 같다"며 "아들은 설계 업체에 다니는데 오늘까지 하고 1달 휴직에 들어간다. 회사에서 하라고 했다고 한다"고 언급했다. 이씨는 "현장에서 근무하는 큰아들은 일이 없어 5시에 퇴근하고 있다,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이씨 가족의 생계가 오롯이 대우조선에 달린 셈이다. 

대우조선해양이 살아남지 못하면 이씨와 같은 수 많은 노동자가 거리에 나앉을 수도 있다. 지난해 1월 1만3100명이던 직원 수가 올해 3월 1만387명으로 줄었다. 1년여 만에 2700명이 짐을 쌌다. 임성일 대우조선노동조합 정책기획실장은 정부의 2조9000억 원 지원으로 대우조선이 회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 실장은 "수주 시그널이 시장에서 계속 나오고 있다"며 "올해부터는 액화천연가스(LNG) 등 상선 중심으로 배가 건조되는데, 상선은 해양과 다르게 용선처가 정해져 있어 크게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임 실장은 "출자전환을 한다든지 자본확충으로 위험요소를 제거하면 앞으로 정상적으로 거듭날 수가 있다"고 덧붙였다.

노동자 70%가 최저임금 '물량팀'... 해고 위험 높고 체당금도 못 받아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 내부.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 내부.
ⓒ 조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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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생계는 더욱 불안하다.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 노동자는 지난해 3만5000여 명에서 2만5000여 명으로 1만여 명이나 줄었다. 사내하청업체 180여 개 가운데 39개사가 폐업했다. 

통상 본청(조선소)은 1차 하청과 계약을 하고 1차 하청 노동자는 무기계약직 형태로 고용된다. 전체 하청노동자 중 절반 가량이 이들이다. 그 나머지 절반의 반 정도가 하루치 임금을 지급받는 일당 계약직이다. 통상 11개월 가량 계약한다. 남은 절반은 이른바 '물량팀'이다.

1차 하청은 물량팀 팀장에 기성금(공사금)을 지급하고, 팀장은 팀원을 고용한다. 팀원은 최저 시급을 받고 일하게 된다. 1차 하청이 물량팀에 지급하는 기성금을 3~4년째 동결하면서 하청 노동자 수가 급격히 줄었다.

하청 노동자 구성 비율은 업종, 회사마다 조금씩 다르다. 1차 하청 노동자는 해고하기 어려운 반면 물량팀과는 계약을 해지하면 끝이기 때문에 점차 물량팀 노동자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김동성 전국금속노조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지회장은 "대우조선해양 내에서 일하는 전체 노동자 가운데 70% 정도가 물량팀 노동자"라고 설명했다. 대우조선이 회생하지 못하면 이들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물량팀 노동자는 1차 하청 노동자와 다르게 체당금도 받을 수 없다. 체당금이란 퇴직한 노동자가 회사 경영악화 등으로 급여와 퇴직금을 받지 못할 경우 국가가 사업주를 대신해 지급하는 임금을 말한다. 물량팀 팀장이 사업주이고 팀원의 고용자는 팀장이기 때문에 1차 하청이 법적 책임을 지지 않게 되는 구조다. 기성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팀장이 팀원에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으면 노동자는 이를 받아내기 어려운 것이다.

하청에 재하청 3~4단계 구조... 폐업 후에야 소속 알게 되는 노동자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 내부에 계류된 선박들. 앙골라 국영석유회사 소난골 드릴십(이동식 원유시추선)이 인도를 기다리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 내부에 계류된 선박들. 앙골라 국영석유회사 소난골 드릴십(이동식 원유시추선)이 인도를 기다리고 있다.
ⓒ 조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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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외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상황도 심각하다.

이들 업체는 배를 만들기보다는 주로 기자재 등 부품 만드는 일을 한다. 지난해에 비해 절반 정도가 폐업한 것으로 하청지회 쪽은 추산 중이다. 김 지회장은 "한 공단 안에도 5~6개 회사가 있는데 노동자가 절반 정도 줄었다. 그런 공단이 주변에 10여 개 정도 있다"며 "공단 내 회사가 원청이 되는데 이 안에 하청, 재하청 등 3~4단계의 하청이 있고 그 밑에 물량팀도 다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외협력사 자체도 대우조선의 하청인 셈인데 그 아래 셀 수 없는 하청업체들이 딸린 것이다. 그는 "예를 들어 한 노동자가 성내공단 내 장안기업이라는 곳에 취직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 밑에 물량팀 팀장이 자신의 사업주인 경우가 있다"며 "많은 노동자들이 실제 자신의 소속을 모르고 있다가 폐업 후에야 알게 되는 일이 허다하다"고 말했다.

숨겨진 산업재해가 이전보다 늘어날 가능성이 커진 점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대우조선 정상화가 지연되면서 하청 노동자, 특히 물량팀 노동자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 지회장은 "하청 노동자가 다치면 구급차를 부르지 않고 회사차로 이동한다. 외부에 산재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그렇다. 쉬는 동안 일당의 70%만 지급하는데...산재 처리하는 것 자체가 극히 드문 일"이라고 언급했다.

치킨집도 국밥집도 매출 뚝... 폐업 늘고 지역경제 '마비'

거제 주민들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대우조선 옥포조선소 A문 앞에서 5년째 돼지국밥집을 운영 중인 60대 박아무개씨는 "주변 가게들 중 절반은 문 닫았다. 우리는 바로 앞에 있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예전엔 예약도 꽉꽉 차 있었는데 이젠 예약이 아예 없다. 매출도 작년보다 절반은 떨어졌다"며 한숨 쉬었다. 금요일 저녁 7시가 다 돼가는 시각이었지만 10여 개 남짓한 테이블의 반도 차지 않았다. 고기를 썰던 박씨는 주문이 뜸할 때마다 주방에서 나와 가게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대우조선 B문 근처에서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는 50대 김아무개씨는 "매출이 3분의 1정도로 준 것 같다. 파리 날린다. 옆 치킨집은 원래 직원 3명에 사장 1명, 이렇게 장사했는데 최근 직원들 다 해고했다. 그 정도로 안 좋다"고 말했다. 인근 감자탕 가게는 폐업 공지를 내걸었다. 이 가게의 사장은 "개인사정으로 폐업하는 것"이라고 짧게 언급했다.

근처 한 부동산의 공인중개사는 "다 어렵다. 집값이 작년보다 3000~4000만 원 정도 떨어졌고, 거래 자체도 많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대우조선해양의 운명을 가를 사채권자 집회를 보름 가량 앞둔 시점. 노동자들도, 지역민들도 초조한 마음으로 매일을 견뎌내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 내부. '누구도 다쳐서는 안된다'는 표어가 눈에 띈다.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 내부. '누구도 다쳐서는 안된다'는 표어가 눈에 띈다.
ⓒ 조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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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대우조선해양, #하청,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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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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