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크나이트> 속 조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처음 오마이뉴스의 '내 안의 덕후' 공고를 보고 글을 쓸까 말까 망설였다. '쓸까'는 나도 좋아하는 게 있으므로 '덕후'가 아닐까 싶어서였고, '말까'는 아직 눈에 보이는 '덕후'로서의 결과물이 없어서였다. '덕후'라면 모름지기 '몇백, 몇천만 원(혹은 인생을 거는 사람도 있다)은 쏟아부어야 명함을 내밀 수 있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에 조용히 노트북을 덮을 즈음 생각을 고쳐먹었다.

결론적으로 노트북을 다시 열어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첫째, 앞으로 진실한 '덕후'(일명 '진덕')가 되겠다는 나만의 다짐이고, 둘째 굳이 탄성을 자아낼 정도의 결과물이 없더라도 '덕후'는 '그 마음가짐 하나로 이미 충분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리고 마지막 이유, 이 글을 쓰고 혹여 상금을 받게 된다면 돈이 없어 찜만 해둔 물건을 '덕질'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제껏 '내 안의 덕후'에 지원하게 된 동기를 써봤다. 서론이 길어진 이유는 나를 '덕후'라고 생각지 않는 '진덕'에게 하는 변명이기도 해서다. 또한, 어머니께 하지 못한 '덕밍아웃'을 글을 통해 할 예정이다.

어머님 '덕' 상서 

 영화 <다크나이트> 속 조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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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처음 그를 봤던 몇 년 전 한 영화를 통해서였습니다. <다크나이트>라는 영화 속 그의 모습은 광기 어린 나쁜 놈에 불과했습니다. 다들 배트맨을 좋아하고, 조커는 고 히스 레저의 명품 연기로만 주목받을 때였습니다. 당시 저는 배트맨에게 관심은 없었지만, 조커는 인상 깊었죠. 그것이 고 히스 레저의 명연기 때문이었는지 캐릭터 자체의 광기에 홀려서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저에게만큼은 배트맨보다 조커가 와 닿았습니다. 그렇다고 그 당시는 '덕후'는 아니었죠.

그가 본격적으로 제 마음에 들어온 것은 2014년으로 기억합니다. 조커의 삶과 가치관을 다룬 그래픽 노블 <배트맨 킬링 조크>를 본 후였죠. 조커가 왜 악당이 되었는지, 그의 가치관이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알고 난 후에 저는 '조커'라는 캐릭터에 매료됐습니다. 그 책에서 조커는 '운수 나쁜 하루'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의미는 이러합니다. 정상인과 정신병자를 가르는 것은 바로 '운수 나쁜 하루'의 차이입니다. 평범하지만 매우 가난했던 '조커'는 '운수 나쁜 하루'로 자신의 모든 것을 잃고 악당이 되고 맙니다. 그런 조커에게 꽂힌 이유는 아마도 당시 제가 처한 현실 역시 매우 힘들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처럼 비루한 인생을 살다가 저도 언제 나쁜 놈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조커의 말이 어느 정도 공감이 갔습니다.

물론 조커의 행동을 두둔하거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조커가 저지른 극악무도한 행동들은 당연히 처벌받아야겠지요. 어떤 정치인이 사용한 '선의'라는 표현도 걸맞지 않습니다. 광기에 대한 그의 가치관을 단지 캐릭터의 하나로서 인상 깊게 본 것이죠. 제가 조커의 가치관에 동조해 현실 속에서 나쁜 짓을 하고 다니지는 않으니 어머님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어머님이 잠시 저에게 순간의(혹은 영구적인) 욕설을 날릴 부분은 존재합니다. 바로 저금을 해야 할 나이에 제 통장에는 돈이 모이지 않는다는 것뿐이죠.

진짜 '덕후'들처럼 '억' 소리 나는 물건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온종일 연예인을 쫓아다니시는 사생팬 분들 급도 아닙니다. 그냥, 단지 제 옷장 깊은 곳에는 조커와 할리퀸이 주인공인 레고 두 박스 정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친구의 집으로 배달한 '조커' 레고가 두 박스 정도 더 있죠. 도라에몽으로 가득한 연예인 심형탁씨의 방을 보고 놀라시던 어머니의 얼굴이 선하지만 제가 그 정도가 되려면 대기업에 입사해야 하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현재 최저시급을 받는 인턴으로서 월급 일부를 떼어 상대적으로 '진덕'들의 비해 낮은 가격의 물건을 사는 정도입니다.

참, 제가 회사에 다니면서 주말에 따로 '알바'를 나가는 이유를 어머님께는 가게 매니저인 친구의 부탁이라고 말씀드렸지만, 사실은 한화로 약 40만 원 정도 하는 배트맨이 타는 자동차 레고를 살 예정입니다. 약 한 달 정도만 발이 부르트면 되니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참고로 오해하실까 봐 말씀드리는데, 조커를 좋아하면서 배트맨 차를 사는 이유는 라이벌의 존재는 '필수불가결함'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조커가 주제인 레고를 몇 박스 더 살 예정이니 크게 노여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대한민국의 인턴 월급을 모아서는 집도 차도 살 수가 없습니다. 현재의 행복을 누리는 데 만족하려고 합니다. 저는 조커와 그 친구들이 제 방에 있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하니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덕질'이란 건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군요, 어머니.

어머니, 저는 덕후입니다

 영화 <다크나이트> 속 조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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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제가 레고만 사는 것은 아니니 레고에만 돈 낭비를 한다고 화를 내시면 안 됩니다. 올해 10월엔 작년 여름에 예약 주문한 할리퀸과 조커(수어사이드 스쿼드)의 60cm 피겨가 배송될 예정입니다. 그 돈도 월급에서 조금씩 빼 모으고 있죠. 관절 하나하나가 움직여 마치 살아있는 것과도 같다는 판매자의 설명을 들으니 그렇게 기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어머님도 실물을 보면 분명 예쁘다고, 멋있다고 좋아해 주실 거라 확신합니다. 그러니 욕을 먼저 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어머니, 마지막으로 제 작은 소망이 있다면, 제가 점심값, 술값 아끼고, 주말에 냉면을 나르며 모으고 있는 조커와 친구들을 장롱 속에서 꺼내어 어머님께 '덕밍아웃'을 하는 것입니다. 그 조그마한 것들이 어두컴컴한 곳에 있는 것이 안쓰럽지 않으십니까? 제가 책을 꽂으려고 주문한다고 했던 책장도 사실 조커와 그 친구들을 올려둘 공간이랍니다. 물론 책도 꽂을 것이니 반은 틀렸지만, 반은 참이지요. TV 예능인 <미운 우리 새끼>나 <나 혼자 산다>에 나오는 '덕후'들을 보고 있자면 얼른 돈을 벌어 넓은 집에 더 많은 조커를 전시하고 싶지만 저는 돈을 벌 운명이 아닌 것 같습니다. 차곡차곡 조커들을 모으면서 로또가 되길 기다려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머니, 이만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지난 주말 냉면을 날랐던 피곤이 이제 몰려오나 봅니다. 어머니도 이제 자식 걱정, 노후 걱정은 조금 접어두시고 어머님의 현재를 즐기시는 삶을 사시면 어떨까 합니다. 어머니, 저녁때 웃는 얼굴로 뵙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가 했던 말을 조금 적어보며 편지를 끝마치겠습니다.

"내가 진짜 계획 세우면서 사는 놈처럼 보여? 내가 어떤 놈인지 말해줘? 난 말이야, 자동차 쫓아다니는 개야. 막상 따라잡고 나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걸? 일단 저지르고 보는 거야!"

덧붙이는 글 <내 안의 덕후> 응모 기사입니다.
조커 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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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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