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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침은 투표권으로 이어질 수는 없었다.
▲ '청소년이 주인이다' 이 외침은 투표권으로 이어질 수는 없었다.
ⓒ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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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이 인용되고 박근혜가 구속되었습니다. 국민은 결국 승리한다는 걸 이제 모두가 믿기 시작했습니다. 법치주의를 모독하고 헌법을 훼손한 박근혜와 그 일당들은 결국 혹독한 심판을 받았군요. 모두가 기뻐하며 노래하고 있네요. 저도 기쁩니다. 그간 광화문에서 고생한 보람이 생기는 순간이니까요. 하지만 난 웃을 수 없습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나서 나는 불철주야 달렸습니다. 사람들이 제대로 관심을 가지기 전부터 피켓과 현수막을 잡고 거리로 나섰죠. 처음엔 굉장히 외로웠습니다. 나와 함께하는 이가 별로 많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그 외로움은 얼마 가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나의 동지가 된 것 같았습니다. 광화문에서 모두가 같은 꿈을 꾸며 촛불의 은하수로 거리를 수놓은 그 모든 순간들은 아마 내 가슴 속에 영원히 남겠죠. 그리고 언젠가부터 나는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지금 거리에서 어른들과 동등한 권리를 행사하고 있지만 박근혜가 물러난다면 거리가 아닌 곳에서 내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단 걸 말이죠. 그래서 나는 투표권을 열망하기 시작했습니다.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개방 반대 촛불 문화제 당시 참가한 학생 모습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개방 반대 촛불 문화제 당시 참가한 학생 모습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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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3일, 당시 세월호 침몰 희생자들의 추모를 위해 모인 한 고등학생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14년 5월 3일, 당시 세월호 침몰 희생자들의 추모를 위해 모인 한 고등학생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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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나이가 조금 어리지만 국민으로서 어른들과 같은 권리를 가지고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에게 투표권이란 권리는 없네요.

해외에 있는 친구들은 모두 투표권이 있다네요. 특히 오스트리아에 사는 친구는 만 16세 때부터 투표하기 시작했답니다. 그런데 나는 왜 투표할 수 없을까요? 나도 어른들처럼 생각과 신념이 있습니다. 나도 판단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어요. 또한 어떤 어른들보다는 내가 판단력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투표권은 내가 민주사회에서 더 많은 권리를 쟁취할 수 있게 도와줄 도구가 될 겁니다. 나에게 투표권이 있다면 정치인들은 내 눈치를 보기 시작할 거고 그렇다면 나를 위한 정책들을 만들기 시작할테니 말이죠. 또한 정치인들이 그 정책을 지키지 않는다면 나에겐 표라는 무기로 그 정치인을 응징할 수도 있겠죠. 학교폭력에 상처받고, 성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입시에 시달리며 힘들게 알바를 해도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지도 못 하는 나는 투표권이 정말이지 절실합니다.

그래서 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거리로 나가 투표권을 가지기 위한 투쟁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꽤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었습니다. 어쩌면 이번 대선에서도 이 투쟁의 결실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지난해 11월 19일 전국동시다발 4차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이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가운데 청소년들이 보신각 앞에 모여 시국대회를 열고 있다.
▲ '박근혜 퇴진' 청소년 시국대회 지난해 11월 19일 전국동시다발 4차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이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가운데 청소년들이 보신각 앞에 모여 시국대회를 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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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느 날, 난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2월 임시 국회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만 18세 투표권 관련 법안이 상정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는 몇몇 정치인들은 이번 대선이 아닌 다음에 만 18세 투표권을 적용하겠다고 하네요. 아니, 어차피 적용할 거면 지금부터 적용하면 되는데 왜 "나중에"라고 하는 걸까요? 이러다가 아예 묻어버리려는 건 아닌지, 정말 하고싶지 않은 의심까지 들게 되었습니다. 이제 내가 원하는 권리를 쟁취하려면 몇 년이나 더 외쳐야 하는 걸까요?

나는 권리에는 시간과 장소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권리는 누구나 언제 어디에서라도 행사할 수 있어야 하고 만약 그 권리가 없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권리를 가져야 합니다. 권리에는 "나중에"라는 말은 안 통한답니다. 그런데 지금 정치인들은 투표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은 하면서 나에게 "나중에"라고 하는군요.

탄핵이 인용되고 박근혜가 구속되었습니다. 모두가 기뻐하며 앞으로 밝혀질 세월호의 진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웃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했기에 가능했던 승리 속에서 다들 기뻐하고 있지만 절대 웃을 수 없는 나의 이름은, 청소년입니다.

덧붙이는 글 | 청소년은 그 누구보다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해결을 위해 힘썼지만 청소년을 위한 당연한 권리인 투표권은 아직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보다 많은 이들이 청소년 투표권에 관심을 가지고 지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태그:#청소년, #투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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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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