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엔 영화의 스포일러가 담겨있습니다.

은퇴한 아버지와 커리어 우먼으로 살아가는 딸. 가족이란 이름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둘 사이 정서적 거리감은 크다. 특히나 딸 이네스에게는 더욱 그렇다. 관계의 껍데기와 보이지 않는 의무가 있을 뿐, 가족 없는 일상이 더욱 편하게 느껴진다. 아빠 앞에서 애써 웃지만 그녀에게 가족은 알맹이 없는 허울뿐인 관계다. 딸이란 가면을 쓰고 상투적으로 아버지를 대하는 이네스를 바라보며, 빈 프리트는 딸을 변화시키기로 결심한다.

그녀를 변화시키기 위해 그가 선택한 일은 일종의 '가면 벗기'다. 빈 프리티는 아버지란 권위를 버리고 '토니 에드만'이란 새로운 존재로 딸 앞에 선다. 누가 보아도 우스꽝스런 복장과 이로 딸의 일거수일투족에 등장하는 토니 에드만. 그의 기행은 이네스가 누리는 상류층의 일상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를 외면할 수 없는 것이 딸이란 존재다. 더군다나 표피적 관계에서 아버지의 순수하고 흥미로운 모습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늘자, 딸은 급기야 적극적으로 자신의 일에 아버지를 개입시킨다. 그렇게 감독 마렌 아데는 물과 기름처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딸과 아버지의 친밀하지만 불편한 관계를 섬세한 관찰로 카메라에 담는다.

카메라와 현실 사이 거리

 이네스와 토니에드만

이네스와 토니에드만 ⓒ 그린나래미디어(주)


영화적으로 극화되어 있을 뿐 아네스와 빈프리트가 보여주는 관계는 일반적인 부모 자식 관계의 축소판이다. 부모는 자식들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를 이해하지만, 채울 수 없는 감정의 골이 둘 사이에 존재한다. 형용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으로 우리는 서로를 외면하다가도 뒤돌아 바라본다. 보는 눈이 없다면 내버리고 싶지만 결국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가장 잘 인식하는 것이 가족이란 관계다.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냉철하게 대처하는 이네스의 삶에 등장한 빈 프리트의 유머러스함은 영화 내내 그 가족적인 관계의 이중성을 고집스럽게 비춘다.

그렇기에 영화의 전개 방식은 독특하다. 160분이 넘는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신선한 플롯구조다. 딸의 사업으로 인해 논리적인 전개가 진행되다가, 갑작스런 아버지의 유머로 이성적 진행이 끊어지는 방식. 이성은 감정의 영역으로 전의되고, 현실의 복잡하고 세속적인 문제가 일순간의 사라지는 현상. 부모자식 관계만큼이나 신자유주의가 가지고 있는 비극적 현실을 다루는 영화이지만 영화는 전혀 고리타분하거나 심각하지 않다.

이러한 <토니 에드만>의 독특한 플롯 전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 외주화를 진행하려는 유전을 찾아가는 시퀀스다. 아버지의 말 한마디 때문에 해고 위기에 처한 노동자를 보호하려고 딸에게 부탁하지만, 이네스는 "어차피 자신이 해야 될 일은 누군가 먼저 하면 좋은일"이라며 냉정하게 답한다. 사회적 문제를 기막히게 끌고 들어온 지점이지만 감독은 논리적으로 영화를 더 이상 진행시키지 않는다. 흐느끼던 아버지가 갑자기 사라지더니 몰래 변을 보는 장면으로 상황은 극적으로 변하더니, 자신에게 화장실을 제공한 가난한 폴란드인들과 함께 딸 앞에 등장한다. 아까까지 심각했던 주인공들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순간의 의미와, 웃음의 미학을 되새긴다.

감독은 이런 식으로 이성에서 감성으로 플롯을 전이시키는 방식으로 영화를 진행한다. 아버지 빈 프린트가 권위란 가면을 벗고 딸 이네스를 지속적으로 설득하듯 말이다.

 딸의 파티에 참석한 아버지

딸의 파티에 참석한 아버지 ⓒ 그린나래미디어(주)


아버지의 웃픈 노력에 결국 냉정한 이네스마저도 마음을 여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생일마저도 '팀워크'를 위한 행사를 보내는 삶을 살던 그녀는 아버지의 방식대로 용기를 낸다. 겉치레와 위선이 가득한 '가면 쓰기'의 삶이 싫증났는지 그녀는 누드파티로 자신의 생일을 연다. 생각보다 그녀를 위해 스스럼없이 옷을 벗는 직장동료를 보며 그녀는 지금까지 써온 가면의 가벼움을 깨닫는 듯하다. 그리고 파티의 마지막. 언제나 그렇듯 청개구리처럼 혼자만 우스꽝스런 털옷을 두르고 온 아버지와의 뜨거운 포응은 아버지의 가면 벗기와 동시에 둘 간의 관계회복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렇게 끝이 나면 좋겠지만 영화는 끝끝내 현실을 미화하지 않고 지독히 현실적인 시선으로 영화를 끝낸다. 영화의 마지막. 할머니의 장례식에 참여하는 아네스는 할머니의 유산인 모자를 쓴다. 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은 아버지는 딸의 모습을 간직하려 한다. 아버지의 우스꽝스런 이를 끼고 웃으며 포즈를 취하는 아네스. 하지만 아네스의 웃음은 오래가지 않는다. 금세 평소의 무표정으로 돌아와 세상을 응시하는 그녀. 160분이 넘도록 진행되어 온 아버지의 '가면 벗기'의 노력은 한순간 우스꽝스런 가면 쓰기로 돌변한다. 그렇게 이성적 전개를 방해하려 노력했지만 영화의 마지막은 이렇게 차갑도록 현실적이다.

이 결말은 우리의 거울이다. 부모는 노력하고 자식은 이해하지만 좁힐 수 없는 세대차에 관한 이야기다.


토니에드만 마렌 아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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