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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방에 들어섰더니 학생 상담이 한창이었다.
 소나방에 들어섰더니 학생 상담이 한창이었다.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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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 들어섰다. 나무 내음이 가득했다. '케이팝'도 흘러나왔다. 고급스러운 조명이 은은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올해 3월 2일 문을 연 '소나방'(소통과 나눔방)의 모습이다.

'교사와 학생' 눈높이 같게 만든 소나방

지난 3월 27일 오후 2시 40분쯤, 서울 녹천중 본관 오른편 끝에 있는 교실 한 칸 크기의 공간에 들어섰다. 이곳이 바로 소나방이다.

이 학교 3학년 한 학생이 담임교사와 상담을 하고 있었다. 탁자를 가운데 두고 앉아 있는 두 사람의 눈높이는 같았다. 여전히 음악이 흘러나왔다.

일반 학교에서 잘못한 학생이 가장 가기 싫어하는 곳이 교무실이다. 교사 옆에 서서 두 손을 모아야 하는 아이. 이를 쳐다보는 수십 개의 눈총. 학생 처지에서 보면 말 그대로 '망신살 뻗치는 일'이다. 교실도 마찬가지다. 교무실에서는 선생님들의 눈총을 받아야 하지만, 교실에서는 친구들의 눈길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녹천중은 달랐다. 학생과 교사가 카페에서 만나 눈을 맞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마주 이야기'가 가능한 환경이 된 것이다.

학생과 20여 분간 대화를 나눈 담임교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학생과 상담이 잘 되었느냐"고 물어봤더니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분위기가 카페 같아서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눴어요. 말하기를 꺼리는 아이들도 여기에 오면 자연스럽게 입을 열어요."

은은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 학교 남정란 교감이 커피를 내려 컵에 담았다. 한 잔 마셔보니 원두커피였다. 남 교감은 말했다.

"학기 초 학부모 상담 기간에 많은 담임 선생님들이 이곳에서 학부모와 상담을 했어요. 한 학부모가 단톡방(단체 카카오톡방)에 소나방 사진을 올렸다고 해요. 그랬더니 벌써 입소문을 타고 카페에서 상담하겠다는 학부모들이 늘어났어요."

남 교감은 "학부모 동아리 활동하시는 분들이 학교 앞 커피숍에서 모이셨는데 이제는 이곳에서 모임을 한다"고 덧붙였다.

손원석 녹천중 교장이 소나방을 만든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손원석 녹천중 교장이 소나방을 만든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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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방은 상담을 위한 공간이다. 하지만 카페이다 보니 소통과 나눔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학생 상담은 물론 교원학습공동체 활동과 학부모 동아리 활동도 이곳에서 한다. 36명의 교원이 참여하는 교무회의도 이곳에서 벌인다.

소나방을 만드는 데는 3000만 원이 들었다. 교사와 학생, 교사와 학부모, 학부모와 학부모가 탁 터놓고 마음을 나누기 위해서 적지 않은 돈을 쓴 것이다. 남는 교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돈을 아끼려고 애쓴 흔적도 보인다. 이 학교 손원석 교장은 직접 설계를 맡았다. 충무로 카페가구 도매점을 찾아다니며 발품을 팔아 의자를 싸게 산 사람도 손 교장이었다. 100만 원을 아끼기 위해 바닥 코팅 작업을 한 사람도 바로 그였다. 봄방학 기간 3일 동안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고 한다.

"소통을 위한 소나방, 만들고 보니 좋네"

지난해 9월 공모교장으로 이 학교에 온 손 교장은 다음처럼 말한다.

"사실 소나방을 만들기 전에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다른 곳에 돈을 써도 되는데 소나방을 꼭 만들어야 하나 하는 고민.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소통이 되어야 교육도 되는 것인데, 이것을 이룰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 정말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녹천중에 새로 생긴 소나방은 이 학교를 푸르게 만드는 소나무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센 비바람에도 흔들림 없이 학교의 우산이 되는 그 소나무 말이다.

교실 양쪽 복도는 학생 탈의실 차지?
북새통 화장실이여 안녕, 체육복 맘 편히 갈아입는 학생들

녹천중학교에 새로 생긴 학생 탈의실.
 녹천중학교에 새로 생긴 학생 탈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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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녹천중 본관 3, 4층 복도 양끝엔 파란색 작은 방 4개가 생겼다. 지난 3월 2일 문을 연 이 방의 이름은 바로 탈의실이다.

지난해까지 이 학교 남학생 133명은 체육시간을 앞두고 보따리를 든 채 화장실로 뛰어갔다. 일주일에 3번 든 체육시간마다 화장실은 북새통이었다. 체육복을 갈아입어야 했기 때문이다.

378명의 여학생도 불편하긴 마찬가지였다. 누가 볼세라 교실에서 체육복을 남몰래 갈아입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고생은 끝났다. 이 학교가 1000만 원을 들여 탈의실을 만든 덕분이다. 복도 양끝을 활용했기 때문에 빈 교실도 필요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이 방에 들어가 있을 때는 감지기가 작동해 문밖에 달린 전등이 켜진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서다.

3학년 남학생 탈의실 입구엔 다음과 같은 안도현의 시가 적혀 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 <서울교육소식>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녹천중 상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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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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