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투수 실종 사건.'

2017 KBO리그 정규 시즌 개막전의 선발 투수 예고를 압축하는 문구다. 두산 베어스 니퍼트와 한화 이글스 비야누에바가 맞대결을 펼치는 잠실 경기를 비롯 3월 31일 5개 구장에서 펼치는 개막전에 선발 등판이 예고된 투수는 10명 전원이 외국인이다.  

 개막전 맞대결을 펼치는 두산 니퍼트와 한화 비야누에바

개막전 맞대결을 펼치는 두산 니퍼트와 한화 비야누에바 ⓒ 두산 베어스/한화 이글스


개막전은 KBO리그의 잔칫날이다. 프로야구와 야구팬들이 길고 지루했던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진정한 시작일이다. 따라서 각 팀들은 개막전 승리로 팬들에 보답하기 위해 1선발 에이스를 투입한다.

'개막전은 정규 시즌 144경기 중 단 1경기일 뿐이다'라며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개막전 승리는 그 어느 경기보다 짜릿할 뿐 아니라 시즌 전체를 운영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지난해 정규 시즌 개막전에서 연장전 끝에 극적인 끝내기 승리를 거둔 LG 트윈스는 하위권이라는 평가를 뒤엎으며 시즌을 시작했고 부침은 있었지만 결국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했다.

반면 LG에 충격적으로 역전패한 한화는 우승 후보라는 예상이 무색하게 최하위까지 추락했고 뒤늦은 반격에도 불구하고 7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한화의 추락은 개막전이 예고편이었다는 지적이 있다.

# 2014년 이후 개막전 선발 투수 명단

 2014년 이후 최근 4시즌 간  개막전 선발 투수 명단 (출처: 야구기록실 KBReport.com)

2014년 이후 최근 4시즌 간 개막전 선발 투수 명단 (출처: 야구기록실 KBReport.com) ⓒ 케이비리포트


2014년만 해도 8명의 개막전 선발 투수 중 김광현(SK)를 비롯해 절반인 4명이 내국인이었다. 2015년에는 10명의 개막전 선발 투수 중 양현종(KIA)이 내국인 투수의 자존심을 홀로 지켰다.

2016년에도 김광현과 양현종 등 4명의 내국인 투수가 개막전에 선발 등판했다. 하지만 올해는 10명의 개막전 선발 투수가 전원 외국인이다. KBO리그 사상 최초다.

외국인 선수 제도 탓?

내국인 선발 투수의 씨가 마른 것을 KBO리그의 외국인 선수 제도 탓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3명 중 외국인 선수 중 최소 1명을 타자로 선택해야 하며 3명 중 2명만 동일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규정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로 인해 KBO리그의 외국인 투수 중 불펜 요원은 한 명도 없고 전원이 선발 투수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를 내세우는 이들은 외국인 선수 제도의 축소를 주장한다.     

 국내 투수 중 최고로 평가받는 KIA 에이스 양현종

국내 투수 중 최고로 평가받는 KIA 에이스 양현종 ⓒ KIA 타이거즈


하지만 KBO리그에 우수한 국내 선발 투수가 풍족하면 각 팀들은 그들을 공략하기 위해 2명의 외국인 타자를 보유하고 나머지 한 명만 투수로 영입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할 수 있다. 쓸 만한 국내 투수 유망주를 불펜으로 우선 활용하는 현실에서 외국인 선발 투수가 늘어난 것은 결과일 뿐, 원인으로 보아서는 곤란하다.

외국인 선수 제도를 축소할 경우 리그의 질은 더욱 떨어질 수 있다. 오히려 외국인 선수 보유 숫자는 제한하지 않고 1군 출전 숫자만 제한해 저렴한 비용으로 '원석' 외국인 선수를 육성하는 일본 프로야구의 방식을 참고하는 것도 리그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 될 수 있다.

투수 육성 및 활용 풍토부터 바뀌어야

KBO리그의 거물급 선발 투수들은 제대로 관리 받지 못한 측면이 있다. 류현진, 김광현, 윤석민 등 KBO리그를 주름잡았던 거물급 선발 투수들은 최근 연이어 수술대에 올랐다. 정규 시즌과 포스트 시즌, 그리고 대표팀까지 쉴 새 없이 불려 다니며 많은 이닝을 소화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다.

 토미존서저리로 2017시즌 볼 수 없는 SK 에이스 김광현

토미존서저리로 2017시즌 볼 수 없는 SK 에이스 김광현 ⓒ SK 와이번스


내국인 선발 투수가 성장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로는 '불펜 올인'과 연관 지을 수 있다. 성장 가능성을 보이는 젊은 투수를 선발로 육성하기 위해 로테이션을 지키며 긴 이닝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짧게 자주 등판시키는 불펜 투수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이는 감독이 당장 성적을 내야 하는 압박에 시달리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불펜 투수로 출발해 롱 릴리프를 거쳐 선발로 안착하는 경우는 드물다. 잘 던지면 불펜 필승조로 고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혹은 불펜에서 활용되다 수술대에 오르는 일도 드물지 않다. 잦은 등판에 따른 혹사 논란을 피해가지 못한다.  

극심한 타고투저도 선발 투수 육성에 장애가 된 것이 사실이다. 타자들에게 난타당하다 보면 투수의 성장은 더뎌질 수밖에 없다. 장타를 피하기 위해 어렵게 승부하다 보니 투구 수 관리가 어려운 것은 물론 마운드에서 자신감마저 상실하기 때문이다.

투타의 균형추가 한쪽으로 쏠린 리그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KBO는 스트라이크 존이나 공인구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에 진작부터 귀를 기울여야 했다.

학원 야구의 문제점

학원 야구도 변화가 필요하다. 프로 입문의 목전인 고교 야구의 주말 리그를 통해 에이스의 혹사가 반복되고 있다. '한 경기 130구 이상 투구 금지'라는 유명무실한 조항만 존재한다. 정상적인 몸 상태로 프로에 입단하는 투수가 드물 정도다.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지명된 투수가 몸값을 하기는커녕 1군 마운드에 바로 서는 모습을 보기가 어려울 정도다.

일각에서는 고교 시절 투수의 팔꿈치 수술은 필연적인 단계라는 잘못된 인식이 퍼져가는 추세다.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하고 이전보다 속구 구속이 상승하는 사례들 때문에 수술의 위험성이 과소평가받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건강한 몸으로 프로 구단에 입단해 본격적인 지도와 관리를 받는다면 구속 상승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최근에는 프로 구단들이 고교 투수의 당장의 구속보다는 향후 신체조건 등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2017 시즌 개막전의 국내 선발 투수 전멸 현상은 하루아침에 해소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며 여러 문제들이 누적된 결과다. 한국 야구계 전반이 머리를 맞대고 오랜 인내심을 갖고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KBO리그를 포함 한국 야구가 지속적이고 균형이 잡힌 발전을 이어가긴 위해서는 눈 앞의 성적에만 급급해선 안 된다. 한국 야구의 미래를 이끌 대형 선발 투수 육성을 위해 KBO와 10개 구단, 그리고 아마야구계까지 문제 의식을 공유하고 해법을 찾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기록 참고: 야구기록실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 KBO기록실, 스탯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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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글: 이용선/김정학 기자) 이 기사는 야구기록실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에서 작성했습니다. 프로야구/MLB필진/웹툰작가 상시모집 [ kbr@kbreport.com ]
KBO리그 개막전 외국인투수 양현종 프로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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