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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법처리 여부에 국민의 눈과 귀가 쏠린 요즈음이다. 현 시국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정치인 박근혜'를 검증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음에도 그 기회를 흘려 보낸 일이다. 검증만 제대로 이뤄졌다면 오늘의 사태를 목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 그에겐 '선거의 여왕',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심지어 <TV조선>은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라는 낯뜨거운 칭찬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박근혜가 어떤 사람인지 일찍부터 간파한 사람이 여럿 있었다. 고 최태민 목사의 의붓아들 조순제는 그 중 한 사람이다.

조순제는 최태민의 부인 임선이가 전 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들로서 최순실과는 배다른 형제다. 그는 최태민이 대한구국선교단을 비롯, 각종 관변단체를 만들던 1975년 어머니 임선이의 요청으로 홍보실장과 사무처장 등의 요직을 맡아 활동했다. 또 1984년 박 전 대통령이 영남대 이사장을 맡고 있었던 당시 영남대 1인 주주였던 영남투자금융의 전무로 일했다.

조용래의 책 <또 하나의 가족>-최태민, 임선이, 그리고 박근혜
 조용래의 책 <또 하나의 가족>-최태민, 임선이, 그리고 박근혜
ⓒ 모던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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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제의 아들 조용래는 아버지 조순제 그리고 할머니 임선이에 얽힌 기억을 책으로 엮어 낸다. 그 결과물이 바로 <또 하나의 가족>(최태민, 임선이, 그리고 박근혜)이다.

그 속엔 최태민의 여성편력, 최태민과 박 전 대통령과의 관계, 임선이의 막후 영향력, 최순실의 부상 등등 저자가 전하는 가족사는 참으로 경악스럽다. 더구나 박 전 대통령이 어떤 품성을 가진 사람인지도 알 수 있다.

이 책은 지금 연일 신문-방송이 쏟아내는 '최순실 국정개입'이 오래 전부터 예고된 참사였음을 증언한다.

가장 먼저, 지금의 사태는 박 전 대통령과 최태민 일가와의 40년 악연에서 비롯됐다. 최태민은 목사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사이비 종교인에 가깝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등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도 그의 존재를 파헤쳤다. 핵심은 최태민이 박 전 대통령의 영혼을 지배할 수 있었던 요인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다. 이 지점에서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일설에 의하면 최태민은 심리적 혼란에 빠진 박근혜 앞에서 육영수 여사의 영혼이 자신에게 빙의되었다며 육영수 여사의 표정과 음성을 그대로 재현했다고도 한다. 종교 지도자의 탈을 썼건 정신적 지도자의 탈을 썼건 분명한 것은 두 사람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중략)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때 박근혜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권력에 대한 욕망이 꿈틀대었고 바로 그것이 최태민의 눈에 포착되었다는 것이다. 그 포착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박근혜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하게 잡아내고 정확한 방향을 제시했다는 의미다." - 본문 37~38쪽 

박 전 대통령이 국민을 돌보는 데는 무능했지만, 권력을 향한 욕망은 집요했던 것 같다. 결국 최태민은 박 전 대통령의 권력욕을 간파해 득을 취한 셈이다. 그러나 의문은 여전하다. 대통령의 영애가 사이비 종교인의 감언이설에 넘어갈 만큼 쉬운 존재였던가? 불행하게도 답은 '그렇다'. 저자는 아버지가 생전에 자신에게 남긴 말을 공개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허탈한 감정이 밀려 들어왔다.

"최태민은 박근혜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채워주면 온전하게 그 사람을 지배할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것이 최태민의 능력이라면 대단한 능력이지만 문제는 그 시절 박근혜라는 여자가 원하는 것은 최태민이 채워주기에는 너무도 쉬운 것이었다. 국가의 지도자가 되고 싶은 허상에 가까운 야심, 그리고 집착적인 욕망뿐이었다. 최태민에겐 남아도 너무 많이 남는 장사요, 편해도 그렇게 편한 장사가 없었다." - 본문 59~60쪽 

최순실 역시 박 전 대통령의 권력욕을 자극하면서 비선실세로 군림했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 27일 방송된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의 증언을 공개했다.

장시호는 제작진과의 옥중 인터뷰에서 "그 얘기(통일 대박)가 나온 게, 원래 통일을 시키고 나서 '대통령을 한 번 더 하자는 것'이 이모의 계획"이라고 밝혔다. 즉, 최순실은 박 전 대통령으로 하여금 장기집권을 부추긴 것이다.

국정농단의 진짜 몸통은 임선이?

고 최태민의 의붓손자인 저자 조용래는 자신의 가족사를 가감 없이 털어 놓는다.
 고 최태민의 의붓손자인 저자 조용래는 자신의 가족사를 가감 없이 털어 놓는다.
ⓒ 모던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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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최태민과 함께 그의 처 임선이에게 주목한다. 제5공화국 출범 이후 전두환씨는 최태민과 박 전 대통령을 감시해왔다. 그러나 두 사람은 감시를 피해 최태민의 집에서 밀회를 가졌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이 일을 끄집어내면서 "남편(최태민 - 글쓴이)이 외간 여자(박 전 대통령 - 글쓴이)와 집 안에서 밀회를 나누는 상황을 어떻게 방조할 수 있을까?"라며 문제를 제기한다. 그런데 임선이가 보인 행태는 더 어이없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임선이 입장에서 충분히 그럴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결혼 뒤에도 애 딸린 여자가 찾아오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그때마다 있는 돈 없는 돈을 쥐여줘서 쫓아내야 했다. 하지만 박근혜는 차원이 달랐다. 돈을 쥐여줘야 하기는커녕 오히려 가족에게 엄청난 돈과 권력을 안겨주는 사람이었다." - 본문 63~64쪽 

저자는 자신의 할머니 임선이를 작금의 국정농단 사태를 부른 몸통이라고 지목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저자의 말을 더 들어보자.

"임선이는 낚시꾼 최태민이 끌어올린 물고기가 월척 정도가 아니라 용을 낚아 올린 것이라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챈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진짜 사기꾼은 임선이였고 최태민은 임선이가 낚싯바늘에 꿰놓은 미끼였는지도 모른다. 임선이는 달러장사와 일수놀이로 잔뼈가 굵은, 다시 말해서 돈 냄새와 세상이 움직이는 방향을 읽어내는 감각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여자였다. 훗날 벌어지게 될 비극적인 사태는 바로 임선이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본문 64쪽

요약하면 박 전 대통령은 부질없는 권력욕 때문에 최태민·임선이·최순실 일가에게 놀아났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았다. 그러나 과연 최태민 일가에게 모든 잘못을 떠넘길 수 있을까? 정치권은, 그리고 언론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조순제의 간절한 호소,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묻혀  

지난 2007년 당시 박근혜 후보는 한나라당 대선후보검증 청문회에서 조순제를 모른다고 했다. 최태민의 존재에 대해서도 '약간의' 도움을 받은 관계 정도라고만 밝혔다. 최태민은 말할 것도 없고, 조순제의 이력을 살펴보면 박 후보의 지난 날과 상당 부분 겹친다. 그럼에도 박 후보는 그의 존재를 부인한 것이다. 이에 조순제는 강재섭 당시 한나라당 대표에게 진정서를 보냈다. 조순제는 진정서에서 이렇게 호소했다.

"국가지도자에 대한 검증은 아무리 지나쳐도 과함이 없으리라는 생각입니다. 그중에서도 국정운영의 능력과 자질에 대한 검증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검증일 것입니다. 유신시절 의부 최태민이 국정농단의 실제 인물이었는지를 가려내는 것은 검증위의 몫입니다."

조순제는 또 이명박 캠프 쪽 인사들과 만나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을 털어 놓았다. 그러나 이 같은 호소는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묻히고야 만다.

박 전 대통령에게 정계입문을 권유한 장본인은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였다. 이 총재는 지역기반이 취약했고, 박 전 대통령을 영입해 이 같은 취약점을 만회하려 했다. 그리고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은 조순제의 녹취록을 세상으로 내보내지 않았다. 2007년 대선 당시는 지지가 필요해서, 이어 2012년 대선에서는 자신의 퇴임 이후를 대비해 박 전 대통령을 다치지 않게끔 해야했기 때문이었다.

언론은 박 전 대통령이 몰고 다니는 바람에만 주목했을 뿐, 올림머리와 환한 미소 이면에 도사린 권력욕을 간파하지 못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작금의 사태는 최태민 일가가 주도하고 정치권, 언론이 배후 지원을 맡은 막장 정치드라마인 셈이다.

저자는 책 말미에 중요한 시사점을 하나 던진다. 저자는 2014년 홍콩으로 건너가 파생상품 트레이더로 활동하고 있다. 저자는 홍콩에서 겪은 일들을 소개한다.

"1970년대 홍콩은 각종 범죄와 부정부패의 천국이었다. 마약, 도박, 매춘 등의 범죄를 경찰과 폭력조직이 주도했다. 소방대원이 화재현장에 출동해서도, 응급요원이 환자를 태워갈 때도 뒷돈을 주어야 움직였다. 고위층의 부정부패도 심했다. 반전의 계기가 있었다. 경찰 간부가 거액을 횡령하고 영국으로 도주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홍콩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서 범죄인 송환을 외쳤다. 분노한 시민의 힘으로 1974년 부정부패 전담 수사기구인 '염정공서'가 만들어졌다. 물론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공무원과 경찰이 염정공서 폐지를 주장하며 폭력시위를 할 정도로 강력한 저항이 있었다. 하지만 시민들은 염정공서를 신뢰했다. 투명한 사회를 원하는 시민의 열망은 마침내 지금의 투명한 홍콩을 만들어냈다." - 본문 118~119

최순실 국정개입이 드러나자 시민들은 광장으로 뛰쳐나와 촛불을 들었다. 촛불을 든 시민들은 '이게 나라냐'고 외쳤다. 헌법재판소는 박 전 대통령을 파면했다. 이어 검찰은 그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이게 끝은 아닐 것이다. 재벌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고, 검찰과 법원이 국정농단 세력에게 준엄한 심판을 내릴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뿐만 아니다. 삶의 현장에서 바로 잡아야 할 비민주적인 악습들이 너무나도 많다.

무엇보다 노력한 사람이 성공하고, 일한 만큼 대가를 얻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죄를 지으면 합당한 처벌을 받는 사회를 구축해야 한다. 아직 촛불을 꺼서는 안 되는 이유다. 촛불을 밝힐 장소를 광장에서 삶의 현장으로 바꾸어야 한다. 삶의 현장에서 촛불이 타오를 때 비로소 어둠은 가고 투명한 사회가 올 것이다.

끝으로 참으로 입 밖에 내기 힘든 가족사를 솔직하게 기록으로 남겨준 저자 조용래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한다.

덧붙이는 글 | 미주 한인매체 <뉴스M>에 동시 송고했습니다.



또 하나의 가족 - 최태민, 임선이, 그리고 박근혜

조용래 지음, 모던아카이브(2017)


태그:#조용래, #또 하나의 가족, #임선이, #최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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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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