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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강경선 교수의 문하생 모임인 헌법연구회 세미나가 안동에서 진행되었다. 세미나 일정 전후로 유교문화박물관, 도산서원, 군자마을, 하회마을, 병산서원을 둘러보았다. 그 중 매화가 피기 시작한 도산서원과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병산 앞에 세워진 병산서원의 경치가 좋았다.
 지금 도산서원에서는 퇴계 이황 선생이 좋아 했던 매화가 피기 시작했다.
 지금 도산서원에서는 퇴계 이황 선생이 좋아 했던 매화가 피기 시작했다.
ⓒ 여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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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은 안동시 도산면에 있다.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을 주향으로 삼고 있다. 도산서원 이름은 예전에 이곳에 도자기를 굽던 장소가 있어서, 질그릇 도(陶)에 뫼 산(山)을 따서 도산서원으로 지었다.

도산서원에 안에 있는 도산서당은 1561년에 설립되었다. 퇴계 이황이 안동으로 돌아 온 이후, 학문연구와 후진을 양성을 위해 지었으며 서원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퇴계 이황이 직접 설계하였다고 전해진다.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 사후에 완공된다. 1570년 퇴계 이황이 죽자, 1572년에 퇴계의 위패를 상덕사(尙德祠)에 모신다. 이후 전교당과 동·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한다. 1575년에 선조가 한석봉이 쓴 도산서원의 편액으로 내려준다.

 광명당
 광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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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 안에는 경내의 도산서당, 상덕사 외에도 서원의 강당인 전교당, 향례 때 제사 음식을 보관하던 전사청, 유생들이 거처하던 동재·서재, 장서를 보관하던 광명당과 장판각, 선비들이 공부하던 농운정사와 같은 건물이 있다. 안동 시내에는 시내버스 67번을 타면 도산서원까지 갈 수 있다.

 병산서원
 병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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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은 안동시 풍천면에 있다. 병산서원은 서애 류성룡을 주향으로 삼고 있다. 병산서원 앞에는 모습이 꼭 병풍을 둘러친 듯하여 병산(屛山)으로 불리는 산이 있다. 병산서원 이름은 병산에서 따왔다.

서애 류성룡이 풍악서당을 1572년 지금의 병산으로 옮겼다. 1607년 서애 류성룡이 죽자, 정경세를 비롯한 지방 유림들이 서애 류성룡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1613년 존덕사(尊德祠)를 창건하고 서애 류성룡의 위패를 봉안했다. 1614년 병산서원으로 이름을 고치고, 1863년 철종으로부터 병산서원 편액을 사액 받는다.

 병산서원 옆에는 달팽이 뒷간이 있다. 진흙 돌담의 시작 부분이 끝 부분에 가리도록 둥글게 감아 세워 놓았다. 그 모습에서 달팽이 뒷간이라고 불린다. 출입문이 없어도 안의 사람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배려한 구조이다.
 병산서원 옆에는 달팽이 뒷간이 있다. 진흙 돌담의 시작 부분이 끝 부분에 가리도록 둥글게 감아 세워 놓았다. 그 모습에서 달팽이 뒷간이라고 불린다. 출입문이 없어도 안의 사람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배려한 구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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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 앞에 있는 만대루(晩對樓)는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지은 정면 7칸, 측면 2칸의 누각이다. 유생들의 휴식과 강학의 공간이다. 병산서원 안에 있는 입교당(立敎堂)은 "가르침을 바로 세운다"는 의미이다. 병산서원 중심에 있다.

유생들의 기숙사였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그리고 책을 인쇄할 때 쓰이는 목판을 보관한 장판각, 사당에 올릴 제수를 준비하는 전사청이 병산서원 안에 있다. 병산서원은 하회마을에서 걸어서는 한 시간 거리이다.

하회마을에서 병산서원 가는 길은 비포장도로이다. 문화유산과 자연보호를 위해서 도로를 포장하지 않았다고 한다. 안동시내에서는 시내버스 46번을 타면 병산서원까지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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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힘이 되는 생활 헌법(좋은땅 출판사) 저자, 헌법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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