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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특별학습에 참여한 서울 마곡중 1학년 5반 학생들과 최 교사.
 세월호 특별학습에 참여한 서울 마곡중 1학년 5반 학생들과 최 교사.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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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078일째인 지난 28일 오후 3시 10분.

세월호 특별학습에 참가한 서울 마곡중 1학년 5반 학생들은 '박지영 승무원'의 얼굴을 그렸다. 당초 이 모둠이 선택한 활동은 '희생 학생을 선택하여 그 학생의 특징이나 이루지 못한 꿈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모둠 4명의 학생들은 머리를 맞대더니 학생이 아닌 어른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박지영 승무원이 학생들을 구해주셨으니까요"

"박지영 승무원께서는 물이 가슴까지 차오를 때까지도 학생들을 끝까지 구해주셨으니까요. 정말 고마워서…."

'학생을 그리라고 했는데 왜 어른을 그렸느냐'는 물음에 색연필을 든 유진이가 한 말이다. 어떤 어른은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남긴 채 제일 먼저 탈출했지만, 박 승무원과 같은 이들은 끝까지 학생들과 운명을 함께했다. 단원고 9명의 교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호수보다 깊은 듯한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박 승무원은 그림 속에서 마곡중 아이들을 사랑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학생들이 그린 박지영 승무원 얼굴.
 학생들이 그린 박지영 승무원 얼굴.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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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세월호가 바다 속에서 떠올랐다. 참사 발생 1075일만이다. 무책임했던 일부 어른들을 원망해온 아이들의 마음도 조금은 누그러진 것일까?

서울 마곡중 교사들은 세월호가 떠오른 뒤 처음으로 세월호 특별학습을 벌이고 있다. 이날은 최주연 교사가 학생들 앞에 섰다. 이번 학습의 주제는 '오늘, 2014년 4월 16일을 기억하다'였다.

먼저 최 교사는 세월호 진실 규명활동을 벌이는 내용을 담은 동영상 '함께하는 사람들'을 학생들에게 보여줬다. 몇몇 학생들이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이날 수업 내내 학생들은 밝은 모습을 보였다. 최 교사도 활기찬 모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노란 리본에 흰색 재킷을 입은 최 교사는 모둠활동에 대해 안내자 노릇만 할뿐 학생들에게 특정한 생각이나 관점을 강요하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학습에 참여한 27명의 학생들은 모두 7개 모둠으로 나뉘어 선택 활동을 벌였다. '세월호 악성 댓글을 선한 댓글로 바꾸기', '희생 학생에게 편지쓰기', '세월호에 대한 5행시 만들기' 등이 그것이다.

웅성웅성하던 아이들, 세월호 '악플'을 단숨에 '선플'로

한 학생이 세월호 악성 댓글을 선한 댓글로 고치고 있다.
 한 학생이 세월호 악성 댓글을 선한 댓글로 고치고 있다.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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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 댓글을 선한 댓글로 바꾸기'를 선택한 모둠 소속 4명의 학생은 다음과 같은 악성 댓글을 찾아냈다.

"이런 쓸데없는 짓 좀 그만하자. 죽은 사람은 죽은 거고 산 사람은 산 거다."

이 학생들은 웅성웅성 협의하더니 단번에 매직펜을 들고 선한 댓글로 '바꿔치기'했다.

"이런 쓸데없는 악플 좀 그만 달자. 사람이 죽은 것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면 어떡하냐."

또 다른 모둠은 '잊/지/않/아/요'란 글자로 5행시를 지었다.

잊지 말아요.
지우려고 해봐도
안 되는 걸 어떡해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저희는 진실을
요구하고, 밝힐 겁니다.

세월호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뤘지만, 친구들 앞에 서서 발표하는 아이들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학습시간은 당초 예정된 45분을 20분이나 훌쩍 넘겼다.

이 수업을 위해 최 교사를 비롯한 이 학교 5명의 교사수업연구 동아리 교사들이 머리를 맞댔다. 이날 수업을 보기 위해 몰려든 교원들은 모두 60여 명이었다. 마곡중 교원은 20여 명.

계기교육 다음날 공문 보낸 교육부... '으름장 놓는 것' 비판도

세월호 특별학습을 보기 위해 서울에서 60여 명의 교사가 모였다.
 세월호 특별학습을 보기 위해 서울에서 60여 명의 교사가 모였다.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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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송준헌 교장도 끼어 있었다. 세월호 학습이 끝난 뒤 송 교장은 "세월호 수업을 위해 여러 선생님들이 노력해주었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최 교사도 "이번 수업에 교장과 교감 선생님이 큰 도움을 주셨다"고 말했다.

이번 세월호 특별학습 홍보를 맡은 곳은 전교조 서울지부였다. 이 단체의 홍보물을 보고 많은 교사들이 이 수업을 보기 위해 달려왔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도 세월호 추모활동과 계기수업을 적극 권장하고 나섰다.

한편, 교육부는 이 세월호 학습이 진행된 뒤 하루만인 29일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힌 긴급 보도자료를 냈다.

"(세월호) 계기교육의 경우 교육의 중립성 확보, 건전한 국가관 형성 등에 유의하여 교육활동이 진행되기 기대하며, 교육자료 활용 시 교육의 중립성 저해, 비교육적 표현, 학생의 성장발달 단계에 적합하지 않는 내용 등이 활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내용을 두고, 일각에서는 '교육부가 올해도 어김없이 교사들에게 사실상 가만히 있으라는 으름장을 놓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태그:#세월호 특별학습, #계기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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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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