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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SNS를 이용하다 보면 '병신,백치,벙어리' 등을 쓰지 말자는 주장들이 흔히 보입니다.'병신 안쓰기 운동'처럼 그 움직임이 상당히 조직화된 경우도 보입니다. 이 말들이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이라는 거죠. 얼핏 타당해 보입니다. 아니, 분명히 일리 있는 얘기죠.

하지만 저 스스로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서 한 말씀 드리자면... 이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대단히 민감한 주제라 두려움이 다소 앞섭니다만 조심스레 제 의견을 적어봅니다. 아래의 주장은 <오마이뉴스>의 입장이 아닌 한 기고가 개인의 입장임을 우선 밝혀둡니다.

 '병신안쓰기운동'
 '병신안쓰기운동'
ⓒ 강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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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두절미하고 바로 본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런 겁니다. '백치란 말이 정신지체인에 대한 비하이니 쓰지 말 것'이 아니라, 정신지체 장애인에게 백치라는 욕설을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아울러 언어의 역사성(歷史性)에 따라 백치란 단어에서 점차 흐려지고 있는 정신지체 장애인이라는 의미를 지워나가야 한다는 것이 제 주장의 요점이에요.

비속어, 특히 비어의 절대다수는 '정치적으로 매우 불공정한' 곳에 어원을 두고 있죠. 저는 촛불집회에서 한 어르신이 비선 실세들더러 '육시랄 것들'이라며 목소리를 높이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원 뜻대로라면 '여섯 토막을 낼 인간들'이란 뜻이 됩니다. 무시무시하죠. 물론 그런 의미로 하신 말씀은 아니겠습니다만.

그럼 '어원에 문제가 없는 비어는 써도 좋냐'하면 그것도 아닌 모양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숙명여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조사한 '혐오 표현'의 실태 조사 자료를 보면, '등신'이라는 표현을 문제 표현으로 꼽고 있습니다. 하지만 '등신'은 본디 나무나 흙 같은 것으로 만든 인형을 뜻합니다.

결국, 어떤 단어를 사용하면서 어원과 전혀 무관한 표현으로 쓰더라도 그 어원이 부적절하다면 사용이 제한되고, 어원에 문제가 없더라도 경멸의 의미로 사용되면 안 된다는 얘깁니다. 맞는 얘기처럼 들리죠. 하지만 이건 결국 '비속어 쓰지 말자'는 이야깁니다. 고운 말, 예쁜 말만 하자는 뜻이에요. 이는 현실 언어생활에서 실천 가능한 말이 아닙니다.

혹자는 제 주장에 이렇게 반박할지 모르겠습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의 뜻으로 사용될 수 있는 언어의 제한보다, 언어의 폭넓은 사용이 가져다주는 사회적 이익이 더 큰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한 개인 개인의 실천을 넘어 '캠페인'이 되는 순간 문제가 생깁니다. 이러한 캠페인이, 어떤 단어 안에 내포돼있던, 그리고 점점 그 의미를 잃고 있던 단어의 원뜻을 도로 끄집어내 버리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예를 볼까요.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친구들 중 누구 하나가 최순실 게이트 청문회에서 합죽이가 돼 버린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때 다른 친구 녀석이 말을 가로막더니 '합죽이는 이가 없어서 입이 오그라든 사람을 낮잡는 말이야'라고 반박을 하더군요. 청문회 이야기를 하려던 이는 본인이 원래 이야기하려던 문장을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이 사례는 앞서 이야기했던, '특정 비어의 죽어가던 혐오적 의미의 원뜻을 되살리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합죽이가 그런 뜻이라고 알고 있었던 이들은 그 자리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정의감에 해당 단어의 사용을 '제한'한 어느 친구의 노력은 뜻밖에도 합죽이란 단어에서 소멸되고 있던 해당 단어의 원뜻을 도로 가져와 버렸습니다. 원활한 대화의 진행을 가로막은 것도 무시 못할 문제고요. 어떤 말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은, 어떤 말을 쓰도록 허락하는 것 이상으로 신중해야 합니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오해에 미리 대답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병신이란 말을 쓰자는 뜻이 아닙니다. 최근 양양군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 논란과 관련해 '문화재청 농간에 환경부는 병신 됐다'는 플래카드를 내걸었습니다. 케이블카의 주 이용 고객이 장애인인 점을 생각하면 이는 대단히 부적절한 표현이었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저 역시 이 주장에는 동의합니다.

또한, 실제로 지능이 낮은 이에게 '바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대단한 모욕이겠죠. 정말 이가 없으신 분께 합죽이 소릴 하는 '얼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갑갑해지죠. 우리가 어원을 짚어가며 막아야 하는 것은 이런 것들입니다. 본의든 아니든 말이 폭력이 되는 경우들이요.

하지만 언어는 칼과 같아서 쓰게 나름입니다. 말의 비하적, 경멸적 원뜻이 흐려지고 있는 말들 중 그 어원을 고스란히 복원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숙제검사 맡듯 연설문 첨삭을 요구하는 대통령이라니, 이게 백치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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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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