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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편지를 읽은 것 같다. 행간마다 진한 사랑이 뜨겁게 배어 나온다. 이 책을 읽고 순정한 시골 할매, 할배들과 사랑에 빠지지 않을 재간이 있으랴 싶다.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은 <월간 전라도닷컴> 황풍년 편집장이 기록한 전라도의 속살 이야기다. 저자는 "전라도가 탯자리요, 삶터인 사람만이 느끼는 슬픔과 연민, 분노와 격정, 존경과 감사 같은 복잡 미묘한 감정의 기복도 고스란히 드러내고 말았다"며 "지금 우리에게 몹시 절실한 그 뭔가가 여기 애잔하고 '촌스러운' 풍경과 사람살이에 있지는 않은지 눈 밝고 맘 따순 독자들에게 서둘러 호소하고 싶어졌다"(11쪽)고 한다.

촌스럽다는 것은 속정이 깊다는 뜻이다. 촌스럽다는 것은 우직하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촌스럽다는 것은 생전 처음 본 외지인에게도 선뜻 밥 한끼를 내어주는 '따뜻한 손'이다. 수수하고 소박하고 계산이 없고 담백하고 천진난만하고 유머러스하고 어른스럽고 포근하고.... 전라도 '골골샅샅'에서 만난 할매 할배들은 몸으로, 삶으로 '촌스러움'의 위대함을 이야기한다.

사투리는 몸에 각인된 '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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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 표지 .
ⓒ 행성B잎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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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를 가장 원초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사투리'가 아닐까 싶다. 전라도는 영화 <황산벌>처럼 '거시기'라는 단어 하나로 웬만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곳이다.

전라도 시골 마을에 귀촌해 9년차가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거시기'의 진짜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지금도 할매들과 이야기 도중 헤매기 일쑤다. 나에게 전라도 사투리는 여전히 미지의 언어다. 그런데 책을 읽으니 내가 아직도 '거시기'를 다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전라도 사람들이 자주 쓰는 '거시기'는 상황을 얼렁뚱땅 무마하고 넘어가려는 애매모호한 표현처럼 오해되기 십상이지만, '거시기'만큼 공동체성이 드러나는 말도 드물다.
"어이! 거시기가 오늘 거시기 흔단디, 나가 오늘 쪼깨 거시기 흔께, 자네가 먼저 거시기 잔 해주소. 나가 언능 거시기 해놓고 시간 나문 거시기 흘랑께. 그러만 거시기 흐소."
친구의 애경사를 두고 바빠서 가지 못하는 사람이 대신 부조를 부탁하는 내용이다. 어떤 일이나 상황, 정서를 미리 공유하는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에서나 주고받을 법한 '거시기'다. '거시기'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전라도말의 리듬과 유희가 그만이다." (67~68쪽)

문득 몇 해 전에 읽었던 서경식의 <언어의 감옥에서>가 떠올랐다. 재일조선인 학자인 서경식은 '디아스포라' 관점에서 언어를 분석한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몸에 각인된 언어를 '모어'(mother tongue), 하나의 국가나 단일민족에 속해 습득된 언어를 '모국어'(native language)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태어나면서부터 일본어를 '모어'로, 조선어를 '모국어'로 사용해 온 재일조선인(코리안 디아스포라)들은 정서적, 문화적 단절을 경험한다고 한다.

모어와 모국어로 언어를 나눈다면 사투리는 '모어'에 가깝다. 한국의 표준어 정책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투리 말살 정책이다. 사투리는 촌스럽고 낙후하며 사라져야 할 언어라는 뿌리깊은 오해는 국가가 앞장서서 언어의 다양성을 파괴해 온 결과다. 표준어 정책은 국가가 국민의 입을 획일적으로 통제하겠다는 발상에 다름 아니다.

각 지방의 사투리는 그 지역 공동체의 유구한 역사와 삶의 문화가 고스란히 담긴 보고다.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을 보면서 모르고 있었던 아름다운 전라도 말들을 많이 발견한다. 암시랑토 안혀, 포도시, 오메, 오지다, 게미지다, 깔끄막, 징허다, 항꾼에, 솔찬허시, 개안하다... 이 아름답고 다양한 말들이 사라진다고 생각해보라. 어휴, 생각만으로도 아찔하지만 어느 정도 현실이 되고 있기는 하다.

어르신은 계속 연세가 드시는데 젊은 사람들은 마을에 들어오지 않으니 자연스레 사투리도 사라져 갈 것이다. 그래서일까. <월간 전라도닷컴>이 '전라도말 자랑대회' 같은 경연대회를 만들면서까지 전라도말을 지키고 계승하려는 노력이 무척 고맙게 느껴진다.  

역사의 중심에 섰던 '변방'의 민초들

지역적으로 전라도는 '변방'이다. 역사적으로 위로부터의 수탈과 침입자들의 약탈이 끊이지 않았던 눈물의 땅이다. 그러나 이 역경과 불운의 땅 민초들은 우리 역사의 고비마다 살신성인의 기개로 앞장서 난국을 돌파해왔다. 동학농민혁명이 그러하고 5.18 광주민중항쟁이 그러하다. 당대의 주류를 거슬렀던 변방은 결국 역사의 중심이 되었다.

"모진 세월, 전라도 백성들이 스스로를 비추어 벼리고, 다잡고, 다그치고, 어르고, 다독이며 의지가지를 삼았던 가슴 속 표상은 무엇이었나. 그것은 수백 년 묵은 당산나무의 구불구불한 가지, 투박한 돌부처의 엷은 미소, 길목 지키고 선 석장승의 퉁방울 눈, 흰 눈속에서 피어난 복수초, 겨울 얼음장 밑에서 초록으로 부풀어 오르는 미나리, 이름도 남김없이 스러져간 동학농민군과 광주 오월의 넋들, 오일장 난전의 올망졸망한 대야들, 이 땅 농투사니들의 손에서 떨어져본 적 없는 호미와 낫, 흑산도 홍어의 두개 달린 거시기와 순천만 갯벌을 꼬물꼬물 기어가는 짱둥어, 해와 달, 비와 바람이다. 한결같이 짠하고 위대하고 다정하고 멋지고 맛나고 그립고 재미있는 전라도의 얼굴, 보면 볼수록 새록새록 새 힘을 돋우는 전라도의 힘이요 마음이다." (91쪽)

홀대받고 핍박받은 땅이지만 정이 깊고 인심이 넉넉하다. 그 이유에 대해 저자는 "시린 생애일수록 마음자리는 한량없이 따숩고 단내가 나는 법이다. 그 손은 남에게 받기보다는 한사코 주는 일로 길들여져 있다"며 "이땅의 골골마다 섬섬마다 잇속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무수한 '주는 손'이야말로 마을공동체를 이어온 끈끈한 연대의 고리"(274쪽)라고 썼다.

진정한 '촌스러움'을 위해

전라도의 마을살이, 사람살이를 들여다보면 '촌스럽다'는 말이 지닌 전혀 새로운 의미를 깨닫게 된다. 공동체는 파괴되고 개인들은 원자화, 파편화 된 세상, 탐욕과 소비에 물든 세상,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미덕이 되는 세상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고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 꽃 중에 제일 어여쁜 '사람꽃'을 닮은 '촌스러움'이야말로 각박한 우리 시대가 복원해야 할 최고의 낭만이 아닐까.   

"촌스러운 삶은 정직하고 성실하고 아름답다. 내남없이 한데 어울려 구김없이 쾌활하고, 세상의 모든 생명에 따뜻한 연민을 품는다. 도통 낭비란 걸 모르는 검소하고 절제된 일상의 연속이다. 바지런히 몸뚱이를 부려서 자식들을 건사하고 들녘의 푸르름을 지켜온 당당하고 떳떳한 몸짓이다. 돈으로 맺는 거래에는 서투르고 따순 인정을 주고 받는데만 고수인 사람들의 습속이다. 허장성세 따위로 현혹하지 않고 알토란 같은 속내만을 드러낼 줄 아는 담박한 성정이다.

뉘라서 촌사람들과 이른바 촌스러운 것들을 업신여길 수 있으랴. 이제라도 '촌스러움'의 미덕을 회복해야만 끝없는 욕망의 전쟁터가 된 우리의 삶터에 사람의 온기가 돌고, 온갖 개발의 삽날에 찢기고 망가지는 산천도 가까스로 보전할 수 있지 않을까. 알고 보면 촌이란 우리 모두의 태생지이자 지금도 우리의 목숨줄을 부지해주는 생명의 공간인 것이다." (28~29쪽)

덧붙이는 글 | <전라도,촌스러움의 미학>(황풍년 지음 / 행성B잎새 펴냄 / 2016.8 / 15,000원)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 - 꽃 중에 질로 이쁜 꽃은 사람꽃이제

황풍년 지음, 행성B(행성비)(2016)


태그:#전라도, #전라도닷컴, #황풍년,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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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잘 살기 위해.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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