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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지금 혁명 중이다. 혁명은 국정농단에서 비롯되었다. 혁명 주체는 영웅적 혁명 전사나 유능한 정치인이 아닌, 천칠백만 촛불시민이다. 시민혁명군은 5개월 동안 주말을 반납하고 20차례의 촛불집회를 열었다. 국회에 강력하게 탄핵 가결을 요구했고, 헌법재판소에는 탄핵인용을 요청했다. 가지가지 비리를 밝혀낸 특검에는 격려의 메시지와 감사의 화환을 보냈다. 세계 언론은 촛불혁명에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이 놀라운 시민혁명에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보수집단은 시민의 권리를 저버렸고 이성을 잃고 여전히 막무가내의 행동을 일삼고 있다. 이념과 종교 다름을 초월한 '연대와 화합'이 아닌 '진보와 보수' 양극을 달리고 있다.

2011년 '아랍의 봄'을 만들어 낸 이집트 혁명에서 보여 준 빛나는 연대의 장면을 2017년 대한민국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에서 일어났던 기적을 보자. 반정부 시위대와 무바라크 지지세력 간에 폭력이 난무하는 가운데 이슬람교도들이 기도를 올리게 됐다. 이때 기독교인들은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인간 띠'를 만들어 그 주위를 둘러쌌다. 이 일은 그 당시 –지금도 여전히- 이른바 '아랍의 봄'에서 보였던 가장 놀라운 장면 중 하나로서, 화합과 용기 그리고 자발적 규율을 빚어낸 순간이었다. 무바라크 정권 눈에는 정신 나간 행동으로 비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광기 한가운데서 빛나는 순수 이성이 아니었을까?' -14쪽

사랑의 힘 그리고 혁명에 대하여
▲ 사랑의 급진성 사랑의 힘 그리고 혁명에 대하여
ⓒ 오월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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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급진성>(오월의 봄)은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며 혁명을 주도했던 혁명가들의 삶을 '사랑의 재발견'이라는 관점으로 풀어낸다. 사랑이 지닌 열정, 환희, 간절함이 혁명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본다. 저자는 '사랑의 재발견 없이 다른 세계, 더 나은 세계를 제대로 상상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사랑과 혁명의 관계를 변증법적으로 풀어낸다. 저자의 관점에서 '사랑'과 '혁명'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저자는 왜 사랑의 재발견 없이 혁명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일까.

'모든 연대의 행위에는 사랑이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양심의 찔림으로 그저 한두 번의 자선 행위를 하는 것은 연대가 아니다. 연대란 '우산을 씌워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일 것이다.

사랑이 깊어지고 넓어져야 진정한 연대의 삶이 가능해진다. 혁명은 더 나아가 함께 비를 맞지 않는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행동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왜 '사랑이냐, 혁명이냐'가 아니라 '사랑과 혁명'인지 이해된다.

책에는 역사를 바꾼 혁명과 여러 명의 혁명가들이 등장한다. 혁명을 위해 사랑을 포기한 레닌도 있고 혁명과 사랑을 모두 포기하지 못했던 체 게바라도 등장한다. 저자는 급진적 혁명가들이 사랑의 급진성에 두려움을 지녔던 점을 지적하며 "사랑의 재발견 없이 다른 세계, 더 나은 세계를 제대로 상상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이기적인 개인의 사랑에 매몰되어 버리면 공동체 삶의 변혁을 꿈꾸지 않고 안정된 삶에 안주할 것이다. 안정된 삶에 매몰되면 혁명을 꿈꾸지 못한다. 사랑이 내포된 연대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면, 쿠데타는 될지언정 더 나은 세상을 꿈꾼 혁명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사랑이냐 혁명이냐'가 아닌 '사랑과 혁명'이 되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독재자의 특징은 대중이 가장 기본적인 욕망인 성적 욕망을 누리는 것을 죄악시 하는 것이었다. 욕망을 통제하지 않으면 복종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패한 소비에트 공산주의 체제와 아랍에서 성을 통제하는 것은 반사회적 혁명적 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성적 열정은 혁명적 충동을 일깨울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당은 성적 에너지를 그 자체의 필요를 위해 사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성교 후에는 욕망이나 충동이 감소하므로 당은 구성원들이 영구적으로 쾌락을 기대하는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고 나서 자신의 목적에 맞게 에너지를 보낸다.' - 66쪽

사회주의 국가나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 아랍권에서 즐거움과 욕망은 최고위 계층만 갖는다고 한다. 민중이 욕망을 갖는 것은 바라지 않기 때문에 술과 마약, 섹스, 음악과 영화 등은 엄격하게 통제가 된다. 투르크메니스탄의 독재자인 사파르 무라트는 2001년 외국 오페라 발레를 금지하고 서커스, 휴대전화 통화, 자동차에서 음악 트는 것을 금지했다고 한다.

가장 혁신적인 가족과 성 관련 입법을 포함한 성혁명이 들어있던 러시아 10월 혁명은 왜 실패했을까. 1917년 12월 19일과 20일에 레닌은 <결혼의 해소에 대하여>와 <시민 결혼, 자녀. 시민 등록에 대하여>라는 혁신적 성혁명 정책을 발표한다.

'양성 평등. 낙태와 이혼 합법, 기혼 여성의 재산과 수입 관리 권한 허용'은 21세기에 봐도 획기적인 정책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34년 6월 '동성에 반대법, 낙태 금지법, 이혼법 갱신' 등으로 성혁명은 실패한다. 성혁명을 대중의 아편인 자본주의의 요소로 봤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비에트에서 가장 영향 있던 성평론가 아론 잘킨느는 '새 혁명적 주체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금욕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았고 성 생활을 통제하는 '12계명'을 만들어 성적 욕망과 혁명적 에너지를 억압하고 통제하도록 만든다. 그녀에게 성이란 계급적 요소로 계급의 이익과 목적에 부합해야하는 것이었다. 로랑 바르트의 인터뷰는 '사랑과 혁명'이 지닌 본질적 딜레마를 드러내고 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 스스로 에너지를 격렬하게 투자하는 장소이므로 다른 본질을 지닌 것의 투자로부터는 배제된 듯한 느낌을 가집니다. 그와 공모 관계를 느낄 수 있는 사람만이 사랑에 빠진 사람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결국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한다는 사실이지요. 그러나 정치 투사는 자기 식으로 하나의 대의명분, 이념과 사랑에 빠져 있지요. 이 대립관계는 서로 견뎌내지 못합니다. 양쪽 모두가 그렇지요. 정치 투사가 열렬히 사랑에 빠진 사람을 참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 94쪽

혁명가였던 레닌에게 여성 문제는 공산주의 혁명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했지만 매춘이나 성 관계에 얽혀있는 금전적인 문제나 프롤레타리아 여성들의 사랑에는 부정적이었다. 모든 프롤레타리아 여성들의 생각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모아져야 한다는 것이 레닌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10월 혁명 초기 급진적 개혁자인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와 레닌의 연인이던 이네사 아르망은 '공산주의 혁명은 성/사랑 혁명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었다. 레닌은 '혁명을 먼저 이루어야 사랑의 문제를 다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와 이네사 아르망의 생각이 옳았다고 단언한다. 레닌은 사랑의 열정이 자신의 혁명에 걸림돌이 될 것을 늘 경계하고 두려워했다.

저자는 '진정한 사랑의 급진성(진정한 혁명의 급진성도)은 어느 쪽의 전제도 억누르거나 지우지 않는 헤겔적 지양에서 찾을 수 있다'고 가정한다. '진정한 사랑의 급진성은 혁명의 급진성에서 발견되고, 혁명의 급진성은 진정한 사랑에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체 게바라는 두 번 결혼했다. 두 번째 부인 알레이다 마치 사이에서 네 명의 자녀를 두었다. 장녀 알레이다 게바라는 체 게바라가 사랑하는 법을 알고 있는 낭만적인 사람이었다고 전한다.

"아버지는 사랑하는 법을 알고 계셨고,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이 아버지의 가장 아름다운 점이었습니다. 진정한 혁명가가 되기 위해서는 낭만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117쪽

사랑은 상상과 모험심과 결단을 필요로 한다.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과 헌신과 희생도 필요로 한다. 이는 사랑의 급진성이 갖는 혁명적 요소다. 진정한 혁명의 동인은 진정한 사랑이며 사랑이 혁명의 동인이 되려면 공동의 이상과 삶을 위한 연대의 에너지로 전환되어야 한다.

사랑의 급진성과 혁명의 급진성은 평행선을 달리는 것과 같아서 멀어질 수는 없지만 영원히 하나가 될 수 없는 명제다. 체가 1965년 11월 28일 탄자니아에서 쓴 편지에는 '사랑과 혁명 사이의 영속적인 불화'에 대해 언급된다.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모험가이면서 부르주아여서 집에 돌아가는 것을 매우 갈망하면서도 동시에 꿈을 실현하는 것을 간정히 바라지요. 관료로 일을 했을 때는 내가 시작한 일을 해내는 것을 꿈꾸었어요. 지금은 내 길을 가는 동안 커가는 아이들과 당신을 꿈에 그려요. 아이들은 나에 대해 낯선 상상을 하겠지요. 아이들이 나를 멀리 있는 극악무도한 인간으로 사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아버지로 사랑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 되겠지요...... 지금 주위에는 적도 없고, 부당한 일도 보이지 않지만 나는 감금된 죄수나 마찬가지지요. 당신에 대한 강렬한 욕망은 카를 마르크스나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으로도 늘 진정되지 않아요.' - 125쪽

혁명의 대가는 개인의 사랑을 유보하거나 희생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 없다면 혁명의 불씨도 변화의 기회도 생기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사랑의 급진성/ 스레츠코 호르바트. 변진경 옮김/ 오월의 봄/13,000



사랑의 급진성 - 욕망, 사랑, 섹슈얼리티, 쾌락의 힘 그리고 혁명에 대하여

스레츠코 호르바트 지음, 변진경 옮김, 오월의봄(2017)


태그:#사랑의 급진성,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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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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