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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회관 방안에 70~102세 할머니들이 빙둘러 앉아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마을회관 방안에 70~102세 할머니들이 빙둘러 앉아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무한정보>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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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의 동쪽 대술면 곰실(화천3리) 할머니경로당에 봄이 찾아왔다. 22일 날, 신나는 음악소리가 들린다. 할머니들의 박장대소에 꽃샘추위도 놀라 달아날 지경이다. 일주일에 두 번 방문하는 신나는 노래교실이 있는 날이란다.

"크게 한 번 웃어 보시라"는 강사의 말에 할머니들은 멋쩍어 하면서 나름 크게 웃는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강사의 성에 차지 않는다. "더 크게" 또 "더 크게" 하자, 이번엔 목젖이 보일만큼 활짝 웃는다. 그렇게 웃으니 얼굴까지 볼그레해졌다.

수줍은 새색시로 산골마을에 시집와 시부모 봉양에 마음고생은 말도 못했을테고, 먹고살기도 어려운데 자식들 가르치느라 논밭일도 부족해 산을 뒤져 도토리·상수리묵을 쑤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을 터이니, 언제한번 웃음소리가 담을 넘은 적이 있었던가.

녹음기에서 신명나는 음악이 나오자 빙둘러 앉은 할머니들의 어깨춤이 절로 나온다. 목청껏 노래도 부르고 서로 등허리도 두드려 주고, 봄기운과 함께 한층 젊어지는 시간이다.

곰실은 예산군 대술면에서 동으로 2㎞를 가면 나오는 두루봉 아래 사람살기좋은 명당(승지) 마을이다.

마을사람들 간에 서로 화기로운 것은 물론 겨울엔 두달반 동안 동네어르신들의 점심과 저녁을 마을회관에서 공동으로 차려드리는 효도마을이다.

곰실에 사는 100세 안팎의 최고령 할머니들. 성월순, 이한례, 신숙지, 조중성 할머니(왼쪽부터).
 곰실에 사는 100세 안팎의 최고령 할머니들. 성월순, 이한례, 신숙지, 조중성 할머니(왼쪽부터).
ⓒ <무한정보>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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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60명이 모여사는 작은 마을에 90세 이상 할머니가 4분이나 되고 모두 당장이라도 밭으로 나가 호미를 잡을 만큼 건강하시다. 이한례(102세), 신숙지(99세), 성월순(92세), 조중성(90세)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최고령자 이한례 할머니는 친정이 예산군 응봉면 갈울이고, 시집와 7남매를 뒀다. 귀가 어둬서 그렇지 밭일을 할만큼 건강하시다.

"너무 오래 살아서 넘부끄러워유." 신문사에서 왔다고 하니 돌아온 대답이다.

"넘부끄럽다고 자꾸만 (저승에) 간다는 걸 내가 붙들어 놨유." 옆에 있던 성월순 할머니의 말에 모두 한바탕 웃는다. 성 할머니는 박풍서(71) 이장의 어머니다. 박 이장의 모습이 어머니를 쏙 빼닮았다.

"아들이 고기도 잘사오고 덕산가서 목간하고 나믄 보신탕도 자주 사줘유"하고 자랑하신다.

두 번째 고령인 신숙지 할머니는 잘 웃고 수줍음도 많이 타신다. 지난달에 백수잔치를 했는데 귀도 밝고 몸도 짱짱하시다. 장수비결을 물으니 그런거 없단다. "그러면 어떤 음식을 제일 좋아하시냐"하니 "밥이 최고지유. 김치멀국하고"라며 힘도 안 들인다.

다른 할머니들도 이구동성으로 밥과 김치를 꼽은 뒤 "솥에서 나온 건 뭐든지 잘 먹어유"한다.

조중성 할머니는 "우리동네 어른들이 왜 건강한가 했더니 우리 아들 얘기가 일을 많이 해서 그렇대유" 하니 또 모두가 웃는다.

이어 할머니는 "우리 아우들 자랑 좀 해야겄네유. 즐기면(겨울이면) 두달보름 동안 여기서 즘슨(점심), 저녁 두끼를 얻어먹어유. 막내들(70대)이 밥을 허믄 바로아래 동상들(80대)이 설거지를 해유. 교자상을 5개씩이나 논다니께유. 엄동설한에도 한 번도 빠지지 않으니께 을매나 장해유."

그러자 막내로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그란디 냉장고가 고장이 나서 젤로 걱정이유. 다른디 가보믄 크고 존것도 많든디"하고 나서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잠깐 걱정이 스친다. 그러다가도 누가 한마디라도 하면 금세 다시 활짝 웃는다.

세할머니는 모두 신양면이 친정이고, 이 곳 반남 박씨네로 시집와 일가간이란다. 담을 사이에 두고, 또는 고샅길로 이어져 오순도순 모여산 지 70년 세월, 쌓인 정이 오죽할까.

곰실경로당에서 만난 할머니들의 헤픈 웃음은 봄꽃보다 예뻤다.

덧붙이는 글 |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와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할머니경로당, #노래교실, #장수, #효도마을,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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