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나라'에 대해 이야기할 때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내가 살고 싶은 나라, 내가 꿈꾸는 국가'에 대한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대선 기획 '100인의 편지'를 통해 전하고자 합니다.

이번 기획은 '열린 기획'으로 시민기자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차기 정권에 하고 싶은 말, 바라는 바에 대해 적어 기사로 보내주세요. '이게 나라냐'는 탄식을 넘어 '이게 나라다'라는 새로운 지향점을 여러분과 함께 열어나가겠습니다. [편집자말]

지난주 둘째, 셋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는 길이었다. 동네 어귀에 차를 세우고 어린이집으로 향하는데 저 멀리 친구를 본 막내가 냅다 뛰기 시작했다. 앞뒤좌우 보지 않고 내달리는 진격의 5살.

생각보다 빠른 몸놀림에 말릴 생각도 못하고 그저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는데 아뿔싸. 녀석이 어린이집 정문 앞에서 그대로 넘어지고 말았다. 열심히 뛰었던 만큼 그 충격도 컸었는지 동네가 떠나가라 우는 막내.

아이들이 뛰다가 넘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괜찮다며 녀석을 일으켜 새우고 눈물을 닦으려는데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피와 함께 움푹 들어간 상처가 보였다. 생각보다 깊이 들어간 것이 심상치 않아 보였지만 출근길이기에 아이를 선생님께 맡긴 뒤 회사로 향했다. 설마 무슨 큰일이야 있겠냐 애써 자위하면서.

사무실에 들어와 일을 하려는데 도저히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동료들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며 괜히 설레발도 쳐보지만 불안하기는 매한가지였다. 하루 종일 어린이집으로부터 전화가 없기에 잘 지내고 있겠거니 믿고 싶었지만 그것 역시 쉽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오후에 아이들을 찾으러 간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린이집을 나와 막내와 곧바로 약국으로 향했는데, 약사는 아이의 상처가 그냥 아물어질 상처가 아니라며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고, 결국 녀석은 동네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이마를 꿰맸다고 했다. 

아빠가 미안하다
▲ 막내의 상처 아빠가 미안하다
ⓒ 정가람

관련사진보기


퇴근 후 만난 막내 복댕이. 이마에 커다란 반창고 붙이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가슴이 아려왔다. 아침에 뛰지 말라고 할 걸 하는 후회와 함께 차라리 내가 아픈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한테는 그러기에 조심하라고 꾸중 섞인 소리를 계속했지만 그것은 결국 나 스스로에 대한 책망이요, 아이에 대한 사과였다.

내가 조금 더 보살폈으면 괜찮았을 텐데. 얼마나 아팠을까. 또, 이마에 흉터가 남겠구나. 아빠는 아이의 그 다섯 바늘 상처에도 마음이 미어졌다.

국민의 아픔 헤아릴 수 있는 마음 가진 대통령

내가 굳이 막내의 이야기를 꺼낸 건 며칠 전 <오마이뉴스>에서 요청한 '대선기획 100인의 편지' 때문이다. 편집부에서는 아이 셋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으로서 차기 대통령에게 원하는 바를 기사로 작성해달라고 요청했겠지만, 막상 기사를 작성하고자 하니 생각나는 건 교육, 보육 정책이 아니라 막내의 상처를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이었다.

5살 자식의 작은 상처에도 가슴 아픈 부모의 마음. 내가 차기 대통령에게 원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이 타인의 아픔에 함께 아파할 수 있는 능력이다. 

혹자들은 이 긴박한 시대에 무슨 한가한 소리냐고 힐난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결국 타인의 슬픔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그들의 아픔을 나의 것처럼 공감하는 능력이야말로 지도자의 기본적인 덕목이기 때문이다.

어찌 타인의 슬픔을 헤아릴 수 없는 자가 국가를 경영하고, 타인의 아픔에 함께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단 말인가. 맹자의 말대로 측은지심은 인간이 가져야 할 가장 근본적인 덕목이며, 지도자가 가져야 할 필수적인 요소 아니던가.

지도자는 무엇보다 국민들의 아픔을 헤아려야 한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아이를 낳지 못할 만큼 힘든 삶을 영위하는 서민들의 일상을 알아야 하며,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실업자들의 절박함을 알아야 한다. 그 아픔들을 헤아리지 못하면 모든 정책들은 탁상공론에 빠질 것이며, 그 아픔에 공감한다면 국정운영은 원활하게 될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014년 5월 1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014년 5월 1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우리는 지난 10년간 타인의 아픔에 전혀 공감하지 않는 대통령을 뽑아왔다. 단지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고 해서, 그리고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불쌍하다는 이유만으로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살아왔던 이들을 대통령으로 선출시켰다.

그리고 그 결과는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바와 같다. 한 마디로 절망적이다.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망루에서 불에 타죽어도, 학생 몇백 명이 물에 빠져 죽어도 눈도 깜짝하지 않는 채 오히려 그게 왜 나의 잘못이냐고 되묻는 대통령과 그 정부 하에서 우리 사회는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타인의 슬픔을 희롱하고 타인의 아픔을 희화화하는 자들이 버젓이 고개를 들고 다닐 정도로 사회가 잔혹해졌다.

단식을 하고 있는 유가족 앞에서 치킨과 피자를 먹고, 수많은 목숨들이 억울하게 수장된 사고를 단순한 교통사고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악귀들. 그들의 등장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최고 지도자가 타인의 아픔을 헤아릴 줄 모르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며, 국가가 국민의 눈물에 무관심했기 때문에 벌어진 사태이다.

세월호의 아픔

26일 오전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앞바다에서 3년만에 인양되어 반잠수식 선박으로 옮겨진 세월호가 수면위로 선체 전체가 부양된 상태로 목포신항으로 이동 준비를 하고 있다. 세월호 선수 부분이 갈라져 있다.
▲ 선수 부분 갈라진 세월호 26일 오전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앞바다에서 3년만에 인양되어 반잠수식 선박으로 옮겨진 세월호가 수면위로 선체 전체가 부양된 상태로 목포신항으로 이동 준비를 하고 있다. 세월호 선수 부분이 갈라져 있다.
ⓒ 해양수산부 제공

관련사진보기


며칠 전 1073일 만에 세월호가 떠올랐다. 나를 비롯한 많은 국민들이 뉴스 앞에서 잠시 잊었던 눈물을 흘렸고, 3년 전의 다짐을 다시금 꺼냈다. 눈앞에서 꽃다운 나이의 목숨들이 하릴없이 가라앉았던 바로 그 사건을 보며, 살아남은 우리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고민해야만 했다.

차기 대통령은 이런 세월호의 아픔을 끌어안아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유가족만의 슬픔이 아니다. 이게 국가냐고 외쳤던 대다수 국민들의 절망감과, 국가가 나를 보호해줄 수 없을 것 같다는 국민들의 불안함과, 뭘 해도 대한민국은 바뀌지 않는다는 국민들의 무기력함을 포옹해주어야 한다.

그것은 결코 금전적인 보상이나 제도적인 변화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공감이 우선되어야 한다. 최고 지도자와 국가가 국민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를 바탕으로 한 위로가 있어야 한다. 인간에게 돈이나 밥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소중하다고 느낄 수 있는 자존감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국민들은 너무도 방치되어 있었다. 대통령과 정부는 그들의 잇속을 챙기는 데 급급한 나머지 국민들의 아픔을 돌보지 않았고, 그 모든 것들을 시장과 자본의 논리로 대신하고자 했다. 그러나 복지와 안보는 민영화할 수 있어도 공감과 위로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세상 이치이다.

차기 대통령에게 바란다. 부디 국민과 함께 하기를.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 함께 하기를.


태그:#대선기획, #100인의 편지, #대선, #대통령, #대통령 선거
댓글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