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희망원 사태, 대구교구만의 문제 아니다

[주장] 희망원 대책위 명동성당 시위, 가톨릭교회 스스로 되돌아봐야
17.03.26 19:12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if !supportEmptyParas]-->
천주교는 대구시립희망원 사건 해결에 나서라! 프란치스코 교황 즉위 4주년 기념미사가 봉헌되고 있던 명동성당에서 희망원 대책위에서 현수막을 펼쳐들고 기습시위를 하고 있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endif]-->
2천 년 전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장사치들을 쫓아내셨다. 2천 년 후 명동성당은 장사치들이 아니라 장애인들을 쫓아냈다. 그들은 누구인가. 꽃동네와 함께 이미 한국가톨릭 장애인복지의 수치스러운 얼굴이 되어버린 장애인 수용시설 대구시립희망원 사태 해결을 운영주체인 가톨릭 교회에 촉구하러 온 장애인들이다.

예수의 주변은 늘 장애인들이 둘러싸고 있었는데 명동성당은 찾아오는 장애인들조차 쫓아버렸다. 1987년 6·10항쟁 때 김수환 추기경은 명동성당에 들어온 학생들을 연행하기 위해 전두환 정권이 진압경찰을 투입하려 들자 "경찰이 들어오면 맨 앞에 내가 있을 것이고, 그 뒤에 신부들과 수녀들이 있을 것이며, 그 뒤에 학생들이 있을 것이다"라며 '나를 밟고 가라'고 단호하게 버티면서 그들을 지켜냈는데, 장애인 인권 문제로 장애인들이 찾아만 가면 경찰에 시설 보호를 요청하며 접근을 차단하는 지금의 명동성당에게서 민주화의 성지요 소외된 이들의 안식처였던 명동성당은 그야말로 과거의 추억일 따름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마침 지난 22일은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4주년을 기념하는 미사가 봉헌된 '뜻깊은' 시간이었다. 천주교 주교회의 춘계정기총회 중이라 제대 위에는 주한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를 비롯해 각 교구 주교들이 함께했었다.

주교단이 미사로 즉위를 기념한 그 교황은 지난해 6월 12일의 '병자와 장애인들 위한 자비의 특별희년 주일' 미사 강론에서 "우월한 신체를 가진 것이 대중적 신화인 이 시대에 장애인들은 구석지고 외딴곳에 격리해 눈에 띄지 않게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장애인을 외면하는 사회는 결코 인간다운 사회로 나아갈 수 없으며 연대와 존중만이 사회를 성장시킬 수 있다"며 장애인 수용시설을 비판하고 장애인의 사회통합에 교회가 앞장서 줄 것을 요구했다.

그날 미사를 공동집전했던 주교단의 마음에서, 미사 집전을 방해한다고 찾아온 장애인들조차 쫓아버린 주교단에게서 교황 프란치스코의 그런 마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물론 장애인들이 현수막을 들고서 희망원 사태 진상규명과 해결을 촉구하며 미사 중에 기습시위를 펼친 한국 가톨릭 교회 초유의 사건 앞에서 주교단이 당혹스러웠을 것은 충분히 이해된다.

그럴지라도 명동성당 측의 장애인들을 향한 대처는 대단히 폭력적이기만 했다. 그날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비롯해 활동가들은 성전 밖으로 끌려 나오면서 현수막과 옷이 찢길 만큼 난폭하게 '진압'당했다. 거기에다 유일하게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어 장애인들이 들어올 수 있는 왼쪽 출입문을 성전에 재진입 못 하게 걸어 잠그기까지 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프란치스코 교황과 세월호 희생 학생 유민이 아빠와의 감동적인 만남 장면 <!--[endif]--> 

<!--[if !supportEmptyParas]-->
프란치스코 교황, 세월호 유족 만나다 방한 중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014년 8월 16일 광화문 시복미사에 앞서 카퍼레이드를 하던 중 차를 멈추고 내려서 세월호 유족인 김영오 씨를 만나고 있다. ⓒ 김용길

<!--[endif]-->
문득 지난 방한 때 광화문 광장에서의 프란치스코 교황과 세월호 유가족 사이의 '돌발적인' 만남의 장면이 떠오른다. 그날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가 교황께 갑자기 다가서자 놀란 청와대와 교황청 보안요원들이 막아섰지만, 교황은 그들을 물리치고 유민이 아빠에게 다가가 잠시 공식 행사마저 멈추면서까지 호소를 듣고 편지를 전달받는 감동적인 장면을 보여주었다.

만일 주교단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잠시 미사를 중단하고 제대에서 내려와 장애인들의 호소를 들어주는 시간을 가졌다면 얼마나 감동스러웠을 것인가. 바로 이 장면에서 '복음적 교회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성찰에 이르지 않을 수 없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지난 세월, 한국 가톨릭 교회는 사회 각 분야, 특히 복지와 의료 및 교육 분야에서 복음적 가치를 구현하는 선구자적 역할을 다해왔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전문화되어 분야별로 발전을 거듭하면서 교회의 역할은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

장애인복지 분야 역시 이제껏 우리나라 장애인복지 발전에 디딤돌이 되었지만, 장애인복지의 새로운 흐름에 뒤처지면서 오히려 장애인복지 발전의 걸림돌이 되어가면서 사회적 기대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어쩌면 인권유린과 비리로 얼룩진 희망원 사태와 같이 사회의 일반적 수준에도 못 따라가는 교회의 부정적인 행태들에 대해서는 시민사회의 엄정한 비판과 반발이 따를 수밖에 없으며, 이런 일이 앞으로 자주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복음적 가치관을 지닌 교회와 가톨릭 신앙인이라면 사건의 표피적인 면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 숙고하면서 그런 사태를 초래하고 원인을 제공한 자신부터 되돌아보는 성찰적 자세의 접근이 필요하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희망원 사태와 관련해서는 이미 장애인 당사자들이 수십 차례 성명서를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열면서 지난 8개월간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었다. 하지만 희망원 운영주체인 천주교 대구교구는 물론이고 한국 가톨릭교회의 책임 있는 조치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거기에다 한국 가톨릭교회의 수장으로 알려진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과의 면담 요구조차 거부당하고,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보내는 서한을 주한 교황청대사관에 전달했지만, 그에 대한 답변조차 없는 등 최근의 일련의 과정들이 장애인 당사자들의 분노 게이지를 높였다고 할 수 있다. 교회의 이런 책임 회피적 대응 앞에 우리 사회 비판의 칼날은 이미 희망원을 넘어 운영주체인 천주교회로 향하고 있으며, 이제 다시 한국 천주교회를 넘어 프란치스코 교황께로 향하고 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if !supportEmptyParas]--> <!--[endif]-->
수용시설 반대하는 교황 지침 따라 가톨릭 장애인복지 패러다임 바꿔야  <!--[if !supportEmptyParas]--> <!--[endif]-->

<!--[if !supportEmptyParas]-->
7년간 309명 사망, 국민에게 사과하라! 지난 3월 22일 저녁, 명동성당 앞마당에서 희망원 대책위 소속 장애인들이 현수막을 펼쳐들고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endif]-->
프란치스코 교황의 즉위를 주교단에서 기념하고자 한다면 우선 교황의 정신부터 따르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교황의 지침을 따른다면 한국가톨릭 장애인복지 패러다임은 근본적인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희망원 사태를 계기로 교회는 대규모 수용시설 위주의 장애인 복지사업을 지양하고,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와 함께 살아가도록 장애인과 파트너십 차원에서 연대하면서 교회가 이제껏 쌓아온 풍부한 물적·인적 복지자원을 온전히 투신해야 할 것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그런 차원에서 희망원 사태를 대구교구의 개별 문제로 몰아가려는 한국가톨릭교회의 태도는 가톨릭 교계제도의 특성을 고려할지라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번 희망원 인권유린 문제는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마태 25, 45)라는 예수의 말씀 그 복음적 가치를 훼손한 것인 까닭에, 교회 전체가 공동책임의식을 지녀야 할 것이다.

희망원 사태를 가톨릭 장애인복지 전반에 대한 교회 차원의 반성 그 계기로 삼고자 한다면, 이번 기습시위 사건을 단순히 '거룩한' 미사를 방해한 장애인들의 행동으로 몰아가기에 앞서 이번 사건이 교회에 던지는 예언자적 메시지를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는 건축물로서의 성전만이 아니라 살아있는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몸이 성전(요한 2,2 1)이라 하셨고, 사도 바오로도 살아있는 우리의 몸이 성전(1코린 3, 17)이라고 갈파했다.

이번 주교회의 춘계정기총회에 상정된 안건들이 산 자보다 죽은 자의 문제만 다룬다는 비판을 받았다. 산 사람들의, 살기 위한 아우성이 엄동설한에서도 끝없이 이어졌던 지난 수개월의 촛불 시국을 두고서 주교회의에서 '죽은 이들의 매장과 화장된 유골의 보존에 관한 교황청 훈령을 한국 교회에 어떻게 적용할까' 같은 문제만 논의한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주교회의에서 희망원 및 인천성모·국제성모병원 사태와 같은 교회 내부 문제까지 깊이 있게 논의하고 거기에 대한 성찰적 반성과 진정한 사과를 담은 교회 쇄신안을 발표한다면 그것이 사회 전체에 던지는 반향은 얼마나 대단할 것인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가톨릭프레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