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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나라'에 대해 이야기할 때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내가 살고 싶은 나라, 내가 꿈꾸는 국가'에 대한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대선 기획 '100인의 편지'를 통해 전하고자 합니다.

이번 기획은 '열린 기획'으로 시민기자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차기 정권에 하고 싶은 말, 바라는 바에 대해 적어 기사로 보내주세요. '이게 나라냐'는 탄식을 넘어 '이게 나라다'라는 새로운 지향점을 여러분과 함께 열어나가겠습니다. [편집자말]

5월 9일. 이 날은 3월 10일 탄핵 결정으로 공석이 된 대통령을 뽑는 선거일이자, 워킹맘인 저에게는 아이들의 학교가 쉴 때 회사도 함께 쉬어 다행인 임시공휴일입니다.

연초가 되면 으레 나오는 기사가 있습니다. 징검다리 휴가가 있는지 체크하고, 만약 있다면 이때 연차 휴가를 하루이틀 붙여쓰면 장기 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워킹맘에게 '샌드위치 데이'란 어려운 고민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교장 재량 휴일이 지정될까, 단기방학으로 지정될까, 어떻게 하면 회사에서 눈치 보지 않고 휴가를 낼 수 있을까, 휴가를 못 내면 누구에게 아이들을 맡겨야 할까, 돌봄 교실은 문을 열까 등등 어려운 고민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워킹맘에게 '징검다리 휴가'란...

지난해에 경기 활성화를 위해 공휴일이 갑작스럽게 지정되었을 때 비교적 규모가 있는 기업은 휴일을 챙겼지만, 그렇지 않은 회사도 많았습니다. 그곳에 다니는 직장인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했죠. 휴가가 비교적 자유로운 회사나 업종이 있는 반면, 제가 근무하는 업종은 샌드위치 데이에 휴가를 쓰는 일이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나마 빨간 날은 쉬는 업종이라 급작스럽게 지정된 공휴일이나 선거일에 쉴 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나 할까요.

비단 임시 공휴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연차가 남아도 쓸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신 일할 사람이 없거나, 눈치가 보여서 못 가는 경우입니다. 같은 팀 내 비슷한 연령의 자녀를 둔 여자 직원들이 많을 경우, 특히 평일에 학교에서 부모 참여를 요구하는 경우, 복수의 직원이 동시에 휴가를 내야 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를 둔 여자 직원과 짝이 된 저는 서로 다른 날에 학부모 총회가 시행되기를 기도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회사는 연초마다 그해의 휴가 계획을 등록하고 휴가 사용을 독려합니다. 하지만 계획을 세워놓아도 번번이 일 때문에 미뤄져 10월에는 같은 부서 직원들끼리 휴가 일정을 조정하는 게 가장 큰 일 중 하나입니다. 휴가가 없어도 문제지만, 남아도 쓰지 못하는 상황은 더 문제입니다.

2017달력
▲ 2017달력 2017달력
ⓒ ⓒ geralt,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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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고용노동부가 '근로자 연차휴가 사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평균 연차휴가 부여 일수는 14.2일, 사용일수는 8.6일로 파악돼 근로자 대부분이 연차휴가의 약 60%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차휴가 사용이 미미한 이유를 보면 기업은 근로자들이 추가 수입을 원한다고 인식(38.2%)하는 반면 근로자는 일은 많은데 대신할 사람은 없고 휴가를 갈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고 인식(45.2%) 하고 있어 분명한 입장 차이가 납니다.

소득이 적은 경우 쉬지 않는 한이 있더라도 수당을 챙기고 싶어 할 수도 있지만 눈치 때문에 휴가를 쓰지 못하는 상황에 몰리는 직장인들은 답답할 따름입니다.

2003년에 도입된 '휴가 촉진제'란 회사가 근로자에게 연차휴가를 지정해서 사용하도록 권장했음에도 근로자가 휴가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 회사는 연차수당 지급 의무가 면제되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이 제도가 악용되어 지난해 전체 기업 중 42.1%가 미사용 연차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고 하니 많은 근로자들이 쉬지도 못하고 수당도 지급받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없을 때의 휴가란 팀원들과 조율해서, 혹은 내가 필요한 날에 업무 외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혹은 재충전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생긴 이후에는 휴가 사용 규칙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아이가 아픈 날, 아이의 기관(학교, 유치원) 행사 날이 휴가 사용 기준의 최우선 순위입니다. 아이들 돌보는 것을 친정부모님이 도와주시는 제 입장에서는 아이들 다음으로는 친정부모님의 일정이 그 다음 고려대상입니다. 친정부모님이 사정이 생겨 아이들을 돌봐주지 못하시는 날 역시 휴가를 사용합니다.

그러다 보니 돌 무렵, 아이들이 기관에 입학한 이후로는, 온전히 저 혹은 부부를 위한 휴가를 사용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여행도 아이들 일정에 맞춰 어쩔 수 없이 방학 등 장기 휴가를 낼 수 있는 시기에 다녀와야 합니다. 아이를 낳기 전보다 여행 비용도 늘었습니다. 대개 방학 때 여행을 가려면 비싼 돈을 내야 하니까요.

육아는 부부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워킹맘육아
▲ 워킹맘육아 워킹맘육아
ⓒ pixap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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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국무회의에서 고등학생 이하 자녀를 둔 공무원을 대상으로 연간 2일의 자녀 돌봄 휴가를 부여한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휴가의 이름이 '자녀 돌봄'이라는 데에서 무척 고무적이고 긍정적으로 평가됩니다만, 공무원만 가능한 휴가 제도가 아닌지, 일반 기업이 추가로 도입할 수 있을지 미지수입니다. 사용할 수 있는 휴가조차도 일 때문에, 대신할 사람이 없어서, 눈치가 보여서,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데 말이죠.

또 이런 방식으로 먼저 도입되는 제도는 대부분 '엄마'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자녀를 돌보는 것이 왜 꼭 엄마여야 할까요? 남자 사람인 아빠가 자녀를 돌보면 안 되나요?

대선을 앞두고 다양한 선심성 정책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저출산과 육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도 예외는 아니죠. 정책들을 들여다보면서 저는 "육아란 부부가 함께하는 것이라는 인식에 기초한 정책"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휴가도 마찬가지입니다. 휴가를 새로 마련하고, 못 사용하는 휴가를 사용하도록 독려하는 것에 앞서 육아를 위해 휴가를 써야 할 때 반드시 부부가 함께 사용하도록 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도 의무적으로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사용하게 해야 합니다. 연중 부여하는 자녀 돌봄 휴가도 남자와 여자가 나눠서 사용하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이 되어야 합니다.

기업에만 희생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학교도 변해야 합니다. 학부모가 학교에 참여할 일을 줄이는 것이 우선돼야 하지만 불가피하게 참여가 필요한 각종 행사, 제도 등에 엄마와 아빠가 함께 혹은 똑같이 나눠서 참여하도록 제한을 해야 합니다.

학부모 총회에 엄마가 참여했다면 면담은 아빠가, 도서 봉사를 엄마가 한다면 교통지도는 아빠가 하는 등 부부가 함께 참여하도록 제안 혹은 제한해야 합니다. 그래야 회사에서 남자도 아이를 이유로 당당하게 혹은 당연히 휴가를 사용할 수 있겠죠.

남자도 여자도 똑같이 자녀를 위해 휴가를 내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가 필요합니다. 아니 분위기보다 강력한 규정이 필요합니다. 휴가 기간을 꼭 똑같이 나눌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육아는 아빠도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역할'이라는 인식과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제도를 만들어 놓고 가정과 기업, 학교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방관하면 희생은 엄마 몫이 됩니다. 그리고 직장에서 워킹맘들은 늘 육아 때문에 동료들에게 미안함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워킹맘은 언제까지 미안해 해야 할까요

직장을 다니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경제적인 이유, 사회적 명예, 타인과의 어울림 등이 그 목적입니다. 그것보다 근본적인 요소는 가정입니다. 행복한 가정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직장생활을 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죠.

육아가 힘들어 직장을 포기하는 남자는 없지만 육아가 힘들어 직장을 포기하는 여성은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자녀 육아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는 여성을 '경단녀'(경력단절여성)라고 칭하는 신조어가 생겼을까요. 육아가 여성만의 일이 아니라 부부가 함께하는 일이라는 인식과 이를 위한 제도가 뒷받침될 때 '경단녀'는 줄어들고, 남성과 여성 모두 좀 더 행복한 직장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반장
▲ 반장 반장
ⓒ 이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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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촛불 집회로 얻어낸 소중한 대통령 선거일. 첫 촛불 집회 첫날 무사히 끝난 것에 안도하는 엄마 아빠에게 쌍둥이 남매가 물어봅니다.

"사람들이 왜 행진을 해? 대통령을 왜 물러나라고 해?"

이런 아이들의 질문에 저희 부부는 이렇게 설명을 했습니다.

땡글 : 왜 사람들이 행진을 해?
아빠 : 대통령이 잘못을 해서 사람들이 물러나라고 하는 거야.
땡글 : 무슨 잘못을 했는데?
아빠 : 음... 네가 학교 숙제를 해야 되는데 안 하고 다른 친구가 대신해준 거야.
엄마 : 그런데 너는 학교에 가서는 다른 친구가 해줬다는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거야. 그건 나쁜 행동이지?
땡글 : 응.
방글 : 대통령도 숙제를 남이 해줬어?
아빠 : 숙제는 아니지만 자기가 할 일을 남한테 몰래 해달라고 시켰어.
엄마 : 할 일을 남한테 미루는 건 나쁜 거거든.
아빠 : 너네 반에도 반장이 있지?
땡글 : 아니!
아빠 : 아. 1학년은 반장이 없다고 했던가? 너네 반장이 무슨 역할을 하는 건지 알아?
방글 : 아니...
땡글 : 응. 친구들을 도와주고 선생님한테 인사하게 하고 줄도 서게 하고...
아빠 : 그렇지 반장은 질서를 지키고 남을 돕는 역할이지? (아이들: 끄덕끄덕) 그런데 만약에 '나 반장 친구니까 너 나한테 100원 줘. 안 주면 반장한테 이른다' 이렇게 말하면서 막 괴롭히는 친구가 있는 거야.
방글 : 아니 1만 원~
아빠 : 그래. 1만 원이라고 하자. 어떤 사람이 대통령 친구라고 하면서 힘없는 다른 친구들한테 돈 빼앗고 괴롭히고 그랬대. 그래서 사람들이 그걸 알고 화가 나서 대통령은 물러가라 하고 행진을 했대.

자녀 돌봄 휴가의 자율적 사용 권장이 아니라 부부가 필수적으로 나눠쓰는 제도로 만들어줄 대통령을 뽑기 위해 5월 9일에는 부부가 함께  쌍둥이 남매의 손을 잡고 선거를 하러 갈 생각입니다.

아이들은 엄마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아빠도 무척이나 좋아하거든요. 아이를 키우는 데는 엄마만이 아니라 부부의 힘, 그리고 온 나라의 힘이 필요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개인블로그(http://blog.naver.com/nyyii)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70점엄마, #자녀돌봄, #2017대선, #쌍둥이육아, #워킹맘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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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대선 기획] 100인의 편지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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