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시' 새 사령탑 지난 7월 14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스탬포드 브리지에서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첼시 FC의 새 사령탑을 맡은, 안토니오 콘테 감독이 첼시 유니폼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첼시' 새 사령탑 지난 2016년 7월 14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스탬포드 브리지에서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첼시 FC의 새 사령탑을 맡은, 안토니오 콘테 감독이 첼시 유니폼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연합뉴스/EPA


"나는 팀에 원하는 선수들을 요구했지만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첼시는 나의 팀이 아니다.
난 단순히 관리자일 뿐이다. 당신들이 원하는 선수를 사더라도 난 쓰지 않겠다. 그 선수들을 쓰고 싶으면 새로운 감독을 알아보라."

2007년 1월 12일(이하 한국시각), 4부 리그 위컴 원더러스와 벌인 칼링컵(현 EFL컵) 준결승 1차전을 1-1 무승부로 마친 주제 무리뉴 전 첼시 감독이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밝힌 심경이었다.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아래 로만)의 자본을 등에 업고 신흥 강호로 떠오른 첼시는 이 무렵 거액을 주고 영입한 안드레이 셰브첸코의 부진과 수비수 부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무리뉴는 선수 영입을 요청했지만, 기술단장 프랑크 아르네센(아래 아르네센)은 무리뉴의 요청을 거부했다. 아르네센은 첼시 이적 전, 토트넘 훗스퍼에서도 선수 영입 권한을 두고 전 토트넘 감독 자크 상티니와 마틴 욜과 잡음이 끊이지 않은 인물이었다.
    
보드진은 기량이 하락한 셰브첸코를 꾸준히 기용하길 원했고, 수비진 보강에 대해서는 되레 윌리엄 갈라스와 로베르트 후트를 이적시켰다. 두 사람의 첨예한 대립은 같은 해 9월, 무리뉴와 첼시가 상호 합의 하에 계약 해지를 하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첼시는 변하지 않았다

"내 선택이 아니었다. 믿을 만한 사람의 선택이었다. 나는 그를 전적으로 믿는다. 내가 모든 선수들을 알 순 없다. 함께 일하는 사람을 믿을 수밖에 없다."

2015-16시즌 5라운드, 에버튼 원정을 떠나 온 무리뉴에게 기자들이 파피 질로보지 영입 이유에 대해 묻자 그가 대답한 말이었다. 당시 무리뉴는 존 테리의 잠정적 대체자로 에버튼의 존 스톤스(현 맨시티)를 원했다. 첼시 보드진의 선택은 질로보지였다. 무리뉴는 첼시에서 손에 쥘 수 없는 영입 권한에 대해 달관한 듯 말했다. 첼시는 에버튼 원정에서 3-1로 패했고, 무리뉴는 또 다시 수렁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에버튼 원정 패배가 있기 한 달 전, 첼시는 무리뉴와 감독직 4년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 크리스마스를 한 주 앞둔 시기에 해임 통보를 받을 감독과 체결하기에는 너무 큰 규모의 계약이었다. 첼시 보드진도 무리뉴의 갑작스런 몰락을 예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두 시즌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2014-15시즌 말미, 무리뉴의 첼시는 붕괴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보드진은 직전 시즌 우승한 선수단을 과하게 신뢰했고, 프리 시즌 부터 무리뉴와 선수단 사이에는 미묘한 불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무리뉴는 균열과 부진의 원인을 알고 있었고, 보드진에게 해결책을 제시했다.

하지만 보드진은 무리뉴의 계획을 끝내 수용하지 않았다. 온전히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도 없었지만, 누구도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체가 흔들리자 책임자가 비난의 화살을 오롯이 받았다. 그렇게 무리뉴의 두 번째 첼시 감독직도 비극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콘테에게 드리운 '무리뉴 데자부'

"콘테는 보드진 중심의 이적 정책이 바뀌길 원한다. 더 많은 선수 영입 권한을 요구할 것이다. 이 문제가 해결돼야 재계약을 체결하겠다는 입장이다. 영입한 선수 가운데 그가 원한 선수는 은골로 캉테가 유일했다. 특별한 대체자 없이 1군 선수 3명을 팔아버린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가지고 있다."

지난 16일 영국 <타임즈> 맷 휴즈 기자의 입을 통해 나온 안토니오 콘테(이하 콘테) 첼시 감독의 발언은 무리뉴와 보드진 갈등의 데자뷰였다. 콘테는 첼시 이적 전부터 공공연하게 선수영입 권한 강화를 목소리 높여 말했다. 다만 직접적인 이적 권한 대신, 부임 전제 조건으로 당시 AS로마 기술단장이었던 왈테르 사바티니(아래 사바티니)의 영입을 원했다.

하지만 로만과 첼시 보드진은 콘테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았다. 콘테 부임 석 달 뒤, 사바티니는 거취를 결정하지 않은 채 AS로마 기술단장직을 내려놓았다. 첼시를 비롯해 AC밀란, 토트넘 훗스퍼 등이 사바티니 영입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사바티니는 여전히 무적 상태로 남아있다.

오래 전부터 첼시의 선수 영입 권한은 기술단장과 보드진에게 있었다. 최근에는 마리나 그라노브스카이아(아래 마리나) 디렉터와 기술단장 마이클 에메날로(아래 에메날로)가 영입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둘은 로만의 최측근이다.

마리나가 로만의 대리인 역할과 영입 협상 담당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실질적인 영입 선수 선정 권한은 에메날로 기술단장에게 집중된다. 평범한 선수생활을 마친 에메날로가 첼시의 기술이사가 되기까지는 전 첼시 감독 아브람 그랜트(아래 그랜트)와 에이전트 피니 자하비(아래 자하비)간의 친분이 주요했다.
 
과거 리오 퍼디난드와 세바스티안 베론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시킨 자하비는 에이전트가 축구계에 얼마나 막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보여준 선구자였다. 이스라엘의 유명 언론인이었던 그는 이스라엘 내에서 독보적인 인맥을 자랑했다. 자하비는 이스라엘 출신 기업가 알렉상드르 가이다막이 포츠머스 FC를 인수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맡았는데, 이 인연이 전 이스라엘 국가대표팀 감독 아브람 그랜트가 포츠머스 기술단장직을 맡게 된 배경이 되었다.

무엇보다 자하비가 프리미어 리그 역사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첼시 인수를 도운 것이었다. 자하비는 전 첼시 구단주 켄 베이츠와 푸틴의 '올리가르히 탄압' 정책을 피해 재산 세탁처를 찾던 로만을 연결해주었다. 자하비는 로만에게 파산 직전 상황에 놓여있던 첼시 인수를 권했다. 로만은 첼시 인수 과정 전권을 자하비에게 위임했고, 14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자하비는 로만의 최측근으로 남아 있다.

자하비와 로만의 인연이 맺어지자, 자연스럽게 그랜트가 첼시로 넘어올 수 있는 다리가 만들어졌다. 아르네센 기술단장의 입지를 줄이면서까지 그랜트를 첼시 디렉터로 영입한 것은 자하비와 로만의 친분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후 무리뉴가 물러나자, 그랜트는 뒤를 이어 첼시 감독직을 맡게 되었다. 당시 그랜트는 UEFA 지도자 라이센스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에메날로는 그랜트가 이스라엘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던 시절 그를 보좌하던 코치였다. 그랜트가 첼시 감독으로 부임한 직후, 에메날로는 스카우터로 첼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랜트가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후에도 그는 수석 스카우터로 승진해 첼시 생활을 이어갔고, 카를로 안첼로티의 수석 코치였던 레이 윌킨슨이 불분명한 이유로 해고된 뒤, 곧장 수석 코치 자리를 차지했다. 이후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감독이 첼시를 지휘하던 무렵, 지금의 기술단장 자리에 올랐다. 그렇게 에메날로는 그랜트를 대신해 로만과 첼시 선수단을 잇는 다리가 되었다.

의문점이 많은 보드진의 영입 행보

물론 에메날로가 로만과의 인맥만으로 첼시에서 살아남은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첼시는 비싼 이적료와 높은 연봉으로 선수를 끌어 모은다는 인상이 짙었다. 이런 불명예를 피하기 위해 첼시는 꾸준히 유소년 팀을 발전시키려 했다. 에메날로가 기술단장을 역임하는 동안 첼시 유스팀은 2014년부터 3년 연속 FA 유스컵(U-18팀) 우승을 거머쥐었고, 2015년과 2016년 UEFA 유스 리그(U-21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문제는 최근 진행된 1군 선수 영입이다. 에메날로와 보드진은 선수 영입에 차질이 생기자, 무리뉴의 구상에 없던 선수를 뒤늦게 영입했다. 콘테가 첼시로 온 이후에도 매한가지였다. 콘테가 원한 선수 영입이 협상에서 난항을 겪거나 아예 판매 의사가 없음을 밝히기도 했지만, 확고한 의사 없이 협상 테이블에 앉은 보드진의 문제도 좌시할 수는 없었다. 이들을 대신해서 영입한 선수들도 감독 차원의 영입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주어진 선수들로 선수단을 잘 꾸리는 것 역시 감독의 역량이다. 하지만 똑같은 금액을 투자해 감독의 의중에도 없는 선수를 굳이 영입하는 보드진의 태도는 단순히 영입 가능한 선수 선택을 넘어 모종의 관계에 발을 담근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게 했다.

실제로 무리뉴가 처음 첼시에 부임했을 때, 당시 기술단장 아르네센은 무리뉴가 영입을 요구한 마이카 리차즈, 다비드 비야, 다니 알베스 영입에 진전을 보이지 않았다. 이후 아르네센이 영입한 알렉스와 탈 벤 하임은 각각 에이전트 피엣 데 비세르(아래 비세르)와 피니 자하비의 고객(선수)이었다. 비세르는 자하비와 함께 로만의 첼시 인수를 자문한 인물이었다. 특히 기술단장 아르네센을 로만에게 추천해 첼시로 데려온 장본인이었다.

이번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첼시에 합류한 마르코스 알론소, 다비드 루이스 역시 이들 에이전트[팔리 라마다니(마르코스 알론소), 키아 주라브키안, 줄리아노 베르톨루치(다비드 루이스)]와 첼시 보드진의 친분이 없었다면 이루어지지 않을 영입이었다. 콘테가 제출한 영입 명단에 두 선수는 아예 없었거나 4, 5순위 선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저 콘테가 둘을 잘 활용하면서 문제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을 뿐이었다.

사라진 감독, 살아남은 단장

애석하게도 의중에도 없는 선수단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한 책임은 온전히 감독에게 돌아갔다. 무리뉴의 두 번째 첼시 감독 시절이 그랬다. 물론 무리뉴에게 어떠한 책임도 없는 것도 아니었다. 에바 카네이로 사태 이후 무리뉴는 첼시를 하나로 만들지 못했다. 무리뉴도 분열된 팀을 묶어내기 보다는, 스파이를 찾는 것에 급급한 발언을 일삼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선수단이 문제를 일으킨 것은 과부하가 걸린 선수단을 과신한 보드진의 무능이었다.

지난해 6월, 로만이 보드진 전원을 소집해 방만한 구단 운영을 꾸짖었다는 이야기가 돌긴 했지만, 보드진 가운데 누구도 영입 부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지 않았다. 로만은 여전히 에메날로를 비롯한 보드진을 신임하고 있다.

무리뉴 1기도 매한가지였다. 좋은 성적을 냈던 무리뉴는 아르네센 단장과의 불화로 팀을 떠났다. 아르네센은 2008년 금융위기에 따른 로만의 재산 문제, 첼시 긴축 재정과 그에 따른 첼시 직원 구조조정 이야기를 언론에 공개하면서 로만에게 낙인 찍혔다. 로만은 유망주 정책의 실패를 이유로 들어 2010년 아르네센을 해임했다. 하지만 로만의 사생활을 폭로하기 전까지 유소년 사업 부진이 그를 해고로 내몰진 않았다.

사실상 우승 거머쥔 첼시, UCL을 위해선 더 큰 팀이 필요하다

리그 종료까지 10경기가 남은 시점에서 첼시는 2위 토트넘 훗스퍼보다 승점 10점 앞선 채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변이 없는 한 무난하게 리그 우승을 차지할 것이 유력하다. 유벤투스에서 보낸 3년 동안도 콘테는 세리에A 왕좌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첫 시즌은 유벤투스 역사에 유일한 무패우승을 이룩했다. 같은 기간 동안 이탈리아컵 우승도 두 번 거머쥐었다.

유벤투스 시절 콘테에게 남은 유일한 아쉬움은 챔피언스 리그 성적이었다. 하지만 두 시즌에 불과하고, 한 차례는 그 해 유럽 챔피언에 오른 바이에른 뮌헨에게 꺾였다는 사실을 주지하면 큰 아쉬움도 아니었다. 또한 이탈리아 챔피언이 유럽 무대에서 큰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온전히 콘테의 능력 부족과는 거리가 있었다.

당시 유벤투스는 안드레아 피를로에게 빌드업 전반을 의존하는 팀이었다. 콘테가 지휘한 3년 동안 좋은 2선 자원 영입은 고사하고, 최전방 공격수 영입마저 콘테가 떠나갈 무렵에야 이루어졌다. 전술적 유연성을 갖추기 어려운 선수단 구성이었다. 콘테는 자신이 가진 최적의 카드로 유럽 대항전에 나섰지만, 다양한 전술을 사용하는 유수의 클럽을 상대로 모두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결국 이탈리아 대표팀으로 옮길 때까지 콘테는 자신의 전술적 지향점과 궤를 같이하는 선수들이 영입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표면적으로 콘테와 유벤투스가 상호 합의 하에 계약을 해지한 후 대표팀으로 적을 옮긴 듯 했지만, 콘테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못한 유벤투스 보드진과의 불화도 한 몫 했다.

콘테가 유벤투스 보드진에게 느꼈던 실망감은 첼시에 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첼시 선수단은 콘테의 의중과 무관한 변화의 바람을 맞았다. 다행히 콘테는 예상치 못한 바람에도 무난한 항해를 이어가고 있다. 문제는 다가올 미래다. 지금 첼시에 압도적인 상승세에는 리그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적잖게 영향을 미쳤다. 이번 시즌 우승과 함께 유럽 대항전에 다시 나서게 되는 첼시를 이끄는 것은 콘테에게 시험장이 될 것이다.

그런 콘테를 위해서 첼시 보드진은 지금과 같은 태도로 일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첼시는 오스카, 패트릭 뱀포드를 매각한 금액과 나이키와 체결한 스폰서십을 통해 총 1억 3천만 파운드(한화 약 1821억 원)를 확보했다. 해당 금액의 전부가 선수 영입을 위해 사용될 지는 미지수지만, 콘테 부임 이후 보낸 두 번의 이적시장과 유사한 행보는 첼시에게 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첼시, 독이 든 성배를 쏟을 때가 왔다

하지만 그 사이 보드진에는 어떤 변화도 없었다. 지난 시즌 무리뉴가 첼시를 떠나야 했던 이유는 직전 시즌 성적 부진과 아무런 연관성도 없었다. 무리뉴는 부임 후 두 시즌 만에 첼시에게 우승 트로피를 선사했다. 하지만 보드진은 임계점에 다다른 선수단을 방관했다. 그 일로 촉발된 일련의 사태를 책임지고 첼시를 떠난 것은 무리뉴였다.

한 가지 추정할 수 있는 사실은 콘테가 로만이 무리뉴에게 건 신임과 도박의 연장선이란 것이다. 감독으로서 보여주는 콘테의 모습은 전반적으로 이탈리아에서 넘어온 무리뉴라는 인상을 받게 한다. 그렇다면 문제가 발생할 지점 역시 유사할 것이다. 물론 콘테는 무리뉴에 비해 더 유연한 대화 방식을 가지고 있다. 다만 보드진이 어떤 변화의 움직임도 가지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장기 집권. 그동안 첼시가 다른 명문 클럽들과 극명한 대조를 보인 부분이었다. 콘테는 로만 인수 이후 첼시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과제를 무리뉴에게 넘겨 받았다. 하지만 지난 첼시 감독 가운데 장기 집권에 부적합한 나쁜 감독은 몇 없었다. 나쁜 구단주와 그를 따르는 보드진이 있었을 뿐. 최근 로만이 선수단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 줄었다곤 하지만, 에메날로와 마리나를 통해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 첼시가 감독과 선수 그리고 팬들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간섭의 손길이 닿고 있다.

콘테는 다시 영입 권한 확대를 요구했다. 보드진은 이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을 내지 않았다. 이 침묵에는 거절의 의미가 녹아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콘테 역시 무리뉴의 전철을 벗어나지 못할 수 있다. 지난 세월 동안 첼시에 트로피를 안겨 준 감독들의 비극적인 선례까지 떠올린다면 더 큰 확신을 가지게 된다. 리그 선두에 이름을 올린 첼시가 이듬해 혼란에 빠진 모습은 한 번으로 족할 것이다. 이제 독이 든 성배는 바닥에 내팽개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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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청춘스포츠 어마루 기자
첼시FC 무리뉴 콘테 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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