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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연세대학교 법학연구원은 3월 25일 '국제적 비교를 통한 법관인사제도의 모색 - 법관독립강화의 관점에서' 학술대회를 열어 법관의 독립성 문제를 논의했다.
 법원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연세대학교 법학연구원은 3월 25일 '국제적 비교를 통한 법관인사제도의 모색 - 법관독립강화의 관점에서' 학술대회를 열어 법관의 독립성 문제를 논의했다.
ⓒ 박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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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판사들도 '그 나물에 그 밥'인 대법원 구성이 달라져야 한다는 데에 공감하고 있었다.

25일 오후 법원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연세대학교 법학연구원이 공동개최한 '국제적 비교를 통한 법관인사제도의 모색' 학술대회에서 김영훈 서울고등법원 판사는 전국 판사들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71.6%가 대법관 제청절차 개선의 필요성에 공감했다고 발표했다. 2월 9~28일 이뤄진 이 조사에는 전체 법관(2016년 9월 기준, 정원외 법관 포함 2902명)의 17% 가량인 501명이 응답했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을 포함해 모두 14명이다. 그런데 현재 대법원 구성을 살펴보면, 박상옥 대법관을 제외하고는 전부 판사 출신에, 6명은 법원행정처 근무경력이 있다. 김영훈 판사는 또 "1970년 이후 임명된 현직 법관 출신 대법관 81명 가운데 21명이 법원행정처 차장 출신이며 역대(1~32대) 법원행정처 차장 가운데 23명이 대법관"이라고 했다. 나머지 법원행정처 차장 중에서도 4명이 헌법재판관이 됐다.

김 판사는 "법원행정처 차장이면 80% 이상 고위법관이 된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그는 "피라미드의 정점에 가까운 사람들은 능력과 무관하게 비슷한 출신‧경력‧가치관을 갖기 마련"이라며 법원행정처 출신 대법관들로 채워진 대법원의 획일화를 우려했다.

또 "기수와 서열에 다른 체계, 전보와 발탁,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재임용 등 인사제도로 법관 관료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며 "이 상황에서 대법원장의 대법관 임명제청권 행사는 법원 내 가장 강력한 승진기제로 작용, 사법부의 관료화와 서열화를 심화한다"고 했다. 김 판사는 "상명하복식 의사결정에 익숙한 법원행정처 출신으로 대법원을 구성하면 합의체기관으로서의 대법원 기능마저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 나물의 그 밥' 대법원 만드는 대법관 추천제

대법관 임명제청이 어떻게 이뤄지기에 문제일까. 신임 대법관을 정할 때 대법원장은 대법관후보자추천위원회(아래 후보자추천위) 자문을 받는다. 후보자추천위가 법원 안팎의 추천을 받아 적격여부를 심사한 뒤 3배수의 후보자를 천거하면 대법원장은 최종 후보를 낙점한다. 여기까지 보면, 대법관 추천은 다양한 의견 수렴을 거쳐 민주적으로 이뤄지는 모습이다.

실상은 다르다. 후보자추천위 구성부터 독립성과 다양성이 떨어진다. 위원 10명 가운데 과반수인 6명이 대법원장의 임명 또는 위촉을 받는 인물들이다. 이들 가운데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겨우 셋이다. 가장 최근 꾸려진 이인복 대법관 후임 후보자추천위를 봐도, 시민사회계 몫은 장명수 이화학당 이사장과 김자혜 소비자시민모임 회장, 박정훈 SBS공동대표이사뿐이었다. 2월 27일 퇴임한 이상훈 대법관 후임을 정할 때도 비슷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꾸려진 후보자추천위가 국민을 충분히 대변한다고 할 수 있을까. 김영훈 판사의 설문조사에 참가한 판사들 역시 "후보자추천위 구성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될 수 없는 구조"라고 지적한 배경이다.

추천과정도 부실하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수사 축소‧은폐 의혹에 싸였던 박상옥 대법관 임명과정이 대표사례다. 당시 후보자추천위가 박 대법관 등 후보자 셋을 정하는 데에 걸린 시간은 겨우 2시간이었다. 대법원이 1차로 걸러낸 자료에만 의존한 것으로 보이는 방식이다. 이 회의는 내용도 비공개며 겨우 3일 전에 소집된다. 김영훈 판사는 "적어도 퇴임 3개월 전부터는 충분한 토론과 사회적 공론화를 걸쳐 추천해야 한다"고 했다.

다른 발제자들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대법원장의 전권 아래 놓인 대법관 추천방식을 외국처럼 시민사회 의견수렴을 거치도록 바꿔야 한다는 얘기였다.

이종수 연세대 로스쿨교수는 독일 최고법원인 연방헌법재판소의 경우 전체 재판관 16명 가운데 8명은 연방참사원(상원), 8명은 연방의회(하원)가 선출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연방의회가 정한) 후보자는 정당적 배경을 갖고 있지 않으면 특정 정당에서 추천을 안 하겠지만, 너무 정치색이 강하면 배척된다"며 "임기도 12년이고 단임이어서 자신을 지명한 정당과 연결을 약화시킨다"고 했다.

같은 학교 강용승 교수는 "미국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상원 동의를 받아야 해서 대법관들의 색깔이 뚜렷하다"고 했다. 다만 종신제인 이들은 자신을 지명한 대통령과 다른 의견도 거침없이 낸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닐 고서치 대법관 후보만 해도 지난 21일 청문회에서 "헌법은 자유로운 종교와 법의 평등한 지배를 보장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행정명령을 비판했다.

"법원 모든 문제는 관료화에서... 대법원장 권한 분산해야"

법관의 독립성은 국민들의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하지만 판사들조차 '윗선 눈치보기'에서 자유롭지 않은 분위기다.

김영훈 판사는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진행하고선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응답자의 87%가 '대법원장에게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하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47%는 상급심에 반하는 판결을 해도 불이익을 받을 것 같다고 답했다. 김 판사는 "재판하는 조직은 관료주의와 어울릴 수 없는데 우리 법원의 모든 문제는 법관의 관료화에서 비롯됐다"며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수 교수는 일본의 엘리트판사 출신 세기 히로시 메이지대 로스쿨 교수가 쓴 <절망의 재판소>를 언급하며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당신 앞에 놓인 일본의 사법이라는 무대는 피라미드형 커리어시스템과 그 노예이자 거기에 중독된 재판관들에 의해 완전히 오염됐다."

그는 "사법부는 독립했을지 몰라도 개별 법관들은 독립적이지 못했다"며 "정치권력으로부터도 독립하지 못한 것이 그간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독일은 법원이 사법부 독립을 주도하는 게 아니라 행정부와 의회, 법관 대표기구 등이 협력한다"며 한국도 법관의 독립성과 밀접한 법관인사에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해야 한다고 했다.


태그:#사법개혁, #대법원,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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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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