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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묘 주변에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다니엘 영묘
 다니엘 영묘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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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의 문화유산을 보고 난 다음 행선지는 다니엘 영묘다. 다니엘 영묘는 수쉬(Shush) 시내 쪽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러므로 걸어가는 게 좋다. 중간에 시장이 있어, 이곳도 역시 사람 사는 곳임을 알 수 있다. 다니엘 영묘는 도시 한 가운데 있어 드러나지 않지만 성지다. 다니엘 영묘 뒤에 있는 비둘기 집이 오히려 이정표 구실을 한다.

4각형으로 이루어진 담의 문을 들어가면 이슬람 마스지드 형식으로 치장을 한 건물이 나타난다. ㄷ자형의 단층 건물이고, 미나레트 형식의 탑이 두 개 솟은 가운데 방에 다니엘 영묘가 있다. 이곳이 성지이기 때문에 여성들은 반드시 차도르를 착용해야 한다. 이란에 와서 처음 맞이하는 상황이다. 여자들이 차도르를 착용하고 나오는데 보니, 꽃무늬다, 천도 아주 얇고 가벼워 머리에서 발까지 몸을 가린다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차도르를 걸친 여인들
 차도르를 걸친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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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남녀 다른 길로 다니엘 영묘로 들어간다. 이곳 역시 신도들이 몸을 깨끗이 할 수 있도록 물과 수도가 있다. 안으로 들어가기 전 우리 모두는 긴장한다. 안에서 조용히 해야 한다.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 기도하는 사람 앞으로 가면 안 된다. 우리가 들은 주의사항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비교적 한산하다.

진지하게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

다니엘 영묘 외부
 다니엘 영묘 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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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유대교 성지여서 그런 모양이다. 또 하나는 다니엘 영묘라고 주장하는 도시가 여러 곳이기 때문이다. 다니엘 영묘가 자기네 도시에 있다고 주장하는 곳이 모두 여덟이다. 이란에 둘, 이라크에 넷, 터키에 하나, 우즈베키스탄에 하나다. 이란에는 수사 외에 말라 아미르(Mala Amir)가 있다. 이라크에는 바빌론, 키르쿠크, 모술, 묵다디야(Muqdadiyah)가 있다. 터키에는 타르수스(Tarsus), 우즈베키스탄에는 사마르칸트가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가까운 다니엘 영묘를 진짜라고 생각하고 참배할 것이다. 또 다니엘 영묘가 있다고 주장하는 곳이 모두 이슬람 지역이어서 오히려 무슬림과 관광객이 많이 찾고 있다. 우리도 수사의 문화유적을 찾아왔다가 들른 것이지, 다니엘 영묘를 보기 위해 온 것은 아니다. 성인의 영묘는 일반적으로 가마 또는 집 형태로 만들어졌다. 집으로 말하면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짜리다.

다니엘 영묘 내부
 다니엘 영묘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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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은 창문 형식으로 창살을 만들었고, 그 안에 관이 있는 형태다. 주두 위로 박공 형태의 천 장식을 둘렀다. 식물 문양과 별 문양이 교차되고 있으며, 별 속에 아랍어로 글씨를 써 놓았다. 지붕은 꽃과 식물로 장식한 천을 둘렀고, 사방에는 꽃병을 달았다. 꽃병 위에는 등이 달리거나 꽃이 꽂혀 있다. 영묘의 지붕 한 가운데는 꽃봉오리 형태의 황금장식이 있다. 전체적으로 화려하고 숭고한 느낌이다.

영묘를 감싸고 있는 방은 거울로 장식되어 있다. 이슬람에서는 성인의 영묘를 유리로 장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영묘 안은 화려하고 밝아 보인다. 궁전과 영묘가 유리방으로 장식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번 여행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영묘는 들어오는 곳과 나가는 곳이 달랐다. 그것은 동선이 영묘를 한 바퀴 돌아 나가도록 짜여 있기 때문이다.

마스지드 앞에서의 체육 행사
 마스지드 앞에서의 체육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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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 영묘 주변에서 기도를 드린다. 굉장히 진지한 표정이다. 또 그들이 외는 주문도 들린다. 우리는 상당히 조심스럽게 참배를 했는데, 여성들은 영묘 안에서 이곳을 찾은 사람들과 대화도 나누고 사진도 찍었다고 한다. 영묘나 이슬람 사원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엄숙하고 진지한 장소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중에 우리는 야즈드의 자메 마스지드 앞에서 체육행사가 이루어지는 모습을 볼 수도 있었다.

다니엘은 어떤 사람인가?

사자 우리 속의 다니엘: 브리통 리비에르의 그림
 사자 우리 속의 다니엘: 브리통 리비에르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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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은 성경 다니엘서에 나오는 선지자다. 그는 유대인으로 바빌론에 살았고, 하느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은 소년이었다.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와 성전을 파괴하고 모든 물건과 유대인들을 바빌론으로 데리고 갔다. 이때 다니엘은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느부갓네살왕은 유대의 왕과 귀족 자제 중 잘 생기고 영리하고 사리가 밝은 젊은이를 뽑아 바빌론 말과 글을 가르치게 했다. 이 때 뽑힌 젊은이가 다니엘, 하나니야, 미사엘, 아자리야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왕의 꿈을 해석해 주어 신임을 받았고, 그의 아들 벨사살왕(Belshazzar)에게도 불려간다. 벨사살왕은 다니엘에게 왕궁 벽의 판에 붙어있는 글자를 읽고 뜻을 풀어볼 것을 명령한다.

"그대는 하느님의 명을 받은 사람으로서 머리가 명석하여 지혜가 대단하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재사들과 마술사들을 데려다가 저기 저 글을 읽고 뜻을 풀이하라고 했지만, 아무도 그 말뜻을 풀지 못했다. 내가 들으니, 그대는 무엇이나 다 잘 알아내고 어떤 수수께끼든지 풀 수 있다던데 이제 그대는 저 글을 읽고 뜻을 풀이하여 보아라." (다니엘서 5장 14-16절)

왕궁 벽의 글자를 바라보는 벨사살왕: 렘브란트의 그림
 왕궁 벽의 글자를 바라보는 벨사살왕: 렘브란트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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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은 벨사살왕이 그 동안 다스린 정치의 잘못을 하나하나 지적한다. 첫째 겸손하지 못했다. 둘째 우상을 숭배했다. 셋째 하느님을 공경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하느님이 벌을 내렸다. 그 내용이 '므네 므네 드켈 브라신'이라는 글자로 적혀 있었던 것이다.

"하느님께서 왕의 나라 햇수를 세어보시고 마감하셨다. 왕을 저울에 달아보시니 무게가 모자랐다. 왕의 나라를 메디아와 페르시아에게 갈라주신다." (다니엘서 5장 26-28절)

이렇게 해서 바빌론은 멸망하고 메디아와 페르시아가 이 지역을 통치하게 된다. 다니엘은 메디아를 거쳐 페르시아제국 통치기까지 정승에 임명되어 이름을 떨친다. 메디아 왕 아스티야게스(Astyages)가 죽고, 그의 외손자인 키루스(고레스)가 페르시아의 왕이 되었다. 키루스는 다니엘을 매우 가까이했고, 다니엘은 하느님의 음성을 통해 페르시아의 미래를 듣는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 내용을 비밀에 붙인다.

<다니엘서> 뒤의 글을 보면 페르시아가 앞으로 4대까지는 번성하다가 서서히 기울어 멸망한다는 내용이다. 네 번째 임금시대는 부유해지고 번창할 것이다. 그는 그 힘을 이용 그리스를 칠 것이다. 그렇지만 그리스에도 용감한 왕이 나타나 큰 나라를 이뤄 다스릴 것이다. 그러다가 이 신흥국가도 무너져 천하는 네 나라로 갈라지고 권력은 남의 손에 넘어갈 것이다. 그의 통치가 끝난 다음 나라는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이곳이 다니엘 영묘라고 주장한 사람은?

다니엘 영묘 지도
 다니엘 영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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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본 것처럼 <다니엘서>에는 다니엘이 죽은 곳이 나와 있지 않다. 수사에 묻혔다고 하는 것은 유대인들과 아랍인 사이에 내려오는 전승이다. 다니엘 영묘에 대해 최초로 언급한 사람은 에스파냐의 투델라에 살던 유대인 여행가 벤야민(Benjamin of Tudela)이다. 그는 12세기 중반 유럽과 아시아 지역을 여행했고, 수많은 유대인 회당 중 한 곳에서 다니엘 영묘라는 표식을 봤다고 적었다. 그러나 그곳이 수사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무슬림의 전승에 다니엘이 수사에 묻혔다는 기록이 있다. 9세기 아라비아의 역사가 알 발라두리(Al-Baladhuri)가 <여러 나라의 정복에 관한 책>에서 그 내용을 밝혔다. 638년 선지자 무하마드의 동료인 아부 무사 알 아사리(Abu Musa al-Ash'ari)가 파르스 지역을 정복하러 수사에 왔고, 다니엘의 관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1900년대 초의 다니엘 영묘
 1900년대 초의 다니엘 영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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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바빌론에 있었는데, 한발로 인해 어려움을 겪자 비를 불러오기 위해 수사로 옮겨왔다고 한다. 그것은 다니엘의 미래예측 능력과 선지자의 시신이 갖는 영험성 때문으로 보인다. 아부 무사는 그 사실을 우마르(Umar) 칼리프에게 보고했고, 관이 이곳 수사에 묻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전승은 10세기 아라비아의 지리학자이자 작가인 이븐 하갈(Ibn Hawqal)에 전해져 더 널리 퍼지게 되었다.

현재 다니엘 영묘는 1870년 시아파 학자인 셰이크 자파리(Sheikh Jafar Shooshtari)에 의해 수리되고 리노베이션 되었다. 후에는 이슬람 학자인 하산 메마르(Hassan Memar)와 그의 아들에 의해 유지 보수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다니엘 영묘는 유대인보다는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우리는 이제 다니엘 영묘를 나온다. 다음 행선지는 초가잔빌의 지구라트다. 점심을 지구라트 근방 마을에 예약해 놓았다.


태그:#수사, #다니엘 영묘, #바빌론, #벨사살왕, #무슬림 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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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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