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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으로 하방하는 귀농인구가 급증, 폭증하고 있다.  2011년에 1만 가구, 2013년에는 3만 가구, 2014년에는 4만 가구(8만 855명)를 돌파했다. 2001년 이후 누적치는 13만 4천여 가구에 이른다.사회가 몰락하고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개인이 자꾸 파편화, 노예화되는 현대 자본주의국가의 말기적 엑소더스의 전조로 여겨진다.

무엇보다 현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온갖 적폐와 구조악이 농축된 도시에서는 인간의 존엄과 자존감을 지키며 먹고 사는 일은 힘겨운 고행이나 고역에 가깝다. 그래서 도시민들은 여생만큼은 다른 인생, 행복한 인생, 주체적인 제2의 삶을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다만 가진 자, 힘 센 자, 잘 난 자 등 일부 소수 특권층은 제외하고 말이다.

하지만 귀농은 누구나 선택을 할 수 있으되, 아무한테나 활로나 대안이 될 수 없다. 국가와 도시의 구조악을 충분히 대체할만한 무오류의 절대선도 아니다. 선택의 옯고 그름, 결과의 성패가 불확실하다. 사실 농부로서의 생업도, 마을시민의 생활도 원인이나 현상만 좀 다를 뿐 어렵고 고단한 본질과 속성은 도시민의 그것과 크게 다를 게 없다.

그럼에도 도시에서 벗어나 농촌과 지역으로 하방하는 귀농은 선(善)으로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귀농인은 사람이 없는 농촌과 지역사회의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 있다. 신뢰, 협동, 네트워크 같은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발전소가 될 수 있다. 이미 '혁신적 연결망을 구축하는 인적 자본'으로 대접받는 사례도 지역마다 속출하고 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생기는 도시의 문제, 사람이 너무 없어 생기는 농촌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 국가의 구조악을 치유할 결정적 열쇠이자 고리이다. 

‘먹고 사는 생활기술’을 현장에서 몸으로 배우는 ‘제주 한달살이마을학교’
▲ 제주 한달살이 마을학교 ‘먹고 사는 생활기술’을 현장에서 몸으로 배우는 ‘제주 한달살이마을학교’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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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의 패러다임, 운동에서 생활로

무엇보다 용기있는 선각자들은 지난 20년 넘게 생태적 농부나 자립적 '마을시민(Commune Citizen)'을 소망하며 귀농을 결행했다. 하지만 다소 낭만적이고 낙관적인 '귀농운동'의 가치관과 방법론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만으로 '마을에서 잘 생활하기에' 충분치 않다는 눈치를 채기 시작했다. '마을에서 먹고 살 수 있을지', '마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앞날에 대한 불안감과 위기의식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건, 이제 귀농의 가치관과 방법론을 보다 합리적이고 실질적으로 전환해야 할 적기가 마침내 도래했다는 시그널이 아닌가. '운동에서 생활'로 귀농의 패러다임과 주요동력을 서둘러 전환해야 한다는 충고나 경고는 아닌가. 여기서 '농민생활', '농업경제', '농촌사회', 그리고 운동 또는 사업 주체 등의 측면과 관점에서 어떻게 '귀농'의 자세와 태도가 변해야 하는지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이른바 '귀농패러다임 전환의 10대 의제'이다.

하나, 생태귀농에서 '생활귀농'으로 전환해야 한다. 귀농인은 흔히 순정한 유기농부로서 생태적 생업과 최소한의 인간적 기초생활을 꿈꾼다. 그런데 우리 농가의 연간 평균 농업소득은 1천만원에 불과하다. 자기노동력, 인건비는 빼지도 않은 수치다. 영세한 귀농인들의 초기농사는 그 수준도 안 될 것이다. 기초생활 보장은 커녕 농사를 지을수록 빚만 쌓이는 구조다.

'먹고 살 수 있는' 기본소득이 보장되는 '생활귀농'이라야 지속가능한 생태귀농도 가능하다. 그러자면 '마을과 지역사회에서 능히 먹고 사는 생활기술'로 단련하고 체화시키는 '지역사회 생활기술 직업전문학교', 귀농인과 원주민이 공유•협업하는 '지역공유 유휴시설 사회적자산은행' 등 의 실용적인 기본생활 지원정책이 선행되어야 한다.

해직노동자들의 귀농교육을 시행하는 ‘거창 귀농학교’
▲ 거창 귀농학교 해직노동자들의 귀농교육을 시행하는 ‘거창 귀농학교’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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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가 아닌 사회적 '마을시민(Commune Citizen)'을

둘, 농업귀농에서 '농촌귀농'으로 발전해야 한다. 농촌에는 농부(Farmer) 외에 다양한 일터와 일자리에 종사하고 복무하는 농사짓지 않는 이른바 '마을시민(Commune Citizen)'들이 필요하다. 농부들만 모여 농사 일만 하는 곳은 농장으로 오인될 우려가 크다. 농부들과 함께 다채로운 마을시민들이 한데 어울려 살아야 비로소 '농촌마을'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귀농형 일자리 구인․구직 지원센터', '귀농형 마을기업 창업 지원센터', '귀농인.농민 공동생산기반 시설', '귀농인․농민 공동경영 마을기업' 등을 지역 곳곳에 세워야 한다.

셋, 생계귀농에서 '복지귀농'으로 심화되어야 한다. 귀농인의 기초생활․생계는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만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돈 버는 농업'이라는 농업경제학 일방의 관점에서 어서 벗어나야 한다. 대신 '사람 사는 농촌'이라는 농촌사회학, 사회복지학으로 농정의 근본기조부터 바꾸어야 한다. 농민 또는 농촌주민 기본소득제, 유럽식 농가소득보전 직불제, 마을공유농지․마을양로원․마을공동식당․마을공공임대주택․마을에너지발전소 등 마을단위 사회안전망, 마을농지 공유화를 위한 농지신탁제, 마을공유지 등이 실현되어야 한다.

넷, 마을귀농에서 '지역귀농'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귀농인이 작은 마을 안에만 갇혀서는 적정한 규모의 경제사업도, 유기적인 지역사회활동도 영위할 수 없다. 자칫 지역공동체에서 고립되거나 소외되거나 표류하거나 낙오할 위험이 있다. 마을 안에서 마을 밖의 지역으로 경제사업 규모와 사회활동 범위를 확대․확장해야 한다. '지역단위 공동체사업 협동경영체', '유기농 로컬푸드 지역농민시장', '지역화폐 발행 지역농민은행' 등을 조직하는 데 도시의 경험과 역량을 보유한 귀농인이 앞장서야 한다.

다섯, 경제귀농에서 '문화귀농'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진정한 귀농인이라면, 정상적인 귀농인이라면 돈을 벌기 위해, 출세하기위해 귀농하는 게 아닐 것이다. '억대농부'가 되려는 경제적, 세속적 욕심이 아니라 상실했던 '사람사는 삶'의 문화적 그리움이 핵심 동인일 것이다. 그러자면 농촌을 상업적 관광지나 놀이터처럼 훼손하는 농촌관광사업부터 경계해야 한다. 관광농업이 아닌, 휴양과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문화농업으로 정상화되어야 한다. 독일에는 상업적인 농촌관광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독일 농부는 국민의 별장지기, 국토의 정원사로 불린다. 지역 역사․문화․경관부터 보전하하고 전통 생활문화예술의 공동체 문화부터 계승해야 한다. 

한달반 합숙을 하며 귀농생활의 기술을 공부하는 ‘순창 농촌생활학교’
▲ 순창 농촌생활학교 한달반 합숙을 하며 귀농생활의 기술을 공부하는 ‘순창 농촌생활학교’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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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경제'와 '농촌사회'는 협동과 연대로, '운동주체'는 사업주체로 

여섯, 단독귀농에서 '공동귀농'으로 협동해야 한다. 개별적 귀농보다는 뜻과 목적을 공감․공유하는 공동․집단귀농이 합리적이고 효과적이다. 마을공동체사업, 지역공동체활동을 벌일 때 서로 협동해서 체계적인 사업조직을 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은퇴노동자 공동귀농 협동조합',  '귀농인․소농 중심 6차농업 생산자협동조합', '에너지자립 생태․생활공동체마을', '귀농인․소농 중심 6차생산자협동조합(Gemeinschaft)' 등이 실천모델로 유망하다.

일곱, 독립귀농에서 '연대귀농'으로 진보해야 한다. 귀농인이 혼자 '좋은 농사'를 짓기는 어렵다. '자연인처럼' 내 멋대로 살면 자유롭기는 할 것이나 자칫 지역사회에서 잊혀지거나 사라질 위험이 있다. '사회적 인간'이려면 마을주민, 지역사회는 물론, 도시민, 소비자들과 지속적․유기적으로 교류하고 거래해야 한다. '농업회의소 중심 자생적 지역학습조직', '농민․노동자, 농민․도시민 상생기금', '도시민(도시농업인) 직거래 네트워크' 등을 이웃과 더불어 공조, 협업할 수 있다.

여덟, 개인귀농에서 '사회귀농'으로 진화해야. 농촌에서도 개인주의자니 이기주의자는 불편한 존재로 환영받지 못한다. 공동체의 갈등과 분쟁의 원인으로 낙인 찍힌다. 마을공동체의 이웃, 지역사회의 타인을 이타적으로 배려하는 공익적․공공적 시민의식과 선도적 실천역량부터 갖추어야 한다. '마을교육공동체, 사회적협동조합 등 지역공동체 운동', '로컬푸드 유통, 토종종자 보전 등 풀뿌리 순환자치경제네트워크 구축', 평화통일농업, 생태농부학교 등 우주적 각성과 수행운동 등에 동참해야 한다.

아홉, 관치귀농에서 '자치귀농'으로 자립해야 한다. 오늘날 정부의 귀농지원정책은 진정성이나 실효성이 기대와 필요에 미치지 못한다. '관'의 입장에서는 농정예산의 한계를 변명할 것이나, 근본적으로 농정철학의 부재, 농정정상화의 의지 결여가 고질적 원인이라는 판단이다. 결국 귀농인끼리 자조와 자립을 통한 자치와 자생이 최선의 자구책일 수 있다, '귀농인 생활자치 생태공동체마을' 모델, '귀농형 마을기업(사회적경제)' 모델, 그리고 '귀농농가 적정 가계경영' 모델을 스스로, 함께 개발해 공유하고 전파해야 한다.

열, 운동귀농에서 '사업귀농'으로 전향해야 한다. 기존의 민간 귀농운동 지원조직은 농업, 마을공동체, 사회적경제 등 귀농사업과 농가경영, 교육․문화, 생활복지 등 귀농생활을 지원하는 전문조직수준의 위상과 기능으로 거듭 나야 한다. 귀농운동본부의 자생․자립 사업구조 구축, 농업, 농촌형 사회적경제 등 '귀농사업지원센터' 운영, 가계경영, 자녀교육 등 '귀농생활지원센터' 운영 등을 통해 귀농운동에서 '귀농생활'로 귀농의 가치관과 방법론을 대전환하는 공공의 역할, 사회적 책무를 떠맡아야 한다.

횡성 여성농업인센터의 여성농업인 인문학특강 '농촌에서 삶짓기'
▲ 횡성 여성농업인센터 횡성 여성농업인센터의 여성농업인 인문학특강 '농촌에서 삶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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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농촌에서 사는 것'이 귀농의 본질

이병철 전 귀농운동본부 대표는 <나는 늙은 농부에 미치지 못하네>에서 이렇게 귀농의 의미를 풀이했다.

"귀농이란 단순한 직업의 전환이 아니라 삶의 전환이라는 것이지요. 뿌리뽑힌 삶에서 뿌리내리는 삶으로, 자연을 거스르는 삶에서 자연과 조화로운 상생 순환의 삶으로,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삶에서 생산적이고 살리는 삶으로, 의존적인 삶에서 자립적인 삶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또 "그런 점에서 귀농은 귀본(歸本)이요, 귀일(歸一)입니다. 농촌, 땅, 자연 그것은 생명붙이들이 마땅히 머물러야 할 근본자리, 곧 생명의 자리이기 때문"이라고 귀농의 본질을 강조했다. 이제 귀농운동은 단순히 농촌으로 내려가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저 농사를 짓는 좁은 의미로 풀이하는 것도 부적절하다. 정직한 농(農)적 문화에 기반한 자연친화적 생태적 삶, 근본으로 귀의하는 것을 의미하고 실천한 행위라야 한다. 새로운 귀농운동과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그동안 귀농은 자연친화적인 농업을 중심으로 자립적인 삶을 살면서 튼튼하게 뿌리내리는 개인적인 삶의 결단과 의지가 강조된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조금 모자라다. ' 개인적 단독귀농에서 마을귀농, 지역귀농으로'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개인적인 귀농이 그저 '농사 짓는 일'에 국한된다면 마을귀농, 지역귀농은 '농촌에서 사는 것'을 의미한다. 순정한 농부로 생태적인 농사 짓는 일은 물론, 지역의 사람들과 어우러지며 마을살이, 지역살이를 하는 모든 행위와 활동이 포함된다.

이렇게 귀농인들이 마을귀농, 지역귀농을 결행하려면 '농촌에서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농촌에서 먹고 살려면' 농민의 기본소득이 보장되어야 한다. 농민 기본소득제가 시행되어야 한다. 이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수호하며, 농민이 농촌을 떠나지 않고 생활할 수 있도록 국가에서 소득을 보전해주는 제도를 말한다. 소농, 영세농이 아무리 농사를 열심히 지어도 농업소득만으로 먹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귀농패러다임 전환을 논의하는 전국귀농운동본부의 귀농정책연구소
▲ 귀농운동본부 귀농패러다임 전환을 논의하는 전국귀농운동본부의 귀농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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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사는 생활기술, 농민 기본소득으로 '사회적 마을시민'을

기본소득제 못지 않게 '먹고 사는 지역생활기술'도 절실하다. 단기적으로는 물고기 배급도 요긴하지만 중장기적으로, 근본적으로 '농촌에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대다수 귀농인들은 '지역에서 먹고 사는 생활기술'을 배운 적이 없다. 그동안 배운 것은 학교에서 '시험을 잘 보는 기술과 친구를 이기고 나만 살아남는 기술'만 집중해서 배웠을 뿐이다. 아니면 '취직을 잘 하는 기술이나 자본의 노예로 사는 기술'만 열심히 익혔을 뿐이다.

귀농을 지원하는 정책과 제도 이전에 사회적 자본과 사회안전망이 먼저 구축되어야 한다. 농촌공동체의 복지체계부터 갖춰야 한다. 농업경제학자들의 정책은 일부 대농이나 부농을 위한 정책들이다. 대다수 소농, 가족농에게는 농촌사회학자, 사회복지학자들에 의해서 생산된 정책이라야 유효할 것이다.

무엇보다 농촌복지는 마을공동체에 뿌리와 기반을 두고 있어야 한다. 정부와 행정에서 기계적으로 시혜하는 지원제도만 쳐다보지 말고 마을공동체의 구성원, 이웃들이 서로 보살피고 챙길 수 있어야 한다. 가령 영광 여민동락공동체의 귀농인들처럼 농촌 마을공동체사업(Community Business)를 통해 일자리와 소득을 늘리는 생산적 농촌복지의 수행주체가 될 수 있다.

그래야 마을학교와 마을학원을 세우고 꾸리는 '교육적 마을시민', 마을생활원과 마을문화관을 관리하고 경영하는 '문화적 마을시민', 마을발전소와 마을연구소에서 연구하고 개발하는 '생태적 마을시민' 등 이른바 '사회적 마을시민'들이 안심하고 마을공동체와 지역사회공동체로 내려와 예측가능하고 지속가능하게 귀농생활을 누릴 수 있다. 마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마을에서 먹고 사는 방법’을 주로 공부하는 ‘마을학교 초리’
▲ 마을학교 초리 ‘마을에서 먹고 사는 방법’을 주로 공부하는 ‘마을학교 초리’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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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마을학개론(마을에서 먹고 사는 법) : 귀농을 하거나 자발적 하방을 해서 마을에서 먹고 살려면,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마을이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마을, 공동체, 마을시민. 마을기업, 대안마을, 대안농정, 그리고 대안사회를 열심히 공부해서 체화해야 한다. 그러면 마을에서 사람답게 먹고 살 수 있다.



태그:#마을학개론, #마을시민, #귀농, #생활귀농, #생태귀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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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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