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팔마탑에서 본 연자루의 모습. 다리 전체에 노란색 테이프를 감아놓은 것을 볼 수 있다.
▲ 팔마탑에서 본 연자루 팔마탑에서 본 연자루의 모습. 다리 전체에 노란색 테이프를 감아놓은 것을 볼 수 있다.
ⓒ 배주연

관련사진보기


순천시민들이 즐겨 찾는 죽도봉 공원 주차장 인근에는 팔마탑과 마주한 누각 한 채가 있다. 이름은 연자루(燕子樓).

연자루의 정확한 건립시기는 알 수 없는데, 승평부사로 부임한 손억(1214~1259)이 이곳에서 호호라는 관기를 사랑했다는 고려시대 고사로 보아 고려시대일 것으로 추정한다. 본디 순천부의 남쪽 옥천 위인, 현재의 남문다리 옆에 위치했으며, 2층 다락 형태로 그 아래엔 홍교처럼 아름다운 다리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1597년(선조30) 정유재란 때 화재로 다리만 남아 있다가, 1619년(광해군11)에 승평부사로 부임한 강복성이 중건했다. 하지만 1620년 대홍수로 연자루와 다리가 모두 유실되어, 1633년(인조11)에 다시 짓는 등 파란만장한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런데 1919년 3.1운동 때 상사면 출신의 박항래 의사가 이 연자루 위에서 독립만세운동을 벌인 후, 일제가 시가지를 정비한다는 빌미로 1930년에 철거하여 또다시 기록물에서만 존재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후 1975년부터 순천시가 죽도봉 개발 계획을 세우고, 본격적인 환경미화조성사업을 벌여 공원화 작업을 하던 차에, 지역 출신 재일동포인 김계선의 기부로 1978년 8월에 현재의 위치인 죽도봉 공원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입구에서 바라본 연자루의 모습. 다리 전체를 노란색 테이프로 감아두었다.
▲ 연자루 전경 입구에서 바라본 연자루의 모습. 다리 전체를 노란색 테이프로 감아두었다.
ⓒ 배주연

관련사진보기


참고로 김계선의 기탁으로 연자루 건너편 팔마탑이 1975년 2월에, 죽도봉 정상의 강남정이 1981년 10월에 건립될 수 있었다. 연자루로 향하는 입구 좌측에 김계선을 위한 송덕비가 있다.

1977년 4월 20일 작성된 이 비문에는 "팔마탑은 청백리의 표징이요. 연자루는 이 고장 사적이더니 일제 때 헐려 버린 것을 다시 복원하게 되다. 내 가산을 아끼지 않으시고 나를 낳아준 고장을 위해 바치려는 정성이 갸륵하사 여기 시민의 뜻을 모아 그 덕을 기리어 비를 세우시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손억이 승평을 떠나면서 호호와 헤어지고,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이곳을 찾았으나, 그 곱던 여인이 어느새 백발 노인이 되었다는 애달픈 러브스토리을 간직한 곳. 연자루는 서거정(1420~1488)을 포함한 문장가들의 시 속에 곧잘 등장하곤 했다.

그런데 이 남녀간의 사랑에 박항래 의사의 나라 사랑과 김계선의 고향 사랑까지 더해졌으니, 가히 삼색 빛깔 사랑의 장소라 말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순천시는 '순천 자랑 100선'이라 하여 연자루를 올렸고, 100선에 각 한 명씩 홍보도우미를 구하는 공고를 2008년에 낸 바 있다.

그리고 작년 8월 12일부터 14일까지 열린 순천문화읍성 달빛야행 축제 때에 옥천서원에서는 연극 <연자루에 피어난 사랑이야기>를 공연하기도 했다. 즉, 연자루는 순천시의 자랑이자 상징적인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삼색 사랑이 모두 싹텄던 연자루의 현재 모습은 어떠한가? 정면에서 보면 2층 누각의 가운데에 균열이 심하게 가서 벌어진 상태라 언제 무너질까 위태롭다. 그런데 이 상태로 몇 년째 보수도 없이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시에서 관리 차원에서 한 행동은 고작 테이프 감기가 전부일 뿐이다. "안전선 출입금지 순천시 재난안전대책본부장"이라 적힌 노란색 테이프로 누각의 겉을 휭 둘러치고, 이 사이에 "위험 접근금지"라 적힌, 코팅된 흰색 종이를 부착시켰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안전제일"이라 적힌 빨간색 사선이 있는 흰색 테이프로 감아두고.

연자루 2층 누각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모습
▲ 연자루의 입구 연자루 2층 누각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모습
ⓒ 배주연

관련사진보기


연자루 인근에 파란색 안내판이 있는데, 거기에는 누각의 건립에 대한 설명만 있을 뿐, 이 누각을 관리하는 곳이 어디인지는 적혀 있지 않다. 순천 자랑 100선 중 한 곳임은 밝혔지만. 게다가 누각으로 향하는 돌계단 입구에 위험을 알리는 경고판조차 없다.

그래서 처음 방문한 시민들은 멀리에서 지붕과 윗부분을 보고 구경하러 왔다가, 붕괴 위험 직전의 누각 실체에 "이게 뭐야?"라고 짜증내며 곧바로 내려가기 일쑤이다. 하지만 관리하는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니 민원조차 낼 수 없다.  

여기에서 독자에게 질문을 하나 던진다. 연자루는 문화재일까? 공원 시설물일까? 연자루가 파란만장한 준공의 과거사에서도 불구하고 대접을 받으려면 문화재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그저 공원 시설물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고려시대산' 빈티지가 아닌, '1978년산' 새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관광 순천"이라는 시의 웹사이트에서는 문화재로 소개되어 있다. 종목은 '유교유적'으로 시대는 현대. 이 사이트에서 소개된 연자루 정보에 대한 참고문헌은 <순천문화재 이야기>(2007)이고, 관리하는 곳 연락처는 '749-3226'인데 검색해보니 과거 '문화체육과' 전화번호였다.

참고로 앞서 언급한 '순천 자랑 100선'에서는 19번인 죽도봉 공원과 더불어 '자연환경분야'에서 선정되었다. 번호는 20번. 참고로 23번까지가 자연환경분야이다. 

기자가 시청 민원실에서 연자루를 관리하는 곳이 어디인지 묻자, 담당직원이 시청 홈페이지를  검색하고, 여러 부서에 전화를 하여 문의를 한 결과, 공원녹지사업소 "일 것 같다"는 대답을 얻을 수 있었다.

공원녹지사업소를 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관계자가 긴장하고 난감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보수한다는 말은 들을 수 없었다. 그저 안전표시를 시의 상징에 걸맞게 보기 좋게 한다는 것 뿐. 연자루와 관련한 기록물 자료를 얻을 수 있냐고 물으니 도시재생과에 문의해보라고 안내했다. 원도심 개발과 관련될 것이므로.

하지만 도시재생과 관계자는 죽도봉 공원의 환선정을 고려 대상으로 생각 중이지, 연자루는 아니이고, 관련 자료도 없다고 대답했다. 그 다음엔 재난안전대책 부서를 찾아가서 안전 테이프를 언제 누가 쳤는지 알 수 있냐고 물으니 모른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재난안전대책본부장'이라 적힌 노란색 테이프를 해당 부서가 아닌 다른 곳, 심지어 읍면동에서도 사용하기 때문이란다. 연자루 관할을 물으니, 담당자가 문화예술과에 문의한 결과 문화재가 아니며, 공원녹지사업소일 것이라는 대답을 얻었다.

하지만 이 4개 부서와 얽힌 이야기를 취재하면서 든 생각은, 연자루가 째깍째깍 소리에 따라 서로 걸리지 않게 옆으로 재빨리 건네는 폭탄게임의 폭탄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는 점이다. 그 옛날 대문장가의 입에 오느내리고, 시의 자랑거리로 홍보되던 존재는, 이제 복구 예산 배정이 전혀 없는 골칫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이다.
시청 홈페이지에 공개된, 1910년대 연자루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 1910년대 연자루 사진 시청 홈페이지에 공개된, 1910년대 연자루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 순천시

관련사진보기


연자루의 기구한 팔자는 과연 언제쯤 쨍하고 풀릴까? 사랑하던 연인과 곧 이별하고, 관기라는 신분이어서 다른 남자 품을 전전하다 그리 늙었을 호호라 불린 여인의 운명과 이다지도 닮았을까 싶다.

태어난 고향이고 좋은 일 한다는 이유만으로 거액의 돈을 시에 여러 차례 건넨 재일동포에 대해 순천시는 무얼 했나. 송덕비 하나 바치고 모두 된 것이라 여긴 것은 아닌지...

게다가 1910년대 연자루를 찍은 사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연자루와는 다르게 복원된 모습은 그저 "돈 받았으니 대충 비슷하게 만들어서 보여주면 돼"란 마음이 있던 것은 아닌지...

그래서 이후에는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사후 관리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은 아닌지. 순천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부를 한 김계선 선생에게 너무나 민망하고 죄송할 따름이다. 

끝으로, 2013년 5월 말에 장 모씨가 순천의 어느 시민단체에 연자루와 관련하여 올린 글을 구할 수 있어서 공개한다.

"지나갈 때마다 가운데 부분이 불안했어요. 올라가서 보지는 않았는데 이 지경이 되었군요. 그 아래에 있는 환선정은 바닥에 고무판을 깔아 놓아서 습기가 차지 않을까 염려스러웠고 물 호스를 목조건물에 쏴고 있더군요. 청소한다구요. 내가 뭐라고 했더니 신고하라면서 되려 큰 소리를 치더라구요."

덧붙이는 글 | 순천의 지역신문에 게재할 수도 있습니다만, 아직 어디로 될 지 결정된 바가 없어서 정확한 매체명을 지금 밝힐 수 없습니다.



태그:#연자루, #순천시, #문화재, #박항래, #김계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자어로 '좋아할, 호', '낭만, 랑',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이'를 써서 호랑이. 호랑이띠이기도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