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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9호선 당산역에 레터링 월이 설치됐다.
▲ 당산역 레터링 월 지하철 9호선 당산역에 레터링 월이 설치됐다.
ⓒ 서울9호선운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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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은 지각을 면하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뛰어 올라간 경험이 있을 것이다. 특히 지하철 전동차가 역사에 진입했다는 안내방송이 들리면, 마음이 급해져 에스컬레이터에 여유롭게 서 있기 쉽지 않다. 출근 시간대 '지옥철'이라 불릴 정도로 혼잡한 당산역 환승구간. 그곳에 시민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안내문이 등장했다.

"지금 들어오는 저 열차! 여기서 뛰어도 못 탑니다. 제가 해봤어요."

지난 20일 한 네티즌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처음 올린 안내문 사진은, 이후 1만 명 이상이 공유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안내문은 지하철 9호선 직원들의 소모임 '역사(驛舍) 연구회' 팀원들이 아이디어를 낸 것이라고 한다.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기 위해 24일'역사 연구회' 임성훈 그룹장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 어떻게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었나?
"역사에서 가장 피를 많이 보는 장소가 에스컬레이터다. 그만큼 안전사고가 자주 발생한다. 소모임을 시작하며 어떻게 하면 고객들의 발걸음을 잠시라도 잡을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 나온 아이디어가 "고객들의 시선을 잠시라도 끌어보자"는 거였다. 딱딱하고 재미없는 문구보다는 친근하고 기억에 조금이나마 남을 문구를 사용해보고 싶었다. 사실 초안은 훨씬 장난스럽고 채팅 용어가 남발했다."

- 역사 연구회가 어떤 소모임인지 궁금하다.
"9호선에는 역 현장에서 업무를 하며 고객서비스, 안전과 관련된 업무 및 직원 고유 업무 중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항에 대해 자발적으로 모임을 만들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개선사항을 도출하도록 하는 '역사관리연구회'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번 소모임 역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3명이 만나 아이디어를 모았다.

근무 중에 에스컬레이터에서 뛰어 내려가다 다친 고객을 보고 안타까움에 어떻게 하면 고객들이 에스컬레이터를 안전하게 이용하도록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다 '레터링 월(Lettering wall)'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러브레터(LOVE LETTER)'라는 팀 명칭을 정하고 6~7개월 동안 정기적으로 만나며 자유롭게 연구했다.

바쁜 고객들에게 "하지 마세요, 위험합니다"라는 문구는 더는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감성적 문구를 사용해 안전한 에스컬레이터 이용 문화 캠페인을 시도해보고자 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당산역뿐만 아니라 고속터미널역 등 에스컬레이터가 긴 역사에 시범 설치했으며 앞으로 고객들 반응을 보면서 더 진행하기로 했다."

- "제가 해봤어요"라는 문구가 특히 인상적이다. 정말로 에스컬레이터를 뛰어서 올라가 봤나?
"소모임 직원이 뛰어봤는데 한 걸음 모자랐다고 한다."

지하철 9호선 철제 의자에 나무 덮개가 설치됐다.
▲ 지하철 9호선의 나무 덮개 지하철 9호선 철제 의자에 나무 덮개가 설치됐다.
ⓒ 서울9호선운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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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레터링 월' 프로젝트 외에 또 다른 개선 사례가 있는지 궁금하다.
"다른 팀에서는 철제 의자에 나무 덮개를 설치하는 주제를 진행했다. 9호선 승강장에 놓인 의자들은 철재 형태로 돼 있어서 많은 고객들이 차갑다고 불편해하셨다.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 이후 화재에 대비해 의자를 제작할 때 불연 또는 난연재를 사용할 수밖에 없어 철재로 제작해야 했다. 하지만 고객들 입장에서는 불편한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그래서 역사관리연구회의 주제로 선정해 화재예방에도 도움이 되고, 고객들의 불편도 해소하는 방안을 연구했다. 결국, 방염처리가 된 나무 덮개를 제작해 철제 의자에 고정하면 해결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그 결과물로 9호선 전 역사에 나무 덮개를 설치했다. 이후 차갑다는 민원이 사라졌다."

지하철 9호선 게이트 플립 앞에 안내문구가 추가됐다.
▲ 지하철 9호선의 게이트 플립 지하철 9호선 게이트 플립 앞에 안내문구가 추가됐다.
ⓒ 서울9호선운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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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팀은 고객들이 게이트 플랩에 걸려 넘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게이트 앞에 이용 문구를 부착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가양역에서 근무했던 직원들로 구성된 팀은 비상 게이트 앞에 이용안내 문구를 붙여 고객들이 역사를 이용하는 데 도움을 줬다.

이 밖에도 고객들의 승·하차 정보 등을 활용한 '혼잡도 예측 프로그램', 화재 발생 시 화재가 난 곳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개발 등 여러 소모임이 운영되고 있다."

- 당산역을 이용하는 고객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지하철 특성상 상대적으로 긴 에스컬레이터를 운영하고 있다. 에스컬레이터 이용 시 걷거나 뛰지 않고 고무 손잡이를 꼭 잡고 이용하셔야 한다.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이나 유모차를 동반하신 고객들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시면 더욱 안전하다. 또 여행객들이 많이 가지고 다니시는 대형 캐리어 등은 잘못하면 타인에게 치명적인 흉기가 될 수 있다. 캐리어를 소지하신 고객들도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시면 한층 안전하다.

무엇보다도 고객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9호선의 안전 표어는 '타협할 수 없는 안전'이다. 고객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9호선 전 직원들은 작은 것이라도 소홀하지 않고 안전에 힘쓰겠다.

SNS 댓글 중 "오기로라도 뛰어가겠다"는 분을 봤다. 그분께 "에스컬레이터는 언제든 멈출 수 있고, 뛰다 넘어지면 많이 아프다"는 말을 전해드리고 싶다. 뛰지 마세요. 여기서 뛰셔도 못 탑니다.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이용하세요."





태그:#당산역, #지하철 , #9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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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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