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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봉산 자락에 있는 응봉면 운곡리이다.
 팔봉산 자락에 있는 응봉면 운곡리이다.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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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의 노선이 집과 농장 사이를 가로 지르며 지나가는 곳이 있다. 충남 예산군 응봉면 운곡리는 50가구에 마을 주민 100여 명이 모여 산다. 운곡리는 마을 뒤편을 팔봉산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마을 입구의 한 농가 앞 회양목에는 꿀벌들이 윙윙거리며 꿀 따기 작업에 한창이었다. 겉보기에 한없이 평화로운 마을이다. 하지만 운곡리 주민들은 요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난해 8월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서부내륙고속도로의 노선이 마을을 관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운곡리 주민들은 서부내륙고속도로 공사가 국토부안 대로 착공될 경우, 마을이 폐허가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23일 오후 2시. 운곡리를 찾았다. 운곡리는 마을 뒤편 팔공산에 서부내륙고속도로 노선이 통과할 예정이다. 

운곡리 주민 권혁종씨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을 꿈꾸며 지난 2005년 고향인 응봉으로 내려와 사과농사를 짓고 있다. 모 항공사의 기획실에서 30년 간 일한 그는 55세에 정년을 맞았다. 그는 퇴직 후 늘 꿈꾸었던 대로 고향에 내려와 농사를 지으며 평화롭게 살았다.

하지만 서부내륙고속도로가 그의 평화를 깨고 있다. 권씨는 "시골의 가장 큰 장점은 한 없이 고요하다는 것이다"라며 "팔공산 자락에 고속도로가 날 경우 그 소음이 메아리가 되어 마을에 소음 공해를 일으킬 것"이라고 걱정했다.

권씨는 또 "당진-대전간 고속도로는 마을과 마을을 관통하는 경우가 없다"며 "서부내륙고속도로는 유난히 마을을 통과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권씨에 따르면 서부내륙고속도로 노선이 변경되지 않는 다면 운곡리는 50가구 중 10가구가 헐리게 된다.        

이와 관련해 권혁종씨는 "예산군은 사과로 유명한데, 고속도로 때문에 사과 농사를 포기해야 하는 얘기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부내륙고속도로가 통과하게 될 경우 팔봉산 자락에 있는 과수원들은 대부분 두 동강이 날 처지에 있다.

운곡리 주민들이 서부내륙고속도로 노선 변경을 요구하는 이유는 지금처럼 평화롭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권씨는 "운곡리 사람들은 절반 가까이가 안동 권씨다.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전한공 권빈이 이곳에 터를 잡은 뒤로 우리 가문은 대대로 이곳에 살았다"고 말했다.

권씨는 운곡리 뿐아니라 응봉면 중곡리, 평촌리, 신리 등의 5개 마을도 비슷한 처지에 있다고 전했다. 이쯤되자 고속도로 하나를 건설하는데 이렇게 많은 주민들이 피해를 입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기자의 이런 마음을 알아챈 것일까. 권혁종씨는 이날 즉석에서 10여 킬로 미터 떨어진 예산군 오가면 분천리에도 가보자고 제안했다. 서부내륙고속도로가 통과할 예정인 분천리의 상황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권혁종씨는 모 항공사에 기획실에 근하다 정년퇴직을 했다. 그는 고향에 돌아와 사과 농사를 짓고 있다. 그가 서 있는 바로 저 자리가로 서부내륙고속도로가 통과할 예정이다.
 권혁종씨는 모 항공사에 기획실에 근하다 정년퇴직을 했다. 그는 고향에 돌아와 사과 농사를 짓고 있다. 그가 서 있는 바로 저 자리가로 서부내륙고속도로가 통과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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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 분진 묻은 사과 팔수 있겠나?"

귀농한지 3년이 되었다고 밝힌 A씨는 "서부내륙고속도로의 노선이 과수원을 통과 한다"며 과수원이 반으로 갈리지는 것은 물론이고 나머지 800평의 땅은 삼각형이 되어 쓸모없는 땅으로 전락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농지가 삼각형이 되면 기계가 들어가 작업하기조차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A씨의 밭의 끝에는 큰 옹벽이 있다. A씨는 "옹벽과 도로로 막혀 통풍이 잘 안되면 사과 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며 "자동차 타이어에서 나오는 먼지가 사과에 쌓일 텐데, 그런 것을 예산사과라며 자랑스럽게 팔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주민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이와 관련해 분천리 주민 김형용씨는 "도고-대술-신양 등을 지나는 능선을 따라 고속도로가 생기면 민가 피해가 거의 없다"며 "대흥에 '의좋은 형제 휴게소'를 짓겠다는 국토부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민가 피해가 더욱 심해 졌다"고 주장했다.


태그:#운곡리 , #서부내륙고속도로 , #분천리 , #권혁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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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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