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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를 사러 온 외국인, 어떻게 먹으려고

외국인들이 상추에 삼겹살을 싸서 먹을 거라는 건 오해였다. 그들은 의외로 드레싱을 곁들여 종종 샐러드로 먹었다.
 외국인들이 상추에 삼겹살을 싸서 먹을 거라는 건 오해였다. 그들은 의외로 드레싱을 곁들여 종종 샐러드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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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가게에 한 외국인 여성이 1kg짜리 쌀 한 봉지를 들고 왔다. 밥을 지을 때 물을 어느만큼 넣어야 하느냐 묻는데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생각해보니 평생 밥을 지으면서도 쌀과 물의 비율이 정확히 어떻게 되는지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저 밥통에 쌀을 몇 컵 넣고 손을 담가 물이 손등을 완전히 덮일락말락할 정도로 넣어야 한다는 걸 정설(?)로 알고 있는데, 그걸 외국인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다행히 근처에 있던 한 교포 여성이 나서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덕분에 나도 비로소 밥의 조리법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쌀과 물의 비율은 대략 1:1이라는데, 칼같이 정확한 걸 귀찮아하는 한국인 성격에 밥이 좀 질다 싶으면 다음엔 물을 좀 덜 넣으면 되고, 좀 되다 싶으면 다음엔 더 넣어야겠구나 하고 마는데, 외국인 입장에서는 밥을 할 때도 정확한 '레시피'가 필요하겠구나 싶었다.

외국인들이 사랑하는 삼겹살과 함께 빠질 수 없는 상추. 외국인들이 상추를 사갈 때마다 당연히 삼겹살에 곁들이거나 밥과 함께 쌈을 싸먹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의외로 드레싱을 곁들여 샐러드로 즐기는 이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도 일종의 한국식 샐러드인 '상추 겉절이'를 만들어 먹긴 하지만 드레싱에 곁들인 상추는 어떨까 궁금하긴 하다. 다들 완전 굿이라고 하니 나도 한 번 먹어봐야겠다.

어느 날은 얼갈이 배추를 사 가는 한 외국인 여성에게 문득 호기심이 생겨 이걸 어떻게 요리해 먹느냐고 물었더니, 갑자기 당황한 기색으로 "요리해야 하나요?"라고 묻는다. 뭔 소린고 하니 처음 사보는 얼갈이로 드레싱을 곁들여 역시 샐러드로 먹을 생각이었는데 그러면 안 되는 거냐고 묻는다.

"아니... 뭐, 안 될 건 없지만 우린 보통 이걸로 국을 끓이거나 간단히 김치를 만들어 먹거든요..."

어차피 이것도 일종의 '캐비지'니까 샐러드를 한 번 만들어보라고 했다. 상추 샐러드는 이해가 되지만 그녀가 만든 얼갈이 샐러드는 어떤 맛이었을지 궁금하다.

여름은 매실의 계절이다. 수북히 쌓여 있는 포도 알갱이만한 초록색 알맹이들에 호기심을 느끼는 외국인들이 멋도 모르고 한 봉지 씩 담아오는 수가 왕왕 있다. 어느 날 한 프랑스 아가씨가 여지없이 계산대에 매실 한 봉지를 내려놓는데, 어떤 '불길한' 예감을 감출 수 없어 혹시 이걸로 뭐 할 거냐고 물어봤더니 태연히 "먹으려구요" 한다.

"오우 노~ 안 돼요. 이건 날 걸로 먹는 게 아니에요. 저기 보이는 것처럼 술이나 과즙을 담가 먹는 거예요. 그냥 먹으면 엄청 시고 써요."

그러자 화들짝 놀라며 그녀와 일행들이 모조리 매실을 제자리에 돌려 놓으면 "메르씨 부꾸~"를 외친다. 이런 일이 워낙 비일비재해서 모든 외국인들의 '불상사'를 막아줄 수 없기에, 과연 집에 사들고간 매실을 맛 본 그들의 표정이 어땠을까를 상상해보면 피씩 웃음이 터진다.

두유와 콩국물 차이를 모르는 외국인들, 종종 모르고 콩국물 사가

외국인들은 두유와 콩국물을 종종 혼동한다. 가끔씩 1리터짜리 콩국물을 턱 하니 계산대에 올려놓는 외국인들에게 "이거 두유 아닌 거 아느냐" 물어보면 그들은 깜짝 놀란다.
 외국인들은 두유와 콩국물을 종종 혼동한다. 가끔씩 1리터짜리 콩국물을 턱 하니 계산대에 올려놓는 외국인들에게 "이거 두유 아닌 거 아느냐" 물어보면 그들은 깜짝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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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외국인들이 또 하나 혼동하는 것이 바로 '두유'와 '콩국물'이다. 요즘은 콩국물도 1리터 짜리 종이팩에 들어 있어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들이 가끔 실수를 한다. 어느 날 역시 계산대에 콩국물 한 팩을 내려놓는 한 외국인 커플을 보고 잠깐 망설이다 혹시 이거 두유 아닌 거 아느냐고 물었더니? "왓?" 하며 놀란다.

이건 한국식 'Soy noodle'를 만들 때 넣는 일종의 'Soy stock'인데 여름에 먹으면 별미니까 이왕 가져온 거니 한 번 시도해 보라고 했더니 당황한 듯하면서 호기심을 보인다. 옆에서 가게 매니저도 어차피 두유나 콩국물이나 원료는 콩이라서 목 마를 때 설탕 넣어서 마셔도 상관 없다고 거들었더니 결심한 듯 계산을 한다.

인터넷에 레시피 많으니까 꼭 찾아서 만들어 보라고 얘기해 줬는데 두유를 사려다 얼떨결에 산 콩국물로 과연 무사히 콩국수를 만들어 먹었을까 궁금하다.

뜻밖에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한국 간식이 있다. 바로 '깨옥춘(원형의 박하사탕)'이다. 우리에겐 그저 달고 별 맛도 없으면서 1년에 몇 번 제사상에 장식용으로나 쓰는 이걸 외국인, 특히 중년 여성들이 꽤 좋아한다. 맛을 알고 사는 건 아닐 터여서, 한 번은 이걸 가져온 한 외국인 여성에게 왜 이걸 사려는지 물어 봤더니 '예뻐서'란다.

"한국에선 이걸 제사 같은 특별한 날에만 쓰는 거라서 평소엔 거의 안 먹어요. 그리고 사실 별 맛도 없을 거예요"라고 했더니 "상관 없어요. 아주 뷰티플해서 한 번 먹어 보려구요" 한다. 고급스럽게 포장한 고가의 한과들도 있지만 의외로 이런 서민적인 전통 과자들도 그들의 눈엔 알록달록 무척 예뻐보이나 보다. 깨옥춘이나 옥춘 같은 저렴한 제사용 한과들도 관광상품으로 가능성이 있는 걸까?

일본인들과 중국인들에게 필수인 한국산 김은 이제 서양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고소한 간식이란다. 바삭한 구이김을 밥도 없이 그냥 즐긴다는데, 한국에 1년 체류 예정이라는 두 명의 덴마크 아가씨들이 밝은 표정으로 김 몇 봉을 사길래 맛있느냐고 했더니 아주 좋아한다고 엄지척이다. 밥과 함께도 먹고 그냥도 먹는데 덴마크에서는 한국 김을 도저히 살 수가 없어 귀국할 땐 각자 한 박스씩 사갈 거라며 싱글벙글이다.

나도 낯선 외국에서 호기심에 맛 본 먹거리들 때문에 울고 웃은 일이 많다. 외국인들 역시 낯선 한국의 먹거리들 앞에서 갖가지 좌충우돌을 겪으며 한국을 알아간다.

얼마 전 비정상회담에 패널로 출연하신 음식 칼럼니스트 황교익씨는 정부 차원의 인위적인 한국음식 홍보가 불편하다고 하셨다. 우리가 보여주고 싶은 맛과 그들이 좋아하는 맛 사이엔 어느 정도의 간극이 있다. 오래 전 한국의 자판기 커피에 꽂혀 서울 곳곳의 가장 맛있는 자판기들을 소개하는 한 영국인에 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요즘 젊은 외국인들은 날로 업그레이드되는 불닭볶음면 류의 매운 인스턴트 음식들, 그리고 알록달록 컬러풀해진 다양한 과일 맛 소주들에도 열광한다.

이제 여유를 갖고 그들이 좋아하는 한국의 맛은 진정 무엇인지 찬찬히 지켜보는 시간도 필요할 듯하다. 고급스럽든 아니든 간에 그들이 한국에서 맛보고 겪는 모든 것이 결국 다양한 색깔의 한국의 맛이다. 우리가 보여주고 싶은 것과 그들이 좋아하는 맛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열쇠는 그들에게 달린 것이 아닌가 싶다.

결국 그들 덕분에 스위스 융프라우에서 한국 컵라면을 보고 반가워할 수 있게 됐으니까 말이다.


태그:#외국인, #한국음식, #먹거리, #콩국물, #깨옥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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