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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퇴진 후,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만들까요? 광화문 광장의 '퇴진 캠핑촌'은 촛불 시민과 시민단체들의 대안 토론 광장을 엽니다. 이 기획은 <오마이뉴스>와 <광화문 퇴진 캠핑촌 광장토론위원회>가 공동기획했습니다 [편집자말]
서울 광화문 광장 캠핑촌에 텐트를 친 노동자들.
 서울 광화문 광장 캠핑촌에 텐트를 친 노동자들.
ⓒ 노숙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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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청구인, 박근혜를 파면한다."

서울광화문 광장에 이정미 헌법재판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순간 박근혜퇴진 광화문캠핑촌(이하 캠핑촌) 촌민들은 함께 울고 함께 기뻐했다.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넉 달 넘게 광장의 최전선을 지켜낸 승리였다.

캠핑촌 생활은 고통이었다. 한 겨울 노숙투쟁과 그에 버금가는 매연과 자동차 소음, 긴장의 연속인 촌민생활, 경찰의 퇴거 압박과 태극기 어르신들의 해코지 등 모든 것이 힘든 나날이었다. 하지만 처음엔 텐트 한 동 조차 힘들었던 상황이 이젠 텐트촌과 문화예술 광장으로 변모했다. 이게 다 촛불의 역동성이 만들어낸 결과다. 촛불이 광장을 열고 광장을 지켜낸 거다.

열린 광장의 빈 공간은 촛불시민이 채웠다. 여기에 풍자와 해학이 깃든 공연과 전시품들이 더해지면서 더 큰 분노와 실천이 만들어졌다. 시간이 갈수록 광장의 연대가 깊어지고 넓어진 이유다.

'광화문캠핑촌'에 입주하는 사람과 단체도 다양해지고 응원의 목소리도 커졌다. 이 과정에서 맺어진 연대는 문화와 노동이 융합하는 단계까지 진화해 함께 승리하는 연대를 만들어냈다. 그래서다. 캠핑촌 노숙투쟁 연대의 과정과 흐름을 되짚어 보며, 광장의 점거와 연대의 의미를 돌아본다.

광화문에 캠핑촌이 들어서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이 수면위로 드러났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광화문광장을 주목하거나 촛불의 물결을 예상치 못했다. 억압과 감시, 좌절과 체념의 늪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1차 촛불집회때 울려 퍼진 분노의 함성은 잠자고 있던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들의 열망을 깨우는 계기였다.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농선텐트는 투쟁의 거점과 광장점거운동의 중요한 상징이 됐다. 지난해 11월 4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린 뒤 광화문광장에 농성텐트가 차려졌다. 양심적이고 진보적인 문하예술인들과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이하 비없세)를 비롯해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함께 준비하고 만들어 낸 결과다.

이명박근혜정권 10년 동안 가장 철저하게 핍박당하면서도 끈질기게 저항했던 블랙리스트 예술가와 블랙리스트 노동자들의 연대이기도 하다. 이들이 함께 손잡고 한 발 앞서 광장을 열면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선도적 행동이기도 하다.

촛불의 역동성이 캠핑촌과 광장을 지켜냈다. 궁지에 몰린 정권은 잔혹했다. 광장이 뚫려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 때문인지 농성텐트를 무참히 짓밟았다. 하지만 힘겹게 지켜낸 농성텐트는 고립되고 비를 피하기 위한 비닐조차 덮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캠핑촌을 지켜내고 만든 힘은 무엇일까. 농성텐트 사수투쟁과 맞물려 열린 2, 3차 촛불집회의 규모와 역동성을 손꼽을 수 있다. 분노한 민중은 함성으로 광장을 채웠고, 촛불로 뒤덮었다. 그제야 더 이상 캠핑촌을 향한 침탈도 발생하지 않았다.

여기에 광화문 관리주체인 서울시의 암묵적인 인정도 캠핑촌을 지켜내는데 한몫 했다. 이를 계기로 한 두 동에 불과했던 농성텐트가 캠핑촌으로 발전하고 박근혜 퇴진 투쟁의 새로운 거점이 됐다. 무엇보다 광화문광장은 더 이상 고립된 섬이 아니라 촛불의 분노와 물결을 담아내는 너른 마당으로 변했다. 캠핑촌민들의 각오까지 더해져 가능했던 일이다.

공간이 확보되니 농성텐트가 물밑 듯이 밀려들었다. 박근혜 퇴진을 위한 광화문광장점거가 안전한 궤도에 오르자 다양한 단체와 개인들의 캠핑촌 입주가 이어졌다. 문화예술단체와 투쟁사업장을 비롯해 탈핵행진, GMO반대, 한겨레주주모임, 차나눔팀, 나눔발전, KT 1인 시위자, 촛불시민 등 각자의 색깔과 요구를 갖고 캠핑촌민이 됐다.

하지만 서울에서 가장 비싼 땅에 올린 집은 추위를 막아주지 못했다. 잠자리에 누우면, 바닥의 찬 기운이 그대로 온 몸에 전달됐다. 한 겨울 촌민생활이 녹녹치 않았던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도 캠핑촌을 유지하기 위해 촌민들은 각자 정해진 일을 하면서 각종 공연과 행사에 대한 준비, 참여, 뒷정리를 도맡았다.

촌민들의 열정이 광장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다양한 끼와 재능을 가진 문화예술인과 촛불시민들이 광장으로 몰려들었다. 문화예술인들의 시국을 비판하는 마임, 춤, 미술행동, 풍물, 연극공연, 시국퍼포먼스 등이 공연됐다. 검열 없는 자유로운 표현에 광장이 뜨거워졌다. 

촛불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진 길거리 붓글씨 써주기, 시민참여 '박근혜퇴진' 깃발제작 등이 운영됐다. 이게 다가 아니다. 촛불시민들은 음식과 차 나눔, 노숙농성에 필요한 물품 지원, 의료지원을 했다. 광화문광장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촛불광장으로 새롭게 태어난 거다.

광화문캠핑촌은 끊임없이 꿈틀거렸다. '박근혜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는 촛불정국 내내 광장에서 시대의 요구에 응답하는 다양한 문화예술 공연을 선보였다. 각종 위원회도 구성해 자체 기획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촛불시민들의 분노와 참여를 조직하고, 동시에 그들의 재능을 이끌어내면서 요구를 드러내기 위해서다.

그래서일까? 촛불집회가 끝나도 시민들의 발길은 광장을 떠나지 않았다. 박근혜퇴진 신나는 롹킹 문화난장 '하야하롹' 공연을 관람하고 촛불광장의 상징인 '희망촛불'에서 인증사진을 찍었다. 광화문미술행동의 촛불광장 프로젝트와 파견미술팀의 박근혜, 정몽구, 이재용, 김기춘, 조윤선, 황교안 조형물제작도 인기였다.

여기에 최병수 작가의 블랙리스트 제작 등 설치 작품 전시, 전국풍물연석회의의 도깨비 판굿 강강술래·새날맞이 굿 등 풍물공연, 민족춤협회의 북청사자탈춤 등 민족 춤 공연, 마임공연 등이 공연돼 촛불시민과 만나고 광장예술이 시민들과 지속적으로 호흡할 수 있었다. 궁핍현대미술광장은 개관전시 '내가 왜'를 시작으로 여섯 번의 전시를 통해 평일 낮 시간에도 시민들의 발길을 멈추지 않았다.

또한, 캠핑촌민들은 광장신문발행위원회, 광장토론위원회, 광장극장블랙텐트위원회 등을 구성해 문화공연과 작품 전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 신문발행위원회는 광장신문 1호, '박근혜 하야발표'라는 가상기사를 시작으로 4호까지 발행했으며, 토론위원회는 무려 열 두 차례 광장토론회를 개최했다. 블랙텐트위원회는 400여명의 예술가들이 참여해 연극공연을 중심으로 마임과 노래공연, 영화상영을 통해 캠핑촌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광장을 지켜낸 다양한 촛불행사와 힘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캠핑촌에는 노동자들도 텐트를 쳤다. 기륭전자분회를 중심으로 비없세 활동가들이 처음부터 촌민생활에 뛰어들었다. 이후 현대기아차비정규직노동자들이 결합해 박근혜-정몽구 구속과 비정규직철폐를 내걸고 익숙한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뒤이어 10년째 정리해고 노동자이자 문화예술인인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이 정리해고 철회와 원직복직, 예술 검열 반대 등을 요구하며 캠핑촌 지킴이 됐다. 이들은 투쟁과정에서 쌓인 문화예술인들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예술가와 노동자들의 가교역할도 도맡았다.

유성기업 해고노동자들도 결합했다. 이들은 노조파괴 진짜주범 정몽구·유시영 구속을 요구하며 투쟁한 끝에 유시영의 법정구속을 이끌어냈다. 투쟁만 한 것은 아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1년 가까이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는 한광호 열사의 시민분향소를 설치, 운영했다. 이후에는 장례식과 1주기 추도식을 도맡기도 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조금 늦게 결합했지만 손배가압류철폐, 노란봉투법 제정, 해고자복직 등을 요구하며 매주 토요일 선전전을 진행했다. 파인텍지회(구, 스타케미칼)는 파업 중인데도 합의사항 이행을 요구하며 촌민생활을 결의했다.

이처럼 일곱 빛깔 투쟁을 하는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먼저 내세우기보다는 캠핑촌 촌민생활을 책임 있게 수행하면서 박근혜퇴진과 재벌총수 구속을 위한 투쟁에 앞장섰다. 이 과정에서 재벌총수의 앞잡이 이재용이 구속됐다.

블랙리스트와 블랙리스트가 만나다

서울 광화문 캠핑촌 모습
 서울 광화문 캠핑촌 모습
ⓒ 노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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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크가 블랙리스트를 만났다. 정권과 자본의 탄압에 맞서 투쟁한 이들이 캠핑촌에서 극적인 상봉을 했다. 그래서일까. 이들은 동지로서 느끼는 동질감이 컸다. 캠핑촌이 '블랙리스트 예술가의 농성장'으로 잘 알려지고 사회적 호소력과 관심을 받는데도 이들의 특별한 만남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부도덕한 정권은 예술인을 검열하고 탄압했다. 지속적이고 조직적으로 괴롭혀 꼼짝 못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예술가들은 굴하지 않았다. 희망버스가 대표적인 예다. 장기농성은 기획력과 헌신성, 투쟁하는 노장자들의 돌파력이 중요하다. 비없세 활동가들은 희망버스를 통해 내공을 쌓았다. 삭막하고 단조롭고, 다가서기 불편한 농성장의 이미지도 예술가들의 결합으로 쉽게 장벽을 허물 수 있다.

광화문 캠핑촌을 두고 초기 우려 섞인 시선이 존재했다. 한 발 앞서는 게 아니라 두 세발 앞선 행동이라는 거다. 박근혜퇴진행동측과의 관계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여니 괜한 걱정이었다. 오히려 문화예술단위가 박근혜퇴진행동 측에 참여해 캠핑촌 사업을 공유했다. 주말 집회 때도 마찬가지. 박근혜퇴진행동 측의 부족한 부분을 캠핑촌이 채워냈다. 그 결과 시민들이 거대한 촛불의 물결 속에서 느껴지는 소외감을 해소할 수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캠핑촌의 다양한 문화행사와 공연, 토론, 전시 등은 촛불시민에게 '작은 안식처'가 돼주었다. 분노의 함성만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작은 마이크'가 돼 준 것이다.

돌이켜보면, 광장점거운동은 비단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시대와 국가를 넘어 분노와 저항이 표출된 곳이 광장이다. 대표적인 아큐파이운동이 미국의 '월가를 점령하라', 스페인의 '분노한 사람들', 우크라이나 재스민 혁명 등이다. 이들 혁명의 공통점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시민들의 외침이 광장에서 표출됐다는 거다.

광장캠핑촌도 똑같다. 정권과 자본은 광장의 외침과 점거만큼은 결코 용납지 않았다. 그동안 수많은 광장점거를 무참히 짓밟은 이유다. 하지만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이 드러나자, 그동안 쌓여 있던 대중의 분노가 임계점을 넘어 광장에서 분출됐다. 그제야 철옹성 같은 광화문광장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따라서 캠핑촌은 광화문·촛불항쟁의 거점이자 마중물이다. 단순한 광장점거에 머물지 않고 문화예술인과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함께 다양한 문화행사와 공연, 토론과 전시를 만들어냈다. 그 결과 촛불물결을 더 확산시키고 새로운 광화문·촛불항쟁이 문화를 탄생시켰다.

한번 열린 광장은 쉽게 닫을 수 없다. 가장 평화적인 방법으로 분노하고 소통하고 연대하면서 얻은 승리의 기쁨은 지속될 것이다. 광장의 자유와 열기를 몸소 체험한 힘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불평등을 해소해 나가는 작은 촛불로 되살아 날 것이다. 이래서 광장점거운동이 중요한 거다.

연대는 아래로 향하는 하방연대가 진정한 연대다. 광화문광장은 '박근혜퇴진'이라는 단일한 목표로 수없이 많은 연대가 자연스럽게 이뤄진 공간이다. 그래서 그토록 커보였던 깃발도 작게 느껴지고 혹여 집회참여 인원이 적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실제로 광장은 '발 딛을 틈이 없다'는 말을 실감케 할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하지만 과연 그 속에서 같은 곳을 함께 바라봤다는 것만으로 만족해야만 할까?

그래서다. 광화문캠핑촌은 광장에서 목격한 모든 혐오에 주목했다.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여성혐오와 청소년 비하, 장애인 이동권 보장과 성소수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 안에 같은 목소리로'박근혜퇴진'을 외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위해 투쟁하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배려하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캠핑촌의 하방연대는 앞으로 우리사회의 연대를 깊고 넓게 유지할 수는 값진 경험이었다.      

광장 밖 노동과 하나 되는 연대

서울 광화문 박근혜 퇴진 캠핑촌 모습
 서울 광화문 박근혜 퇴진 캠핑촌 모습
ⓒ 노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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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1일, 박근혜 대통령 없는 첫 날 캠핑촌에는 자그마한 추모공간이 차려졌다. 홍수연씨를 위해서다. 그는 전주에 있는 LG유플러스 고객센터에 현장실습을 나갔다 사망했다. 고등학생 실습생인 그는 '욕받이' 부서라는 해지방어팀에 배정되어 온갖 욕설과 비난, 실적압박, 반복되는 시간외 근무 등으로 괴로워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근혜가 검찰에 출두하는 날에는 공무원 취업준비생의 싸늘한 죽음이 발견됐다. 광화문 주변의 음식점과 카페, 편의점은 촛불집회 때 마다 엄청난 특수를 누리고 있지만 정작 일하는 노동자들 대부분 알바생이거나 파트타임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높은 노동 강도에 비해 급여는 변함없고 촛불집회 참석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처지다.

그래서 대학생들 사이에선 알바 때문에 촛불집회도 자유롭게 참석할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광장 밖에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생계와 학비 마련을 위해 세상 돌아가는 일에 담쌓고 지내고 있는 거다. 이들은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싶어도 못하는 청춘들이다.

하지만 1200만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처지는 대부분 비슷하다. 광장 안 노동자와 광장 밖 노동자가 하나되는 연대, 광장 밖 가혹한 노동으로 신음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연대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이유다.

지난해 12월 24일 창원광장 촛불집회에서 24살 전기노동자가 던진 질문은 촛불광장 이후 우리를 고민케 한다. 내용은 이렇다.

"박근혜가 퇴진하더라도 제 삶이 나아질 기회가 있을까요?"
"이대로 20년, 30년 살라고 하면 못살 것 같습니다."

박근혜가 파면되고 난 이후 지금까지 달라진 것은 없다. 이재용이 구속돼도 삼성전자 백혈병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없으며, 무노조 경영은 변화 없다. 정리해고, 노조탄압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자행되고 있다. 1천2백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요구는 헛된 망상이 되고 있으며, 그나마 소박한 요구인 최저임금 1만 원 이상은 야당 정치인들에게 조차 무시되고 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취업준비를 하다가 자살할 수밖에 없는 청년실업의 절박함도 모르쇠다. 적폐청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국회는 잠자고 있으며, 온통 대선놀음이다. 박근혜 퇴진 이후 첫째 과제는 내 삶도 함께 바꾸는 사회변화이다. 대통령이 바뀌고 제도적 민주주의가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고 해도 내 삶이 변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냐"라는 푸념과 조롱을 다시 들을 수 있다. 이제 내 삶을 바꾸는 변화를 위해 '노동의제'를 부각시켜야 한다.

우선, 우리사회의 최저임금 노동자 규모는 600만 명을 넘어서고 있으며, 이중 260여 만 명이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최저임금 1만원인상과 최저임금준수를 강력하게 강제한다면 이 혜택은 엄청나다. 지금 당장 노동시간을 단축하면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청년실업이 해소될 수 있다. 헌법에 명시된 노동3권을 보장하고 사용자의 노조탄압을 엄격히 규제한다면 재벌총수들의 전횡을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업하기 좋은 나라'에서 '노동하기 좋은 나라'로 물꼬를 바꿀 수 있다.

캠핑촌이 함께 한 '재벌총수구속, 비정규직, 정리해고, 노조탄압 없는 세상을 향한 새로운 세상, 길을 걷자 1박2일 대행진'은 이재용구속과 맞물려 촛불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 냈다. 캠핑촌 해단식에서 최저임금 1만원!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노조할 권리 쟁취! 4.22 비정규직 1만 대행진'을 제안했다. 꺼지지 않는 촛불이 함께 하길 기대해 본다. 촛불항쟁의 교훈을 잊지 말고 내 삶도 바꾸고 우리사회의 불평등의 근원을 해소하기 위해 승리하는 연대를 꿈꾸고 실천해 나가자.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황철우(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소속입니다.



태그:#광화문캠핑촌, #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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