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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차는 너무 지저분한데요. 창피해요."
"그렇다면, 과장님은 누구 차에 타셔야지?"

지난 수요일 시청의 한 부서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 58분, 직원들이 막 점심을 먹으러 나가려 의자에서 하나 둘씩 일어나려는 참이었다. 시골에 살다 보니, 왜인지 모르겠지만 면사무소나 시청 같은 관청을 찾아야 하는 일들이 잦은 편이다. 필요한 서류를 시청 담당자 책상에 던지듯 주고 돌아나오는데, 문득 옛 생각이 났다.

"아~, 내가 직장이 없는 사람이구나."

직장다운 직장을 마지막으로 다닌 게 2008년이었다. 그 해 하반기 현재 살고 있는 시골에 조그마한 땅을 장만하고, 이듬해초 바로 집을 지어 이주했다. 중간에 1년 반 정도 다른 나라에 나가 있기는 했지만, 직장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또 2014~2016년에는 아이 엄마의 자영업을 도왔는데, 그것도 틀이 잡힌 직장, 이를테면 일정한 규모를 갖춘 전형적인 회사나 기관의 직원으로서는 아니었다.

올해로 9년째, 업무 형태를 기준으로 하자면 난 프리랜서 신분으로 분류돼야 할 듯 하다. 물론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농업경영체 등록을 했으므로, 농업 경영인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런가 하면 틈틈이 손이 나는 대로 아이 엄마의 사무도 보조했으니, 사무 프리랜서이기도 했다. 글을 써서 약간의 수입을 올리는 점까지 감안하면 자유기고가이기도 한 셈이다.
요 며칠 개 울타리 작업을 하고 있다. 조그만 우리 집 개가 사람들을 몇 무는 바람에 울 안에 가둬두기 위한 것이다. 울타리 옆으로 최근 어머니가 주도하고 내가 보조해 담은 간장 항아리가 보인다.
 요 며칠 개 울타리 작업을 하고 있다. 조그만 우리 집 개가 사람들을 몇 무는 바람에 울 안에 가둬두기 위한 것이다. 울타리 옆으로 최근 어머니가 주도하고 내가 보조해 담은 간장 항아리가 보인다.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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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세요?" 하고 주변사람들이 물으면, 설명하기가 복잡해 '백수'라고 답하는 건, 무엇보다 소속된 직장도 단체도 없이 프리랜서로 지내는 탓이다. 기간이나 시간이 정해져 있는 직장 혹은 직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오늘은 땅을 파고 내일은 서류를 만지작거리며, 새벽에 가끔은 글도 쓰고 때때로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입에서 단내가 나게 막노동도 한다.

요즘처럼 농사 일이 바쁘게 돌아가는 철이면, 주업은 두말할 나위 없이 농사다. 이른바 귀농인들 혹은, 주말에 농장을 가꾸는 사람들은 대략 짐작하겠지만, 농사 관련 일들이 노동 강도로만 따지면 대체로 도시 공사판 막노동과 엇비슷하다. 특히 기계나 화학비료 농약 사용을 달가워하지 않는, '손으로' 농법을 고집한다면 더욱 그렇다.

가끔은 일에 쫓기면 점심도 거르는데, 수요일 시청 직원들의 '점심 준비 대화'에 옛 시절이 갑자기 유난히 그리워졌던 건 오전 강도 높은 노동으로 배가 무척 고팠던 탓도 있을 것이다.
우리 집 개 '망울이'. 어른 팔뚝보다 작은 녀석인데 식구들 외에는 다 물으려 하려 바람에 일주일이 넘는 시간을 투자해 녀석을 가둬둘 수 있는 울타리 작업을 하고 있다. 나 홀로 작업에 그래도 녀석이 옆에 있으면 위안이 된다.
 우리 집 개 '망울이'. 어른 팔뚝보다 작은 녀석인데 식구들 외에는 다 물으려 하려 바람에 일주일이 넘는 시간을 투자해 녀석을 가둬둘 수 있는 울타리 작업을 하고 있다. 나 홀로 작업에 그래도 녀석이 옆에 있으면 위안이 된다.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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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출퇴근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건, 1988년 가을이었다. 워낙 성격이 제멋대로라, 속된 말로 태생이 직장인 체질이 아니었다.

"부장님 그런 말씀 마세요. 난 좀 있다가 시골로 갈 사람인데요."

회사원 생활을 시작한지 10년도 못돼 부서장이 업무를 과다 배정하면서, 인사 고과를 거론할 적이면 단칼에 "마음대로 하라"고 쏘아붙이기도 했을 만큼, 직장 그만 둘 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니 '직장 동료애' 같은 게 내게는 일체 없었다고 생각했었다.

헌데 어제 시청 직원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아스라히 회사원 생활을 할 때 점심 시간들이 그리워지며, 그네들이 부러운 거였다. 생계를 이끌어 갈 수 있는 급여가 나오는 안정된 일터가 있기 때문에, 혹은 손가락 마디마디가 퉁퉁 부을 일이 없는 사무직종 근무자들인 까닭에 그들의 점심 대화에 옛 시절이 떠오른 건 전혀 아니었다.

"동료, 그래 나에게도 동료라는 게 있었지" 하는 생각을 시청 직원들의 대화가 불현듯 일깨워준 거였다. 점심 시간을 앞두고 대한민국 어느 직장에서나 들을 수 있는 대화가 새삼 귀에 밟혔던 것은 매사를 혼자 처리하는 프리랜서 업무에 어느 사이엔가 조금은 지쳐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겠다.  

자연을 가까이 하고, 그래도 깜냥에 자연을 닮은 일상을 살아보겠다며 시골 정착을 서둘러 왔는데, 시골에는 동병상련하는 '직장동료'가 없었다. 물론 평생 농사를 지어온 이웃들을 일상으로 대하고, 귀농인 혹은 귀촌인들을 이따금씩 보기는 하지만 도시에서의 직장 동료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점심 시간 풍경으로 치자면.
우선 그물로 쳐둔 개 울타리. 일하다 보면 지쳐서 해머나 곡괭이같은 장비들을 내던져두기 일쑤다. 울타리는 방부목과 쥐똥나무, 그리고 그물 등으로 만들고 있다.
 우선 그물로 쳐둔 개 울타리. 일하다 보면 지쳐서 해머나 곡괭이같은 장비들을 내던져두기 일쑤다. 울타리는 방부목과 쥐똥나무, 그리고 그물 등으로 만들고 있다.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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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에 일을 보러 다녀온 건 집 근처에 자영업 사무실을 내기 위한 준비의 일환이었다. 물론 이번 역시 직원 한 사람도 두지 않는 나 홀로 자영업인데다, 그간의 주업이었던 농사를 손에서 놓는 것도 아니어서 크게 보면 프리랜서로서의 지난 9년 생활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논과 밭 산으로 둘러 쌓인 시골 마을에서 농사와 자영업을 겸한다는 게 어떤 모습일지 지금으로써는 상상이 잘 안 된다. 내가 사무실을 내려 하는 점포 바로 옆으로는 미용실, 세탁소, 피아노 교습소가 나란히 붙어 있는데, 그 곳 주인들과 과거 직장의 동료들처럼 지내게 되려나? 길 건너 농협분소 직원들과 가끔은 점심이나 같이 하게 될까?

사무실 개업 승인이 제때에 나는 게 지금으로서는 우선 바람이지만, 난생처음 해보는 자영업이 시골 생활에 일정 부분 변화를 가져올 것만은 확실하다. 삽이나 쇠스랑, 낫을 부여잡고 작물이나 땅과 대화하는 시간이 아무래도 줄어들 듯 하다. 또 사무실 자영업은 친가, 처가, 외가 등 이른바 '3가'의 집사 일도 적당히 물리칠 수 있는 핑계거리가 될 것 같다.

프리랜서로 살아온 지난 9년은 '손이 자유롭다'는 이유로 '3가'의 자잘한 일들이 내 몫으로 떨어지곤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런저런 심부름 성 일들이며, 집안 공동의 일들 예를 들면 '3가'의 식구들이 먹을 된장이나 간장을 담그는데 어머니의 보조 일꾼으로 나서야 하는 건 항상 내 차지였다.

또 버리자니 아까운 그러나 평소 별로 쓸 일이 없는 도시에 사는 형제들의 너저분한 짐들의 창고 보관도 온전히 내가 해야 할 일들이었다. 물론 예의 직장 동료 없이 나 혼자서. 오매불망 노래해 온 시골에서의 '자유로운' 삶이, 내겐 없다고 간주해왔던 구속 혹은 속박의 동의어 같은 직장의 동료애를 일깨워 준 건 그러니 아이러니다.                 

사족이지만, 감히 조언컨대 직장을 갖고 있다면 점심 시간의 정을 만끽들 하시라고 말하고 싶다. 당장 때려치우고 싶은 회사에서의 점심일지라도 말이다. 혼밥혼술의 매력과 장점도 없지 않겠지만, 훗날 언젠가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소소한 대화와 정들이 담긴시간이 될 터이니.

덧붙이는 글 | 마이공주 닷컴(mygongju.com)에도 실렸습니다. 마이공주 닷컴은 충남 공주의 시골 지역 생활정보를 담은 커뮤니티 포털입니다.



태그:#시골, #점심, #공주, #직장, #혼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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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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