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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과 함께하는 오늘> / 지은이 이민형 / 펴낸곳 도서출판 전나무숲 / 2017년 2월 28일 값 14,000원
 <도덕경과 함께하는 오늘> / 지은이 이민형 / 펴낸곳 도서출판 전나무숲 / 2017년 2월 28일 값 14,000원
ⓒ 도서출판 전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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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공과 안목이 필요합니다. 대개의 책들은 그림이나 글씨로 빼곡합니다. 십중팔구의 책들이 그러하니 책은 글씨가 많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어쩜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책은 뭔가가 빼곡해야 보거나 읽을 게 많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텅 빈 허공 같아 더 많은 것을, 더 깊이, 더 묵직하게 생각하게 하는 책이 있습니다.

망망대해를 항해하거나, 사방이 지평선과 맞닿아 있는 넓은 평야에서 하는 운전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을 만큼 쉬울 수도 있습니다. 걸릴 것도 없고, 부딪힐 것도 없으니 그냥 달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망망대해를 항해하고 사막 같은 평지를 운전하려면 최소한 하늘에 있는 별을 보며 방향을 가늠할 줄 알아야합니다. 그래야만 방향을 잃지 않고, 혹 방향을 잃더라도 갈 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망망대해를 향해하고, 허허벌판에서 하는 운전이 언뜻 보기엔 쉬워 보이지만 사실은 하늘의 별을 보며 방향을 가늠할 정도의 내공과 별자리를 헤아릴 수 있는 커다란 안목이 필요합니다.

텅 비어 있어 가득한 <도덕경과 함께하는 오늘>

도덕경 49강을 글자 하나로 나타낸 마음 심. 이게 한 페이지 전부이고, 책은 이렇게 여백입니다.
 도덕경 49강을 글자 하나로 나타낸 마음 심. 이게 한 페이지 전부이고, 책은 이렇게 여백입니다.
ⓒ 도서출판 전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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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과 함께하는 오늘>(지은이 이민형, 펴낸곳 도서출판 전나무숲)이 그렇습니다. 2권 세트로 돼있는 책이 마치 망망대해 같고 허허벌판 같습니다. 책을 펴면 붓글씨 하나만 눈에 훅 들어올 뿐 나머지는 텅 빈 여백입니다.

<반야심경>을 간추리고 또 간추리면 마음심(心)자가 된다고 한다. <도덕경>은 전체 81장(강)으로 돼 있습니다. 책에서는 도덕경 중 1강을 한 글자에 농축시켜 붓글씨로 담고 있습니다.

옆에 있는 사진 속 글은 마음 심(心)자입니다. 이게 한 페이지 전부입니다. 이 마음 심자는 저자가 도덕경 49강을 간추려 담아낸 글자입니다. 환하게 미소 짓고 있는 심(心)자에 도덕경 49강이 진득하게 정리돼 있습니다.

聖人無常心, 以百姓心爲心 : 善者吾善之, 不善者吾亦善之, 德善 ; 信者吾信之, 不信者吾亦信之, 德信. 聖人在天下潝潝, 爲天下渾其心, 百姓皆注其耳目焉. 聖人皆孩之. - 책 34면 중

책에는 쪽을 알 수 있는 일련번호조차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쪽 수를 세 적었을 뿐입니다.

<도덕경> 49강은 '성인은 정해놓은 마음이 없으니, 백성의 마음으로 마음을 삼는다. 나를 좋아해도 내가 좋아하고, 나를 싫어해도 내가 좋아하니, 모든 백성의 호감을 얻는다. 나를 믿어도 내가 믿어주고, 나를 안 믿어도 내가 믿어주니, 모든 백성의 믿음을 얻는다. 성인이 천하를 보살피면서, 받아들이고 받아들이며, 천하를 향한 마음을 흐리게 하고, 모든 백성을 아이로 대한다'라는 뜻입니다.

이 49강을 간추리고 또 간추려 마음 심(心)자 한 글자, 이리도 멋진 한 글자로 나타냈습니다. 언뜻 보기엔 허허벌판처럼 썰렁합니다.

하지만 한 글자에 농축돼 있는 의미를 새기다 보면 여백의 깊이가 생각보다 깊습니다. 이리저리 방황하던 마음이 붓끝으로 모아집니다. 새털처럼 가볍게만 생각되던 글자 한 자가 천근의 무게로 가슴에 다가옵니다.

문자의 향 맛보고 의미 새기며 생각 담아

1부터 31까지, 일련번호를 매기며 써간 한 글자 한 글자가 파격입니다. 어떤 글자에서는 불어오는 바람이 느껴지고, 어떤 글자에서는 쏟아지는 빗줄기가 그려집니다. <도덕경> 한 강 한 강을 농축시킨 글들이 道, 美, 善, 風... 이렇게 정리돼 있습니다. 

빼곡한 글씨는 생각을 가두게 됩니다. 하지만 넉넉한 여백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생각을 담게 하고, 담은 생각을 간추리게 합니다. 세트 중 1권은 마음을 정리해 담을 수 있는 노트형식으로 돼 있습니다.

"그저 마음이 편안한 곳이라면 언제든 그 어느 곳이든 좋다. 문자의 향을 맛보고 그 맛을 기억해뒀다가 훗날의 나를 떠올리며 또 다른 나와 만난다. 그리고 이야기 한다. '너는 참 멋지고 아름답다'라고..."

책 첫 페이지에서 소개하고 있는 '하루에 한 가지 생각 담는 법'입니다. 붓은 뭉툭해 보입니다. 하지만 붓을 이루고 있는 털은 셀 수도 없을 만큼 많고, 세울 수도 없을 만큼 섬세합니다. 붓으로 쓴 글씨이니 여백 속 글자들은 뭉툭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 뭉툭한 글씨에서 우러나는 아름다움, 새겨지는 의미는 가느다란 털끝만큼이나 잔잔한 섬세함입니다. 

흐르는 물처럼 걸림 없이 읽을 수 있는 내공, 북극성을 헤아릴 수 있을 정도의 안목이라면 <도덕경과 함께하는 오늘>에서 읽게 되는 건 <도덕경>을 넘어서는 아름다움, <도덕경>을 희롱할 만한 '도'가 될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도덕경과 함께하는 오늘> / 지은이 이민형 / 펴낸곳 도서출판 전나무숲 / 2017년 2월 28일 값 14,000원



도덕경과 함께하는 오늘 - 하루에 한 가지 생각 담기

無性 이민형 지음, 전나무숲(2017)


태그:#도덕경과 함께하는 오늘, #이민형, #도서출판 전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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