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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파면 이후 차기 대통령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유력 대선주자와 관련한 책이 연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립니다. <오마이뉴스>는 특별기획 '책에서 만난 대선주자'를 통해 인물에 대해 깊은 정보 뿐만 아니라 새로운 리더상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 보려고 합니다. 시민기자로 가입하면 누구나 '책에서 만난 대선주자'를 쓸 수 있습니다. [편집자말]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있는 우리 부모 가지고 감놔라 배놔라 하지 말고. 돈도 실력이야!"

국정농단의 주인공 최순실의 딸, 정유라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sns에 내뱉은 이 말이 어떤 파장을 낳을 줄은. 국민들은 분노했다. 부의 격차가 곧 교육의 격차가 되는 한국사회에서 정유라는 대다수 보통 시민들이 느끼는 박탈감에 기름을 부었다. 소득, 교육, 지역, 성별, 세대 등 거의 모든 분야에 만연한 '불평등'은 한국 사회에서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적폐 중의 적폐다.

불평등이 '진리'인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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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표지 .
ⓒ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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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석학 지그문트 바우만은 책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에서 '불평등'의 새로운 양상에 대해 이렇게 분석한다.

부자들은 단지 부자이기 때문에 점점 더 부유해진다. 빈자들은 단지 가난하기 때문에 점점 더 가난해진다. 오늘날 불평등은 자체의 논리와 추진력에 의해 계속 심화된다. 그것은 외부로부터의 도움이나 추진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외적 자극이나 압력, 충격 같은 것은 전혀 필요없다. 오늘날 사회적 불평등은 역사상 최초로 영구기관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22쪽)

바우만은 "상층, 중층, 하층 사이의 격차가 아니라 꼭대기에 있는 소수 집단과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거의 모든 사람들 사이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17쪽)며 사회적 불평등을 새로운 시각에서 고찰해야 한다고 했다.

2015년 현재 대한민국 최상위 10% 집단의 소득 비중은 48.5%로 최고치를 기록중이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국내에서 자살로 사망한 숫자는 7만1916명이다. 이는 이라크 전쟁 사망자 3만8625명의 2배, 아프가니스탄 전쟁 사망자 1만4719명의 5배에 이르는 수치다. 국내에서 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가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 수보다 훨씬 많다는 얘기다. 

고도의 소득불평등과 자살률, 범죄율의 증가와 같은 사회병리현상은 강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소수에게 부가 집중될수록 다수 대중의 사회적 자존감은 추락한다.

거부하라, 행동하라

바우만은 "사람들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의도적이건 우연이건 간에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세계를 계속해서 재생산하는 행동양식을 따르는 것 외에 거의 아무 대안도 없게 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 모두는 흔히 현실을 인간의 힘으로 맞서거나 개혁할 수 없는 '당연한 세상 이치'로 오해한다"(47쪽)고 지적한다.

불평등의 공고한 제도화, 구조화는 사회적 약자들로 하여금 열등감을 조장하고 저항의 의지를 봉쇄한다. 1%와 99%로 확연히 구분된 세상,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많이 갖기 위해, 남들보다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경쟁에 뛰어들어 생존을 건 싸움에 몰두한다.

9.11 사태가 발생한 다음 날, 조지 부시가 미국민들에게 충격을 이겨내고 일상으로 돌아갈 것을 부탁하면서 찾아낸 최선의 행동 수칙은 '쇼핑으로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이런 정도로 그리고 이렇게 쉽게 우리는 하나의 소비 대상을 처분하고는 그것을 사회적 지위와 성공적 삶을 위한 경쟁에서 우리가 올린 득점을 측정하는 주요 척도인 '새롭고 향상된' 소비 대상으로 대체한다. (77쪽)

바우만은 "다른 사람들이 어느 정도 실패했는지를 기준으로 자신의 성공을 측정하고, 자신보다 뒤처진 사람들의 숫자를 기준으로 자신이 어느 정도 발전했는지를 측정하고, 다른 사람들의 가치가 어느 정도 하락했는지를 기준으로 자신의 가치의 증가를 측정함으로써 함께 겪고 있는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골칫거리를 개별적으로 향유되는 유용한 것으로 바꾸어놓을 가능성이 있다"(80쪽)고 꿰뚫는다.

작가 박민규는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자본주의의 바퀴는 부끄러움이고, 자본주의의 동력은 부러움"이라고 했다. 자신을 망각한 채 한없이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는 사이 '세상의 평균'은 자꾸만 올라간다. 일류대학에 집착할수록 사교육비는 올라가고, 아파트에 목을 매면 집값은 뛰는 법이다. '다들 이렇게 살잖아' 하는 순간 모두가 그렇게 살아야 할 세상이 펼쳐진다. 

개인과 개인간의 투쟁이 아닌 공동체 전체의 연대와 공생으로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성장과 소비, 경쟁과 자기 이익에만 매달려 탈규제되고 개인주의화된 사회에서 탐욕은 결국 누구에게도 유익하지 않다. 경쟁 대신 협력을 선택해야 한다.

앨버트 아인슈타인이 말했듯이 문제들은 애초에 그 문제들을 만들어낸 사고 패턴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진로를 바꾸어야 하고 먼저 기차를 정지시켜야 한다. 사회경제적 악화와 불평등의 확산은 종국에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공격한다. 소수로의 부의 집중을 차단하고 공익과 공생을 위한 분배 시스템의 과감한 수술이 필요하다. 차기 정부의 국정 원리와 1차적인 목표는 마땅히 '불평등 해소'가 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 동녘 펴냄 / 2013.8 / 12,000원)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안규남 옮김, 동녘(2013)


태그:#지그문트 바우만, #불평등, #1대99, #자본주의, #소비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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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잘 살기 위해.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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