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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한드미마을은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시절 방문한 것으로 유명하다. 소백산 자락 오지의 작은 산골마을이다. 그런데 도시에서 십수명의 청년들이 몰려들어 '마을 월급쟁이'로 먹고 산다. 단순한 산골마을이나 체험휴양마을 단계는 이미 넘어섰다. 이들 젋은 마을시민들은 농촌체험·휴양마을 사업을 비롯, 농촌유학센터, 지역아동센터, 마을공동식당 등에 적재적소에 배치돼 일하고 있다.

이들은 무엇보다 마을공동체사업에서 농민 등 고령의 원주민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중요한 역할과 책임을 맡고 있다. 한드미마을의 남은 숙제는 마을양로원 '호스피탈리티 움'이다. 농촌유학센터의 아이들, 영농조합법인의 청년들과 마을양로원의 노인들이 어울려 사는 생활공동체가 목적이다.

십수명의 젊은 ‘마을월급쟁이’들이 하방해 일하는 단양 한드미마을
▲ 단양 한드미마을 십수명의 젊은 ‘마을월급쟁이’들이 하방해 일하는 단양 한드미마을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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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홍동면에는 '위대한 평민'들이 많이 산다. 지난 60여년 동안 위대한 평민을 길러온 대안학교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가 마을공동체의 중심을 잡고 있다. 2000년에 '마을발전100년계획'을 세운 문당리는 그 '마을만들기 설계도면'대로 마을이 진화하고 있다.

오늘날 문당리, 운월리를 비롯한 홍동면에는 농업, 농식품가공, 농촌관광, 교육, 문화, 공동체, 에너지 등을 주제로 50여개의 마을․지역공동체사업이 벌어지고 있다. 2011년부터는 순수 민간주도형 중간지원조직인 '지역센터 마을활력소'도 가동하고 있다. 홍동면을 넘어 홍성군의 지역자원을 네트워킹하려는 홍성지역협력네트워크도 홍동면의 '위대한 평민'들이 주도하고 있다.

경북에서 귀농인들이 선호하는 상주시는 공동체와 귀농·귀촌을 통합한 '상주공동체.귀농지원센터'를 통해 민간 주도의 중간지원조직의 힘을 키우고 있다. 상주농민회, 상주환경농업협회 등 지역 자생 '마을시민운동가'들이 지역을 살리는 '상주 다움' 자치와 연대의 사회적 자본 관계망을 다지고 있다.

지리산 실상사 들녘공동체를 품고 있는 남원 산내면에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마을, 마을과 세계를 잇는 지리산 공동체 '사회적협동조합 지리산이음'이 역동적이다. 특히 지역의 사랑방이자 플랫폼 역할을 하는 '지리산문화공간 토닥', '살래청춘식당' 등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마을시민운동'을 한판 벌이고 있다.

마을카페, 마을식당 등으로 자조하고 자급하려는 ‘마을시민운동’이 활발한 남원 산내면
▲ 살래청춘식당 마을카페, 마을식당 등으로 자조하고 자급하려는 ‘마을시민운동’이 활발한 남원 산내면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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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시민'으로 먹고 사는 100여가지 생활방식 

이처럼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할 것 없이 전국 각지에 도시민들의 하방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이전 귀농인들과는 일반적인 행색이나 목적지가 다소 다르다. 개별적인 귀농인이 아니라 마을과 지역을 생활과 활동의 공간적 범위로 염두에 두고 내려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 마을공동체는 물론 지역사회의 주체적 구성원이 되려는 자세와 포부를 준비하고 지참한다. 그저 도시민에서 농민이나 농촌주민으로 이주하는 수준에 그치는 귀농이 아니라, 도시난민에서 마을시민으로 생활의 방식과 삶의 가치관을 전환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지역사회에서 당당히 마을시민을 자처하며, 생활하고 활동하는 유형과 방식도 점점 다채로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단 자유롭고 진취적이고 창조적이고 혁신적이다. 굳이 기록과 평가의 편의를 위해서 '마을시민'의 유형을 분류하자면 경제, 생태, 교육, 문화 등으로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보는 관점과 주제 분야별로 얼마든지 다양하고 세부적인 사업영역과 직업군을 개발. 창출할 수 있다.

개중에는 농사를 짓는 '농부'의 역할이 농촌에서 가장 귀하게 인정받아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농부는 자의든 타의든, 국가의 식량주권,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공무원같은 성직을 감당한다. 다만 농사 일에 서툰 귀농인이 농부를 전업삼아 먹고사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농업이 아닌 반찬거리 자급자족 정도가 목표인 겸업 또는 부업 농부의 처지를 각오해야 한다. 그럼에도 농사 일은 비록 텃밭 수준일지언정 손에서 놓지 말아야 한다. 농촌마을을 지키는 농촌의 주민이자 마을시민으로서의 기본자세와 품성이다.

우선 농촌에서 '먹고 살 일거리와 일자리'를 책임지는 '경제적 마을시민'이 중요한 역할이다.  '마을기업'과 '마을시장'의 영역에서 주로 생활하고 활동한다. 마을기업의 사업분야는 친환경농부가 일하는 '마을농장', 농식품가공원으로 취직할 '마을공장', 직거래 유통상으로 근무하는 '마을가게', 그리고 도농교류 또는 농촌체험 지도사로 활동하는 '마을공원' 등으로 나뉜다. 요즘 6차산업이라는 이름으로 농장, 공장, 가게, 공원이 융복합적으로 묶여도 하나도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마을시장의 영역은 유럽의 라이파이젠 협동조합은행 같은 농민의 은행과 지역화폐를 유통시키는 대안은행을 아우르는 '마을은행'이 기반이다. 여기에 스위스 미그로(MIGROS) 협동조합의 모태가 된 '보따리 마을 상인'들이 모이는 '마을장터'가 결합된다. 이렇게 마을기업과 마을시장 관련 사업분야의 운영주체인 '경제적 마을시민'만으로도 얼마든지 '마을에서 먹고 살만한 일터와 일자리'는 만들 수 있다.   

마을시민들이 50여개 이상의 마을기업을 세우고 꾸리는 홍성 홍동면
▲ 홍성 홍동면 마을시민들이 50여개 이상의 마을기업을 세우고 꾸리는 홍성 홍동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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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적, 문화적, 생태적 마을시민들이 협동과 연대를

귀농인이나 원주민이 각자 맡은 바 '경제적 마을시민' 역할에만 충실해도 개인으로든, 마을공동체로든 어떻게든 먹고는 살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하방하면서 기대하고 소망하던 '사람 사는 행복한 마을공동체'는 결코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마을에서도 빵만으로는 먹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혼자만 잘 살면 아무 재미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마을시민에 교육적, 문화적, 생태적 마을시민들이 힘을 보태야 한다. 서로의 부족한 곳을 채워주며 협동하고 연대하면 생활마을공동체의 토대(프레임과 플랫폼)를 다질 수 있을 것이다.

교육 분야의 일자리는 '마을학교'와 '마을학원'의 해법으로 창출할 수 있다. 마을학교는 유소년부터 청소년까지 돌보는 어린이학교, 청년에서 노인까지 보살피는 어른학교가 모두 필요하다. 마을학원은 명상, 문학 등을 배우는 마음학원, 춤, 그림, 노래 등을 가르치는 몸학원으로 교과과정을 편성할 수 있다. 다양한 역량과 경험을 보유한 '마을시민'들은 마을학교와 마을학원에서 전문교사로서 소중하고 유용한 인적 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다.

문화 분야의 '마을생활원'에서는 마을펜션과 마을회관을 주요사업으로 한다. 마을카페, 마을공동식당을 비롯한 마을공동편의시설로 마을의 공동생활공간을 새로 디자인하면 된다. '마을문화관'은 마을도서관, 마을박물관 등의 마음문화관과 마을극장, 마을출판사 등 몸문화관을 바탕으로 한다. 사회복지사, 마을관리사 등 각 시설의 운영 및 관리자, 사서, 큐레이터, 공연예술인, 기자, 편집자 등은 도시에서 하던 일을 마을에서도 계속 할 수 있을 것이다.  

생태분야에서는 신재생에너지, 생태건축 등 엔지니어들이 적정기술 모델을 개발하고 제품화하는 '마을발전소가 마을의 활력과 동력을 책임진다. 마을을 인문과학학적, 사회과학적, 자연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컨설팅하는 '마을연구소' 등 '마을연구개발(R&D)센터'도 필요하다. 또 '마을체험캠프'를 통해 마을캠프, 자연캠프 등의 체험지도교사, 청소년지도사, 역사문화관광해설사의 일자리 수요와 시장을 만들 수 있다. 

독일의 생태수도 프라이부르크의 시민들이 생활하는 방식을 공부하러 간 마을시민들
▲ 프라이부르크 독일의 생태수도 프라이부르크의 시민들이 생활하는 방식을 공부하러 간 마을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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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먹여살려야 하는 '경제적 마을시민'의 책무

그렇다면 '경제적 마을시민'들이 마을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구체적 일상은 이런 모습과 방식일 것이다. '마을농장'은 친환경 농부들의 일터다. 좋은 먹거리를 생산하는 '착한 농사'를 지으려고 농약도 화학비료도 주지 않는다. 그러니 생산량이나 농업소득이 좋을리 없다.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농민 기본소득' 또는 '직불금'을 지급해야 하는 이유다. 이들이 생계 걱정에 짓눌리지 않고 유기농사라는 공익적 공공노동에 충실히 복무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소득을 보전해줘야 한다. 

'마을공장'은 마을방앗간으로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신선하게 오래 보존하기 어려운 저가격, 저부가가치의 1차 생산 농산물로는 수익성은 고사하고 채산성도 맞출 수 없다. 그래서 2차 농식품으로 가공을 하는 수 밖에 없다. 다만 수익성만을 좇는 장사꾼 같은 제조업자가 되려는 게 아니니 마을에서 공동으로 생산하는 유기농산물에 한해 원재료로 삼는다는 원칙을 세워둘 필요가 있다. 오스트리아 티롤에서 국가 최고의 빵을 생산하는 농부는 자기가 생산하는 밀만을 원재료로 삼는다. 그래서 시장에 내다팔 수 있을만큼 제품을 많이 생산하지 못한다. 그렇게 무리하게 돈을 많이 벌 생각도 하지 않는다.

더욱이 순정한 농부들은 1차 농산물이나 2차 농식품이나 시장에 내다파는 재주가 없다. 그래서 직거래로 오프라인과 온라인 시장을 넘나들며 로컬푸드며 꾸러미를 유통할 수 있는 3차 도농 직거래 유통상이 마을에 함께 살아야 한다. 결국 홍보, 광고, 영업을 잘 하는 유능한 마케터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 여기에 도농교류사업자, 농촌체험 지도사 등이 운영하는 '마을공원' 프로그램도 연계해 가동할 수 있다. 이렇게 1차를 기반으로 2차와 3차가 결합되는 진정한 정통 6차사업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마을의 '마을은행'은 단순히 정부의 화폐를 팔고사는 곳이 아니다. 이름만 협동조합인 한국의 농협이 하지 못하는 기능을 대신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화폐(( Local Exchang & Trading System )도 함께 거래되는 일종의 대안금융기관의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무엇보다 지난 십수년간의 농촌지역개발 토건사업의 여파로 지역에 산재한 각종 유휴시설들도 이를 필요로 하는 마을시민들로 하여금 전향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칭 농촌지역 유휴시설 지역공유 사회적경제자산은행'이 필요하다. 또 상품, 현물, 인력 등이 거래되는 프리마켓과 플리마켓이 할인마트와 5일장의 빈 곳을 채워주는 '마을장터'도 경제적 마을시민들이 나서서 꾸려야 한다.

마을시민으로 먹고사는 100여가지 일거리와 일자리
▲ 마을시민들 마을시민으로 먹고사는 100여가지 일거리와 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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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마을학개론(마을에서 먹고 사는 법) : 귀농을 하거나 자발적 하방을 해서 마을에서 먹고 살려면,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마을이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마을, 공동체, 마을시민. 마을기업, 대안마을, 대안농정, 그리고 대안사회를 열심히 공부해서 체화해야 한다. 그러면 마을에서 사람답게 먹고 살 수 있다.



태그:#마을학개론, #마을시민, #마을공장, #마을은행, #마을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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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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