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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 친구',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 '남쪽으로 튀어', '제보자' 등을 연출한 임순례(57) 감독이 지난해 9월 말 인천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으로 선임됐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그녀는 바빴다.

해가 바뀌어 설 연휴가 끝나고 다시 전화했지만, 이번엔 새 영화 해외촬영으로 바빠 인터뷰 약속을 서너 번 바꿔야했다. 어렵게 약속을 잡은 날이 공교롭게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이 있던 지난 10일이었다. 그것도 선고가 시작된 오전 11시였다. 임순례 운영위원장과 인천영상위원회 직원들과 함께 역사적인 선고 방송을 다 지켜본 후에야 인터뷰를 시작했다.

인천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

  임순례 운영위원장은 동물보호시민단체인 카라(KARA:Korea Animal Rights Advocates) 대표를 맡고 있다. 기르던 백구를 잃어버려 찾다가 알게 된 단체라고 한다.
 임순례 운영위원장은 동물보호시민단체인 카라(KARA:Korea Animal Rights Advocates) 대표를 맡고 있다. 기르던 백구를 잃어버려 찾다가 알게 된 단체라고 한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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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위원장으로 취임할 무렵부터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준비하느라 바빴습니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대표도 맡고 있는데, 영화를 찍을 때는 다른 일에 집중할 수가 없어요. 그밖에는 여러 활동을 조율해서 합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엔 사계절 영상이 모두 담긴다. 최근까지 겨울 장면을 찍느라 경황이 없었다. 하지만 영상위원회 활동을 중단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 촬영장에서도 긴급한 업무는 전자결재시스템으로 처리하고 있다.

"다른 지역 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도 배우와 감독이 하는 경우가 많아서 비슷할 거예요. 인천영상위원회 식구들이 경험이 많고 실무능력도 뛰어나서 어려움이 없습니다. 또한 전임 권칠인 감독이 영상위원회 방향을 잘 잡아서 권 감독이 제게 제안했을 때 부담은 적었습니다. 사실 영화를 찍고 '카라' 활동을 하는 것만도 벅찼지만 인천 출신으로 작은 부분에라도 기여할 수 있는 게 있다면 해보자는 생각에 여러 번 고사하다가 받아들였습니다."

인천 부평구 구산동에서 태어나 부개초등학교와 북인천여중, 인일여고를 다닌 임 운영위원장은 현재 경기도 양평에 살고 있다. 그녀의 부모는 지금도 구산동에 살고 있다.

"대학 졸업 때까지 인천에서 지냈어요. 인일여고가 있던 동인천과 신포시장은 지금도 친숙합니다. 인천이란 도시는 상당히 매력적이에요. 다양한 문화가 섞인 곳이라 '인천사람'이라는 정체성이 없다고들 하는데, 그게 정체성일 수 있죠. 인천사람들은 쿨(cool)한 거 같아요. 최초 개항지라 신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도시답게 새로운 문화의 수용도 빠르고, 이질적인 것을 균형 잡힌 사고로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봐요. 지형적으로는 바다와 갯벌, 산이 있고, 근현대 건축물과 옛 가옥이 있는 원도심이 그대로 보존돼있는 곳도 상당하잖아요. 송도나 청라 등, 국제도시로서 면모도 갖추고 있으니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매력이 있는 도시입니다."

영상위원회, 인천의 숨겨진 역사 발굴과 다양성 영화 상영

2006년에 설립된 인천영상위원회는 초기에는 인천문화재단 소속으로 영화나 드라마 등의 로케이션(=야외촬영) 유치에 힘썼고, 지역 영상산업과 문화 발전에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자 2013년에 사단법인으로 독립했다.

독립한 후 촬영 유치나 지원활동뿐만 아니라 영상산업 육성을 위한 인프라 구축, 정책 연구, 영상물 제작 활성화를 위한 지원 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아울러 인천시민들이 영상문화를 더 다양하게 접할 수 있게 영화제를 개최하고, 다양성 영화 상영과 찾아가는 영화관 등의 영상문화 저변 확대 사업도 하고 있다.

"영상위원회의 기능이 여러 가지이지만 방송이나 영화 등 영상으로 인천을 소개하는 일이 영상위원회 활동의 시작입니다. 하지만 단순한 홍보를 떠나, 인천 출신이거나 인천에 애정이 있고 현재 인천에 살고 있는 영상예술인들을 후원하고 인천의 숨겨진 역사를 영상매체로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또한 인천시민들이 상업영화뿐만 아니라 예술영화나 독립영화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상위원회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점점 넓어지고 커져가고 있습니다."

"자퇴하지 않았다면 영화를 택하지 않았을 수도"
   
 임순례 운영위원장.
 임순례 운영위원장.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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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영화감독을 했는지를 물으니, 특별한 경험을 들려줬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자퇴했어요. 초등학교와 중학교 다닐 때는 학교 수업만 들어도 성적이 괜찮았는데, 인일여고가 명문고이다 보니 애들이 열심히 공부하니까 따라가기가 어려워 공부에 흥미를 못 느꼈어요. 고3 1학기 때 첫 시험을 봤는데 대학 진학반 학생들 성적을 모두 공개한 거예요. 1등부터 360등까지 등수를 붙였는데 353등에 내 이름이 나와서 충격을 받았죠. 기초가 부족해 학교 수업을 못 따라가 독학으로 대학을 가겠다는 생각에 자퇴했습니다."

하지만 학교를 그만두고 혼자 공부하기는 쉽지 않았다. 늦게 일어나서 만화책이나 소설책을 보거나 특별히 하고 싶은 게 없어 빈둥대다보니 살이 찌기 시작했고 그 때 찐 살이 지금까지 붙어있다. 그렇게 2년을 보낸 후 정신을 차리고 검정고시로 고교를 졸업하고 한양대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3학년 때 영문과 친구와 프랑스문화원에서 프랑스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내 취향이어서 끌리더라고요. 여고 다닐 때도 교복 입고 영화관에 많이 다녔어요. 특히 고교생일 때 특별한 경험이 있어서 지금의 제가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인일여고는 교정이 예뻐 예전엔 촬영장으로 종종 이용됐다. 1978년에 당대 최고의 스타인 임예진 주연의 영화 '쌍무지개 뜨는 언덕'을 찍으러 왔다.

"저와 동갑인 임예진씨가 우리 반에서 촬영을 했어요. 3일간 계속 촬영했는데 풀 샷((Full shot)이 많아서 임예진씨 바로 앞에 앉아 있던 저는 움직이지 못하고 계속 앉아있어야 했어요. 친구들은 쉬는 시간에 임예진씨 주변에 모여 사인 받고 관심을 보였는데, 저는 그때 영화감독한테 시선이 가더라고요."

임 운영위원장은 대학을 준비를 할 때도 연극영화과를 고민했지만, 포기했다. 당시는 연출보다는 연기 위주의 학과였기 때문이다. 한양대를 다닐 때도 교양과목으로 영화 관련 수업을 들으려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다.

그러다 프랑스 영화를 보고 문화적 충격을 받아 영화를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당시 타베르니에 감독의 '생 폴의 시계상' 등, 누벨바그(Nouvelle Vague: 새로운 물결(New Wave)이라는 뜻의 프랑스 영화계의 흐름) 영화에 매료된 임 운영위원장은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취직할 기회도, 교수가 될 수 있던 기회도 박차고 영화를 공부하러 먼 길을 떠났다.

"1984년 말이니까 한국에 영화산업이 발달했던 것도 아니고, 더구나 롤(role)모델이 될 만한 여성 영화감독이 없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직업을 택할 수도 있었지만 '보장된 게 없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라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때 자퇴하지 않았다면 영화를 택하지 않을 수도 있었어요. 메인스트림(=주류)에서 벗어난 경험을 해보니까 두려움도 없어지고 부딪쳐보자는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영화의 길을 선택한 건 잘 한 거 같아요. 한 번도 후회해본 적 없습니다."

"모든 영화에 제 모습과 기질이 녹아있어"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의 한 장면.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의 한 장면.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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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대학원 연극영화과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1988년 프랑스 파리로 가 파리 제8대학교에서 영화학 석사학위를 받은 임 운영위원장은 1994년에 귀국한 뒤 여균동 감독의 연출부에서 일했다. 그해 첫 영화인 단편 '우중산책'을 만들었다. 서울단편영화제에서 '대상'과 '젊은 비평가상'을 수상하며 영화감독으로 세상에 이름을 드러냈다.

1996년 첫 장편 '세 친구'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 평론가들이 주는 넷팩상을 받았고, 2001년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감독상과 38회 백상예술대상 작품상을, 2008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29회 청룡영화상 최우수 작품상과 44회 백상예술대상 작품상을 수상하며 감독으로서 입지를 굳혔다.

그밖에도 많은 작품이 있는데, 애착이 가는 영화나 배우가 있는지 물었다.

"제가 각본을 쓰고 연출한 영화는 모두 제 모습과 기질이 녹아있어요. '세 친구'의 '삼겹'이는 살 찐 제 모습이고, 예술적이고 폭력을 싫어하는 '섬세'도 제 모습입니다. 직접 쓴 영화시나리오는 대부분 주류에서 낙오된 아웃사이더 정서를 갖고 있어요. 그런 영화에 마니아들이 있지만, 흥행은 어렵죠. '우생순'이나 '남쪽으로 튀어', '제보자'는 연출을 의뢰받은 작품이지만 사회 소외계층의 이야기라, 제 관심영역에 있는 작품이라 선택했습니다. 갈등이요? 별로 없어요. 상업영화라 하더라도 저와 결이 맞지 않는 영화는 안 합니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리틀 포레스트'도 자연주의에 관심이 많아 선택한 영화입니다. 제가 프랑스 영화를 보고 감명 받았듯이 깊은 울림을 주는 것도 좋지만, 많은 대중이 보고 잠시라도 위안을 받거나 성찰할 수 있으면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기억에 남는 배우로는 박해일과 박원상, 문소리를 꼽았다. 박해일은 그의 데뷔작인 2001년 '와이키키 브라더스' 이후 '제보자'에서 15년 만에 다시 만났는데, 엄청 성장해 친구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박원상은 '세 친구' 때 단역으로 출연했는데 그 후 제가 만든 모든 영화에 출연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얼굴과 성격이 안 맞는 시나리오도 있지만 시나리오를 고쳐서라도 단역이라도 꼭 등장을 시켰어요. '리틀 포레스트'에도 우편배달부 역할을 줬습니다. 그런 친구가 있다는 게 큰 힘이지요. 문소리씨는 '우생순'과 '날아라 펭귄' 이후에 '리틀 포레스트'에서 다시 만났는데, 배우들이 연륜이 쌓이고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게 감독으로는 큰 재미입니다. 영화가 아니더라도 사는 얘기도 나눌 수 있는 게 참 좋습니다."

지금 촬영하고 있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내년 봄에 개봉할 예정이다. 차기작으로는 이중섭 화백에 대한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관객들은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영화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제 나이도 외국 영화계에서는 많은 건 아니지만 한국 영화계에서는 원로에 가까울 정도죠. 세대 간 간극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콘텐츠로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작자가 됐으면 좋겠어요. 영화뿐만 아니라 영화를 만들지 않더라도 젊은 친구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늙어 가면 좋을 것 같네요."

덧붙이는 글 | <시사인천>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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