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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탄핵을 끌어낸 촛불 혁명은 다음 단계인 박근혜 구속과 정치개혁을 향해 달리고 있다. 정치개혁 단계가 완성되면, 우리나라는 말 그대로 '새 나라'가 된다. 그런데 이 중대한 고비에서 홍석현이란 인물이 등장해 시선을 끌고 있다. 

지난 18일 <중앙일보> 및 JTBC 회장직 사퇴 의사를 밝힐 때 임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홍석현은 "최근 몇 개월, 탄핵 정국을 지켜보면서 저는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라면서 "광화문광장의 꺼지지 않는 촛불과 서울광장에 나부끼는 태극기를 보며 밤잠을 이루지 못한 채 깊은 고뇌에 잠기기도 했습니다"라고 심정을 밝혔다. 자신의 회장직 사퇴가 촛불 혁명으로 인한 심경 변화와 관련이 있음을 밝힌 것이다. 

그러면서 홍석현은 "오랜 고민 끝에 저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기로 결심했습니다"라고 말한 뒤 "구체적으로 저는 남북관계, 일자리, 사회통합, 교육, 문화 등 대한민국이 새롭게 거듭나는 데 필요한 시대적 과제들에 대한 답을 찾고 함께 풀어갈 것입니다"란 의지를 천명했다. 

이메일 내용을 보면,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홍석현 전 회장이 국가 지도자급 위치에서 모종의 역할을 하고자 하는 게 분명하다. 촛불 혁명으로 대한민국이 기로에 선 지금, 이 나라를 모종의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싶어 하는 게 확실하다. 

홍진기.
 홍진기.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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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시민혁명의 고비 때 등장해서 역사 흐름에 영향을 주고자 하는 시도는 홍 회장의 아버지인 홍진기한테도 있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행한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1917년 경기도 고양에서 출생한 홍진기는 일제강점기 막판인 1940년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경성지방법원과 전주지방법원에서 근무한 경력을 갖고 있다.

해방 뒤 이승만 정권에 참여한 홍진기는 정권 2인자 이기붕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1959년에 이기붕 집을 출입하면서 선물 공세를 펼친 사람들의 명단이 나오는 <전 민회의장 이기붕가 출입인 명부>에도 그의 이름이 있다. 그는 단순히 이 명부에 이름을 올리는 정도가 아니라, 정권의 '두뇌'로서 이승만 대통령의 신임까지 받았다. 이 정권에서 그는 한일회담 대표와 법무·내무 장관 등을 역임했다.

4.19 혁명 당시 발포 책임자 홍진기

그런데 1960년 3·15 부정선거로 4월 혁명의 열기가 뜨거워지던 상황에서, 홍진기는 이 열기를 끄겠다며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3월 23일 치안 책임자인 내무장관에 임명된 그는 1960년 판 촛불 혁명의 소방수 역할에 뛰어들었다. 혁명의 흐름에 영향을 주고 혁명의 불줄기를 끄고자 했던 것이다.

그 같은 의도 하에 홍진기가 벌인 대표적인 일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4월 19일의 발포 명령이다. 이로 인해 경무대(청와대)를 향해 평화 행진을 하던 시위대한테 총탄 세례가 퍼부어졌고, 이날 서울 시내에서 102명이 경찰 총격으로 사망하고 463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것은 4월 19일 하루의 통계일 뿐이다. 이 발포 명령을 내린 사람이 바로 홍진기였다.

1960년 6월 14일 자 <동아일보>에 따르면, 처음 한동안은 서울시경 유충렬 국장이 발포 책임자로 지목을 받았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유충렬의 배후에 홍진기 내무장관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위 보도에 따르면, 4월 19일 오전 9시 경무대에 들어간 홍진기는 오후 1시경 유충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사태가 위급하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는 연락이었다. 이에 대해 홍진기는 "사태가 위급하면 발포하시오"라고 명령했다. 

4월 혁명. 서울시 광화문광장 동편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4월 혁명. 서울시 광화문광장 동편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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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홍진기는 자신이 발포 명령을 내렸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왕명'을 조작하려 했다. 2시 40분에 대통령이 서명한 경비 계엄령이 그보다 앞선 1시에 서명된 것처럼 조작하려 한 것이다.

비상계엄이 발포되면 계엄사령관이 계엄지역의 행정·사법 사무를 관장하는 데 비해, 경비계엄이 발포되면 사령관이 해당 지역의 행정사무만 관장한다. 이 같은 경비 계엄령의 서명 시각을 조작함으로써, 홍진기는 1시경에 이뤄진 자신의 발포 명령이 대통령의 명령에 의한 것처럼 꾸미고자 했다.

이처럼 홍진기는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와 독재정치와 민생파탄을 응징하고 새로운 민주국가를 수립하고자 하는 1960년 판 촛불의 열망에 대해 발포명령으로 응답했다. 2016년 연말에 '촛불은 곧 꺼질 것'이라는 엉터리 예언을 한 김진태보다도 훨씬 나쁜 사람이었다. 홍진기는 '촛불아 꺼져라'라고 저주하는 김진태의 망언 수준을 뛰어넘어, 촛불을 총으로 끄려 했던 인물이다. 그런 식으로 역사의 불줄기를 바꾸고자 했던 것이다.

결국 홍진기는 그 일로 인해 1961년 9월 30일 혁명재판소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죽지 않았다. 이동연의 <아! 대한민국, 재벌공화국>에 따르면, 홍진기는 삼성그룹 이병철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다. "삼성 이병철의 구명 운동으로 사면되었다. 후에 역시 이병철의 도움으로 <중앙일보>의 사주가 되고, 두 사람은 사돈이 되었다"고 이 책은 말한다.

4월 혁명 뒤에 재판을 받는 홍진기(왼쪽).
 4월 혁명 뒤에 재판을 받는 홍진기(왼쪽).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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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포 명령 외에 또 다른 방법으로도 홍진기는 역사의 물살을 바꾸고자 했다. 시민 대중이 주도하는 혁명 정국을 국회가 주도하는 개헌 정국으로 전환시키고자 했다. 그런 식으로 이승만의 하야를 막고자 했던 것이다.

이기붕 사퇴 고려 성명에도 개입

이를 위해 홍진기가 벌인 일이 이기붕의 '사퇴 고려 성명'(1960년 4월 23일)에 개입하는 것이다. 부정선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부통령 당선자 신분에서 사퇴하는 것을 고려할 수도 있다는 장난 같은 성명서가 나오는 데 개입했던 것이다.

<이화사학연구> 제40집에 실린 역사학자 이혜영의 '4·19 직후 정국수습 논의와 내각책임제 개헌'이란 논문에 따르면, 애당초 이기붕이 준비한 것은 사퇴 고려 성명이 아니라 사퇴 성명이었다. 발표 당일 아침 홍진기 등이 이기붕을 찾아가 설득 작업을 벌인 끝에 '사퇴한다'가 '사퇴를 고려할 수도 있다'는 쪽으로 바뀐 것이다.

홍진기 등의 입김으로 새로 작성된 성명서에는 '사퇴 고려'뿐 아니라 '내각제 개헌을 포함한 정치개혁을 고려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싫어하는 내각제 개헌을 수용하고 정치개혁을 추진하는 일을 고려할 수도 있다는 문구를 넣었다. 이런 문구를 발표해서 여론을 바꾸고, 이승만 하야를 촉구하는 국민의 관심을 딴 데로 돌리겠다는 게 홍진기의 계산이었다. 그렇게 해서 이승만 정권을 살려내고 4월 혁명을 무산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4월 혁명이 결과적으로 흐지부지하게 된 데는 홍진기 같은 이들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시민혁명을 무산시키기 위한 그들의 집요한 노력이 있었기에, 4월 혁명으로 출범한 민주당 정권이 제 기능을 못 하고 박정희 장군의 5·16 쿠데타로 시민혁명이 결국 무산되고 만 것이다.

홍석현, 아버지와 다른 길을 가기를 기대한다

2017년 3월, 홍진기의 아들 홍석현은 촛불 혁명 고비에서 대한민국을 바꿔보겠다며 무대 전면으로 올라섰다.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시민혁명 고비에서 역사 흐름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가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홍석현이 앞으로 어떤 길을 갈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그가 아버지 홍진기와 다른 길을 갈 여지도 없지 않다. 홍석현과 손석희의 JTBC는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폭로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그래서 JTBC와 손석희는 지난 수개월간 친박 집회에서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대한민국을 바꾸겠다고 나선 홍석현 역시 그 같은 영광스러운 지탄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전혀 없지 않다.

홍석현이 1960년 판 시민혁명을 거스르려 했던 아버지의 길을 따르지 않고 촛불 혁명을 반영하는 정치개혁을 추진한다면, 지난날 아버지가 범한 과오는 그의 공적에 의해 상당 부분 묻힐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아버지와 다른 길을 가기를 기대해본다.


태그:#홍석현, #홍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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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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