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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위쪽에 써진 자막이 쉐어타이핑을 이용해 실시간 문자통역해서 나오는 것이다.
▲ 총회 시작을 알리는 영상 화면 위쪽에 써진 자막이 쉐어타이핑을 이용해 실시간 문자통역해서 나오는 것이다.
ⓒ AUD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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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총회 시즌이다. 쓸데없이 오지랖만 넓은 나는 이 즈음이면 며칠 간격으로 열리는 총회에 참석하기 바쁘다. 갈 때마다 반가운 회원들을 만나고 수다 떠는 즐거움은 두말할 나위 없지만 문제는 총회가 진행될 때 생긴다.

청각장애 6급(숫자가 클수록 장애정도가 경증임, 장애등급은 1~6까지 있다)을 가진 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에 가면 말소리를 정확히 듣지 못한다. 말하는 사람이 나를 보고 말하지 않고 모두가 듣도록 말하기 때문이다. 입모양을 봐야 정확히 들을 수 있는 나는, 총회나 토론회 또는 세미나를 하는 곳에 가면 종종 의기소침해진다.

지난 토요일(18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문자통역을 제공하는 사회적협동조합 AUD(Auditory Universal Design의 약자- 청각의 보편적 설계. 청각장애가 있든 없든 누구나 듣는데 지장이 없는 환경)가 총회를 했다(아래 AUD). 나는 AUD 사회적협동조합의 조합원이이므로 당연히 참석했다.

AUD는 실시간 문자통역서비스인 '쉐어타이핑'(Share Typing)을 개발해 강연, 회의, 공연 등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해 문자통역 서비스를 해준다. 일반적으로 청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의사소통 수단은 '수화'라고 알고 있지만 수화를 모르는 청각장애인들도 많다. 이들을 위해 속기사들이 수화 대신 문자로 통역을 해주는 곳이 AUD이다.

작년 4월에 혁신파크에 갔다가 우연히 벽에 붙은 A4 한 장짜리 광고를 보았다.

"청각장애인을 위해 소리로 나오는 모든 내용을 문자로 실시간 통역해 준다. 궁금하신 분은 연락 달라."

나는 깜짝 놀랐다. 이런 곳이 있었다니, 수화를 모르는 나에게는 아주 유용한 서비스이다. 자세한 내용이 알고 싶어서 혁신파크 안에 있는 AUD를 방문했고,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두어 달 후, 내가 속해 있는 모임에서 세미나를 하기로 했다.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기본소득'에 관한 내용이다. 나는 모임 사람들에게 문자로 통역해 주는 사회적 협동조합이 있는데 그곳에 의뢰해 문자통역 서비스를 받고 싶다고 했다.

회원들은 모두 흔쾌히 동의했다. 물론 이 서비스를 받을 때는 비용이 든다. 기관에서 의뢰 했을 때는 1시간을 기본으로 7만 원이고 개인이 서비스를 요청하는 경우에는 2만2000원이다. 나는 개인문자통역 서비스를 이용했다.

드디어 세미나를 하는 날이 되었다. 문자통역사가 노트북과 속기용 자판을 들고 세미나 하는 장소에 왔다. 쉐어타이핑이라는 사이트에 들어가서 회원 가입을 하고 개설한 방에 들어가면 세미나 할 때 말하는 모든 내용을 자막으로 볼 수 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이 토씨 하나 빠지지 않고 자막으로 보였다. 정말 신기했다. 문자통역사가 타이핑을 한 덕분이다. 평소에는 내용을 정확히 듣지 못해 질문을 잘하지 않는데 이날은 거침없이 질문을 할 수 있었다. 너무 좋았다.

수화를 배웠다면 이러한 불편함이 없었을까

문자통역사의 무릎에 놓인 것이 속기용 타자기이다. 쉐어타이핑 프로그램을 이용해 이 타자기로 타이핑하면 어플을 통해 문자를 볼 수 있다.
▲ 문자통역사 문자통역사의 무릎에 놓인 것이 속기용 타자기이다. 쉐어타이핑 프로그램을 이용해 이 타자기로 타이핑하면 어플을 통해 문자를 볼 수 있다.
ⓒ AUD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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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화를 배우지 않았다. 청력이 안 좋은 것은 맞지만 굳이 수화를 배울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든 교육과정을 일반학교에서 마쳤다. 선생님들의 말씀을 100% 듣지 못해 힘들었지만 착한 친구들의 도움 덕분에 나의 장애에 대해서 특별히 민감해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회에 나오니 달랐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회는 장애가 있는 나를 배려할 만큼 넉넉하지 않았다. 한 번 말해서 못 알아 들으면 반복해서 말해 주는 것을 귀찮아했고 모든 건 장애를 가지고 있는 내가 감당해야 했다. 왠지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장애를 가지고 싶어서 가진 것도 아닌데…. 거기다 나의 왕성한 호기심은 웬만큼 인내심이 있는 사람을 만나지 않고서는 해결하기 힘들었다.

수화를 배웠다면 이러한 불편함이 없었을까? 지금은 수화통역이 보편화 되었지만 이십여 년 전만 해도 어림없는 소리였다. 좋아하는 드라마 한 번 보는 것도 자유롭지 못했으니까. 시대가 바뀌고 장애인 차별을 없애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장애인 당사자가 끊임없이 싸웠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공식 자리에서는 수화통역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고, 공중파 방송뿐만 아니라 케이블 방송까지 실시간 자막이 나오게 되었다.

AUD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든 박원진 이사장은 청각장애 2급이다. 특수학교 특수교사로 근무하던 어느 날, 교재를 보다가 "빵을 팔기 위해서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을 위해서 빵을 판다"는 사회적기업의 역할을 읽게 되었단다. 수익이 목적이 아닌 사람을 우선시 하는 사회적기업이 인상적이어서 그와 관련된 국내외 사례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2012년 고용노동부가 주최하는 '소셜벤처 경연대회'에 참가해 3등을 했다.

"청각장애인들의 원만한 소통을 위해 애플리케이션 기반의 문자통역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아이디어를 냈어요. 쉐어타이핑의 기초가 되는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또 한 번 수상을 했거든요."

그는 이와 같은 두 번의 수상을 계기로 사회적기업가로 활동하겠다는 마음을 먹었고 2014년 AUD 사회적협동조합을 창립했다.

쉐어타이핑을 통한 문자통역은 나에게 정말 필요한 서비스이다. 작년 10월부터 매주 토요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가 열릴 때마다 무대에는 항상 수화통역사가 나왔다. 심지어 노래까지 실감나게 수화로 바꿔서 보여주었다.

'무대 영상에 문자도 나오면 참 좋겠다'고 혼자 중얼거렸다. 내 간절한 마음이 어떻게 닿았는지 모르지만 드디어 AUD에서도 촛불집회 때 문자통역을 한다는 소식이 문자로 왔다. 나는 너무 좋아서 폴짝폴짝 뛰었다.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박근혜는 대통령직에서 물러 날 생각을 하지 않아, 집회는 한주도 쉬지 않고 열렸다.

6차와 7차 촛불집회 때였다. 핸드폰으로 쉐어타이핑 앱에 들어갔더니 무대에서 말하는 모든 소리가 앱에 떴다. 속이 시원했다. 집회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가 횃불처럼 타올랐다. 날씨가 추워서 핸드폰을 든 손이 얼어 감각이 없는지도 몰랐다. 박근혜를 물러나게 하려면 똑똑히 들어야 하니까 이정도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겼다.

그 날 문자통역 하느라 고생한 문자통역사들은 다행히 재택근무였다. 촛불집회 상황은 인터넷으로도 중계되었으니 중계방송을 들으며 집에서 타이핑 했던 것이다. 이것을 원격지원 서비스라고 한다. 예를 들어, 청각장애인이 교회에 가서 설교를 듣고 싶은데 교회가 너무 먼 곳에 있으면 문자 통역사는 교회에 직접 가지 않고 교회에서 송출하는 방송을 보며 집에서 타이핑을 하는 것이다.

2014년 조합원 6명으로 출발한 AUD, 현재 130명으로 늘어

문자통역사는 저 영상을 보면서 집에서 쉐어타이핑 프로그램으로 타이핑한다. 청각장애인은  핸드폰 어플을 통해 집회 내용을 자신이 있는 곳에서 볼 수 있다.
▲ 촛불집회 영상 문자통역 문자통역사는 저 영상을 보면서 집에서 쉐어타이핑 프로그램으로 타이핑한다. 청각장애인은 핸드폰 어플을 통해 집회 내용을 자신이 있는 곳에서 볼 수 있다.
ⓒ AUD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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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토요일(18일), AUD 총회는 네 번째를 맞았다. 2014년 6명으로 출발한 AUD의 조합원은 현재 130명으로 늘어났다. 위임장을 낸 사람까지 포함해 60명의 조합원이 참석해 정족수를 훨씬 넘겼다. 월 매출도 2014년 340만 원에서 2016년 6200만 원으로 늘었다. 실로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그 만큼 문자통역을 필요로 하는 청각장애인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총회에서는 조합원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쏟아졌다. 한 조합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박근혜가 탄핵되어 곧 대선이 있다. 이제부터 각 정당의 후보들이 미디어나 SNS를 통해 정책 토론회를 한다. 티브이는 자막이 나와서 괜찮은데, SNS의 동영상은 자막이 안 나온다.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고 어디에 건의해야 할지..."

총회를 진행하는 의장(박원진 이사장)은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AUD가 앞장서서 문제를 해결하면 좋은데 그런 문제가 '장애인차별금지' 정책으로 대처해야 하는 부분과 수화통역이 있는데 굳이 문자통역을 또 해야 하냐고 하는 인식들 때문에 쉽지 않다. 하지만 각 정당에 적극적으로 건의해보겠다."

열띤 토론 속에서 총회가 끝났다. 세 명의 직원과 총회를 준비하고 진행하느라 피곤함에 찌든 박원진 이사장에게 뒤풀이 자리에서 내가 말했다.

"주변에서 다 망한다고 창업하지 말라고 했다던데 안 망하고 여기까지 왔네요. 저는 이제 AUD가 있어서 토론회 이런데 가서도 내용 다 듣고 질문도 할 수 있게 됐어요.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옆에 있던 문자통역사도 거든다.

"제가 지금 20대 후반인데 친구들이 다 계약직으로 일해요. 그런데 저는 (사회적기업이라 비록 급여는 작아도)정규직이잖아요. 속기사 자격증 있어도 정규직으로 채용되기가 힘들거든요. AUD가 안 망하고 오래오래 있었으면 좋겠어요."

문자통역사의 말에 가슴 아팠다. 나 역시 AUD가 망하면 전처럼 다시 의기소침해져서 토론회, 워크숍, 세미나 집회 등에 가면 질문은 안 하고 뒤풀이에서 술만 마시다가 올지 모른다. 그러니 AUD같은 사회적협동조합이 망하지 않게 문자통역도 수화통역처럼 의무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법안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

최저임금으로 일하는 직원조합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사회적 협동조합 지원법도 바꿔야하고. 무엇보다 조합원을 늘려야 하니까 지인들을 꼬셔야 한다. 갑자기 할 일이 많아졌다. 이런 일을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박근혜를 끌어내린 시민들의 힘, 그거 좀 빌리자고 하면 오버일까?

이 화면을 보고 문자통역사가 자막을 타이핑했다. 그날 나는 너무 감격스러웠다. 국회에서 박근혜 탄핵이 가결된 날이기도 하다.
▲ 촛불집회시 자막 송출 이 화면을 보고 문자통역사가 자막을 타이핑했다. 그날 나는 너무 감격스러웠다. 국회에서 박근혜 탄핵이 가결된 날이기도 하다.
ⓒ AUD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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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AUD 사회적협동조합 홈페이지 주소(audsc.org)



태그:#문자통역, #AUD, #사회적협동조합, #박원진,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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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 인터뷰집,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를 썼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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