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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경찰의 수사는 검찰 지휘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체포·구속·압수·수색 등의 영장청구는 오직 검찰만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경찰의 수사는 검찰 지휘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체포·구속·압수·수색 등의 영장청구는 오직 검찰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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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 제12조 제3항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 다만, 현행범인인 경우와 장기 3년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고 도피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을 때에는 사후에 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

2000년 10월 6일 미국 방송 드라마 역사에 획을 긋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의 CBS 방송이 범죄수사 드라마인 <CSI 라스베이거스(CSI: Las Vegas)>를 방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CSI 라스베이거스>는 지난해 시즌 15까지 제작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CSI 라스베이거스>가 인기를 끌자 <CSI 마이애미(CSI: Miami)>, <CSI 뉴욕(CSI: NY)> 등 지역을 달리하는 CSI 시리즈가 제작되었다.

CSI로 시작된 미국의 범죄수사 드라마는 <크리미널 마인드(Criminal Mind)>, <멘탈리스트(The Mentalist)>, <메이저 크라임(Major Crimes)>, <캐슬(Castle)> 등 다양한 주제와 소재로 제작되어 지금까지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미국 범죄수사 드라마의 인기는 한국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케이블 채널뿐만 아니라 공중파 방송까지 미국 범죄수사 드라마를 수입하여 방송하였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뱀파이어 검사>, <처용>, <너를 기억해>, <특수사건전담반 TEN>, <너희들은 포위됐다> 등 다양한 범죄수사 드라마가 제작되기도 했다.

한국의 범죄수사 드라마가 인기 끌기 어려운 이유

그런데 한국의 범죄수사 드라마는 미국의 그것에 비하면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한국과 미국의 수사방식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범죄수사 드라마에는 검사가 등장하지 않는다. 반면 한국의 그것에는 비중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검사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아예 검사가 주인공인 드라마도 적지 않다. 미국의 검사는 법원에 형사사건의 재판을 요구하는 공소권과 재판절차를 유지하는 공소유지가 주된 임무다. 수사의 주체는 원칙적으로 경찰이다.

반면 한국의 검찰은 소추권은 물론 수사지휘권까지 가지고 있다. 그래서 경찰은 검찰의 지휘를 받아 수사할 뿐 수사의 주체가 될 수는 없다. 이에 더해 검사는 영장청구권까지 독점하고 있다. 검찰의 지휘 없이 경찰이 단독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수사에 관한 포괄적인 권한을 가진 미국 경찰은 사건 전반을 지휘하며 수사를 진행하는 반면 수사권이 검찰에 있는 한국의 경찰은 그럴 수 없다. 이러한 수사환경이 경찰이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범죄수사 드라마에도 영향을 미쳐 시나리오의 부실로 이어졌을 것이다. 때문에 <뱀파이어 검사>처럼 검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기도 하지만 검사는 주로 수사를 지휘하고 사건 현장은 경찰들이 담당하는 한국의 현실과 괴리되어 시청자들에게 큰 공감을 얻어내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헌법 제12조 제3항은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하여 영장주의를 선언하고 있다. 체포나 구속 등은 인신(人身)을 구속하는 행위로 신중을 기하여야 하기에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필수요건으로 규정한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눈여겨보아야 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다. 헌법이 영장청구권을 검사에게 독점적으로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구속영장 청구권자를 검사로 한정한 경우 세계적으로 드물어

외국의 입법례를 살펴보면 대부분 국가의 헌법은 영장주의를 규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과 같이 청구권자를 검사로 한정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청구권자에 대한 규정 자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수의 국가에서 영장청구권자는 형사소송법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미국은 거의 모든 주에서 영장청구권자를 경찰로 규정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검찰관·검찰사무관 또는 사법경찰원'으로 규정하여 경찰도 영장을 청구할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일본 형사소송법 제218조 제3항). 독일이나 프랑스 헌법 역시 영장주의만 규정하였을 뿐 청구권자를 제한하지는 않고 있다.

그렇다면 왜 유독 한국의 헌법만 영장청구권자를 검사로 한정 지은 것일까? 헌법 제12조 제3항이 도입된 시기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본 규정은 1962년 제5차 개헌에서 도입되었다. 제5호 헌법까지는 '수사기관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후에 영장의 교부를 청구할 수 있다'고 하여 영장청구권을 검사에 독점시키지 않고 수사기관 전체에 포괄적으로 부여하고 있었다.

제5차 개헌이 이루어진 1962년은 5.16 군사쿠데타가 발생한 1961년 다음 해다. 당시는 군과 검찰에 국가의 모든 권력이 집중되던 시기였다. 때문에 시기적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쿠데타로 집권한 세력에게 강력한 검찰의 권한이 필요했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영장청구권이 검찰에 독점된 이유일 것이다.

검찰이 연루된 비리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근래에만 2016년 7월 18일 진경준 전 검사장이 뇌물수수혐의로 구속되었고 2017년 2월 7일 김형준 전 부장검사는 동일한 혐의로 징역 2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무엇이든 한곳에 모이면 썩을 수밖에 없다. 권력 역시 마찬가지다. 수사, 공소, 영장청구 등 형사 절차와 관련된 거의 모든 권한을 독점한 한국 검찰에서 비리 사건이 끊이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굵직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언제나 특별검찰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그리고 특검의 수사내용은 대부분 검찰의 그것보다 국민의 신뢰를 더 받고는 했다. 당장 현재 진행 중인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도 박영수 특검에 의해 진행되었고 특검의 결과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신뢰를 보내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특검에 대한 요구가 끊이지 않는 것은 특검이라는 한시적 특수조직이 가진 수사능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존 검찰에 대한 국민의 불신도 클 것이다. "검찰이 어떻게 이 사건을 공정하게 수사 하겠어"라는 것이다.

독점적 검찰 권력, 경찰로 분산시켜야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더 킹>은 권력을 움켜쥔 검사들의 비리를 그리고 있다. 물론 영화적 상상력이 가미되었겠지만, 영화 속 검사들은 조직폭력배들과 연계되어있고 정치권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한다. <더 킹>은 손익분기점인 350만 명을 훌쩍 넘는 5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몰이를 했다. 판타지 영화가 아닌 이상 관객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영화에 관심을 주지 않는다. 때문에 <더 킹>의 흥행은 검찰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상징적으로 대변해준다고 할 것이다.

흔히 미국 드라마와 한국 드라마를 비교하여 "미국 드라마에서 형사는 수사를 하지만 한국 드라마에서 형사는 사랑을 한다"고 한다. 기소권, 수사권, 영장청구권 등 어떠한 권한도 없는 한국의 경찰이 드라마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사랑밖에 없는 것이다. FBI나 CSI처럼 한국의 경찰도 영화나 드라마 속 영웅으로 등장하여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날이 왔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검찰의 독점된 권력이 경찰로 분산되어야 한다. 일선 현장에서, 국민들 곁에서 활동하는 경찰이 영웅이 되는 것이 국민에게도 이로울 것이다. 그리고 현장에서 활동하는 경찰에게 그에 맞는 권한이 부여되어야 수사도 올바르게 이루어질 수 있다. 끊이지 않는 검찰 비리를 끊고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헌법이 개정된다면 제12조 제3항은 반드시 삭제되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 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영장청구권, #CSI, #검사, #수사권, #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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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다. 민변 부천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기도 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으로 활동 중이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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