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와 야수>의 한 장면. 엠마 왓슨은 주인공 ‘벨’ 역할을 맡아 매혹적인 모습을 선보인다.

<미녀와 야수>의 한 장면. 엠마 왓슨은 주인공 ‘벨’ 역할을 맡아 매혹적인 모습을 선보인다.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한국에서는 1992년 여름 방학 시즌에 개봉했던 <미녀와 야수>(1991)는, 바로 직전 겨울 방학에 국내에 소개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인어공주>(1989)와 함께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전성기를 연 작품입니다. 동화 원작보다 훨씬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내세운 것, 진정한 사랑에 관해 논하는 고전적인 로맨스 플롯을 채용한 것, 그리고 노래보다 춤과 시각적 효과를 중요하게 여기는 프랑스의 악극 전통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 등이 성공 요인이었죠.

약 25년 만에 돌아온 이번 영화는 애니메이션의 기본 줄거리와 인물 구성을 그대로 실사 영화로 옮긴 작품입니다. 벨(엠마 왓슨)은 발명가 아버지를 둔 책 읽기 좋아하는 소녀입니다. 마을의 최고 인기남 개스톤(루크 에반스)의 구애를 받고 있지만, 그와 결혼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어느 날 물건을 팔기 위해 떠난 아버지가 마법 성에 사는 야수(댄 스티븐스)에게 붙잡히자, 아버지를 빼내기 위해서 스스로 야수의 포로가 됩니다.

한편, 다시 인간이 될 날만을 기다리는 마법 성의 식구들은 자신들에게 씌워진 저주를 풀어 줄 야수와 벨의 사랑을 응원하지요. 야수는 처음에는 감정을 다루는 일이 서툴러 어색해하지만 곧 벨에게 감화되고, 벨 역시 야수의 거친 외모와 성격 뒤에 있는 미덕을 발견하기 시작합니다.

25년 만에 돌아온 마법

 <미녀와 야수>의 한 장면. 개스톤(루크 에반스)과 르푸(조쉬 개드)는 벨과 야수의 사랑을 빛내 준 악역이다.

<미녀와 야수>의 한 장면. 개스톤(루크 에반스)과 르푸(조쉬 개드)는 벨과 야수의 사랑을 빛내 준 악역이다.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이 영화의 바탕이 된 프랑스의 전래 동화는, 어린 나이에 결혼해야 하는 소녀들의 불안을 잠재우는 용도로도 쓰였습니다. 처음에는 신랑의 외모나 생활 방식이 적응이 잘 안 되겠지만, 참고 지내다 보면 좋은 면모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식의 '교훈'을 주면서요.

여성 캐릭터의 설정을 바꾸고 비중을 키운 디즈니의 각색은 좀 더 균형 잡힌 로맨스를 추구하였습니다. 주인공이 외모보다는 심성에 기반을 둔 선택을 하게 된다는 기본 개념은 같지만, 그것을 미숙한 여성의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다루지 않고 누구보다 성숙한 자아를 갖춘 여성의 주체적인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미녀와 야수>가 여성 주인공의 성장에 초점을 맞춘 다른 디즈니 애니메이션들과 결이 다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벨은 이미 완성된 인격을 갖춘 인물로서, 야수의 성장을 이끌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도적인 인물이지요. 신화적 상징으로 볼 때, 구원자로서의 성모 마리아나 재생과 성장을 이끄는 대지의 여신에 가까운 존재입니다.

이번 실사판은 전체 상영시간이 원작 애니메이션보다 40분가량 길어졌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뮤지컬 시퀀스의 템포가 전체적으로 느려졌는데, 이는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아닌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로 장면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추가된 장면과 캐릭터들의 존재입니다. 야수와 벨의 캐릭터를 보충해 주고 멜로 라인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요.

그런데도 별로 지루하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천천히 전개되기 때문에 화려한 시각적 구성과 배우들의 연기를 여유 있게 감상할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이토록 오랫동안 사랑 받은 이유

뮤지컬 시퀀스들은 초반의 'Bell', 'Gaston'처럼 원작의 박력에는 다소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만족스럽습니다. 특히 식기들이 화려한 군무를 보여 주는 <Be My Guest> 장면은 원작 이상의 효과를 내고 있으며, 중반부와 후반부를 장식하는 <Beauty and the Beast> 시퀀스의 로맨틱한 분위기 역시 오랫동안 기억될 것입니다.

벨 역할을 맡은 엠마 왓슨은 초반의 마을 장면들보다는 중반 이후 로맨스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더 빛을 발합니다. 열렬한 사랑의 감정을 담은 눈동자와 표정은 관객들을 자연스럽게 사로잡습니다. 야수 분장을 한 채 모든 연기를 직접한 댄 스티븐스는 원작의 야수가 가진 특유의 거친 아우라와 의외의 귀여움을 잘 표현한 편입니다.

특히 원작 캐릭터 이상의 개성 있는 연기로 극에 재미를 더한 개스톤 역할의 루크 에반스와, 늘 그의 곁을 지키는 르푸 역할의 조쉬 개드가 보여 준 활약은 대단합니다. 두 악역의 존재감과 빛나는 호흡은 벨과 야수의 사랑을 돋보이게 해 준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똑똑하고 아름다운 여성과 오만한 실력자 남성이 맺어지는 전형적인 로맨스 공식은 진부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이 영화의 '진실한 사랑은 모든 것을 바꿔 놓는다'는 테마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겪고 세상을 다르게 보기 시작합니다. 비록 그런 변화가 오랫동안 지속하는 경우는 드물겠지만, 그 순간이 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벅참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지요. 사랑이라는 감정이 일으킨 치유와 변화의 양상을 포착하여 화려한 판타지로 시각화한 것, 그것이 바로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 이야기가 오랫동안 폭넓게 사랑받아 온 이유입니다.

 <미녀와 야수>의 포스터. 이제는 고전이 된 디즈니의 명작 애니메이션을 영화로 만든 이 작품은 원작의 미덕을 충실히 재현하고 있다.

<미녀와 야수>의 포스터. 이제는 고전이 된 디즈니의 명작 애니메이션을 영화로 만든 이 작품은 원작의 미덕을 충실히 재현하고 있다.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오윤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cinekwon.wordpres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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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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