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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지리산 천은사 일주문 가는 길입니다.
 구례 지리산 천은사 일주문 가는 길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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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 인생'

인생의 '인(人)'자는 두 사람이 기대어 서로 의지하며 서 있는 모습이랍니다. '인'자에는 '더불어 함께'라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이는 인간이 사회와 동떨어져 살아갈 수 없는 그 무엇에 대한 동양적 설명이기도 합니다. 인생의 '생(生)'은 '소 우(牛)'와 '한 일(一)'이 만나 만들어진 합성어랍니다. 소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모양으로 풀이됩니다.

'인생'을 해석하면, 우리네 삶은, 장애물 등을 앞에 두고 서로 기대고 격려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외나무다리를 함께 건너야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상징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곱씹어 보면, 우리네 삶에 있어 도전이 왜 필요한지 나타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구례에서 '다슬기 수제비' 먹을까?

지리산 천은사 성문 스님, 삶을 이야기 합니다.
 지리산 천은사 성문 스님, 삶을 이야기 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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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 잔은 '사색'입니다. 앞만 보고 뚜벅뚜벅 걸어 온 인생에서 잠시잠깐 쉬어갈 수 있는 여유로운 '쉼'이니까. 그래 설까, 구례 지리산 천은사 주지이신 성문 스님 스스로의 삶을 이야기 합니다.

"법회가 있는 날에는 봉고차로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모시러 다닙니다. 불공드리고 점심 공양 후 집에 모셔다 드리지요. 옛날부터 30, 40여년 다녔던 절이라 자기 절처럼 지냅니다. 요즘엔 절에서도 서비스가 필요하답니다."

세월이 바뀌었으니 사찰도 현실에 맞게 변하는 게 당연지사. 에구 에구, 이도 먹어야 가능한 일이었니….

"공양하러 가시지요."

스님 공양(供養)을 권합니다. 감지덕지 "고맙습니다!"하고 넙죽 받아 먹어얍죠. 그런데 이날따라 주저주저합니다. 절집에 오는 동안 쓱 토해냈던 지인의 강렬한 유혹 때문입니다.

"구례에서 '다슬기 수제비' 먹을까?"

유혹 때문에 스님 모시고 나가서 차분히 먹을 작정이었습니다. 한데, 스님께선 절집 일정이 꽉 차 나갈 형편이 못 된답니다. 맛이 아깝긴 합니다. 어쩌겠어요.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다슬기 수제비에 대한 미련을 가차 없이 버려야 했습니다. 그제야 공양간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공양주 보살님 죄송해요.

식당작법,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감사하기

천은사 공양간입니다. 따뜻한 봄기운에 마당에서 공양 중입니다.
 천은사 공양간입니다. 따뜻한 봄기운에 마당에서 공양 중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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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은사 비빔밥.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감사하는 마음이 '식당작법'
 천은사 비빔밥.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감사하는 마음이 '식당작법'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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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천은사 공양간입니다. 비빔밥이 쌓였습니다.
 지리산 천은사 공양간입니다. 비빔밥이 쌓였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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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간 밖, 사람들 바글바글합니다. 무슨 일일꼬? 장독대, 마루, 방 등에 꽉 찼습니다. 그냥 사람이 아닌 비빔밥을 들고 배를 채우는 사람들입니다. 살폈더니, 삼사순례단 공양이 준비된 겁니다. 덕분에 덤으로 더불어 함께 공양을 먹게 되었습니다. 공양간으로 들어갑니다. 식탁 위에 비빔밥이 2층으로 쌓여 비닐에 덮였습니다. 1차 순례단에 이어 2차 순례단이 먹을 공양이랍니다. 공양간 식탁에 문구가 붙어 있습니다.

"오늘 이 음식이 나에게 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잘 먹겠습니다."

비빔밥 그릇을 들고 줄을 섭니다. 밥을 담고, 고추장을 얹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절간에선 고추장 없이 그냥 비벼 먹어야 맛있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절집 음식은 양념을 빼야 맛있고, 속가에서는 더해야 맛있다"고 평하더군요. 동의합니다만, 저는 빼고 먹으면 너무 밋밋하대요. 사람들 틈을 피해 방으로 들어갑니다. 한산합니다. 절집 여닫이 방문 고리에 꽂힌 숟가락이 웃음 짓게 합니다. 이곳 벽에도 역시  공양게송 문구가 붙어 있습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 받기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식당작법(食堂作法). 이는 부처님께 올린 공양을 대중이 함께 나눠 먹음으로 복을 짓는다는 의미의 의식이 발전한 겁니다. 요즘 식당작법은 절에서 대중이 공양할 때마다 행하는 게 아니라 영혼천도의례의 한 의식인 영산제를 행할 때 하는 공양의례입니다. 하지만 공양을 할 때마다 감사를 느끼며 먹는 마음은 지금껏 변함없습니다. 어느 농부의 땀이 진하게 묻어났을, 쌀 한 톨 남기지 않고 싹싹 비웠습니다.

지허 스님이 들려주는 천은사 선방 방장선원 설화

지허 스님, 차를 주시더니 설화까지 풉니다.
 지허 스님, 차를 주시더니 설화까지 풉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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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허 스님께 천은사 관련 설화 듣기를 청했습니다. 스님,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보따리를 풉니다. 다음은 지허 스님께서 전한 천은사 선방 방장선원 설화입니다.

옛날에는 스님들도 동안거 하안거 참선할 때 각자가 먹을 쌀을 가져왔다. 배고프고 없던 시절이라 그때는 탁발을 해서 쌀을 챙겨야 했다. 지금은 참 편하게 참선하는데도 잘 안 된다. 탁발 후 선방에 드는 게 신심을 굳게 하는 장점이 있었다. 100여 년 전, 천은사 선방인 방장선원을 지키던 '박성하'라는 도인이 있었다. 하루는 절에서 살림하는 원주 스님이 박성하 스님께 이렇게 청했다.

"죽기 전에 참선이나 한 번 하고 죽고 싶습니다!"

박성하 스님께서 쌀도 안 받고 청을 들어주었다. 다른 스님들이 "왜 쌀도 안 받고 들이느냐?" 는 등의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박성하 스님께서 "열반이 가까운 스님의 원을 들어주는 게 맞다"고 설득했다. 원주 스님도 수행에 합류했다. 하루는 참선 중, 원주 스님께서 무릎을 탁 치시며 말했다.

"아하~, 여기 있는데 그랬구나!"

주위에 있던 스님들이 원주 스님께서 "도를 깨쳤다"고 부러워했다. 절집에선 도를 깨치면 바로 법상을 차리는 게 관례였다. 원주 스님은 법상 받기를 주저주저했다. 허나 영락없이 법상이 차려졌다. 어쩔 수 없이 법상에 오른 원주 스님께서 말했다.

"수좌 스님들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며칠 전 곳간 열쇠를 잃은 후 어디에 두었는지를 몰랐는데, 참선을 하다 곳간 열쇠를 어디에 두었는지 알게 되어, '아하 여기 있는데 그랬구나!'하고 말한 겁니다. 앞으로 열쇠 찾듯이 화두를 찾아 견성을 이루겠습니다. 다시 한 번 더 죄송합니다."

하고 내려왔다. 그리고 일주일 뒤, 해제 일이었다. 박성하 스님께서 해제 법문 중, "이걸 아느냐?" 물었다. 이에 원주 스님이 일어나 덩실덩실 춤추며 말했다.

"나는 안다. 나는 안다."

그 후 원주 스님은 평안도 석왕사에 큰 스님으로 가셨다.

지허 스님께선 이야기를 풀어내신 후, "세속에 살면서도 참선하라"며 "몸은 일하고, 생각은 마음을 찾아라!"고 조언합니다. 그게 어디 쉽던가요. 삶, 구도자처럼 살아가는 것도 아름답게 사는 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 하신 말씀 아직도 귓전을 맴돕니다.

"내가 누군고?"

'참선' 그 깨우침의 시작이리니...
 '참선' 그 깨우침의 시작이리니...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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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은사 홍매화. 꽃의 아름다움은...
 천은사 홍매화. 꽃의 아름다움은...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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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천은사 대웅전입니다.
 지리산 천은사 대웅전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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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지리산 천은사, #성문 스님, #지허 스님, #공양, #식당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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