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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은퇴 후 향토사 관심으로 문화관광해설사 돼

"(해설사로서) 수명이 다 된 것 같아요.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데, 이젠 머리에 잘 들어가지 않네요."

19일 일요일 오후, 선진리성 관광안내소에서 만난 문화관광해설사 조영규(68) 씨가 읽던 책을 덮으며 푸념하듯 말했다. 슬쩍 책 제목을 보니 '봉화에서 텔레파시통신까지'이다. 오늘날 그토록 발달한 정보통신기술도 봉화에서 시작됐다는 그의 짧은 설명이 뒤따랐다.

 ▲ 19일 선진리성에서 만난 문화관광해설사 조영규 씨.
 ▲ 19일 선진리성에서 만난 문화관광해설사 조영규 씨.
ⓒ 바른지역언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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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씨는 1950년 용현면 구월리에서 태어나 용현초-용남중-진주농림전문학교를 거쳐 공직에 발을 디뎠다. 그렇게 사천시민과 30여 년 희로애락을 함께한 그는 2007년 조금 이른 은퇴 후 문화관광해설사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한때 독자위원으로서 뉴스사천과 인연을 맺기도 했다. 오랜만에 그를 만나 문화관광해설사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IMF 때 지인 보증 섰던 게 잘못돼 빈털터리가 됐었죠. 마음을 달래기 위해 용현조기회에 참여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그때 조기회에서 '새복'(=새벽에서 딴 제목)이라는 20쪽짜리 간행물을 매달 내더라고요. 지역에 관한 얘기니까 재밌어서 나도 일을 같이 했죠. 그런데 은퇴 후 문화해설사들의 설명이 내가 아는 것과 좀 다른 거예요. 그래서 관심을 갖다 보니 어느 날 이렇게 돼버렸네요."

문화관광해설사. 우리나라에선 '한국방문의 해'이던 2001년에 도입된 개념이다. 처음엔 문화유산해설사로 불리며 문화재나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활동했으나, 지금은 우리의 문화와 전통, 관광자원을 올바르게 이해시키는 역할을 한다. 2011년에 그 개념이 법제화되기에 이르렀다.

현재 사천시에서 활동하는 문화관광해설사는 9명이다. 선진리성을 비롯해 다솔사, 항공우주박물관, 첨단항공우주과학관, 박재삼문학관에 고정 배치되며, 매달 순환 근무한다. '사천사랑 시티투어' 버스에 올라 사천의 구석구석을 누비기도 한다.

"한 번 잘못 인식된 걸 바로잡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감합니다. 조명군총의 경우 정유재란 당시 숨진 조명연합군의 무덤인데 '귀무덤'으로 부르거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요. 귀무덤은 일본에 있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도 사실은 귀무덤이 아니라 코무덤이 맞아요. 귀가 아니라 코를 베어 전과를 기록했으니까요."

 ▲ 선진리성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문화관광해설사 조영규 씨.
 ▲ 선진리성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문화관광해설사 조영규 씨.
ⓒ 바른지역언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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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래 전부터 선진리성과 조명군총에 관해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 그의 고향땅에 있는 문화유적이니 미뤄 짐작 가능한 일이다. 그러다보니 마을주민들 사이에 전해오는 이야기까지도 잘 기억하고 있었다.

"옛날 이 지역 사람들은 '뎅강무데기'라 불렀답니다. 이름으로 확 와 닿죠. 또 당병무덤이라 부르기도 했다는데, 옛날 일제시대 때 '당병공양탑'을 만들어 세워두기도 했다는군요. 그 탑비는 해방 뒤 주민들이 뽑아서 농로에 다리처럼 사용했다는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모른답니다."

조영규 문화해설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여러 무리의 관광객이 안내소를 다녀갔다. 하지만 그들은 비치해 둔 관광정보책자만 집어갈 뿐 말을 건네거나 질문을 던지지는 않았다. 오후 5시를 넘기니 그들마저도 뚝 끊겼다.

"일을 하다 보면 보람도 있고 힘들 때도 있죠. 열심히 설명했을 때 '고맙다' '몰랐던 걸 알게 됐다' 이렇게 말해주면 보람이죠. 그만큼 우리 역사나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반대로 설명을 안 듣거나 더 많이 아는 것처럼 떠드는 사람들은 참 밉상이죠!!(웃음)"

그는 안타까움도 전했다. 선진리성의 경우 일본 학자나 연구가들은 해마다 꼬박꼬박 찾아오는데 비해 우리나라 학자들 방문은 거의 없단다. 사실 오늘날 선진리성은 일본의 왜성에 가깝다. 통일신라 시기에 쌓아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온 통양창성은 흔적만 어렴풋 남았을 뿐 왜성으로 인해 상당부분 사라지거나 훼손됐다. 그런 탓에 한때 사적 제50호로 국가지정문화재였다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제274호)로 격하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선진리성은 통일신라 때 토성으로 만들어졌어요. 통양창과 통양포는 고려 초기 12조창에도 포함되고 그 이전의 60포창에도 포함되니까 역사가 아주 깊어요. 그러다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왜군이 우리 성을 허물고 왜성을 쌓았습니다. 하지만 왜성도 우리에게 있는 것이니 연구해야죠. 어쩌면 우리 (통양창성)성곽을 어떻게 무너뜨리며 새로이 쌓았는지 밝혀야 맞죠. 왜군뿐 아니라 몽고, 거란의 침입 흔적도 객관적인 우리 역사로 인식해야 합니다."

관광안내소 창밖으로 햇살이 눈에 띄게 약해졌다. 더 늦기 전에 선진리성을 걷고 싶어 함께 밖으로 나왔다. 부쩍 따뜻해진 날씨 탓에 선진리성 벚나무도 꽃을 피우려나 싶었지만 아직은 조금 일러 보였다. 그러고 보니 '선진리성과 벚나무', 이 주제의 질문을 뺄 수는 없다.

"일제강점기 1912년 무렵, 조선총독부가 임진왜란 시 이순신에 패한 기억을 지우고 정유재란 시 승전을 기념하는 뜻에서 공원을 조성했어요. 그때 심겨진 나무가 벚나무인데, 알려진 것처럼 벚꽃은 일본을 상징하는 꽃이잖아요. 우리로선 정말 아프죠. 그런데 선진리성을 찾는 사람들은 그 아픈 기억을 잘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즐기다 가죠. 왜 벚꽃이 유명한지 물어보는 이도 드물어요."

 현재 사천시에서 활동하는 문화관광해설사는 9명이다. 선진리성을 비롯해 다솔사, 항공우주박물관, 첨단항공우주과학관, 박재삼문학관에 고정 배치되며, 매달 순환 근무한다. ‘사천사랑 시티투어’ 버스에 올라 사천의 구석구석을 누비기도 한다.
 현재 사천시에서 활동하는 문화관광해설사는 9명이다. 선진리성을 비롯해 다솔사, 항공우주박물관, 첨단항공우주과학관, 박재삼문학관에 고정 배치되며, 매달 순환 근무한다. ‘사천사랑 시티투어’ 버스에 올라 사천의 구석구석을 누비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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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우리가 봄이면 즐겨 찾는 선진리성 벚꽃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유물이다. 저 벚꽃 역시 우리 역사의 한 부분임을 인정하며 그대로 두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배척하고 외면하는 게 옳을까. 그러고 보면 '선진리성 벚꽃'은 사천시가 정한 '사천 8경' 중 하나이지 않은가. 애매하고 민감할 수 있는 질문임에도 답은 곧장 돌아왔다.

"벚나무가 100년쯤 산다고 들었는데 그리 치면 일제 때 심은 것은 거의 다 죽었다고 봐야죠. 이후에 심은 게 문젠데, 그렇다고 일부러 베어내긴 그렇고. 차츰 수명이 다하면 다른 수종으로 바꿔야겠지요. 사천시 차원에서 고민을 많이 해야 할 문제라고 봐요."

그는 개인적으로 매화를 추천했다. 사철 푸른 소나무 군락도 어울릴 법하다고 했다. 평소 이 문제에 어느 정도 고민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끝으로 사천읍성에 관해서도 한 마디 덧붙였다.

"사천읍성이 너무 방치되고 있어요. 그래도 관청이 있던 곳인데. 그럼 행정, 문화, 경제, 군사, 뭘 보나 중심지잖아요. 옛날에 일부 복원을 했지만 엉터리였어요. 고증이 부족했죠. 수양공원 쪽이라도 복원을 제대로 다시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조 씨는 지역사회에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건강이 허락하는 한 문화관광해설사의 삶을 쭉 이어갈 생각이다. 그러면서 귀띔한다.

"올해도 6명쯤 뽑는다고 하던데, 좋은 사람 있으면 권해주세요. 사천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기회가 될 겁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사천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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