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성 김주성이 3점슛을 던지고 있다

▲ 김주성 김주성이 3점슛을 던지고 있다 ⓒ 동부프로미


한국프로농구(KBL)의 살아있는 전설, 김주성(원주 동부)이 통산 1만득점 대기록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현재 통산 9986점을 기록중인 김주성은 14점만 추가하면 대망의 1만득점 고지에 오르게 된다. 현재 동부는 23일 LG전(원정)-26일 SK(홈) 등 2경기를 남겨두고 있는 상황이다. 경기당 평균 9.6점을 기록중인 김주성은 이번 정규시즌 내에 대기록에 도달한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역대 프로농구에서 1만득점은 서장훈(예능인, 1만 3231점)과 추승균(KCC 감독, 1만 19점), 단 2명만이 도달했던 꿈의 기록이다. 두 선수 모두 현재는 은퇴했고 KBL의 레전드로 남은 인물들이다. 이미 지난 시즌 1000블록슛을 돌파한 김주성은 프로농구 역대 세 번째로 1만 득점을 돌파할 경우, 프로농구 역대 최초로 1만점-1천블록슛 기록을 동시에 보유한 선수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김주성이 명실상부하게 역대 선배들을 능가하는 KBL의 전설로 영원히 자리매김하게 될 순간이기도 하다.

아직 프로의 역사가 짧은 KBL에서 1만 득점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모든 누적 기록이 그러하듯이 한두 시즌 반짝한다고 도달할 수 있는 기록도 아니며, 오랜 세월 꾸준히 정상급 기량과 체력을 유지해야 하는 만큼 투철한 자기관리와  프로의식이 필수다. NBA(미프로농구)에서는 카림 압둘자바가 1989년을 끝으로 은퇴하기까지 3만 8387득점을 올린 것이 28년이 지난 지금까지 깨지지 않은 역대 기록으로 남아있다. 득점기계로 명성을 떨친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이나 코비 브라이언트도 압둘자바의 꾸준함은 끝내 넘지 못했다.

정규시즌 82경기 체제를 치르는 NBA에 비하여 54경기 체제로 운영되는 KBL에서는 1만 득점도 매시즌 풀타임을 소화한다는 전제하에, 평균 15점 이상을 13시즌 가까이 꾸준히 기록해야 겨우 도달할 수 있는 업적이다. 올해로 프로 15년차인 김주성은 통산 686경기에 출전하여 평균 14.6점을 기록하고 있다.

김주성의 1만 득점 기록이 더욱 돋보이는 것은 애초에 그가 공격형 선수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다. 역대 통산 득점 1위이자 김주성과 함께 KBL 역대 최고의 토종빅맨으로 불리우는 서장훈의 경우, 통산 평균 득점이 19.5점(688경기)에 이르고 데뷔 이후 첫 7시즌 연속 평균 22점 이상을 기록했을 만큼 당대 최강의 득점기계였다.

김주성도 물론 국내 선수로서는 상당히 준수한 공격력을 갖춘 선수였고 가끔 플레이오프같은 빅매치에서는 외국인 선수 못지 않은 득점력을 과시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김주성은 득점이나 개인기록에 크게 욕심을 내는 유형의 선수는 아니었다. 김주성은 경기 후 자신의 개인 기록지를 거의 보지 않는 선수로도 유명했다. 김주성의 한 시즌 최다득점 기록은 데뷔 2년차였던 2003-04시즌의 18.4점이고 20득점 이상을 넘긴 시즌이 한번도 없다. 대신 김주성은 올시즌 전까지 14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할 만큼 큰 슬럼프나 기복없이 꾸준한 모습을 오랜 기간 유지했다.

많은 팬들은 김주성의 득점력보다도 그의 장수 비결에 더 주목한다. 사실 김주성은 프로 데뷔 때만 하더라도 능력에 비하여 장수 가능성에서는 다소 의문부호가 붙던 선수였다. 205cm의 장신에 출중한 운동능력과 농구센스를 겸비하여 데뷔 때부터 대형 빅맨으로 주목받기는 했지만, 상대적으로 몸싸움에 취약한 마른 체격과 부족한 슈팅 능력이 최대 약점으로 꼽혔다. 이로 인하여 운동능력이 떨어지는 30대만 해도 김주성이 일찍 노쇠할 것이라 예상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김주성은 예상을 깨고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건재하다. 물론 나이를 먹으면서 잦아진 잔부상과 기록의 하락은 어느 정도 피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김주성이 여전히 KBL 최고의 선수 중 하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김주성은 소속팀을 3번이나 프로농구 정상으로 이끌었고 정규리그 MVP를 2회 차지했다.

천하의 서장훈도 말년에는 계륵 취급을 받으며 이 팀 저 팀을 전전하는 저니맨 신세가 되었던 것과 비교할 때, 김주성은 여전히 원주 동부를 대표하는 원클럽맨이자 간판 프랜차이즈 스타로 군림하고 있다. 불혹을 바라보는 지금도 김주성이 코트에 있고 없고의 차이에 따라 동부의 경기력이 달라질 정도다.

더구나 김주성은 소속팀만이 아니라 비시즌에는 국가대표팀 차출까지 병행해야 했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한 해에 60~70경기 이상을 뛰는 강행군을 거의 매년 소화하면서도 큰 부상이나 기량 하락 없이 장수했다는 것은 김주성의 위대함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김주성은 1998년 중앙대 1학년 재학 시절부터 2014년 아시안게임까지 무려 17년간 국가대표로 활약했으며 한국 남자 농구선수로는 유일하게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2번(2002·2014년)이나 목에 걸었다.

김주성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플레이 스타일에도 유연한 변화를 줬다. 초창기만 해도 골밑 위주의 플레이를 펼치던 김주성은 지난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외곽슛을 장착하더니 올시즌에는 개인 역대  최다인 81개의 3점슛(성공률 37%)을 성공시키며 '스트레치형 포워드'로의 성공적인 변신을 보여줬다. 특유의 넓은 시야와 패싱 센스를 바탕으로 동료들의 공격 기회를 열어주는 도우미 역할에도 능하다. 이러한 김주성의 장수와 끊임없는 변화는 KBL 토종빅맨들이 프로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교본으로서 역할을 해주고 있다.

승부근성과 강한 책임감, 확고한 신념은 성공한 모든 슈퍼스타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김주성 역시 열악했던 가정 형편과 어려웠던 소년 시절을 극복하고 고1 때 뒤늦게 시작한 농구로 인생의 전환점을 스스로 개척했다. 또래 선수들이 하나 둘씩 코트를 떠나고 어느덧 최고참급이 된 지금도 김주성의 농구에 대한 열정과 도전의식은 변함이 없다. 1만점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이후에도 김주성의 농구가 당분간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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