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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즈로 가기가 참으로 어렵다

 아자디 타워 야경
 아자디 타워 야경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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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을 떠나기 전 우리는 마지막으로 아자디 타워로 간다. 그것은 아자디 타워가 이란 현대사의 중요한 유산이기 때문이다. 아자디 타워는 페르시아제국 건설 2500주년을 기념해서 1971년에 세워졌다. 이 탑은 원래 키루스의 문(Darvaze-ye Koroush, The Gate od Cyrus) 또는 제국의 문(Darvaze-ye Shahanshahi)으로 불리다가 이슬람혁명 후 자유를 뜻하는 아자디 타워로 불리게 되었다.

타워와 주변에는 분수와 문화센터가 있고, 그 둘레를 광장이 감싸고 있다. 아자디 타워는 테헤란 서쪽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높이는 50m로 겉에 대리석을 붙여 만들었다. 타워의 상단부에 전망대가 있고, 지하에 박물관이 있다고 하는데, 찾아보지는 못했다. 그것은 저녁이라 문을 닫기도 했지만 시간도 없기 때문이다.

 아자디 타워 반영
 아자디 타워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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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디 타워를 찾은 또 다른 이유는 아자디 타워의 석양과 야경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오후 6시가 조금 못 되었는데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다. 마침 석양이 아자디 타워의 흰 대리석을 붉은빛으로 물들인다. 타워 북쪽으로 알부르즈 산맥의 흰 눈도 보인다.

아자디 타워는 Y자를 거꾸로 세운 것 같아서 가운데 아치가 있고 이 부분를 통과할 수 있다. 그런데 이란 사람들은 이것을 아치라 하지 않고 이완이라 부른다. 이완 위쪽으로는 푸른색 타일이 벌집처럼 붙어있어 현대식 무카르나스(Muqarnas) 장식이 되었다. 마침 분수연못에 아자디 타워가 비쳐 멋진 반영을 보여준다. 은은하게 조명도 들어오고, 탑이 이제는 연한 푸른빛을 띠기 시작한다.

 메흐라바드 국제공항
 메흐라바드 국제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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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분 정도 보고 아자디 타워를 떠난다. 아바즈(Ahwaz)로 가는 비행기가 8시 25분 출발이어서 서둘러야 한다. 보딩 타임은 7시 55분으로 되어 있다. 아바즈로 가는 비행기는 메흐라바드(Mehrabad) 국제공항 터미널4에서 출발한다. 공항에 도착하니 6시 30분이다. 수속을 마치고 공항 레스토랑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비행기 출발시간이 1시간 30분 정도 늦어진다.

문제는 또 발생한다. 탑승을 했는데 비행기가 출발을 하지 않는다. 화물을 싣는 차량들이 비행기에서 떠나질 않는다. 나중에는 비행기 아래에서 망치소리도 들린다. 아니, 화물칸의 문이 닫히지 않는 걸까? 마음이 불안하다. 오늘 비행기가 떠나지 못하면 여행계획이 확 틀어진다. 모두들 침묵이다. 화가 난 이란 노인 한 분이 항의를 한다. 승무원들이 와서 노인을 달랜다. 그렇게 1시간 30분이나 지체를 한 다음 11시 15분이 되어서야 이륙을 한다. 3시간 가까이 늦어진 것이다.

 마한 에어
 마한 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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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에서 아바즈까지 비행기는 마한 에어(Mahan Air)를 이용했다. 이란 에어(Iran Air)에 이어 두 번째로 큰 항공사로, 국내선은 물론이고 중동, 중앙아시아, 유럽까지 운항하고 있다. 아바즈까지 비행시간은 1시간 조금 더 걸렸다. 모든 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나오니 12시 30분이 넘었다. 공항 밖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이슬람사원 마스지드다. 이란 양식의 전형적 사원이다.

여기서 다시 30분을 이동해 호텔에 도착한다. 정말 긴 하루였다. 하루 종일 테헤란 문화유산을 살펴보고, 아바즈까지 이동했으니 말이다. 아바즈는 이란 남서부 후제스탄주의 주도로 에너지산업을 중심으로 경제가 발달한 도시다. 인종과 언어적으로는 페르시아인과 아랍인이 섞여 있다. 카룬(Karun) 강변에 있어 관개농업도 발달해 있다. 카룬강은 티그리스강의 지류다.

 아바즈를 흐르는 카룬강
 아바즈를 흐르는 카룬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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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바즈에 온 목적은 수사와 초가잔빌의 문화유산을 보기 위해서다. 내일도 하루 종일 이들을 찾아다녀야 한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엘람시대 중기까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초가잔빌의 지구라트 유적은 기원전 1250년경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시기는 중기 엘람시대로 정치와 경제, 문화와 예술이 융성했다. 그것을 증명하는 문화유산이 수사와 그 주변에서 발견된다.

수사의 고대 역사를 찾아서

 현재의 수사
 현재의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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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의 현재 이름은 수쉬(Shush)다. 아바즈에서 37번 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80㎞를 올라가야 한다. 2월이면 최저기온이 8℃ 최고기온이 21℃ 정도라고 하는데, 아침 기온이 차다. 옷을 너무 가볍게 입은 것 같다. 또 모래바람이 불어 시야가 넓지 못하고, 해라고는 볼 수가 없다. 또 중간에 볼만한 경치나 문화유적, 도시도 없다. 그래서 잠시 쉬면서 간다. 약 1시간 정도 걸려 수사에 도착한다.

수사의 역사는 기원전 34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메소포타미아 남부 지역에 도시가 형성되면서 수메르(Sumer) 문명을 꽃피웠는데, 그 중심도시가 바빌론, 우르(Ur), 우륵(Uruk)이기 때문이다. 수사는 우륵의 주변에 있는 중요한 도시로 이 지역에서 발견된 도자기와 조각품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일부를 형성한다.

 초기 엘람시대 쐐기문자판
 초기 엘람시대 쐐기문자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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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가 역사적으로 중심도시가 된 것은 기원전 3000년경 고대 엘람시대에 이르러서다. 수시아나(Susiana)라는 작은 나라의 수도로, 좀 더 큰 나라인 수메르, 엘람, 아카드(Akkad)의 지배를 받았다. 기원전 2100년경 수사의 지도자 쿠틱-인슈시나크(Kutik-Inshushinak)가 독립을 선언하면서 엘람의 왕을 칭하게 되었다. 그래서 수사는 2000년경 엘람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기원전 1500년경 중기 엘람시대가 시작되는데, 이때도 수사가 중심도시 역할을 한다. 그것은 왕을 지칭할 때 안샨(Anshan)과 수사의 왕이라고 한데서 확인할 수 있다. 기원전 1250년경에는 수사 동남쪽 30㎞ 지점에 있는 초가잔빌에 종교적인 시설이 들어서는데, 그것이 지구라트다. 우리는 수사의 문화유산을 살펴본 후 초가잔빌의 지구라트를 방문할 것이다.

 황량한 수사
 황량한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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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는 기원전 647년 앗시리아 왕 아슈르바니팔(Sahurbanipal)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된다. 그것은 앗시리아의 정복전쟁에 맞서 싸웠기 때문이다. 1857년 니네베(Nineveh)에서 발굴된 청동제 명판의 글과 그림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에 보면 수사가 화염에 휩싸이고, 앗시리아 군인들이 곡괭이와 쇠지렛대로 건물을 해체하고 파괴한다.

"수사, 대단히 성스러운 도시, 신들의 거처, 신비스런 곳을 나는 정복했다. 나는 그곳의 궁전으로 들어가 보물창고를 열었다. 그곳에는 금은보화가 가득했다. […] 나는 수사의 지구라트도 파괴했다. 청동으로 만든 빛나는 황소뿔도 박살을 내버렸다. 나는 엘람의 사원들도 모두 없애버렸다. 그들의 신도 모두 바람 속에 날려버렸다. 나는 고대부터 현재까지 왕들의 무덤을 모두 파헤쳐 유골을 끄집어내 아슈르 땅으로 가지고 갔다. 나는 엘람의 모든 지역을 파괴하고, 그곳에 소금을 뿌렸다."   

박물관에서 만나는 몇 가지 유산들

 수사박물관
 수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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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파괴된 수사가 다시 살아난 것은 기원전 540년경이다. 아케메네스왕국을 세운 키루스가 바빌로니아로부터 이곳을 접수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수사는 아케메네스 왕국의 서쪽지역 중심도시가 된다. 521년에는 다리우스가 이곳에 겨울궁전을 지으면서 페르세폴리스에 이어 아케메네스제국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도시가 된다. 수사는 기원전 331년 알렉산더대제에 의해 파괴될 때까지 200년 동안 번성을 누린다. 수사의 번성은 구약성경 <에스더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수사의 역사를 알기 위해 우리는 먼저 수사박물관으로 간다. 수사박물관은 수사 역사문화지구의 입구 길 옆에 있다. 정문으로 들어가면 정원에 중요도가 덜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이들은 엘람시대부터 이슬람시대까지 문화유산이다. 아케메네스시대 기둥을 받치던 주춧돌, 궁전의 계단 등이 눈에 들어온다. 이슬람 문화유산은 식물문양이나 아랍문자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제에서 발견된 쉬레상기
 이제에서 발견된 쉬레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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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에 조금은 특이한 것이 하나 있는데, 이제(Izeh)에서 발견된 사자상이다. 쉬레 상기(Shir-e Sangi)라 불리며, 무덤을 지키는 동물을 말한다. 그것은 사자 몸뚱이에 새겨진 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돌로 만들었으며, 예술성은 떨어지는 편이다. 그것은 이제가 후제스탄주 동쪽 산악지역에 있는 지방도시기 때문이다. 쉬레상기는  카자르시대 유물로 알려져 있다.    

아케메네스시대 문화유산을 찾아서

 황소 부조
 황소 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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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 박물관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내부는 두 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크게 아케메네스시대 유물과 그 외 시대 유물로 대별된다. 가장 먼저 내 눈에 들어오는 유물이 궁전으로 들어가는 문을 지키는 황소부조다. 머리 부분만 남아있는데, 뿔과 귀가 없다. 그것은 뿔과 귀를 따로 제작해 갖다 붙였기 때문이다. 바로 옆에 뿔이 있어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주춧돌 부분도 있는데, 돌의 재질이나 조각수법으로 보아 황소부조와 같은 시기 작품으로 보인다. 이곳에는 또 도자기식으로 구워 만든 채색 타일 부조가 있다. 아케메네스시대 만들어진 한 쌍의 스핑크스와 한 쌍의 불사친위대인데 복제품이다. 스핑크스는 사람의 얼굴에 사자의 몸, 독수리의 날개를 하고 있다. 불사친위대는 활을 메고 창을 두 손으로 잡고 걸어가는 형태다.

 날개 달린 황소상(채색 타일)
 날개 달린 황소상(채색 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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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은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있다. 그렇지만 복제품이어서 채색과 형태가 원본보다 더 산뜻하고 완벽하다. 이러한 복제품이 또 하나 있다. 날개 달린 황소상이다. 아파다나궁의 벽장식이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없지만 루브르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는 또 다른 벽장식이 있다고 한다. 몸뚱이는 사자인데, 염소의 뿔을 하고 있고, 독수리 날개를 가지고 있으며, 뒷다리는 독수리 발톱을 가졌다. 상상의 동물이다.

아케메네스 이전 엘람시대 문화유산으로는 초기 엘람시대 쐐기문자판이 중요하다. 이들은 점토판에 새겨진 글자로 기원전 3000년경 만들어졌다. 수사에서 발견되었다. 중기 엘람시대 여인 두상은 데드 마스크처럼 생겼는데, 예술성이 뛰어난 편이다. 하프트 타페(Haft Tappeh)에서 발견되었으며, 기원전 1300년경 작품으로 추정된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루리스탄주에서 발견된 청동 황소다. 농사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파르티아시대 조각도 여럿 있다

 파르티아시대 여인의 흉상
 파르티아시대 여인의 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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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메네스 이후 파르티아 문화유산은 인물상이 많은 편이다. 그것은 그리스의 영향을 받아 좀 더 인간중심 사회가 되었다는 뜻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여인의 흉상이다. 머리 위에 관을 쓴 것으로 보아 신분이 높은 사람이다. 오른쪽 어깨에서 가슴으로 흘러내린 레이스가 인상적이다. 술레이만 마스지드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돌로 만든 투박한 전신 석상도 인상적이다. 얼굴의 절반 정도가 훼손되어 누구인지 파악하기 쉽지는 않은데, 헤라클레스라는 주장이 있다. 헤라클레스가 새끼 사자를 옆구리에 끼고 있는 모습이다. 이것 역시 술레이만 마스지드에서 발견되었다. 그 외에도 작은 석상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헤라클레스상
 헤라클레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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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기둥의 일부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조각들도 정교하지 않아 예술성은 상당히 떨어지는 편이다. 어떤 인물은 왼손에 그릇을, 오른손에 긴 지팡이를 가지고 있다. 다른 인물은 오른손을 들고 선서하는 모습이다. 얼굴이 수도사처럼 보인다. 또 다른 인물은 두 손으로 어떤 사인을 보낸다. 이들의 얼굴 표정이나 자세로 보아 종교적인 일을 수행하는 사제일 수도 있겠다.

이곳 수사박물관에도 기념품 판매점이 있지만, 안내 팸플릿이나 책자는 없다. 구할 수 없는지 물어보니, 구할 수도 없단다. 박물관 한쪽에 자료실이 있어 사진자료가 좀 걸려있지만, 페르시아어 설명만 있어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 그 때문에 이번 글은 쓰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유물에 대해 영어설명이 간단하게 되어 있어 잘못 이해하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이란의 박물관 답사, 이래저래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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