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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언니·오빠와의 도보여행. 몇 달이 지났습니다. 여행 직후 첫 번째 이야기를 썼습니다. 하지만 전하지 못했습니다. 여행을 마친 것은 11월 중순. 국정농단 관련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밝혀지며 대부분의 국민들이 분노, 대통령 하야 요구가 거셀 때였습니다.

촛불에 참여하지 못하고 떠난 여행 소식 전함이 막연히 죄송하더군요. 관련 뉴스들을 한사람이라도 더 보는 것이, 한 사람이라도 더 독려해 함께, 한 번이라도 더 광장으로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단 생각 때문이기도 했고요. 이제야 비로소 두 번째 이야기를 씁니다.

도로 옆 억새. 걷는 사람만이 볼 수 있을 가을풍경 중 하나입니다. (2016.11.11. 4일차)
 도로 옆 억새. 걷는 사람만이 볼 수 있을 가을풍경 중 하나입니다. (2016.11.11. 4일차)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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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갑사 가는 길. 비가 그친 다음날 풍경 중 하나입니다. 비 때문일까요? 유독 아름다운 가을 날, 가을 풍경들을 많이 만났습니다.(2016.11.11. 4일차)
 공주~갑사 가는 길. 비가 그친 다음날 풍경 중 하나입니다. 비 때문일까요? 유독 아름다운 가을 날, 가을 풍경들을 많이 만났습니다.(2016.11.11. 4일차)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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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동안 매일 백리 정도씩 걸어, 한파가 시작된 날 출발

열 시간에 걸친 침샘암 수술 후 투병 중인 친정오빠, 그리고 친정언니와의 5박 6일간의 도보여행. 화요일 오전에 출발, 고향집에 찾아든 금요일 늦은 밤까지 4일 동안 매일 거의 백리 정도씩 걸었습니다. 아니 백리 넘게 걸은 날도 있습니다.

한파가 시작된 날에 출발했습니다. 서울은 몹시 춥다는데 남쪽으로 가기 때문이었을까요. 걷기에는 더할 수 없이 좋은 가을날들이었습니다. 따사로운 가을볕에 살랑거리던 억새들이 떠오르고, 올망졸망 피어났던 들꽃들이 생각납니다. 맘껏 따먹으라던 어느 집의 고염(고염나무, 감과 비슷)도 떠오르고요. 다른 계절보다 해가 빨리 져버려 많이 걷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오후 내내 비가 내리던 목요일에는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7시 반쯤부터 걷기 시작해 천안을 벗어나 풍세에서 점심을 먹은 후 공주로 가던 날인데, 해가 지는 것이 아쉬웠던 화요일과 가을빛이 좋아 밤새 걸어도 될 것만 같은 수요일과 달리 '어서 빨리 캄캄해져 누웠으면 좋겠다' 싶더군요. '핑계대고 거절할 걸 그랬나?' 후회마저 들기도 했습니다.

추위를 재촉하는 비라 그런지 몸살까지 시작됐는데, 가장 뒤에 걷는 오빠의 발이 거의 땅에 끌릴 정도로 지쳐 보여 차마 내색조차 못하겠더군요. 그럼에도 오빠 사정은 나 몰라라. 평소 산행을 즐겨 단련된 몸으로 손톱만큼 작게 보일 정도로 앞서가는 언니가 얄밉고, 야속하기까지 했습니다. 내 상황과 내 맘을 눈치 챘는지 오빠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언제 저기까지 가나? 차로 가면 쉽게 갈 것을 뭐하러 이렇게 걷나. 멍청한 짓 아닌가. 그만 둘까란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이렇게 잠깐 멈추고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힘이 나고 그러더라. 전혀 짐작조차 못했는데 느닷없이 암이라니 눈앞이 캄캄하더라. 그런데 정신을 좀 차리니 몇 년 전에 혼자 걸으며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지금처럼 돌아보며 힘을 얻곤 하던 때가 생각나더라. 그땐  쉽게 포기하는 것에 내 스스로 자존심 상해 오기로 버티면서 걸었던 건데, 전혀 짐작조차 못했던 뜻밖의 풍경도 나오고, 도움을 주는 사람도 만나고 그랬던 것도 생각나고. 몇 년 전 혼자 걸으며 이겨냈던 것들이 암을 받아들이고 치료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어. 왜 이렇게 고생스럽게 걷나 싶지? 사는 것도 같단 생각이다. 지금처럼 비가 올 때도 걸어야 하고, 쉴 수 있는 곳을 찾아 캄캄할 때도 걸어야 하고…. 그렇게 살아야 하니까."

오빠는 안양에 산답니다. 2013년 여름으로 기억하는데요. 어느 날 느닷없이 오직 걷는 것으로 친정(김제)까지 갔다는 소식에 우리 모두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일주일 넘도록 밤낮없이 걷고 걸어서. 양쪽 발이 물집 투성이가 되어 더 걸을 수 없어 결국 고향 가까운 곳에서 SOS를 할 수 밖에 없을 때까지.

평소 운동을 그리 즐기지 않는 편이라 더욱 의외였는데, 솔직히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대중교통을 이용한 여행을 조금씩 즐기기 시작하면서 도보여행에 대한 막연한 꿈을 가지게 됐는데, 마음과 달리 단 하룻길도 쉽게 떠나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여하간 걷는 것마저 포기하고 싶던 그날 해준 말은 삶의 고비를 넘길 때마다 생각나겠지요.

오빠를 좋아하던 단발머리 여학생의 '사진동봉 연애편지'를 가로채 태워버렸음을 고백하며 1시간 가까이 걸었던 천안~풍세 인근의 논둑길. 삼십 여년 만에 걸어본 늘 그리웠던 논둑길입니다.(2016.11.10. 3일차)
 오빠를 좋아하던 단발머리 여학생의 '사진동봉 연애편지'를 가로채 태워버렸음을 고백하며 1시간 가까이 걸었던 천안~풍세 인근의 논둑길. 삼십 여년 만에 걸어본 늘 그리웠던 논둑길입니다.(2016.11.10. 3일차)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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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주변에 상수원이 흘러 억새와 갈대가 아름다웠던 어느 시골마을. 어린 시절 여름내내 놀았던 동네 개울과 둠벙 이야길 하기도 했습니다. 형제끼리의 여행이 좋은 것은 돌아올 수 없는 지난 세월 속 추억과 그리움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기도(2016.11.10. 3일차)
 마을 주변에 상수원이 흘러 억새와 갈대가 아름다웠던 어느 시골마을. 어린 시절 여름내내 놀았던 동네 개울과 둠벙 이야길 하기도 했습니다. 형제끼리의 여행이 좋은 것은 돌아올 수 없는 지난 세월 속 추억과 그리움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기도(2016.11.10. 3일차)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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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동안 도보여행 계획 변경, 4일째 마치고 친정으로

"오빠 혼자 걸었던 그 이야기 들으며 오빠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 그러고 보면 누군가 앞서간 길이 참 중요하단 생각이 들어. 이 길도 오래전에는 사람이 다니지 않는 그런 곳이었을지 몰라. 그런데 한 사람 또 한사람 걸으면서 여러 사람이 다니는 길이 되었을 거야. 누가 어떻게 걸었나에 따라 반듯하고 좋은 길이 될 수도 있고, 사고가 많이 나는 길이 될 수도 있고…. 이번으로 그치지 말고 자주 함께 걸어보자! 다음에는 다산 유배길도 걸어보고."(언니)

두 갈래 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느닷없이 이처럼 말한 언니도 많이 힘들었나 보다 싶었습니다. "나까지 힘들어하면 우리 모두 너무 쉽게 지칠 것 같아서 너한테 맡기고 걸었는데, 오빠가 많이 힘들어 보인다. 오빠가 버스 타자고 하면 얼른 타자" 이렇게 속삭이는 언니를 보며 우리는 나 몰라라 도망쳤던 언니에 대한 야속함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비가 내려 눅눅하고 춥던 그날도 캄캄해질 때까지 걸었는데, 유구를 조금 앞둔 길에서 생각하는 것만으로 키득키득 웃음이 나오는 재미있는 택시기사를 만났습니다. 그가 들려준 무협소설을 방불케 하는 연애와 결혼이야기를 여러 사람에게 들려줬는데, 듣는 사람들마다 웃음을 참지 못하더군요. 그 다음날 유독 아름다웠던 가을 풍경도 비 덕분이었겠지요. 

시골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일까요. 미처 갈무리하지 못해 그대로 서있는 콩밭이나 연기가 피어오르는 집을 지나칠 때마다 엄마·아버지 생각에 울컥 해지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언니·오빠도 미처 수확하지 못한 고향집의 인디언감자를 걱정하거나, 도보여행 제안 후 시골에서 추수를 거들며 있었던 이야길 하곤 하더군요.

그래서 6일 동안 꼬박 걸은 후 활짝 웃으며 고향집에 들어서려던 계획을 변경해 4일 째인 금요일, 공주에서 출발해 해가 질 때까지 걸은 후 늦은 밤 친정으로 갔습니다. 실컷 걸어봤으니 남은 이틀은 추수를 거들어드리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자정 다되어 도착하는 바람에 1시 넘어 잤음에도 토요일 6시 무렵에 약속이라도 한 듯 일어난 우리는 서둘러 밥을 먹은 후 밭으로 나가 온종일 일을 했습니다. 다행히 두 분이서 며칠은 꼬박 해야 할 일을 모두 해치웠는데, 온종일 얼마나 많은 일을 했던지 백리를 걸으면서도 멀쩡했던 다리에 쥐가 나고, 허리는 끊어질 듯 아팠습니다.

그동안 도보여행을 함께 한 언니와 오빠, 그리고 막둥이가 농사일을 특히 많이 거들었습니다. 힘들게 일하면서 그동안 당연한 듯 받아만 먹던 것이 너무나 죄송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먹을 것 챙겨 보내준다고 밭에서 거둬 짐을 꾸리며 고생했을 형제들에게 미안한 한편 고마운 생각까지 들었고요. 올해부턴 꼭 농사일 거들러 다녀야지 다짐까지 했습니다.

고향집을 수시로 드나들던 언니·오빠에게는 고향에서의 그날이 부모님이 며칠 걸려 하실 일을 모두 해치운 후련한 날로만 기억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결혼과 함께 그리움으로 묻고 살아야만 했던 고향의 늦가을을 30여년 만에 온종일, 여유롭게 맘껏 느낄 수 있어서 잊을 수 없는 그런 날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의미 있는 여행이 되었습니다.

많은 음식들을 나눠 먹었지만 가장 맛있었던 것은 길에서 딴 똥수박, 두번째로 맛있었던 것은 냄새에 홀려 고향으로 가는 밤 마지막 기차를 놓치며 먹은 붕어빵이랍니다. 가을 볕에 속실을 찌우고 익었을, 첫서리에도 얼지 않은 똥수박. 하늘이 내려준 선물로 받아들여도 되겠죠?(2016.11.11. 4일차)
 많은 음식들을 나눠 먹었지만 가장 맛있었던 것은 길에서 딴 똥수박, 두번째로 맛있었던 것은 냄새에 홀려 고향으로 가는 밤 마지막 기차를 놓치며 먹은 붕어빵이랍니다. 가을 볕에 속실을 찌우고 익었을, 첫서리에도 얼지 않은 똥수박. 하늘이 내려준 선물로 받아들여도 되겠죠?(2016.11.11. 4일차)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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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사 가는 길. 춘마곡사 추갑사라는 말도 있다죠. 갑사의 가을은 아름다웠습니다. (2016. 11.11. 4일차)
 갑사 가는 길. 춘마곡사 추갑사라는 말도 있다죠. 갑사의 가을은 아름다웠습니다. (2016. 11.11. 4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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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와 함께 한 몇날 며칠, 간극 털어내

"그동안 여행은 차로만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우리처럼 걷는 사람들이 보이면 '차로 이렇게 편하고 빠르게 갈 수 있는데 뭐 하러 저렇게 청승떨까' 싶기도 하더라. 산행을 수시로 즐기면서도 떠나보지 못해 몰랐던 거지. 그래서 이번 여행이 참 값지단 생각이 드네. 여행의 참맛은 도보여행에 있다 싶고. 이 재미 모를 사람들이 좀 불쌍하단 생각도 들고. 걸으면서 보는 것들이, 느끼는 것들이 참 많네. 한 계절에 한 번 씩만이라도 꼭 이렇게 걸어서 여행하자. 내년 봄엔 다산유배길도 걸어보고, 백제유적지구도 걸어보고…."(언니)

거의 매일 드러나는 비선실세 관련 뉴스들로 많은 사람들이 웃음을 빼앗겼다는 지난 겨울, 붕어빵 냄새에 홀려 그걸 먹는다고 고향으로 가는 마지막 기차를 놓치고 고향으로 가는 차를 찾아 헤매면서도 그저 깔깔 재미있기만 하던 그때가 떠올라 맘껏 웃었고, 함께 먹던 음식들을 떠올리며 마음 따뜻해지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언니오빠가 몹시 그리웠습니다.

언제든 다시 떠나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는 일도 많았고 그랬는데, 글쎄요. 언니 오빠는 무엇이 가장 좋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전, 언니·오빠보다 늦게 태어났기 때문에 모르고 있던 부모님에 대한 것들을 알 수 있어서 좋았고, 내게만 있던 부모님과의 일들을 나눌 수 있어서 좋기도 했습니다. 아니, 그냥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좋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우애 좋은 형제들이라고 늘 좋기만 한가요. 각자의 생활과 이해타산으로 상대방의 사정이나 진실과 달리 섭섭함도 가지게 되고, 쓸데없는 오해도 묻고 살고 그러지 않나요. 결혼과 동시에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어지면서 생기는 간극도 있을 수밖에 없고. 언니와 지난 몇 년간 틈틈이 산행을 한 덕분에 언제나 바라보고 싶은 사이가 되었지만, 오빠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런 오빠와 몇날 며칠을 함께 하며 간극을 털어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동안 각자 삶의 고비들을 용감하게 넘기며 열심히 살아온 것에 대한 일종의 어떤 보상이라 생각할 정도로 귀하고 값진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칠남매 중 유독 우여곡절이 많다면 많았던 우리 셋이네요. 그래서 더욱 공감이 컸을까요. 

부모 형제로 죽어서까지 끊어지지 못할 인연으로 태어났음에도 하루 여행은커녕 한 끼 밥 나눠 먹는 것마저 쉽지 않은 세상이라죠. 아니 남들보다 못한 관계로 살아가는 형제들도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형제의 도보여행이야기를 시간이 지나도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하루라도 좋으니 우리처럼 형제들끼리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라며.

여행 3일차는 천안역 인근에서 시작했습니다. 고향이 김제라 살아오면서 셀 수 없이 천안을 지나치곤 했는데, 지독하게 막히는 상경길인데도 천안까지 오면 막연히 마음이 놓이곤 했던 천안, 정말 넓더군요. (2016.11.10)
 여행 3일차는 천안역 인근에서 시작했습니다. 고향이 김제라 살아오면서 셀 수 없이 천안을 지나치곤 했는데, 지독하게 막히는 상경길인데도 천안까지 오면 막연히 마음이 놓이곤 했던 천안, 정말 넓더군요. (2016.11.10)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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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보대로 오후 내내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려 가장 힘들었던 '풍세~유구~공주 가는 길'(2016.11.10. 3일차)
 예보대로 오후 내내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려 가장 힘들었던 '풍세~유구~공주 가는 길'(2016.11.10. 3일차)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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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92km. 누가 강요하거나 떠민 길도 아닌데 고향까지 걸어온 길보다 더 적게 남았다는 이정표가 왜 그리 반갑던지요. 김제 68km 이정표도 만났습니다. 그리고 한참 더 걸은 후 늦은 밤 고향마을로 갔습니다.(2016.11.11. 4일차)
 김제 92km. 누가 강요하거나 떠민 길도 아닌데 고향까지 걸어온 길보다 더 적게 남았다는 이정표가 왜 그리 반갑던지요. 김제 68km 이정표도 만났습니다. 그리고 한참 더 걸은 후 늦은 밤 고향마을로 갔습니다.(2016.11.11. 4일차)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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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국도, 차를 위한 길이 돼버려

'아쉬움?' '씁쓸함?'도 말해야겠습니다. 너무나 멋진 여행이었지만 우리가 걸었던 길은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그런 길이었습니다. 옛날 사람들이 지방에서 한양을 드나들었다던 623, 629 국도를 따라 걸었는데, 큰 도로는 물론 동네 앞 길까지 사람이 걸어 다니기에는 너무 위험하고 힘든, 차를 위한 길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차가 달리는 방향과 반대로, 그러니까 달려오는 차를 보면서 걷는 것이 맞습니다. 그래야 만일의 위험에 대처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걸을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조차 없어서 뒤에서 차가 달려오는 것을 신경 쓰고 긴장하며 걸어야만 했던 길도 많았고, 길이 끊어져 위험을 느끼며 어쩔 수 없이 무단횡단을 해야만 하는 길도 있었습니다.

때문일까요. 만나는 사람들이 너무나 없더군요. 물론 아파트나 건물들이 많이 들어선 병점에서 평택까지 가는 길이나, 천안이나 공주에서는 사람들을 좀 볼 수 있었지만, 그 외의 지역에선 한나절 동안 단 한사람도 볼 수 없을 정도로 걸어서 이동하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지방 인구가 많이 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차에만 너무 의존하는 생활이란 생각과 대부분의 길들이 차를 위한 길이 되어버렸다는 아쉬움이 겹쳐 씁쓸했습니다.   

그래도 형제들과 함께 하는 어떤 길을 즐기거나, 그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가급이면 다른 여행보다 서로의 많은 것들을 훨씬 많이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도보여행을 떠나는 형제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태그:#도보여행, #몽실가 여행, #갑사, #고향집(공주),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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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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