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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5월 9일 치르는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유력 대선 후보로 문재인, 안희정 후보가 언급되고 있다. 두 정치인은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실장과 충청남도 도지사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문재인 후보는 변호사로서 활동하다가 2012년부터 국회의원으로 활동했고, 야당의 당대표까지 마쳤다. 안희정 후보는 보좌관 생활을 거친 후 2010년부터 충청남도 도지사를 연임하고 있다.

이들을 묶는 한 가지 상징적인 이름이 있다. 바로 노무현이다. 문재인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후배로 같이 변론 활동을 펼쳤다. 참여 정부 시절 선거에 출마하지는 않았지만 청와대에 들어가 지근거리에서 노 전 대통령을 보좌했다. 안희정 후보는 보좌관 시절 노 전 대통령을 모시며 끝없는 낙선을 지켜봤다. 두 후보의 영결식에서의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때 '친노는 폐족'이라는 말이 있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격세지감이다. 2011년 이전까지 문재인 후보는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아니었다. 안희정 후보는 아예 2008년 국회의원 총선에서 선거에 나가지도 못하고 당내 경선에서 탈락하기도 했었다. 이 두 사람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야권 지지층의 우호적인 평가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시대마다, 아니 정확히는 2, 3년마다 계속해서 바뀌어왔다. 참여 정부 초기부터, 참여 정부 말기, 이명박 정부를 거치며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롤러코스터처럼 급변했다. 참여 정부를 지지했건 지지하지 않았건 이제 한국 정치사를 논할 때 정치인 노무현을 빼놓고는 논의하기 어렵게 되었다.

참여 정부 시절을 빼놓고도, 그의 젊은 시절을 다룬 영화 <변호인> 개봉 이후에는 젊은 변호사이자 민주화 운동가로서의 노무현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났다. 젊은 정치인 노무현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읽어 볼 만한 책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옛 시절을 궁금해하거나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적절한 책이다.

<여보, 나좀 도와줘>
 <여보, 나좀 도와줘>
ⓒ 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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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좀 도와줘>는 정치인 노무현의 모습을 그리는 책이다. 한 명의 젊은 사람으로서의 노무현, 잘 노력하려고 해도 안 되던 시절의 노무현의 모습을 그대로 그렸다. 90년대 중반 출판되었던 정치인 노무현 자서전의 개정증보판이다.

이 책은 90년대 중반에 나온 책이기 때문에,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고, 이회창 후보와의 결전에 임하는 노무현 후보의 모습이나, 참여정부를 이끈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은 없다. 대신 책에 등장하는 사람은 소신있게 살려다 서러움을 겪는 청년 노무현과 틀리면 틀렸다고 말하는 패기있는 젊은 정치인 노무현이다.

독특한 제목은 아내 권양숙 여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한 말이다.

"여보 나 좀 도와줘. 나는 꿈이 있어. 나는 꼭 그 꿈을 실현하고 싶어. 정치를 하려면 미쳐야 된대 여보 양숙 씨. 우리 같이 한 번 미쳐 보자. 응?"

통일민주당의 초선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노무현 의원은 3당 합당을 따라가지 않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실천해 김정길 의원과 당에 남았다. 3당 합당이 당시 대세로 여겨졌기 때문에 두 의원을 제외한 다른 의원들은 모두 합당을 따라갔다.

그 결과, 지역구는 같은 부산 동구, 상대도 같은 허삼수 후보였지만 재선에 실패하고 낙선했다. 책이 처음 쓰인 94년 무렵에는 의원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최고위원으로 선출되어 정계 활동을 이어나가던 시점이었다.

책은 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마다 주제에 맞게 일관적으로 내용이 구성되어 있다. <여의도 부시맨>에서는 초선 의원으로서의 삶이 어떤 것이었는지 회고한다. 의원직 사퇴를 선언하고 떠돌아 다녔던 일화, 5공화국 인물들과 청문회를 하면서 느꼈던 소회, 3당 합당 이후 덜렁 남겨진 황망한 정치생활에 대한 언급이 있다.

특히 3당 합당을 따라가지 않고 소신대로 정치를 하면서 겪어야 했던 어려운 난관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다. YS를 지지하는 지역 여론은 굉장히 강했고,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의 출마를 말렸다.

처음부터 안 되는 선거였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 모두 부산 출마를 말렸다. 그러나 김정길 의원과 나는, 그래도 부산을 떠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우리 당의 간부들은 '야당 복원', '통합 야당'을 외치며 우리의 등을 떠밀었다. 선거를 치르기 위해 부산에 내려온 나는 정말로 눈앞이 캄캄했다. -83p.

이렇다 할 계파도 없고, 민주당 간판을 달고 부산에서 정치를 하니 지역에서도 무심했다. 하지만 지역구 이전설이 도는 와중에도 그는 부산을 떠나지 않겠다는 모습을 분명히 한다. 물론 모두가 잘 아는 대로 그는 낙선했다. 그래도 부산에 나가는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나는 15대 선거에서도 역시 부산에서 출마할 것이라는 사실뿐이다. 그 이유는 오히려 간단한 데에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나다운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를 아끼는 사람들, 특히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83p.

2장에서는 <잃어버린 영웅>이라는 제목 하에 YS와 DJ에 대한 평가가 한 장에 걸쳐 적혀 있어 눈길을 끈다. 정치 신인 노무현이 바라보는 YS는 사람 다룰 줄 아는 사람이다. 3당 합당에도 항의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결국 다 YS를 따라가고 말았다.

정면 돌파하려는 뱃심도 두둑했다. 하지만 3당 합당 이후의 YS에 대해서는 '철학이 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반면 DJ는 머리도 똑똑하고 연설도 달변이지만 너무 사람이 빡빡하고 운이 따르지 않는 사람이라고 봤다.

물론 당시에도 양김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정치권 안에서는 양김의 위세때문에 이를 함부로 사람들이 비판하지 못했는데, 정치 신인 노무현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말한 것이다. 보스 정치와 무관하게 자신의 신념을 밝힌 덕분에 당의 주류가 되기는커녕 배척을 받으며 정치를 하게 되지만, 그는 그것이 자신의 길이라고 믿은 듯하다.

인간 노무현이 살아온 삶에 대해서는 '여보, 나 좀 도와줘', '내 마음의 풍차'에서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인간 노무현의 삶은 참으로 굴곡지고 외로운 것이었다. 시골의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 부모님은 산비탈의 땅을 개간해서 자식들을 키워냈고, 3남인 노무현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성실하게 노력했다.

중학교에 입학할 수는 있었지만, 학자금이 문제였다. 학비를 낼 돈이 없었던 것이다. 입학할 때는 우선 책값만 내고 여름에 농사를 지어서 갚기로 하고 입학 허가를 받은 사람이 있다는 말에, 어머니와 함께 중학교의 교감 선생님을 찾아갔지만 저런 놈은 공부시켜봐야 깡패가 된다며 거절당한다.

'어머니는 얼마나 서럽고 분했던지 교감 선생님 앞에서 펑펑 울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들을 입학시키고 싶어 차마 대들지는 못하고 어머니는 계속 울며 매달렸다. 옆에서 지켜보다 못한 내가 입학 원서를 북북 찢어 버렸다. "어머니, 집에 갑시다. 나 이 학교 안 다녀도 좋소!" 하고는 뛰쳐나와 버렸다. 그러자 교감 선생님은 "저 봐라. 저런 놈 공부시켜 봐야 깡패밖에 안 된다."며 의기양양해 했다. -201p.

간신히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도 이승만 대통령 탄신 기념 글짓기에 항의하여 백지 동맹을 주도하다가 교감 선생에게 "이놈 역적이야. 역시 못된 놈은 할 수 없구먼"이란 악담을 듣는다. 다행히 계속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부일 장학생 시험에 합격했다. 부산상고까지 학업을 이어나간 후에는 고시 서적을 사서 고향에 돌아온다.

산에다 초가를 짓고 공부를 하기 몇 년, 사법시험에 합격해서 변호사가 되었다. 판사는 도저히 적성에 맞지 않아서 그만둔 그는 변호사로 활동하며 등기 업무를 맡는다. 전문 변호사가 되려던 꿈도 잠시, 이흥록 변호사의 부탁을 받아 '부림 사건'을 맡는다. <변호인>의 모티브가 된 사건이었다.

정말 이것만은 세상에 꼭 폭로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져 먹고 변론을 시작했다. 통닭구이 드으이 고문과 무수한 매질, 접견은커녕 집으로 연락조차 없었던 일, 아들을 찾아 나선 그 어머니의 처참했던 심경 등을 낱낱이 적어 법정에서 따져 물었다. 방청석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입장이 곤란해진 판사는 벌레 씹은 표정으로 안절부절 못했고 검사는 얼굴이 뻘게져 법정의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중략)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전두환 장군이 대통령이 된 이후 어떻게 권력을 유지해 나가는지 알기나 하시오? 지금 부산에서 변호사 한두 명이 죽었다고 해서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이 될 줄 아시오?" 검사의 그 협박은 오히려 나의 투지에 불을 붙여 놓았다. -245~246p.

결국 이렇게 시작된 변론으로, 검사들의 눈엣가시가 되면서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원래는 특정 업무(조세)에 특화된 전문 변호사가 되려 했지만,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상대가 되면서 정권과 맞서 싸우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마침 시위경력 때문에 앞날이 막힌 후배 문재인과 함께 변호사 업무를 하면서 호흡을 맞추고 본격적인 운동에 뛰어들게 되었다. 87년 이후에는 억울하게 눌린 사람들의 소리를 외치는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에 현실 정치로 나아갔다. 이후에는 정치인 노무현이 되어 또 다른 치열한 삶을 살게 되었다.

책이 말하는 인간 노무현의 이야기는 솔직하고 담백하다. 학비 때문에 교감과 싸운 이야기부터, 공사장에서 일하다가 치아가 깨진 이야기, 아내에게 미안한 이야기 등이 가감없이 그대로 실려 있다.

특히 옳다고 생각되는 일 때문에 남과 싸운 이야기가 참 많다. 이승만 백일장 때문에 싸우고, 3당 합당 반대해서 싸우고, 청문회 때 분통이 터져서 화낸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자서전에 이런 이야기를 적어도 되나 싶은 이야기까지 모두 담겨 있으니 매우 솔직한 책이라 하겠다.

책에 나온 저자의 삶의 태도에 대해서는 평이 엇갈릴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시원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통합하지 않는 행보라고 생각될 수 있다. 다만 왜 이 사람이 훗날에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 대선 후보가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이 책을 읽으면 짐작가는 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 노무현, 가려서 말하라는 남의 조언 안 듣고 자기 할 말 하던 정치인 노무현 의원의 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들은 이 책을 펴는 순간 이 사람이 가진 야성과 꼿꼿함에 페이지를 멈출 수 없을 것이다. 열정과 시련으로 써 내려간 글 속에 완고한 원칙이 숨어있는 책이다.


여보, 나좀 도와줘 - 노무현의 첫 자전 에세이, 개정증보판

노무현 지음, 새터(2017)


태그:#노무현, #정치인, #자서전, #정치, #변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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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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