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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서 언급되는 수능특강은 수능완성까지 포함한 개념입니다. 수능특강과 수능완성을 같이 언급하기에는 길어서 수능연계교재라는 점에서 수능특강으로만 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 기자 말

새 학년이 또 시작되었다. 신입생은 입학하고, 재학생은 한 학년 진급을 하는 시기이다. 모두가 새로운 마음으로 기대하고 학교를 가지만 유난히 마음이 무거운 한 학년이 있다. 바로 고등학교 3학년(아래 고3)이다. 벌써 2018학년도 수능 D-day가 250일도 채 남지 않았다. 사실상 수능일이 8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은 고3들에게 개학이란 나름 무거운 존재였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는 일찍이 노력해서 누구보다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하는 치열한 경쟁사회는 어쩌면 아직 어린 청소년들에게는 부담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고3 생활은 사실상 지난해 겨울방학부터 시작되었다. 방학식 날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겨울방학 중에 수능특강이 나오니 미리 사서 한 번씩은 풀어보며 예습을 해라". 그리고 종업식 때는 "3학년 수업 교재는 수능특강이니 미리 사서 오도록 해라. 훑어보는 정도라도 공부하고 오도록 해라" 등이었다. 선생님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겨울방학 때 예비 고3들의 카톡방에서 <'수능특강'이란 단어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수능특강> 샀나?", "<수능특강> 얼만데?", "<수능특강> 많이 풀었나?" 등등 예비 고3의 주제는 이미 수능특강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확인해야 할 사실이 있다. '학교에서 사용할 교과용 도서는 학교의 장이 선정한다.'(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 제3조(교과용 도서의 선정) 1항), '제1항에 따른 교과용도서는 다음 각호의 구분에 따라 국정 도서 또는 검정도서 중에서 선정한다.(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 제3조(교과용 도서의 선 2항)'는 것이다.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 제 3조 3항에서는 인정도서에 관한 내용도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기자는 왜 법률까지 끌어오면서 한 가지 알아야할 사실이 있다고 한 것일까? 바로 고3들이 학교에서 수업하는 <EBS 수능특강>은 바로 국정도서도, 검정도서도, 인정도서도 아니기 때문이다.

먼저 국정·검정·인정 도서에 관해서 무엇인지에 대해 간단하게 알아보고 시작하자.

국정 도서는 쉽게 말해서 교육부가 편찬하는 교과서로, 계속 논란이 되고 있는 국정역사교과서가 이에 속한다. 검정도서는 국가기관에서 편찬한 것이 아닌 민간 출판사에서 편찬한 교과서로, 교육부로부터 합격 결정을 받은 교과서를 말한다. 인정도서 또한 국가기관에서 편찬한 것이 아닌 민간 출판사에서 편찬한 교과서이지만, 이는 교육부로부터 검정을 받은 것이 아닌 각 시도 교육감이 승인한 교과서를 말한다.

한마디로 <EBS 수능특강>은 국가에서 편찬한 것도, 국가에서 검정한 것도, 각 시도의 교육감이 승인한 교과서도 아닌 '문제집'일 뿐이라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점은 바로 고3은 <수능특강>으로 수업을 함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교과서 구매를 한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 전체 선생님들 중 <수능특강>을 사용하지 않는 선생님은 많아야 한두 명으로 매우 적다. 학교별로 아무리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교과서로 수업하시는 분들은 매우 드물며, 대부분의 학교가 수능특강을 3학년 교재로 사용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교과서를 사고도 <수능특강>으로 수업을 하는 것인가? 바로 <수능특강>이 수능 문제와 연계되기 때문이다. <수능특강>이 수능 연계 교재로 사용되기 시작했던 것은 2010년(2011학년도)부터로 사교육을 억제하고 공교육을 정상화하자는 지침에 따라 EBS에서 발행하기 시작한 교재로,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교육부와 EBS와의 협의에 따라 이 교재에서 70% 정도를 연계하여 출제하기로 했다.

수능 문제가 교육부 협의 하에 EBS 교재에서 내기로 했다는 점에서 약간 혼동이 올 수도 있지만, 수능 문제의 연계에 관하여 교육부와 협의를 했다는 것이지 교과서 제작과는 무관하다. 게다가 <수능특강>의 앞표지를 보면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감수'라는 말을 볼 수 있듯이 <수능특강>의 출판은 교육부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수능에 연계된다는 이유 하나로 우리는 교과서를 사고도 <수능특강>으로 수업을 한다. 그럼 고3들이 3학년 진급 때 총 몇 권의 책을 사는지 자세하게 알아보도록 하자. 3학년 교과서는 주로 국어, 수학, 영어, 탐구과목 2개, 집중과목 및 예체능 과목(학교마다 차이가 있음)에 2학년 때 구매한 교과서까지 합치면 대략 10권 정도의 교과서를 구입한다.

한국 검인정교과서협회에서 제공하는 교과서 구입서비스를 기준으로 했을 때 수능 필수과목 기준으로 한 권당 가격은 최저 약 5000원에서 최대 약 1만3000원까지로 평균 8000~9000원으로 잡을 수 있다. 10권 구매라고 가정을 했을 때 9만 원이 들고, 학교 공동 구매로 할인 혜택을 받는다고 해도 7만 원 내외다.

그렇다면 <수능특강>은 얼마일까? 수능을 대비하여 구매해야 할 책은 약 11~12권(국어 3권, 수학 2~3권, 영어 3권, 한국사 1권, 탐구 2권, 제2외국어 및 한문 1권)으로 평균을 11권으로 잡도록 하겠다. <수능특강> 교재는 약 4500원에서 7000원 정도로 다양하지만 평균 5500원을 기준으로 11권을 구매하면 약 6만 원이 든다.

게다가 수능 연계 교재는 <수능특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최종적으로 <수능완성>까지 연계됨으로 6만 원을 더 소비해야한다. 이렇게 되면 기타 문제집을 제외한 교과서 구매에만 20만 원 가까이 지출하게 되는데 이중 1/3은 무의미한 소비라는 것이다.

교과서나 <수능특강>이나 <수능완성>이 다른 책들보다 가격이 저렴하긴 하지만 사용하지 않는 책을 그냥 구매한다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우리는 어떤 학생의 집안 사정이 어떤지 모르고, 어떤 이들은 교과서와 <수능특강> <수능완성> 세트 구입이 힘들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환경적으로 생각을 해보았을 때도 학생을 대략 50만 명으로 잡으면 200쪽이 넘는 500만 권의 종이가 그냥 낭비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 버려져있는 책들이다. 교과서를 비롯해 많은 새 책들이 한 번도 펼쳐지지 않은 채 버려져 있다. 아직 묶음을 채 풀지 않은 책들도 보인다.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 버려져있는 책들이다. 교과서를 비롯해 많은 새 책들이 한 번도 펼쳐지지 않은 채 버려져 있다. 아직 묶음을 채 풀지 않은 책들도 보인다.
ⓒ 최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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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교과서를 사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 "EBS를 검인정교과서로 지정하면 되지 않느냐?"라는 등의 말이 나온다. 우선 EBS를 검인정교과서로 지정한다는 것에서는 현직 교사들이 답을 해주었는데 "사실상 불가능하고,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 이유는 '교과서를 사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라는 질문에서 설명하도록 하겠다. 교과서를 사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교과서가 교육부로부터 검정받은 자료들이기 때문이다.

좀 더 추가해서 말하자면 교육부가 지향하는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교과서를 사용해야 한다. 사실 교과서와 수능특강을 두고 비교해보면 배워야 할 학습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배우는 과목은 똑같기 때문에, 내용상으로는 다르지 않지만 가장 다른 것은 교과서는 교과서이지만 수능특강은 문제집이라는 것이다.

교육부의 지침에서는 학생들이 수업을 통하여 논리적 사고를 키우고 융합형 인재가 되는 것을 주목표로 하고 있다. 그렇기에 학교는 토론활동이나 수행평가 등의 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학교수업에서 단지 배우는 것만이 아닌 직접 참여하고 활동하면서 생각해보도록 하는 것이 그들의 주된 목표이자 임무이다.

하지만 <수능특강> 교재를 살펴보면 교과서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생각해보기', '참여마당'과 같은 부분을 볼 수 없다. 논리적 사고를 할 줄 아는 융합형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수능특강을 사용하지 않고, 교과서를 이용한 논리적인 수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출판사의 이익을 위한 것도 있다. 이것이 주목적은 아니지만, 이것 또한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주)금성출판사의 영어교과서(High School English Reading and Writing)이다. 본문을 학습하기 전에 미리 내용에 대해 생각해보고 생각을 기르는 등 다양한 사고를 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주)금성출판사의 영어교과서(High School English Reading and Writing)이다. 본문을 학습하기 전에 미리 내용에 대해 생각해보고 생각을 기르는 등 다양한 사고를 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 최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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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금성출판사의 영어교과서(High School English Reading and Writing)이다. 자신의 생각을 직접 적어보며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고, 동료 평가를 할 수도 있다.
 (주)금성출판사의 영어교과서(High School English Reading and Writing)이다. 자신의 생각을 직접 적어보며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고, 동료 평가를 할 수도 있다.
ⓒ 최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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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학년도 수능특강 영어교과서이다. 탐구활동은 찾아볼 수 없으며, 문제만 가득 담겨있는 문제집임을 알 수 있다.
 2018학년도 수능특강 영어교과서이다. 탐구활동은 찾아볼 수 없으며, 문제만 가득 담겨있는 문제집임을 알 수 있다.
ⓒ 최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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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교사들도 말하길 "<수능특강>으로 수업하는데 교과서를 구매하는 것은 비실용적이긴 하다. 하지만 업무상의 문제 등 여러 가지를 따져보면 교과서를 구입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진정 교육부에서 내려오는 지침대로 학생들에게 창의적 교육을 하려면 교과서에 충실해야 하지만 학생들의 대입을 위해서라면 수능이 연계되는 수능특강으로 수업하는 것이 더 도움된다. 수업하는 우리 교사들 입장에서도 수능특강은 딱딱하고 지루하고, 깊게 가르칠 수 없어 많이 아쉽다"고 전했다.

기자가 "교육부에서는 교과서로 수업하라고 했는데, 국정도서나 검인정도서도 아닌 교재로 수업하면 불법행위가 아닌가?"라고 물어봤더니, "교육부도 모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언론이나 SNS 등에서 알려져 있는 사실이기 때문에 사실상 눈감아주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모든 학교에서 이와 같이 수업하고, 마땅한 해결방안이 없기 때문에 암묵적으로 눈감고 서로 묵인하는 것일 거다"라고 답했다.

며칠 전 한 고등학교의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수업을 하지 않고, EBS 강의를 틀어놓았다는 것이 한 온라인커뮤니티에 올라와 논란이 됐다. 이것이 간혹 보이는 몇몇 되지 않는 사건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기자가 이 기사를 쓰면서 주위의 고3들에게 알아본 결과 이런 선생님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발한 사건을 다룬 기사에서 그 교사는 '월급 루팡(도둑) 선생님'이라고 불렸는데, 다른 학교에서 같은 방식으로 수업하는 교사의 별명은 '직무유기'이다. 수업시간에 EBS 방송을 틀어주고, 수업에는 들어오지 않고 다른 업무를 봐서 붙여진 별명이라고 한다.

학생들의 분노도 적지 않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예민해진 그들에게는 더욱더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다. 학생들은 "말이 70% 연계이지 실제로 체감은 30%밖에 안 되고 다시 봐도 70%나 연계되는지는 모르겠다.", "<수능특강>을 통해 수업을 하니까 선생님들도 내신 시험마저 수능식 문제로 나온다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되니까 모의고사를 더 잘 치는 애들이 더 유리해졌다. 수능특강 때문에 내신점수를 받기도 힘들어졌다" 등 <수능특강>을 꼭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산 지 하루도 아닌 몇 분 만에 버려지는 교과서들을 보면 정말 안타깝다. 돈이 없어 공부를 할 수 없다는 아이들의 소식을 자주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쓰레기 더미가 되어버린 새 책들을 보거나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아프다.

교육체제 자체가 대입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수능연계를 하지 않는다든가 등의 파격적인 해결방안은 내기도 힘들 것이고 실행시키기도 힘들 것이다. 하지만 암묵적으로 서로 묵인하는 것보단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정작 교과서가 필요한 학생들이 누구인지 알아보고 도와주는 것이 옳지 않을까 기자는 생각한다.

또한, 이건 단순히 교과서 구입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교과서를 구입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내신 시험이 <수능특강> 위주로 수능식으로 나오게 됨으로써 피해를 본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게다가 교육부가 원하는 교육, 그리고 학생이 진정 원하는 교육, 교육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보면 수능특강을 사용한 수업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창의적 인재를 발굴할 것인가? 한 문제라도 더 맞추는 인재를 발굴할 것인가?

덧붙이는 글 | * 본 기사를 쓰는데 위키백과를 참고했으며, 인사이트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혹시 몰라 출처를 밝힙니다.

수능연계교재에 관한 부분 각주(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B%8C%80%ED%95%99%EC%88%98%ED%95%99%EB%8A%A5%EB%A0%A5%EC%8B%9C%ED%97%98_%EC%97%B0%EA%B3%84_%EA%B5%90%EC%9E%AC

수업을 하지않고 EBS강의를 틀어줘서 고발당한 뉴스(인사이트)
http://www.insight.co.kr/newsRead.php?ArtNo=97300

개인 블로그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http://blog.naver.com/koreanteacherjw



태그:#수능, #수능특강, #수능완성, #고3,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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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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