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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 나는 많이 아팠다.

겨울을 지나 매화나무 꽃망울이 몽울몽울 올라오기 시작할 무렵, 원인 모를 아픔의 씨앗들이 이곳 저곳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아픔은 그 아픔 자체보다 슬그머니 따라 붙는 마음 속 흔들림 때문에 더 아프다. 그것도 천리타향이라면 그 아픔은 더 야리고 쓰리게 느껴진다. 작년 봄 나는 첫사랑 가슴앓이 하듯 그렇게 아팠다.

작은 피부병으로 시작한 병은 밤마다 불면의 시간으로 다가왔고 어느 날부터 무기력증이 퍼져 하루하루 버티기가 힘들어졌다. 사실 그 아픔이라는 게 마음에서 오는 병이라는 걸 나도 주변 사람들도 알고 있었다.

병세가 점점 심해져 결국 친구들 도움을 받아 간신히 버틸 수 있었다. 그 때 견디다 못해 심리상담을 하는 친구를 찾아갔다. 내 상태를 진단하더니 그 친구는 긴급 처방전을 주었다.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게 뭐야?"
"음~ 글도 쓰고 싶고, 또 여행도 하고 싶고, 글쎄 잘 모르겠어."
"그럼 다른 것 다 집어 치우고 제일 하고 싶은 거부터 해."

친구의 처방은 기대보다 너무 싱겁고 간단했다. 다시 전주로 돌아가 골방에서 한참 나를 바라 보았다. 거울 속에는 총기 잃은 초로의 중년 사내가 서 있었다.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음 속에서 한 줄의 말이 떠올랐다.

'이대로 죽고 싶지 않다. 여행은 후에 가더라도 되든 안되든 글부터 먼저 써봐야겠다.'

그날부터 매일 글을 쓰기 시작했다. 곰도 사람이 될 수 있는 기간이니 100일 동안 쉬지 않고 쓰다 보면 무엇인가 보일 듯 했다. 블로그에 '홈즈의 하루'라는 방을 만들었다. 그렇게 100일 동안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쫓기듯 시작한 글쓰기는 100일을 넘어 160여일 지속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마음은 평화를 되찾았고 토굴 같은 1평 전주 방에서 나와 다른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가을이 익어갈 무렵 중대 결단을 내려야 했다. 글을 쓰면서 나를 돌아보니 지금 현재 내 모습이 보였다. 내 몸에 잘 안 맞는 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에 미쳤다. 2년전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국수장사를 접기로 했다. 그리 마음 먹으니 한결 더 편안해졌다.

함께 하는 동생과 상의하고 일단 혼자만이라도 전주생활을 정리하기로 했다. 홀로 계속 해야 할 동생을 생각하니 미안하고 불편했지만 그렇게 결정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자유로워졌다. 전주 방을 대충 정리해보니 4박스의 짐이 나왔다. 3박스의 책과 나머지는 옷가지다. 2년 전주 생활이 저 4박스 속에 들었다 생각하니 묘한 감정이 일었다.

전주를 대충 정리하고 고창 선운사에 들어 갔다. 그 곳에는 전주에서 만나게 된 벗 시도형이 살고 있었다. 스스로를 차요정이라고 불러 달라는 벗은 고창 선운사 차밭지기를 자처하며 지난 봄부터 선운사에 들어와 살고 있었다.(관련기사 : 선운사에 가면 동백도 있고 야생차밭도 있다.)

차 정원(차 요정은 차 밭이라고 하지 말고 '차정원'이라 부른다) 가운데 있는 방에서 일주일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오전에는 차정원 산책하고, 저녁부터는 차곡차곡(차 마시고 술 마시고)하며 놀았다.
늦가을 선운사 선운사에는 멋진 차정원(산책길)이 있다.
▲ 늦가을 선운사 선운사에는 멋진 차정원(산책길)이 있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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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차밭 거처 차정원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차요정 거처
▲ 선운사 차밭 거처 차정원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차요정 거처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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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곡차곡 차마시고 술마시고
▲ 차곡차곡 차마시고 술마시고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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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그 동안 무엇 때문에 잘 되지도 않는 국수장사를 접지도 못하며 매달려 왔는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운사 깊은 계곡의 바람과 차정원의 신선한 기운을 받으며 뒹굴 거리다 보니 갑자기 제주도에 가고 싶어졌다. 며칠 전 제주에 사는 친구가 페북에서 스치듯 던진 말이 생각 났다.

'국수장사 접었다고? 잘 됐네.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좀 쉬었다 다른 일을 해도 해. 제주 한 번 놀러 와. 재워는 줄게.'

이 말과 함께 지난 봄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생각났다.

'그래 맞아! 나 올해 안에 여행 가기로 했었지.'

"형 나랑 제주도 밀감 따러 갈래?"
"그럴까."

뜬금없는 제안에 차요정은 일초의 머뭇거림도 없이 대답했다. 바로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그렇게 50대 초반, 두 철없는 친구의 제주도 무전여행은 시작되었다.


LF(Life Facilitation)생각공작소장, 어제 보다 나은 오늘,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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