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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글 '중국인의 꽌시, 한국인의 착각'에서는 중국 사람이 생각하는 꽌시(關係)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중국 사람이 주위 사람과 꽌시를 맺기 위해 어떻게 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중국사람과 이런저런 관련이 있는 한국 사람은 중국사람과 꽌시를 맺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당연히 어떻게 하면 중국사람과 꽌시를 맺을 수 있을까 궁금해하지요.

다행인 건 중국사람도 주변에서 꽌시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을 항상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 사람이 찾는 꽌시 대상에는 당연히 한국 사람도 포함됩니다. 그러니까 한국 사람이 중국사람과 꽌시를 맺기 위해 힘쓰는 것처럼, 중국사람도 꽌시를 맺을 만한 한국사람을 애타게 찾고 있는 겁니다.

중국사람이 주변에서 어떤 사람을 어떻게 만나, 어떤 과정을 거쳐 서로 꽌시 관계가 되는지 소개합니다.

먼 친척이 가까운 이웃보다 못하다

중국 어머니가 자녀에게 읽히는 필독도서 <증광현문>에는 "먼 친척이 가까운 이웃보다 못하다(遠水難救近火,遠親不如近鄰)"라는 말이 나옵니다. 가까운 곳에 있는 물로는 내 집 불을 끌 수 있지만, 먼 곳에 있는 물로는 내 집 불을 끌 수 없다는 의미지요.

주변에 아무리 이웃이 많아도 평소에 서로 친해 놓지 않으면, 나에게 어려운 일이 생겨도 관심조차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중국사람은 항상 주변에서 나에게 문제가 생기면 나를 도와줄 적당한 이웃을 찾습니다.

<증광현문> 중국책
 <증광현문> 중국책
ⓒ 출처: 바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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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광현문'에는 "집에서는 부모를 의지하지만, 사회에서는 친구를 의지해야 한다( 在家靠父母出門靠朋友)"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사람은 주변에 있는 이웃 중에서 필요할 때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친구를 찾습니다.

중국사람이 찾고 있는 친구는 내가 가지지 못한 능력을 갖춘 사람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나도 당연히 내가 친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가지지 못한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서로가 생각할 때 친구가 될 수 있고, 시간이 흘러서 꽌시 관계가 됩니다.

내가 상대방을 도와줄 능력이 없을 때는 어떤 방법으로도 내가 필요한 능력을 가진 상대방과 꽌시를 맺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친구도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중국사람이 생각하는 능력에는 경제적인 금전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한국 사람은 경제력도 능력이라 생각하고 금전 능력으로 중국사람과 친구가 되려 하고, 더 나아가 꽌시를 맺으려 하기도 합니다. 상대방이 내가 가진 능력이 별로라고 여기면, 아무리 자주 만나 술을 먹더라도 그냥 술을 같이 먹는 사람일 뿐입니다.

중국에서 꽌시 관계인 사람끼리는 어떤 일을 도와주더라도 절대로 금전적인 대가를 원하지 않습니다. 중국에서 꽌시 관계인 누군가가 나를 도와주고 그래서 내가 고맙다고 금전으로 보상하려고 한다면, 상대방은 오히려 화를 낼 뿐만 아니라, 이렇게 되면 서로의 꽌시 관계는 막 바로 끝납니다.

만약 어떤 도움의 반대급부로 내가 금전을 주었다면, 그건 꽌시나 친구 관계가 아니라 상대방이 가진 능력이라는 상품을 구매한 것입니다. 당연히 일회성 거래이고, 이런 경우는 대부분 영수증을 주고받지 않기에 사후서비스도 없습니다.

왜 중국사람이 꽌시 친구 사이일 때 서로 대가 없이 도움을 주고받는지는 마지막 부분에서 알아보겠습니다.

밥그릇 수가 중요합니다

한국에서 '밥그릇'이란 단어는 보통 상황이 좋지 않은 경우 사용합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자기보다 어린 사람과 대화 중에 논리에서 밀리면, '내가 너보다 더 먹은 밥그릇 수가 얼만데'라며 나이라는 권위를 내세웁니다. 또 상대방이 내 능력을 인정해 주지 않으면, '내가 이 바닥 밥그릇 수가 얼만데'라며 자신이 경험이 많다는 걸 강조합니다.

중국에서 말하는 '밥그릇 수'는 내가 먹은 '밥그릇 수'가 많은지 적은지가 아니라, 내가 상대방과 같이 먹은 '밥그릇 수'가 얼마나 많은지 입니다.

세상 어느 나라 누구에게나 '밥'은 중요합니다. 먹지 않으면 죽으니까요? 그런데 중국에서 '밥'은 생존을 위해 음식을 먹는다는 의미 외에, 형제처럼 서로 믿고 같이 힘을 합쳐 살아간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은허’에서 발굴한 정(가마솥)
 ‘은허’에서 발굴한 정(가마솥)
ⓒ 김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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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고대 은나라, 주나라, 춘추전국시대 국가의 권위를 상징하는 물건은 정(鼎)입니다. 정(鼎)은 네모나 원형 모양에 다리가 세 개 혹은 네 개 달린 취사도구입니다. 그러니까 현재 말로 하면 음식을 요리하는 가마솥입니다.

중국에서 가장 큰 정(鼎)은 은나라 수도였던 은허(현재 하남성 안양시)지역에서 출토되었는데, 높이가 1m 33cm이고 길이가 1m10cm 넓이는 78cm 무게는 875kg입니다. 엄청난 가마솥인 거지요. 아마 이 솥을 사용해 음식을 만든다면 천명 정도는 같이 먹을 수 있을 겁니다.

고대 중국사람은 왜 국가 상징물을 가마솥으로 했을까요? 누구나 생존을 위해서 밥을 먹습니다. 하지만 한 솥으로 요리한 밥을 같이 나누어 먹는 사람은 가족뿐입니다. 가족은 운명 공동체이고요. 그래서 고대 중국사람은 국가란 하나의 가마솥으로 요리한 밥을 나누어 먹는 공동체라는 걸 상징하는 물건으로 정(鼎)을 선택한 거지요.

어느 나라 어느 사회에서나 사람이 친해지는 방법으로는 같이 밥을 먹는 게 최고입니다. 중국사람은 한 솥으로 지은 밥을 많이 먹어야만 보통의 친구 관계가 혈연으로 맺은 형제 관계로 바뀐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사람은 주위에서 본인이 가지지 못한 능력을 갖췄을 걸로 여겨지는 사람을 발견하면, 우선 밥부터 먹자고 합니다. 처음에는 둘이서만 밥을 먹습니다. 몇 번 밥을 먹다 보면, 같이 밥 먹는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중국 친구와 저 둘이서만 밥을 먹었는데, 어느 순간엔가 같이 밥을 먹는 사람이 5명, 10명, 심지어 20명까지 늘어납니다.

횟수도 잦아집니다. 처음에는 1달에 한 번 정도 만나다, 두세 달이 지나면 1달에 두 번 정도, 나중에는 거의 매주 만나게 합니다. 초대받은 자리에 가면 매번 새로운 사람이 자꾸 나타납니다. 이렇게 반년이 지나면 중국 친구 주변 사람을 거의 알게 됩니다.

중국친구 집에 가면 남자가 음식을 준비합니다
 중국친구 집에 가면 남자가 음식을 준비합니다
ⓒ 김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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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다음에는 중국 친구 집에서 밥을 먹고, 또 얻어먹을 수만 없으니 내가 사는 집에도 초대하고, 그러면 중국 친구의 친구가 또 초대합니다. 한국 사람인 저는 이쯤에서 살짝 짜증이 났습니다. 내가 원한 건 처음 알게 된 중국 친구와 친구가 되는 건데, 자꾸만 다른 사람이 나타나니 시간 소비가 만만치 않은 거지요.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밥만 같이 먹었지만, 다음에는 자전거 여행도 같이 가고, 그다음에는 등산도 같이 가고, 그다음에는 2박 3일 여행도 같이 가게 됩니다.

중국친구와 야외에서 양꼬치 파티
 중국친구와 야외에서 양꼬치 파티
ⓒ 김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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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렇게 중국 친구를 자주 만나 마침내 그와 꽌시 관계가 됐을까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자주 만나 같이 밥을 먹은 건 혈연관계와 같은 형제가 되는 기간이기도 했지만, 중국 친구가 그의 주변 친구들과 함께, 제가 가졌을 거로 여긴 능력을 이렇게 저렇게 확인해 보는 기간이기도 했으니까요.

중국 속담 중에 "말(馬)의 힘을 알려면 멀리 가봐야 하고, 사람의 마음을 알려면 오래 만나봐야 한다(路遙知馬力,日久見人心)"는 말이 있습니다. 중국사람이 어떤 일을 결정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남에게 도움을 받는 건 빚지는 일이다

2년 동안 만난 중국 친구가 어느 날 자기 친구에게 좋은 일이 생겨 호텔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며, 저를 초대했습니다. 이날 중국 친구가 준비한 만찬은 군대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집에 돌아온 친구 아들을 위한 자리였습니다. 그러니까 제대를 축하하는 자리를 당사자의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의 친구가 마련한 거지요.

자주 만나지는 않았지만, 알고 지내던 중국 친구가 가족과 같이 한국에 놀러 왔습니다. 다행히 제가 한국에 머물 기간이라서, 하루 시간을 내 관광지를 안내해 주고 밥 한 끼를 대접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일을 끝내고 다시 중국에 왔을 때,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자기 친구 가족이 한국 여행 갔을 때, 제가 자기 친구 가족을 잘 대접해 줘 고맙다며, 초대해서 2박 3일 여행시켜주겠답니다.

서로 꽌시를 맺은 친구끼리는 오랫동안 같이 밥을 먹었기에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필요한 일이 생기면 알아서 도움을 주려고 합니다. 심지어 같이 밥을 먹으면서 '뭐 도와줄 일이 있는지' 서로 물어봅니다. 제삼자인 제가 보기에는 서로 도와주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 같습니다.

중국에는 "도움을 받고 보답을 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有恩不報小人,有仇不報非君子)"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도움을 주는 사람은 당연히 꽌시 친구이고, 은혜를 갚아야 할 상대방도 당연히 꽌시 친구입니다. 꽌시 친구가 아닌 사람은 아무리 도와주어도, 도움을 받은 사람이 보답하지 않습니다.

꽌시 친구가 나를 도와주었다면, 나는 반드시 갚아야 할 빚(부채)을 진 겁니다. 그런데 도움을 준 사람은 막 바로 보상을 받지 않고 상대방에게 계속 빚으로 남겨두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당신에게 도움을 주긴 했지만, 지금 그 빚을 갚지 말고 기억하고 있다가 미래 어느 날 내가 당신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되면 그때 반드시 갚으라는 거지요. 그래서 꽌시 친구끼리는 어지간해서는 상대방에게 부담이 되는 도움을 안 받으려고 합니다.

중국에서 '내가 꽌시가 넓으니까 나를 통하면 무슨 일이든 해결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해결사일 뿐입니다. 해결사니까 당연히 비용과 수수료를 챙기겠지요.

중국친구와 등산
 중국친구와 등산
ⓒ 김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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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중국에서 장사해 보려고 임차할 상가를 찾고 있을 때, 2년 동안 만난 중국 친구가 상가를 알아봐 줘 임대회사와 계약을 하고 계약금을 치렀습니다. 그런데 장사를 준비하는 동안 저에게 다른 일이 생겨 상가를 열 수 없게 됐습니다. 계약 규정에 따라 속은 쓰리지만 어쩔 수 없이 계약금을 포기했지요. 

어느 날 중국 친구가 저에게 임대회사에 가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적지 않은 금액의 계약금을 돌려받았습니다. 저는 중국 친구에게 빚을 진 겁니다.


태그:#중국, #꽌시, #중국사람, #중국문화, #은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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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중국사람이야기>,<중국인의 탈무드 증광현문>이 있고, 논문으로 <중국 산동성 중부 도시 한국 관광객 유치 활성화 연구>가 있다. 중국인의 사고방식과 행위방식의 근저에 있는 그들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 중국인과 대화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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