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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이 죽고, 17명이 중상을 입었던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 참사가 지난 2월 11일로 10년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보호소 시설은 변한 게 없고,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는 사회의 시선 역시 변한 게 없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이주노동자와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그간 가까이서 지켜봤던 피해자들 이야기를 정리하고자 한다. 국내에서 사망한 이주노동자들과 그 친구들의 이야기다. 특별히, '세계인종차별 철폐의 날'을 맞아 한국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인종 차별과 정부에 의해 주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차별정책들에 대한 시정에 경종이 울리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다. - 기자 말

영정을 앞에 두고 굳이 말이 필요 없었다. 출입국 단속을 피하다 죽은 누르 푸아드 장례식장 빈소 앞에 앉은 이주노동자들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어깨를 들썩였다. 그 자리에 있던 압둘 사꾸르(Abdul Sakur, 35)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저 영정 사진이 내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산업기술연수생으로 2001년에 한국에 입국했다. 한국에 온 지 3년째 되던 해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절단되는 산업재해를 당했었다.

그런 그에게 출입국 단속을 피하다 죽은 누르 푸아드의 소식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같은 처지의 같은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노동자가 겪은 사고를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다. 산재를 당한 후로 변변한 직장을 얻지 못하고 마음고생이 심하던 때였다. 빈소에는 안면이 있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낯선 얼굴들이 더 많았다.

장례식장에 갔다 온 지 한 달쯤 지난 2006년 5월 21일, 압둘 사꾸르는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일을 경험한다. 오후 여덟 시쯤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단단한 체격의 남자 예닐곱 명이 식당 안으로 뛰어들더니 다짜고짜 수갑을 채우고 압둘을 경찰차에 태웠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들은 신분을 밝히지도 않았고, 왜 수갑을 채우는지도 말하지 않고 강제 연행했다, 다만, '조사할 것이 있다'는 말만 했을 뿐이었다.

압둘을 체포한 경찰의 말은 자꾸 바뀌었다. 처음에는 발리 테러 용의자와 인상착의가 비슷한두 명이 누르 푸아드 장례식장에서 사진에 찍혀서 참고인 조사차 불렀다고 했다. 그다음에는 압둘이 테러리스트 몽타주와 인상착의가 비슷하다는 핑계를 대기도 했다. 경찰은 참고인에서 용의자로 압박을 더 했지만, 결국 아무런 관련이 없음이 드러났다.

26명이 사망하고 127명이 부상당한 발리 테러는 2005년 10월 2일에 발생한 일이었다. 그보다 앞서 202명이 사망하고, 209명이 부상당한 발리 나이트클럽 폭발사건도 2002년 10월 12일에 일어난 일이었다. 두 사건 모두 압둘이 한국에 있을 때 일어난 일이었다. 경찰이 출입국 기록만 살펴도 간단하게 연관성이 없음을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었는데, '사진'이니 '몽타주'니 하면서 체포한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러자 경찰은 테러와 아무 관련이 없는 인도네시아 공동체 활동과 누루 푸아드 장례식과 집회에 참석한 이유 등을 캐묻기 시작했다. 압둘은 그제야 경찰이 누르 푸아드 장례식장에 갔던 사람들을 조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법무부 출입국이 무리한 단속으로 이주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에 대해 언론의 비판이 비등할 때였다. 출입국은 문제를 제기하는 시민단체와 함께 한 이주노동자들을 경찰의 힘을 빌려 표적 단속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자, 경찰은 아무런 통보 없이 강제로 연행해 놓고는 참고인 조사를 위해 본인 동의를 얻어 임의 동행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테러리스트가 아님을 확인 한 당일 밤, 검찰 지휘 아래 수원 출입국사무소로 이송해 버렸다. 모든 일이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진행되었다. 경찰은 압둘이 미등록자이기 때문에 출입국사무소로 이관했으며, 강제 출국 문제는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는 말로 책임을 출입국으로 떠넘겼다.

압둘이 체포된 이유가 드러나자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 공동체 구성원들은 불안감에 떨기 시작했다. "미등록자면 테러리스트인가가?" 다들 불만이 가득했지만 드러내놓고 항의할 수도 없었다. 자신들 모두가 경찰에 사찰당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테러리스트로 오인 받아 강제 추방되면 본국에서도 같은 의심을 받으며 숱한 조사에 불려 다니기 때문이었다. 수원 출입국사무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화성 외국인보호소로 넘겨진 압둘이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곧바로 강제 출국시키려던 출입국의 시도가 무산되었지만 압둘은 그로 인해 반년 가까이 외국인보호소에서 고생해야 했다. 그는 테러리스트 혐의로 단속되어 강제 출국당할 경우 본국에서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임의 동행 과정의 부당함을 들어 국가인권위 진정을 했다. 그 와중에 외국인보호소로 옮겨진 지 닷새 만에 고향에서 지진 소식이 들렸다. 사망 6천 명을 포함하여 5만 명의 인명피해와 5만여 채의 가옥이 피해를 본 족자카르타 지진이었다. 압둘은 가족이 사는 집이 완파되었다는 소식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려야 했다.

테러리스트로 몰려 출입국으로 넘겨진 압둘 사꾸르는 외국인보호소에서 고향 집이 완파되었다고 들었다.
▲ 족자카르타 지진으로 완파된 집 테러리스트로 몰려 출입국으로 넘겨진 압둘 사꾸르는 외국인보호소에서 고향 집이 완파되었다고 들었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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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진정을 했지만 언제 조사가 시작된다는 말이 없었다. 게다가 그동안 일하던 회사에서 지불해 주기를 기대했던 퇴직금도 해결될 기미가 없었다. 그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던 건, 가족에게 전화라도 하라고 영치금을 넣어 준 인도네시아 공동체였다.

인권위 조사관은 압둘이 외국인보호소에 갇힌 지 다섯 달이 지난 10월에야 통역도 없이 찾아왔다. 삼 년 동안 연수생으로, 그다음은 산재와 이리저리 일자리를 옮겨 다니느라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압둘은 조사관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평등권과 사회권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 인권의 문제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고 차별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자평하던 인권위였다. 이주노동자 진정 사건을 다섯 달이나 지체시킨 것도 모자라, 통역도 배석하지 않았지만 크게 문제의식을 느끼는 것 같지 않았다. 혹시 테러리스트라는 혐의를 받았던 사람이라 그렇게 지체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테러리스트라더니, 여권법 위반했을 뿐...

2015년, 성탄을 하루 앞두고 서울구치소를 찾았다. 일면식도 없던 유명인을 면회하기 위해서였다. 면회 대상자는 11월 어느 날부터 며칠 동안, 뜬금없이 종합일간지 1면 머리기사와 포털과 방송사 톱 뉴스를 장식한 주인공이었다. 일명, '국제테러단체 IS의 시리아 지부인 알 누스라 추종자'로 낙인찍힌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노동자 짜르심(32)이었다. 한 언론사에서 통역으로 동행 취재를 요청해서 마침 궁금했던 차에 선뜻 응했다.

경찰은 짜르심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보도자료를 뿌렸다. 짜르심이 '알 누스라' 깃발을 들고 고궁에서 찍은 사진과 집에서 발견한 장난감 총과 칼, 그가 소지하고 있던 책들을 근거로 들었다. 당시는 이슬람 극단주의 IS가 파리 도심 곳곳에서 자살폭탄과 총기를 이용한 동시다발 테러를 저지른 직후였다. 132명이 사망하고 350여 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알려진 파리 테러는 국내에서 테러 방지법 논쟁을 일으켰다.

여당 대표부터 대통령까지 나서서 법 제정을 촉구하던 때였다. 언론은 부지런히 경찰 보도를 받아 적으며 확대 재생산했다. 정부 여당은 테러방지법을 위해 짜르심이 페이스북에 올린 알 누스라 깃발을 든 사진을 적극 활용했다.

출입국 단속에 의한 이주노동자 희생 규탄 집회에서
▲ 더 이상 이주노동자를 죽이지 마라 출입국 단속에 의한 이주노동자 희생 규탄 집회에서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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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구치소는 외부인의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며칠 후 민변 인권위원회 변호사들과 함께 간신히 면회할 수 있었다. 면회 결과 짜르심은 경찰 발표와 달리 국가정보원의 조사를 받고 있었고, 테러 추종 혐의는 입증되지 않은 상태라는 게 확인되었다.

경찰이 테러리스트라고 떠벌린 짜르심에게 적용된 혐의는 2007년 위조 여권으로 입국했다는 것과 타인 명의 통장을 이용한 전자금융법 위반 등이었다. 행정범을 테러범으로 몰아간 경찰발 보도는 악의적이었다. 총포·도검·화약류 등 위반은 국내 유원지 기념품 가게에서 산 것들이었고, 테러단체를 지지한다는 책은 알카에다 등의 분화 과정을 다룬 역사책이었다.

게다가 현행법상 테러단체를 추종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는 테러 죄가 성립되지 않는데도 경찰은 짜르심을 테러리스트로 몰았다. 그의 친구들 중 여럿이 고초를 겪고 강제 추방되어야 했다. 그런 짜르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국선변호인밖에 없었다.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관은 짜르심 사건에 대해 입장을 밝히기를 꺼려했다.

관련 단체들은 미등록이주노동자를 테러리스트로 몬 것은 체류 자격을 약점 삼아,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려는 정부 여당과 국정원의 전략이라고 비판했다. 경찰은 짜르심이 테러리스트라는 걸 입증하는 데 실패했지만, '미등록 이주노동자=테러리스트'라는 낙인찍기에는 성공했다. 관련 보도가 나간 후, 이슬람권 미등록 노동자들이 해고되었다는 소식들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체류 외국인이 많아지면서 외국인 범죄를 경험하거나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모두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모는 것은 인종차별이다. 물론 이런 현상은 한국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역시 '미등록자=범죄자'라는 낙인을 찍고 있다. 반 이민 행정명령으로 미등록자 추방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는 단속추방 명분으로 외국인 범죄자 추방을 들고 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전체 미등록 이민자 1100만 명 중 2.7%인 30만 명이 중범죄 이력이 있다. 이는 미국인 전체 인구의 6%에 달하는 중범죄율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비율이다. 트럼프 말처럼 미등록 이민자=범죄자는 근거 없는 낙인찍기일 뿐임을 통계가 말하고 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한 개인의 경험을 일반화하며, 불특정 다수의 외국인에 대한 분노를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것은 온당하다고 할 수 없다. 특정 국가 외국인의 입국 자체를 반대하거나, 제한하자고 하는 것도 정상이라 할 수 없다. 국가 정책을 밀어붙이기 위해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나라는 인권이 바로 선 나라라고 할 수 없다. 피부색, 국적, 종교가 다르고, 체류자격이 없다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은 인종차별이다.

대회 참석한 이주민들이 외국인혐오, 고용허가제 out 등을 외쳤다.
▲ 2017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기념대회 대회 참석한 이주민들이 외국인혐오, 고용허가제 out 등을 외쳤다.
ⓒ 부천이주노동자복지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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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은 1966년 3월 21일을 인종차별철폐의 날로 지정했다. 이날은 196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다 경찰의 발포로 69명이 희생된 참사에서 유래한다. 유엔은 국제사회에 그 비극을 기억할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인종주의와 차별 철폐를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을 천명하며 3월 21일을 <세계인종차별 철폐의 날>로 선포하였다.

'세계인종차별 철폐의 날'을 맞아 한국 사회에 만연된 인종 차별과 정부에 의해 주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차별정책들에 대해 경종이 울리기를 바란다. 우리나라는 1979년 'UN인종차별철폐협약'을 국회에서 비준함으로써 인종차별의 금지를 위한 노력에 동참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인종차별 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하지 않고 있어 UN으로부터 지속적인 법 제정 권고를 받고 있다. 이제는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미등록이주노동자=테러리스트 아니다!"


태그:#인종차별철폐의 날, #미등록이주노동자, #테러리스트, #인종차별, #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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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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