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운명의 일주일이 지나가고 탄핵이 결정된 뒤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주말마다 태극기를 들고 시청에 나가자던 친구들의 권유에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며, 과연 아들 말대로 탄핵이 되겠느냐며 걱정하던 당신이셨다.

"어머니, 거 봐요. 제 말이 맞죠? 당연히 탄핵이라니까."
"글게다. 다행이긴 한데 내 주변은 아주 난리다."
"왜요?"
"펑펑 우는 사람들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이제 우리나라 공산화 된다고 걱정이 늘어졌어. 너희 아버지도 어제는 오랜만에 술 많이 드시고 밤늦게 들어오셨단다."
"아버지도요?"
"응. 말은 별로 안 했지만 속상하셨나봐. 친구 분이랑 드셨데."

가짜 혹은 극우
▲ 어른들이 접하는 뉴스들 가짜 혹은 극우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가슴이 아팠다. 차마 아들 눈치 때문에 시청앞 광장까지는 가지 않으셨지만 아버지도 마음속으로는 박근혜의 탄핵이 심히 괴로우셨으리라. 어쨌든 당신이 몸담았었던 경찰의 예전 동료들은 태극기를 들고 광장에 나갔고, 아버지도 초반에는 대통령으로부터 마음을 돌렸지만 시간이 가면서 박근혜 동정론에 기울지 않았던가.

부모님 세대들에게 박근혜는 단순한 대통령이 아니라 젊은 날의 표상이요, 그 세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이며, 우리가 이 시대의 주류라는 선언이었다. 그런데 그런 박근혜 대통령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이미 어렴풋이나마 짐작하던 진실이 민낯으로 눈앞에 드러났다. 그것도 아주 추잡한 모습으로. 그러니 탄핵이 옭고 그르냐를 떠나 술을 한 잔 기울일 수밖에.

결국 박근혜의 잘못 중 하나는 이런 부모님 세대들에게 허망한 기대를 안겨주었다는 점이다. 세월이 흘러가면 시대도 그만큼 변하는 것이 순리이거늘, 박근혜는 그것을 억지로 되돌리려 했다. 그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휘광에 기대어 산업화 시대의 역군들을 호명하였다. 세대 간 갈등을 조장했으며, 그것을 국정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정부에 반대하는 이는 모두 빨갱이로 몰았고, 어른으로서 공경 받아야 할 세대들을 정권의 홍위병으로 둔갑시켰다.

따라서 헌재 앞에서 울부짖고 삼성동 박근혜 사저 앞에서 증오를 되삼키는 이들을 모두 백안시하는 것은 위험하다. 물론 개중에는 이 상황을 이용하여 사적인 이익을 취하려는 이들이 분명 존재하겠지만, 대부분은 평범한 우리의 부모님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제대로 된 정보를 접하지 못해서, 배우지 못해서, 돈이 없어서, 거절을 하지 못해서 나오셨을 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이와 같은 어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냥 저들이 태극기를 들고 거리에 나오도록 방치해야 할까? 아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진실을 알려야 한다. 더 이상 그들이 피해입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다음 세대인 우리가 할 일이기 때문이다.

관제 데모의 원동력

혹자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오는 사람들이 모두 동원됐다고도 이야기하지만 이는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실제로 많은 부모님 세대들이 탄핵 기각을 철석같이 믿었으며, 아직까지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예전에 자주 보시던 조선일보와 KBS의 보도마저도 의심한다. 바로 카톡 등으로 퍼지고 있는 소위 '가짜 뉴스' 때문이다.

말 그대로 끝이 아니다
▲ 어머니의 카톡 말 그대로 끝이 아니다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사실 최근 문제시 되고 있는 '가짜 뉴스'의 힘은 상상외로 크다. 젊은 세대들은 한낱 가짜일 뿐이라고 폄훼하지만, 정보의 접근이 한정적인 부모님 세대의 경우 같은 정보들을 친한 지인들로부터 계속해서 받다 보면 혹할 수밖에 없다. 나치의 괴벨스도 대중은 거짓말을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 다음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에는 믿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런 '가짜 뉴스'를 계속 접하다 보면 세상이 달리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언론들은 탄핵인용 찬성을 전 국민의 80%이상이라고 보도했지만, '가짜 뉴스'에 노출되어 있던 어른들은 그 통계 자체를 믿지 않았다. 그 모든 것들을 진영논리로 치부했으며 태극기와 촛불이 최소한 5:5가 된다고 믿었다.

광장에 직접 가셨던 어르신들은 그곳에 모여 있는 태극기 물결과 '가짜 신문' 등을 보면서 자신들이 소수가 아님을 확인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돈을 받고 동원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오히려 시청앞 모금함에 돈을 넣었으며, '가짜 신문'과 '가짜 잡지'를 통해 신념을 더욱 공고히 하였다.

결국 '가짜 뉴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가 안쓰러운 어른들에게 그를 지지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했으며, 유일한 진실로서 그들의 논리에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 거짓이 끊임없이 자기복제를 하며 거짓과 진실의 경계를 무너뜨린 것이다.

다행히 어머니의 증언에 따르면 현재 '가짜뉴스'는 예전보다 조용한 편이라고 한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거의 같은 내용의 톡들이 보내졌었는데, 탄핵 후에는 그 횟수가 월등히 떨어졌고 톡이 와도 탄핵보다는 문재인 전 대표나 사드 등에 관련된 내용이 많다고 했다.

그러나 방심할 수는 없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삼성동 박근혜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자신의 신념이 틀리지 않았음을 간증하고 있으며 이정희 전 헌법재판관과 이석기 전 의원이 남매라는 '가짜 뉴스'가 어른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선이 앞으로 2개월 남았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패배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이 어른들이 주고받은 카톡이었다는 분석이 많다. 누군가 끊임없이 '가짜 뉴스'를 생산하고 유포하여 문재인 후보를 비방했다는 건 기정사실인 바, 똑같은 일이 이번에도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서 등을 돌린 어르신들이 '그래도 문재인은 더 싫어'를 외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가짜 뉴스'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가짜뉴스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그럼 우리는 이 '가짜 뉴스'를 어찌해야 할까?

무엇보다 부모님들에게 '가짜 뉴스'의 폐해를 알리고 그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드려야 한다. 혹자에겐 지난한 일이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말씀드리고 설득해야 한다.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부모님 세대를 포기했던 대가를 톡톡히 치르지 않았던가. 

워낙에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여론이 나쁘고,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높은 시기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부모님 세대들의 박정희 시대의 향수는 매우 강하고, '가짜 뉴스'는 바로 그것을 이용해 진실을 호도하기 때문이다. 비록 탄핵은 인용됐지만 아직 정부는 바뀌지 않았고, '가짜 뉴스'는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는 중이다.

감시의 대상들
▲ 관제 데모에서 뿌려지고 있는 뉴스들 감시의 대상들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또한 우리는 '가짜 뉴스'의 자금을 추적해야 한다. 결국 '가짜 뉴스'가 가짜인 만큼 가장 큰 약점은 그것을 제작하는 비용에 있기 때문이다. 카톡으로 퍼트리는 것 자체야 많은 비용이 필요하지 않겠지만 그것을 제작하는 데에는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더욱이 관제 데모가 시작되면서 '가짜 뉴스'가 신문이나 잡지 등 실물로도 제작되지 않는가.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이미 실마리를 일부 확보하고 있다. 청와대의 지시로 전경련을 통해 어버이연합 등 보수 단체에게 지원 자금이 흘러들어갔다는 정황도 알고 있으며, 이병기 전 국정원장은 국정원의 자금이 보수 단체에게 가는 것은 아주 오래된 관례라고 증언한 바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바탕으로 현재 '가짜 뉴스'에 투입되고 있는 자금의 출처를 철저하게 밝혀야 한다.

시민으로서도 할 일이 있다. ㅇㅇ은행, ㅇㅇ항공 등 일부 기업들은 '가짜 뉴스'와 함께 배포되는 일부 극우언론에 광고를 싣기도 하는데, 이에 대한 공식적인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주장하고, 촛불 시민을 체제전복 세력이라고 묘사하는 극우 언론에게 광고를 주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지 공론화 할 수 있다. 아무리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주의지만 민주주의 자체를 파괴하는 극우 전체주의는 배격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당하고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 적폐를 청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이 천우신조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현재 유포되고 있는 '가짜 뉴스'를 철저히 감시해야 하며, 그들로부터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부모님 세대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그것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야하는 세대의 할 일이다. 


태그:#가짜 뉴스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