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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광록 씨가 만든 참빗. 오래 전 가정의 필수품이었다. 지금은 생활용품과 관광기념품으로 활용되고 있다.
 고광록 씨가 만든 참빗. 오래 전 가정의 필수품이었다. 지금은 생활용품과 관광기념품으로 활용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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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전, 방바닥에 떨어뜨렸던 서캐(이의 알)가 생각났다. 어머니는 참빗으로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서캐를 떨어뜨렸다. 그 사이에서 손톱 끝으로 이를 툭- 눌러 잡기도 했다. 위생 관념이 철저하지 않았던 시절의 얘기다.

그 시절, 참빗은 집집마다 생활의 필수품이었다. 한두 개는 기본이고, 몇 개씩 두고 살았다. 빗살이 촘촘한 것부터 듬성듬성 박힌 것까지 고루 갖췄다. 시집 가는 누이의 혼수품에도 여러 개가 들어갔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참빗이 자취를 감췄다. 아마도 플라스틱 빗이 나오면서부터였을 것이다. 생활이 조금 넉넉해지면서 위생상태도 좋아졌을 때다. 파마가 보편화된 것도 한몫 했을 테다.

참빗을 만드는 집을 찾아가는 길이다. 추억 저편에 자리하고 있던 그때 그 시절을 떠올렸다. 인지상정이다.

 6대째 대를 이어 참빗을 만들고 있는 고광록 씨. 고 씨가 자신의 작업장에서 참빗 만드는 작업을 하다가 웃어보이고 있다.
 6대째 대를 이어 참빗을 만들고 있는 고광록 씨. 고 씨가 자신의 작업장에서 참빗 만드는 작업을 하다가 웃어보이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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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광록 씨가 만든 참빗들. 전통의 참빗에서부터 색색의 색동참빗까지 다양하다.
 고광록 씨가 만든 참빗들. 전통의 참빗에서부터 색색의 색동참빗까지 다양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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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빗만 하루에 10∼20개 팔아요. 개량한 형태의 얼레빗 빼고요. 서울에 사는 대도시 사람들이 많이 사가요. 기념품으로 사기도 하지만, 아이들 머리에 서캐가 생겼다는 사람이 의외로 있습니다. 가끔은 외국에서도 주문해 와요. 교민들이 소개하는 것 같은데."

담양에서 참빗과 얼레빗을 만드는 고광록(57·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 삼만리)씨의 말이다.

선입견이었다. 요즘 세상에 참빗을 누가 사고, 쓸까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참빗의 모양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여러 가지 색깔을 입힌 색동참빗까지 다양했다. 옛 여인들이라면 탐낼만 한 걸작이었다.

가격은 보통의 것이 1만2000∼1만3000원, 고급스러운 것은 2만원까지 했다. 빗살이 촘촘해 서캐를 제거하는데 제격인 참빗은 1만5000원 한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판매량이 조금씩 늘고 있단다. 관광기념품으로도 쏠쏠히 나간다고.

 고광록 씨가 만든 얼레빗. 참빗과 달리 현대미가 가미돼 있다.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다.
 고광록 씨가 만든 얼레빗. 참빗과 달리 현대미가 가미돼 있다.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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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광록 씨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참빗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고광록 씨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참빗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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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씨는 대를 이어 참빗을 만들고 있다. 전라남도무형문화재 15호 참빗장으로 지정된 고행주(83) 선생이 그의 아버지다. 25년 동안 전수장학생을 거쳐 지금은 조교로 있다. 6대째 대를 잇고 있다.

"아버지 어깨 너머로 배웠어요. 어려서부터 대나무로 뭔가 만드는 걸 좋아했거든요. 썰매도, 굴렁쇠도, 활도 제가 직접 만들어서 갖고 놀았으니까요.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을 만큼, 제대로 만들었어요. 다른 친구들이 부러워할 정도로요."

고씨의 회상이다. 지금은 성년이 된 두 아들이 어렸을 때 갖고 놀았던 장난감도 모두 만들어줬다는 게 그의 말이다.

"딱히, 참빗을 전수하겠다는 생각은 안 했습니다. 그냥 무엇인가 만드는 게 재밌었어요. 힘든 줄도 모르고요. 그래서 직업이 되고, 지금까지 하고 있죠. 아마도 제가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저의 숙명인가 보죠."

고씨가 지금도 참빗을 만들고 죽세공예를 하는 이유다.

 참빗의 재료가 되는 3년생 왕대. 성질이 부드러워 참빗 재료로 맞춤이다.
 참빗의 재료가 되는 3년생 왕대. 성질이 부드러워 참빗 재료로 맞춤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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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남짓 넓이로 잘게 쪼개진 대나무의 껍질 부분. 참빗은 대나무의 속살이 아닌, 단단한 껍질 부분으로 만든다.
 1㎝ 남짓 넓이로 잘게 쪼개진 대나무의 껍질 부분. 참빗은 대나무의 속살이 아닌, 단단한 껍질 부분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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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업용 칼을 쥔 고광록 씨의 손. 오랜 기간 죽세공예를 해온 세월이 묻어난다.
 작업용 칼을 쥔 고광록 씨의 손. 오랜 기간 죽세공예를 해온 세월이 묻어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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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에 조그마한 참빗이지만, 만드는 데 공력이 많이 들어간다. 성질이 부드러운 3년생 왕대를 30∼40㎝ 크기로 자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것을 1㎝ 남짓 넓이로 잘게 쪼갠 다음 다시 겉과 속으로 나눈다. 참빗은 단단한 대나무의 껍질 부분으로 만든다.

참빗 하나에는 0.4㎜ 정도의 빗살 100여 개가 들어간다. 빗살 하나하나를 훑어 매끈하게 만든다. 이것을 차곡차곡 엮고, 염색하고, 아교로 붙이고, 말린다. 이후 실을 풀고, 빗살의 끝을 반듯하게 다듬고, 닦아내고, 문양도 넣어야 한다. 지난한 일이다.

 참빗을 만드는 과정. 댓살을 하나씩 촘촘히 엮어 만든다.
 참빗을 만드는 과정. 댓살을 하나씩 촘촘히 엮어 만든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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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광록 씨가 참빗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댓살의 겉표면을 부드럽게 하는 작업이다.
 고광록 씨가 참빗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댓살의 겉표면을 부드럽게 하는 작업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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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되죠. 작업하는 내내 쪼그리고 앉아서, 허리를 숙이고 하는 일이니까요. 대나무를 자르고 깎으면서 묻어나는 먼지도 다 들이마셔야 하고요. 돈을 생각하면 못하죠. 해서도 안 되고요. 재밌으니까 하죠."

고씨는 참빗을 오전에만 만든다. 온종일 일하기엔 너무 힘들다. 오후에는 대나무 부산물을 활용해 다른 죽세공예품을 만든다. 얼레빗, 발 지압기, 대나무 컵, 구두 주걱, 열쇠고리 등등. 큰 부담은 없다. 텃밭을 가꾸거나 집안일을 돌보는 일에도 시간을 쓴다.

"참빗은 결코 못살고 지저분한 시대의 유물이 아니에요. 성능도 플라스틱 빗에 비할 바가 아니고요. 두피를 시원하게 해주고, 개운하잖아요. 정전기도 생기지 않고요. 머릿결을 윤기 있게 만들어주는데 참빗만한 게 어디 있을까요?"

고 씨의 참빗 예찬이다.

 참빗 만들기의 마무리 과정. 고광록 씨가 댓살 사이사이를 손질하고 있다.
 참빗 만들기의 마무리 과정. 고광록 씨가 댓살 사이사이를 손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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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광록 씨가 만든 참빗. 참빗은 두피를 시원하게, 머릿결을 부드럽게 해준다.
 고광록 씨가 만든 참빗. 참빗은 두피를 시원하게, 머릿결을 부드럽게 해준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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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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