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나라'에 대해 이야기할 때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내가 살고 싶은 나라, 내가 꿈꾸는 국가'에 대한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대선 기획 '100인의 편지'를 통해 전하고자 합니다.

이번 기획은 '열린 기획'으로 시민기자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차기 정권에 하고 싶은 말, 바라는 바에 대해 적어 기사로 보내주세요. '이게 나라냐'는 탄식을 넘어 '이게 나라다'라는 새로운 지향점을 여러분과 함께 열어나가겠습니다. [편집자말]


30여 년 전 해병대에 입대하던 날, 세상에서는 봄이 왔다고 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훈련소 안은 여전히 칼바람이 기세등등했습니다. 아직은 군복이 어색하던 입소 초기 제식 훈련받을 때 일입니다.

교관이 "받들어~ 총!" 하면 훈련생들은 아랫배에 잔뜩 힘을 주고 목이 찢어져라 "필승" 소리 질러야 했습니다. 그러면 교관은 성에 안 차다는 듯이 쇳소리가 섞인 저음으로 "목소리 봐라. 엎드려뻗쳐!" 합니다. 이어지는 구령과 함성은 언제나 비슷했습니다.

"잘할 수 있나!"
"악~" 
"잘할 수 있나!"
"아악~" 

해병대 훈련소에서 교관은 훈련생들의 더 큰 목소리를 유도하기 위해 짐짓 못 들은 척합니다. 훈련생들은 교관의 의도적인 무시 전략에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도 간다'는 생각을 하며 참습니다. 아무리 그래봤자 시간은 흘러가는 법이고, 언젠가는 제대라는 꿀물을 먹을 날이 있을 거라는 희망 속에 목청을 높입니다.

몇 번의 반복이 있고 난 후, 다시 "받들어~ 총!" 구령이 나옵니다. 그러면 악에 받친 훈련생들은 핏줄이 보일 정도로 목청껏 내지릅니다.

"필~승!"

이 역시 소리가 작았는지 하얀색 방탄헬멧을 꾹 눌러 쓴 교관은 턱을 치켜들며 "목소리 봐라~죽고 싶나!"라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훈련생들은 있는 힘껏 핏대를 올리고 소리를 내지르지만, 교관은 귀가 먹었는지 계속해서 데시벨을 높일 것을 주문합니다. 그러다 보면 훈련생들은 머리가 핑핑 돌고 별이 보일 정도가 됩니다.

엎드려 뻗고, 구르고, 선착순을 몇 번씩 반복하지만 교관은 절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지 않습니다. 덕택에 교관이 한 손을 귀에 갖다 대며 "안 들려!~" 혹은 "뭐라고?"할 때마다 훈련생들은 목에 핏줄이 터지도록 고함을 질러댑니다. 결국 훈련생들에게 남는 건 목이 쉬어 터지지 않는 소리와 깡밖에 없게 됩니다.

지긋지긋한 군대 이야기를 왜 꺼냈냐고요? 이주노동자들의 절규가 떠올라서입니다. 아무리 고함을 질러도, 목이 터져라 외쳐 봐도 메아리 없는 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주노동자, 특별히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는 무관심에 가까운 소수자 이슈입니다. 이 사회는 들을 귀가 없는 걸까요? 들을 수는 있는 건가요? 차라리 "뭐라고? 안 들려!"라고 하는 반응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이 자기 권리를 주장해도 귓등으로도 들으려 하지 않는 세상에 고합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잘해야 본전'인 이주민·다문화정책 공약

차별 철폐를 촉구하는 이주노동자들
▲ 이주노동자 집회 현장 차별 철폐를 촉구하는 이주노동자들
ⓒ 고기복

관련사진보기


성경은 모든 인간을 '나그네와 행인 같다'고 말합니다.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고향을 떠난 이주노동자라는 말입니다. 성경을 믿든 안 믿든, 모두가 이주노동자이고, 이주노동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인식이 보편적으로 자리 잡으면,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국적이 다른 이주노동자를 핍박하거나 차별하는 일은 없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UN은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국제협약'을 만들어,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 협약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는 "국적을 부여한 나라, 즉 모국이 아닌 국가 내에서 유급활동에 종사할 예정이거나 이에 종사하고 있거나 또는 종사하여 온 사람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외국인노동자라고 하는 말은 유엔 이주노동자 권리협약에서 말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를 뜻합니다.

이주노동자를 포함한 이주민 문제 혹은 다문화정책은 정치인들에게는 선명한 선전의 도구가 됩니다. 극우 정치를 표방하는 사람은 '외국인 혐오'를 부추기는 반면, 진보를 표방하는 정치인은 '인권'을 내세웁니다. 이처럼 선명성을 드러내는 데 '이주민'만큼 좋은 소재도 없습니다. 반면, 정치인들의 구호를 정책으로 실현하는 것은 정책 입안자들에게는 골칫거리입니다. 좌로 가나 우로 가나 반대 여론이 비등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형편에서 지지율이 높은 후보는 괜히 소수자 이슈에 관심 갖고 공약을 내걸었다가 반대 여론에 부딪히느니 차라리 무시하는 게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해야 본전인 이주민·다문화정책 공약'은 뒷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주민·다문화정책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제시되어야 합니다. 즉, 인권과 가치 지향적이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며, 사회통합을 꾀하되, 이주민에 대한 일반 대중의 정서적 반감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현장에서 오랜 경험을 하며 정부 정책에 다양하게 의견을 개진해 왔던 시민단체, 현장 전문가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 주셨으면 합니다. 공약을 만들어 제시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주자노동자에게 봄은 오는가?

헌재 앞에서 기자회견 중
▲ 고용허가제 사업장 변경 위헌 심판 청구 헌재 앞에서 기자회견 중
ⓒ 고기복

관련사진보기


아침저녁으로 쌀쌀하긴 하지만 낯을 간질이는 바람은 막을 수 없고, 나무에 물이 오르고 꽃이 피는 것을 막을 수 없는 봄입니다. 봄바람을 맞으며 묻습니다. '이주노동자에게 봄은 오는가?'

대한민국에서 이주노동자는 일자리 잠식과 내국인 노동자 임금 보호에 대한 논쟁 때마다 돌팔매를 맞습니다. 그들에게 근로기준법이 정한 최소한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는 것도 아니고,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어떠한 행위도 허락하지 않으면서 마치 큰 호혜를 베푼 듯이 이야기합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행복추구권마저 박탈된 존재라는 걸 아십니까? 지금이야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인용 결정으로 칭찬받고 있지만, 이주노동자와 관련한 판결에서는 아주 유감스런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는 원칙적으로 사업장을 3회 이상 변경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은 3회의 사업장 변경이 이주노동자 귀책사유가 아닌 경우로 이뤄진 경우 1회에 한해 추가 변경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계약해지의 자유가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결국 강제근로의 위험에 노출되고 이직 과정에서 인권침해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이유로 직업선택의 자유, 근로의 권리,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하여 위헌 청구된 사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2011년 9월 29일에 '심판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헌재는 "외국인도 제한적으로라도 직장선택의 자유를 향유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면서도 "사업장 변경을 제한한 것을 불합리하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직장 선책의 자유를 침해할 정도가 아니라는 말을 덧붙여서 말입니다.

당시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가 이주노동자 931명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61.6%가 직장이동을 희망했지만 이동제한 조항 때문에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5인 이하 사업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의 82.1%가 이동을 희망하고 있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의 희망을 앗아가 버린 결과, 어떻게 됐는지 아십니까? 헌재 판결 이후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해져 버렸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이주노동자 근로계약 기간을 1년에서 3년으로 못을 박아 버렸습니다. 입국할 때부터 3년 단위로 계약하지 않으면 입국 기회부터 차단당하는 이주노동자들은 헌재 판결 이전 그나마 갖고 있던 3번의 기회마저 살릴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맙니다.

그동안 인권위는 ▲ 장시간·저임금 근로환경 ▲ 사업장 변경제도 ▲ 노동력의 불법공급 ▲ 주거환경 ▲ 산업재해 및 건강보험 등 다섯 가지 제도개선 방안을 노동부에 권고했습니다. 권고의 실효성이나 수용 여부를 떠나서 오죽했으면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치며 인권에는 추호의 관심도 없던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조차 이주노동자 근로환경·처우개선 권고를 했을까 싶습니다.

이주노동자에게도 연대의 손을 내밀어야

이주민도 인권이 있습니다.
▲ 이주노동자 캠페인 모습 이주민도 인권이 있습니다.
ⓒ 고기복

관련사진보기


일반적으로 이주노동자는 어느 나라든지 원하든 원하지 않든간에 국내 노동시장에서 노동시장 잠식이라는 논란의 중심에 서게 마련입니다. 이 말은 이주노동자는 내국인 노동단체에게 결코 곱게 보일 수 없는 존재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최근 건설현장에서 국내 노동단체들이 이주노동자 고용을 거부하도록 사업장에 실력 행사하는 경우가 왕왕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내국인이 기피하는 업종에서 일하기 때문에 노동시장 잠식이나 충돌이 크지 않다는 주장이 일반적이긴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면에 있어서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장에서 우월적 위치에 서기도 하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은 내국인 노동자와 잠재적 경쟁자의 위치에 서기도 하고, 가끔씩은 일자리를 잠식하는 가해자의 위치에 서기도 합니다. 이런 형편에서 내국인 노동단체들이 아무리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연대의식을 갖는다 해도, 이주노동자들을 마냥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상식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미국 산별노조총연맹(AFL-CIO)은 행동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영주권 신청의 열쇠를 쥐고 있는 고용주에 의해 열악한 임금과 근무조건에 처하기 쉽고, 심지어는 강제 추방될 수도 있는 이주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꾸준히 요구해 왔습니다. 미국 산별노조총연맹은 이주노동자들이 소외되고 가난한 영구적인 하류 계급, 계층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오히려 새로운 미국인을 만들기 위한 시발점으로 미등록 이주자에 대한 시민권 부여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 결과 미등록 이주자들에게 짐이 될 수 있는 벌금에 대한 면제 조항이나 인종 차별주의자들의 밀고로 인한 단속과 추방으로부터의 보호 장치 등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 왔습니다. 또한 미국 산별노조총연맹이 무엇보다 줄기차게 주장한 것은 미숙련 이주노동자에 대한 적절한 임금 보장이었습니다. 이 주장이야말로 고용주 측과의 가장 중요한 협상 요건이었고, 많은 경우 경영자 측으로부터 합의를 이끌어냈습니다.

미국산별노조총연맹은 경영자 측이 제시하는 최저 임금이 아니라, 그보다 현실적인 임금, 즉 내국인 노동자들에 준하는 임금을 줄 것을 요구하여 관철시키고 있습니다. 이 부분이 우리나라 노동단체들이 눈여겨보고, 본받아야 할 부분입니다. 미국 산별노조총연맹은 이주노동자의 임금이 지나치게 낮게 책정되면 가격 경쟁력을 갖게 되어 내국인 노동시장을 잠식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내국인 노동자들의 임금 역시 하락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습니다.

결국 이주노동자에게 적절한 처우를 보장해 주는 것이 내국인 노동자를 보호하는 길이로 여긴 것입니다. 이주노동자를 단순히 잠재적 경쟁 관계나 가해자의 위치에 놓고 본 것이 아니라, 동등한 처우를 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신들에게도 이득이 된다는 것이죠.

물론 미숙련 노동자이고, 언어가 서툴다는 면에서 일정 부분 감액 요건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을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노동자들에게는 현실적이고, 지혜로운 주장이라는 것을 미국 노동계가 보여 줬습니다. 그런 점을 이해한다면, 우리나라 노동단체들도 이주노동자의 근로조건 개선에 특히 최저임금 수준에서 당연하게 체결되고 있는 현행 근로계약 관행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서 연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할 것입니다. 노동단체가 연대의 손길을 내밀면 정치인들도 생각이 바뀌지 않을까요?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이주노동자 인권 현실은 후퇴에 후퇴를 거듭했습니다. 특히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 예고제가 시행되면서 밤낮, 주말도 예외 없이, 외국인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단속이 일상화되고 있습니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이 합법적인 체류 자격을 갖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 이동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되면서 외국인 고용허가제를 폐지하라는 말이 시민단체에서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문화라는 말 속에 이주노동자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이거나 하부 계급과 같은 존재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일부 지자체에선 형식적으로나마 운영되던 '외국인근로자센터'를 폐쇄한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리고, 지자체 외국인 관련 예산에서 이주노동자 관련 예산은 '언 발에 오줌 누기' 격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이주노동자들이 인권침해를 당했을 때 그나마 최후의 보루라고 여겨왔던 국가인권위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과정에서 발생한 상해·사망사고에 대해 단속 직원은 책임이 없다는 결정 등으로 이주노동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 왔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인권위에 이주노동자 관련 진정 사건이 줄어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정권 입맛에 맞춰 출입국 단속 관행에 면죄부를 주고 날개를 달아주는 작금의 현실만을 놓고 보면, 대한민국에서 이주노동자의 봄은 멀어도 한참 멀었습니다. 그야말로 '춘래불사춘'입니다. 그러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듯, 봄은 물리적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국내 체류 이주노동자들에게도 반드시 봄은 올 것이라 믿어봅니다. 그 봄을 만끽할 수 있도록 힘써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태그:#대선기획, #이주노동자, #미등록이주노동자, #헌법재판소, #국가인권위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